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궁지 (4)
마라강시를 언동생들에게 맡긴 우리는 하산을 서둘렀다.
그렇게 도착한 선착장 어귀에서 눈을 돌리니, 아직 내빼지 않은 배 몇 척이 보였다.
- 다행히 모두 내뺀 것은 아닌 모양이로구나?
‘…일단은 그런 것 같습니다.’
- 일단은?
서둘러 내려오긴 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저들에겐 도망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이런 경우엔 쭉정이들만 남았거나, 뭔가 함정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인데….’
사부님께 그런 생각을 전하고 있는 사이.
재혁 숙부가 남아있는 배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배. 담(譚)자가 수 놓인 선기(船旗)를 달고 있는데?”
그 말에 담용주가 굳은 얼굴로 답을 했는데.
“형님의 배입니다.”
마침 선상과 선착장에 부산하게 움직이는 이들이 보였다.
출항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함정이든 쭉정이만 남아있든, 일단 출항을 막고 살펴봐야 했다.
“출항을 하려는 것 같군.”
당면한 사실을 짚은 나는 곧바로 담용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담 형. 별동대 중 일부를 떼어 선착장을 지키고 있는 병력을 상대하게 하고. 나머지는 바로 선상(船上) 위로 뛰어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는 게 좋겠소.”
담용주는 곧바로 빙궁의 무인들에게 작전을 하달했다.
“설록대(雪鹿隊)에서 차출된 인원들은 선착장을 장악하고, 나머지는 소궁주선에 오른다!”
“예!”
별동대원들이 짧고 굵은 답을 내놓는 동안, 다다른 선착장.
“막아라!”
선착장에서 밧줄을 풀고 있던 적들이 우리를 향해 덤벼들었고.
담용주의 명에 따라 설록대의 인원들이 그들을 향해 튀어 나갔다.
“쳐라!”
양자가 휘두르는 병장기에서 불꽃이 튀기는 사이.
“갑시다!”
나와 재혁숙부를 필두로 선상 위에 오르기로 한 인원이 막 뭍에서 멀어지고 있던 배 위에 날 듯이 뛰어올랐다.
휙! 휙!
휙! 휙! 휙!!
그렇게 날아든 우리가 선상에 착지하자.
날붙이를 뽑아 든 적들이 우리를 둘러쌌다.
채챙!
채채채챙!!
그런데 그 면면들이 낯이 익었다.
담경주 편에 붙은 북해빙궁의 무사들이었던 것이다.
‘다 아는 사람들이구만.’
한데, 한 명이 내 눈에 특히 거슬렸다.
‘사부님, 저기 맨 뒷줄에 있는 검수 말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갈무리한다고 한 거 같은데, 시체 만지는 자들 특유의 사기(邪氣)가 묻어나는 것 같은데요?’
- 내 보기에도 그렇구나. 혼백에 말라붙어있는 피 냄새가 참으로 지독하다.
‘제가 계속 쳐다보면 이쪽에서 알아챈 걸 눈치를 챌 테니, 사부님께서 주시를 좀 해주고 계십쇼.’
- 당장에 안 들이치고?
당장에 저쪽을 들이치기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빙궁의 역도들이 많았다.
‘저번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듯 담용주가 제법 사람을 어를 줄을 압니다. 빙궁의 역도들과는 잘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 끝날 수도 있습니다.’
- 네가 저놈을 공격하면 곧바로 유혈사태가 된다는 것이로구나. 알았다. 내 저 녀석을 지켜보고 있으마.
그렇게 내가 사부님의 도움을 받아 수상한 녀석을 감시하고 있는 사이.
별동대의 일원으로 따라왔던 외부경 어른이 역도들을 향해 일갈하셨다.
“어디 소궁주님께 검을 겨누느냐!”
그러자 역도 중, 설표대주라 불리는 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인정하는 소궁주님은 담경주 님뿐입니다!”
그에 외부경 어른이 다시 한번 일갈을 내지르시던 이때.
“이 역적 놈들이?!”
담용주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이해한다. 형님이 후계자 역할을 해오신 지 오래되었다. 북해땅을 위해 많은 일을 해오셨고 공도 많으시니. 아무리 궁주님의 명이라 해도 갑작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
“형님의 뜻에 동조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모용세가의 일은 나 역시 이를 갈았었다. 그대들의 분노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나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저 많은 강시가 지척에서 잠자고 있는 동안 우리 중 누구도 몰랐다.”
“…….”
“그 강시들은 성지를 침범했고, 그대들의 부모, 형제, 자매들이 지금도 그걸 막아내기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 내심으론 그대들도 무언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담경주에게 가담한 북해빙궁의 무인들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담용주는 여기서 걸음을 두 보 더 내디뎠다.
“우리가 검을 겨눠야 할 상대는 서로가 아니라 마교 놈들이다.”
그에 겨눠진 날붙이들이 담용주의 몸에 닿게 되었는데.
자신의 말이 틀렸다면 찌르라는 그 태도에, 역도들이 되레 걸음을 물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물렸음을 깨달은 자들은 이내 겨누고 있던 날붙이들을 내려놓았다.
챙그랑.
‘역시 담용주와 함께 오기를 잘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담용주가 역도들을 향해 물었다.
“형님은 어디 계시는가? 마두들은 이미 다 도망친 것인가?”
그에 설표대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들의 지위 고하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만, 이 선착장에 있던 마교인 들은 거의 다 떠났습니다. 그중 예닐곱 정도가 남았는데 지금 소궁… 첫째 공자님과 선실에 계십니다.”
“알겠으니 길을 터라. 내 형님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렇게 역도들을 비켜서게 만든 담용주는 나를 향해 말했다.
“선실로 가봅시다.”
“그럽시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뒤.
담용주와 함께 선실 방향으로 걸음을 움직이다, 아까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수상한 녀석을 지날 때.
일순 왼손을 뻗어 항룡장을 쏟아냈다.
쌔액!!!
녀석은 기겁하며 내 장력을 막으려 했다.
“!”
그 동작이 결코 느리지는 않았으나, 녀석이 ‘못 알아보는구나?’ 하는 판단을 내린 순간 이루어진 불시의 일격이었기에.
이 일격은 제대로 먹혀들어 갔다.
뻐엉!!!!!
가죽 북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일 장을 날아간 녀석은, 새 된 비명을 내지르며 선상 한 편에 처박히더니.
“꺅!”
쿨럭, 하고 피를 토하고는 죽은 듯이 축 늘어졌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역도들 중 몇몇이 당황한 눈초리로 입을 열었다.
“우, 우리는 항복을 하였소!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오?!”
담용주도 갑자기 왜 그러시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괴룡?”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거. 북해빙궁 사람 아니오.”
* * *
나는 날아가 처박힌 녀석을 향해 말했다.
“연기는 그쯤하고 일어나지?”
그러자, 녀석이 어깨를 들썩이며 깔깔거렸다.
“흐큭큭큭큭. 와. 엄청 신경 써서 변복도 하고 역용도 했는데 그걸 알아보네. 어떻게 알아봤지?”
한데, 그렇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나더러 놀자니 어쩌니 하던 그 목소리였다.
‘연옥란?’
담경주 일파와 쭉정이 정도만 남은 가운데 살수를 하나 심어 둔 것인가 했는데, 연옥란 본인이 남아있었다고?
나는 지체 없이 재혁 숙부를 부르며,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숙부! 저거 연옥란 입니다!”
“뭣이?!”
재혁 숙부는 눈썹을 치켜뜨며 땅을 박찼고.
담용주도 재빨리 입을 열었다.
“잡아라!”
그런 우리의 모습에 연옥란은 급히 몸을 뒤로 던지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그러자, 선실의 문을 박차고 마인들이 튀어나왔다.
“군주님을 지켜라!”
그렇게 튀어나온 마인들의 머릿수는 여섯밖에 안 됐다.
하나, 무위들이 고강했다.
군호를 받은 마교의 후기지수들의 수발을 드는 직속 수하들인 모양이었다.
쌔애애애액!!
하나, 이쪽에는 재혁 숙부와 빙궁의 별동대원들이 있었다.
챙!
“이놈은 내가 맡을 테니 용운이 너는 저 여마두를 쫓아가거라!”
“저희도 돕겠습니다, 팽 교수님! 괴룡은 저 마두를 쫓으십시오!”
그들이 마인들을 맡아주는 사이 나는 연옥란과의 거리를 좁혀나갈 수 있었는데.
“연옥란. 어디 가냐? 놀자며!”
그런 나를 향해 연옥란이 깔깔거리며 말했다.
“으흐흥. 이렇게 졸졸 따라다니는 거 보면 내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봐?”
“그런 걸로 칠 테니까. 잠깐만 거기 서볼래?”
“싫어. 쉬운 여자는 또 매력 없잖아? 그런데 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사홍이가 말해주던데?”
“하여간 우리 사제는 사람이 참 가벼워. 여인의 이름을 함부로 흘리고 다니고 말이야! 뒈지지만 않았어도 내가 호되게 경을 쳤을 텐데!”
“너도 따라가게 해줄게. 지옥에 가서 호되게 경을 치면 되겠다. 그렇지?”
나는 말과 함께 비영파천보를 시전했다.
팟!
그에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낼 수 있었는데.
연옥란에게 거의 다다른 이 순간.
‘살기?’
측면에서 짙은 살기가 인다 싶더니.
웬 놈 하나가 시뻘건 안광을 늘어뜨리며 나를 향해 쇄도해왔다.
끼익!
나는 연옥란을 향해 쇄도하던 몸에 급히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몸을 비틀며 회환을 그어 올렸다.
캉!!!!!!!!!!
그에 측면에서 내질러 온 검과 회환이 맞물리며 불꽃이 튀겼다.
그 틈에 확인한 살초의 주인은 다름 아닌 담경주였다.
“…담경주?”
“언용운!!!”
한데, 녀석의 모습이 좀 달라져 있었다.
눈은 눈병에 걸린 듯 충혈되어 시뻘겠고.
내가 가슴팍에 흉터를 만들어 주었을 때 비해 덩치가 좀 불어 있었다.
단순히 외양만 변한 게 아니었다.
쌔액! 쌔애액!!
쌔애애애액!!!
본디 내 동작을 오롯이 쫓아오지 못하던 녀석이, 지금은 대등한 속도와 힘으로 검초를 펼쳐내고 있었다.
캉! 카앙!
카아앙!!!
순식간에 무시할 수 없는 상대가 된 담경주.
녀석의 검초에 발목이 잡힌 이때.
선수(船首)에 다다른 연옥란이 깔깔거리며 말을 건넸다.
“언용운! 너 같은 사내가 졸졸 따라다니는 기분 나쁘지 않았어! 다음에 다시 만나자!”
그리고는 호수를 향해 풍덩 하고 뛰어내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연옥란을 바로 쫓고 싶었다.
하나, 내 이성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외쳐왔다.
‘뭔가 있다.’
생각해 보면 연옥란이 여태 여기 남아있는 상황 자체가 어색했다.
지금도 그랬다.
‘나를 죽이려는 거면 담경주와 합공을 하는 게 나을 텐데 그냥 내뺐어.’
꼭 나를 유인하려는 것 같았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나도 슬슬 한계다.’
계속 이어진 싸움과 해골병사들을 일으킨다고 꽤 많은 내력과 정신력을 소모했다.
지금 상황에서 홀로 연옥란을 쫓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보낼 수야 없지.’
나는 담경주의 빙공을 쳐내는 와중에, 왼 손가락에 상처를 냈다.
캉! 카아아앙!
그리고 내게 장력을 허용한 연옥란이 토혈한 흔적을 향해 한 방울의 피를 쏘아낸 뒤.
연옥란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몰아내고 담경주에게 집중했다.
“담경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아냐?”
나는 이를 빠득 갈며 담경주를 향해 회한을 휘둘러 나갔다.
그런 내 말에 담경주는 히죽 웃었다.
“알지!”
“안다고?”
“맹우를 도왔을 뿐이다! 내가 네 놈과 용주 놈을 도륙내고 나면, 마옥군주가 천마신교 본단의 군세를 이끌고 와주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내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고! 북해빙궁의 대계도 다시 이어질 것이야!”
“그게 뭔 개소리냐 경주야. 뭐 잘못 주워 먹었어?”
나름대로 심계가 깊었던 녀석이 심중의 이야기를 다 쏟아내는 것에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네 놈이 마공이라 부른 신공을 사용해 혈강시를 흡수했지!”
…머저리 같은 놈.
아무래도 예상이 적중한 듯했다.
“곧 마기가 골수에 치밀면 마공의 부작용이 있을 거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비켜서서 운기조식을 해야 해.”
“힘도 내력도 넘친다! 이지도 멀쩡하다. 이게 어째서 마공이냐?!”
담경주의 장담과 달리.
녀석이 빙공을 쏟아내느라 끌어쓰는 마기가 많아질수록 담경주의 말은 점점 어눌해져 갔다.
쐐애애애액!!
콰콰쾅!
“…너희는 악이다! 빙궁북해를 위협하고! 물산을 앗으려는!”
그러다 어느 순간 동공의 초점이 완전히 사라지더니.
“크아아아아!”
침이 흐르는 입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으로 변했다.
‘…초기 단계의 활강시인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강시 중 가장 저능한 형태로 변모한 담경주.
“이렇게 된 너지만, 담 형도 늙은 대신들도 쉬이 베지 못하겠지.”
사람도 시체도 아니게 된 녀석을 다시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내가 베어주마.”
나는 북해빙궁을 지켜달라던 담창규 어르신의 마지막 부탁을 상기하며, 담경주를 향해 달려들었고.
변해버린 담경주는 오직 나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팔을 휘저어 왔다.
“크아아아!”
하나,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담경주가 쏟아낸 빙공에 의해 얼어붙은 선상을 이용해 미끄러지듯 보법을 밟은 뒤.
뒤를 잡자마자 디딤발을 박아 넣고, 놈의 목을 향해 파천단악의 초식을 내질렀다.
쌔애애액!!
서걱!
폭주한 음한지기로 인해 얼어붙은 놈의 혈맥은 한 방울의 피도 쏟아내지 않았다.
“효자는 못 되어도… 돌아가신 아버님을 슬프게 하지는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