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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250화 (250/444)

제250화. 궁지 (3)

우리끼리는 결론을 내렸지만, 담용주에게 말은 해놔야 했다.

‘이쪽이 고립된 줄 알고 지휘가 꼬이면 안 되니까.’

나는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담 형. 우리는 지금부터 산 아래 있을 적들의 본대를 쫓아볼까 하오.]

[본대가 있는 곳의 위치를 알아내셨소?]

[알아내고 말 것도 없소. 마교 놈들은 본디 일을 꾸밀 때 전황을 쉬이 파악할 수 있으면서도 몸을 빼기 좋은 곳에 본대를 두는 편이오. 마침 저 아래 보이는 선착장이 그 조건에 부합하는군.]

[…북편 나루. 그럼 나도 함께 가겠소.]

그런데 내 생각을 들은 담용주가 본인도 함께하겠다는 말을 해왔다.

[담 형도?]

[여기 이렇게 강시들만 가득한 것을 보면, 그 본대에 북해빙궁의 역도들도 있지 않겠소?]

나는 담용주의 생각을 바로 이해했다.

담경주 편에 섰던 자들은 중원 사람은 모두 적이라는 담경주의 주장에 동조했던 자들이었다.

‘우리끼리 가면 필연적으로 피를 볼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담용주가 함께 가면 순순히 투항해올 가능성이 있었다.

담용주는 북해빙궁의 무인들을 어르고 달랠 줄 알았다.

그리고 처음 정청에서 변이 터졌을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인들이 부리는 강시들이 북해빙궁의 성지인 빙혈산을 짓밟았고, 해골병사들과 담용주파 무인들은 그에 맞서 싸웠다.’

그 광경을 보고 동요를 하지 않을 자가 있을까?

[확실히 담 형이 함께 가면 피가 덜 흐를지도 모르겠소.]

[운만 뗐는데 바로 알아들으셨군.]

[위험할 거요.]

[그러니 더더욱 가야 하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을 괴룡과 중원의 벗들에게만 맡기고 있을 수는 없기도 하고, 내가 가야 이 난리가 끝난 후에 빙궁이 다시 일어설 수가 있소.]

[그러시다면야. 함께 갑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담용주는 고명대신 중 한 명에게 이곳의 지휘를 맡긴 뒤.

별동대를 추려 우리 뒤에 따라붙었다.

“숙부님.”

“잘들 따라붙거라!”

그렇게 서른 명의 인원으로 추형진을 갖춘 우리는 선봉에 선 재혁숙부를 따라 빙혈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산은 순조로웠다.

쌔액!

쌔애애액!!

재혁 숙부의 손에서 거대한 흑도가 춤을 추듯 휘둘러졌고.

그렇게 펼쳐지는 오호단문도의 초식에 우리 앞을 막아섰던 강시들은 말 그대로 대호(大虎)의 앞발에 찢겨나가듯 쓸려나갔다.

촤악!

촤아악!!!

그 뒤에서 나와 언동생들 그리고 북해빙궁의 무인들도 한 몫을 거들었고.

“소천이 형! 우측의 나무 위!”

“어.”

해골 병사들 또한 적재적소에서 한몫을 거드니.

크르르르!

촤악!!

그야말로 물살을 가르는 쾌속선처럼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은하성이 헛웃음을 흘리며 나를 불렀다.

“허. 용운 형님.”

“왜?”

“저것, 아니 저분들 말입니다.”

“해골 병사?”

“예. 보면 볼수록 신기해서요.”

“너 막간산 따라왔을 때 비슷한 거 보지 않았냐? 구울.”

“굴(崛)? 아! 그것들도 신기하긴 했죠. 근데 저분들은 무공을 쓰잖습니까. 형님 내력을 나눠 쓰는 겁니까?”

“그럼 내가 지금 어떻게 이렇게 달리면서 싸우고 있겠냐?”

나는 하늘에 걸린 흑마법진을 가리키며 답했다.

“자세히 설명해줘도 어차피 못 알아들을거고. 그냥 저기 걸린 저거랑 빙혈산의 한빙진기 덕분에 가능한 거라고만 생각하면 된다.”

그 말을 하는 중에.

해골 병사 하나가 강시 하나를 베어내며 스쳐 지나갔다.

촤악!!!

“와, 방금은 절초였다.”

은하성은 또 한 번 감탄했고, 당옥기는 그런 녀석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하성이 너보다 강한 거 아냐?”

그런 당옥기의 말에 곁에 있던 우소릉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둘이 함께 덤비는 것보다도 더 강할지도요?!”

“우 동생! 거기선 아무리 그래도 은 형이 이기긴 할거라는 말을 해줘야지!”

그렇게 순조롭게 하산이 이루어지고 있던 그때.

빠각! 빠각!!!

빠가가가각!!!

해골 병사들을 때려 부수며 튀어나온 시뻘건 강시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

안 그래도 정청에서 마주쳤던 혈강시 다섯 구는 어디 갔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전황이 바뀌자 아껴두었던 것을 다시 투입한 모양이었다.

- …그런데 저것들 아까는 다섯 아니었더냐?

‘그러게요? 왜 다섯 구가 아니라 네 구뿐이지?’

의문이 들었지만, 우선은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재혁 숙부에게 말했다.

“숙부가 저놈을 맡아 주십시오.”

“오냐.”

그중에 격이 다른 경노야로 만든 강시는 재혁 숙부에게 맡겼고.

“우리가 우측의 두 구를 맡겠소. 담 형이 좌측의 한 구를 맡아주시오.”

“알겠소.”

북해빙궁의 별동대와 좌우로 갈라져 남은 혈강시를 상대하는 일을 시작했다.

어려울 것은 없었다.

“정현, 남궁윤. 제갈설지 너희 셋이 저기 저놈 잠시 붙들고 있어!”

“예! 언 소협!”

“알았다.”

잠시라면 충분히 혈강시를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세 녀석을 한쪽에 보낸 뒤.

“나머지는 저놈한테 다 붙어! 너희를 상대하고 있는 틈에 내가 해치울 테니까!”

“예!”

다른 한 놈이 언동생들을 상대하는 동안.

크아아아!!!

기민한 움직임으로 틈을 노려, 강시의 이마에 ‘역적의 낙인’을 찍었다.

휘릭!

푹!

“동작 그만.”

강시는 우뚝 멈춰 섰고.

나는 멈춰선 강시의 목을 지체 없이 베었다.

촤악!!!

그런 내 모습에 은하연이 입을 열었다.

“…방금 언 공자의 말을 들은 것 같았는데, 목을 베어 버리시네요?”

“하늘에 걸린 주술진이랑 동시에 운용하기는 벅차니까. 일단 마교의 술사들이 못 쓰게 만드는 게 최선이오.”

이어서 정현이 상대하고 있던 쪽도 같은 방식으로 해치웠다.

그러고 나니, 북해빙궁 쪽은 혈강시 한 구를 해치운 참이었고.

재혁 숙부는 강시가 된 경 노야와 한참 합을 나누는 중이었다.

캉! 캉!!

카카카캉!!

우리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재혁 숙부를 도우러 가려 했다.

“언 형? 저기 북편 나루에 배들이 갑자기 불을 끄는데요?”

그런데 선착장의 배에 걸려 있던 등롱들이 꺼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달아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디로 내빼는지 알리지 않으려는 수작이야.”

내가 미간을 좁히자, 팽소진이 곧바로 말했다.

“그럼 숙부가 상대하던 강시도 방금 방식으로 해치우고 빨리 내려가자.”

“경 노야로 만든 강시는 마라강시(魔羅僵尸)라고, 망자의 사념이 깃들어 있는 강시입니다. 방금과 같은 방식으론 안 됩니다. 생전에 화경의 반열에 들었던 몸이라 격 자체가 달라요. 그런 식으로 빨리 해치울 수가 없습니다. 이거 조를 나눠야 할 것 같은데….”

은하연이 입을 연 건 이때였다.

“그럼 조를 나누죠. 마라강시는 저희가 맡을게요. 언 공자랑 팽 교수님 그리고 북해빙궁의 별동대는 내려가세요.”

“…가능하겠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던 찰나, 제갈설지가 말했다.

“생전의 경 노야는 화경의 고수였지만, 저 강시는 정말로 화경의 고수라 할 수는 없죠. 저희끼리도 충분히 해볼 만해요.”

…하긴.

내가 그렇게 약하게 키우지는 않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니, 방심은 마시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오른손의 이음새를 공략해 보시오. 처음 맞닥뜨렸을 때 얼핏 봤는데, 잘린 팔을 다른 곳에서 구해 붙였는지 피부색이 달랐소.”

그렇게 마라강시를 맡긴 나는 다시금 하산을 시작했다.

*     *     *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닐 거라는 언용운의 말이 맞았다.

언동생들은 마라강시로 거듭난 경 노야를 상대로 진땀을 빼고 있었다.

방심을 한 것도, 되는대로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캉! 카아아앙!!

정현과 남궁윤이 합공으로 마라강시의 시선을 끄는 동안, 제갈설지는 틈을 노릴 방도를 냉철하게 관찰했고.

“부적은 안 보이는 게, 예전에 용운 님이 노획했던 무부강시들처럼 몸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아요. 술사도 근처에는 없는 것 같으니…. 소리, 기운, 숨, 냄새로 적의 위치를 판단하는 것 같아요.”

쌔애애애액!

쌔애액!!

하나, 그런지 제법 되었음에도 제대로 된 틈을 한번 못 잡은 채 땀범벅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언용명은 생각했다.

‘당장에는 괜찮지만, 이대로라면 결국엔 지쳐 누구 하나 죽거나 다치고 말 거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

진주언가의 권법은 파사(破邪)의 묘리를 담은 내가중수의 권법이었다.

하여, 예로부터 강시와 강시술사의 천적으로 이름난 게 진주언가의 권사였다.

‘…문제는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는 거다.’

언용명의 현재 성취로는 마라강시의 동작을 제대로 쫓을 수가 없었다.

내력도 신체의 단단함도 당연히 밀렸다.

지금 언용명의 무위로 마라강시에게 접근하는 것은 한마디로 자살 행위였다.

‘…이 자리에 나 대신 형님이 계셨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셨겠지.’

언용명 정도밖에 안 되는 무위로도, 언용운이라면 이 상황을 능히 타개해냈을 것이다.

‘형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렇게 생각을 곱씹기를 잠시.

언용명은 결론을 내리고 근처의 천장호를 불렀다.

“이보게, 장호. 우리가 나서야겠네.”

언용명의 말에.

천장호는 때마침 뛰어드는 강시 한 구의 복부에 항룡장을 때려 박으며 답했다.

쌔애애액!

펑!

“이미 싸우고 있잖나?”

“이것들 말고. 저기 저 마라강시 말일세.”

“…그게 뭔?”

“강시의 이지는 사람만 못하고, 언가권에는 파사의 묘리가 담겨 있….”

“아, 각설하고.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장호 자네가 앞서고 내가 뒤에서 저놈에게 달려든 뒤, 자네가 틈을 만들어 줬을 때…. 내가 권력을 먹이면 상황이 바뀔 걸세.”

언용명의 말에 천장호는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염병. 역시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장호의 시선은 마라 강시 쪽으로 향한 채였다.

한쪽 남은 소매를 북- 하고 찢어낸 천장호는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귀신 돼서 제삿밥 못 얻어먹으면 싫을 것 같은데. 이러다 뒈지면 제사는 진주언가에서 치러 주겠지?”

“일단 북해빙궁에서는 치러 주지 않겠나?”

씩 웃으며 그 말에 답한 언용명은 재차 말했다.

“준비됐으면 가세.”

고개를 끄덕인 천장호는 양손에 기운을 둘둘 감은 뒤, 공격조가 잠시 잠깐 걸음을 물리는 틈을 타 땅을 박찼다.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라강시를 향해 달려가, 양손에 실린 장력을 내질렀다.

“쌍룡출해(雙龍出海)!!”

쌔애애애액!!

쌔애애액!!!

그러자, 마라강시의 손에서도 시뻘건 장력이 뿜어져 나왔다.

두 장력은 곧바로 충돌했고.

펑!!!!!

천장호는 비산하는 먼지와 함께 피를 한 사발 뿜으며 튕겨 나갔다.

“쿨럭!”

그러는 동안 생긴 짧은 틈.

천장호 뒤에 숨어 있던 언용명은 디딤발을 강하게 디디며 내지르는 주먹에 내력을 실었다.

쌔애액!!!

그러자 뒤늦게 언용명을 눈치챈 마라강시의 손아귀가 언용명의 천령개를 깨부수고자 떨어져 내렸다.

찰나의 순간.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맞닥뜨리면 보고는 한다는 인생의 단면들이 언용명의 뇌리에도 스쳤다.

하나, 그런 단면들 속엔 언용운의 모습이 있었다.

‘형님이라면!’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을 내디딜 터.

감히 그 걸음을 완벽히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흉내는 내본다.

‘나 역시 언가의 사람이다!’

격표백산(格表魄散).

겉을 때려 백(魄)을 흩어 놓는 언가권의 초식이 언용명의 주먹으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언용명이 내지른 주먹에.

마라강시의 몸이 감전을 당한 듯 우뚝 굳었다.

서로 간에 자세한 전략을 나눈 바는 없었으나 언동생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캉!!!!!!!

언용명을 향해 떨어지던 마라강시의 왼손엔 제갈설지가 검을 끼워 넣었고.

캉!!!

남궁윤의 검은 언용운이 노리라 했던 오른손의 이음새를 가르고 지나갔다.

쌔애애애액!!!

푹!

그렇게 드러난 절단면에 정현이 검강을 휘감은 검을 찔러 넣었다.

쿵!!

그렇게 죽어 강시가 된 경 노야의 몸뚱이가 고꾸라지던 순간.

쌔액!

쌔애액!

팽소진의 검과 팽소천의 도가 가위처럼 교차하며 그 목을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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