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최선 (2)
공량대사께서 괜찮으신지 확인하고 있던 때.
언동생들이 내게 달려왔다.
그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은하성이었다.
“그러는 형님은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아.”
공손무결과 아버지도 이쪽으로 달려왔는데, 두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공량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저는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이번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말씀을 드렸지만 마인들의 수법이 보통 지독한 게 아닙니다.”
“맹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정말 큰일 날 뻔하셨습니다.”
“허허. 맞습니다. 분명 그리들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 늙은 중이 조심성이 없었소이다.”
허탈하게 웃어 보인 공량대사는 이어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괴룡 시주 덕분에 다친 곳은 없소이다.”
그에 공손무결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왔다.
“그래. 나도 조짐이 이상하다 싶어서 검막을 치며 앞으로 나서긴 했는데. 용운이 네 덕분에 충격이 크게 줄었다.”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전해오신 것은 이때였다.
- …네 아비 되는 자는 어째 입꼬리가 또 팔랑거리는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나를 향해 쏟아진 칭찬들이 기쁘신 모양이었다.
‘저 모습만 봐도 내상을 입거나 하신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무사하신지 본인 입으로 직접 확인을 하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버지는 괜찮으십니까?”
“…크흠. 뭐, 몸은 괜찮다.”
몸은 괜찮으시다는 말은 다시 말해 안 괜찮은 곳이 있으시다는 거였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재차 물었다.
“내상이라도 입으셨습니까?”
“내상은 아니고.”
“그럼?”
“마음이 편치 않구나.”
“?”
“저 마두 놈을 내 손으로 쳐 죽였어야 했는데!”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등 뒤에 있던 우소릉과 은하연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쳐 죽여…. 언 가주님은 작은 언 형이랑 판박이 같으시다가도, 한 번씩 저렇게 언 형이랑 모습이 겹치셔요.”
“…저는 마음이 다쳤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네요. 하얗고 노란 금창약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그사이 시체들을 확인하는 일을 끝낸 타격대 선배들이 공손무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자의 품에서 열쇠 꾸러미가 나왔습니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공손무결은 손뼉을 치며 주위를 환기하고는 명을 내렸다.
“타격대 제 팔각(八閣)은 이곳을 수습한다.”
“존명!”
“공량대사님과 언 가주님 그리고 하북의 무인들께서는 다시 본인들의 자리로 돌아가 주십시오. 보셨겠지만 마지막 한 명까지 동귀어진을 펼칠 자들입니다. 돌아가셔서 섬멸에 힘써주십시오.”
“아미타불. 그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용운이는 제가 잠시 빌리겠습니다. 마인들이 걸어 나왔다는 통로 쪽으로 들어가 볼 요량인데, 마방연의 도움을 좀 받을까 합니다.”
“장성한 자식이라. 저한테 물을 일이 아니십니다.”
“그래도 한번 여쭤봤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귀한 인재니까요. 마방연과 나머지 타격대원은 나를 따른다.”
“옙!”
나와 언동생들은 입을 모아 답했고, 공손무결은 곧바로 조겸이 사용한 통로가 있는 쪽을 향해 출발했는데.
도착한 곳에는 사람이 드나들기 쉽도록 계단이 놓인 동굴이 있었다.
공손무결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조겸이라는 자가 역천괴마와 마옥군주는 십만대산에 있다 지껄이긴 했지만, 그 말을 오롯이 믿을 수는 없다. 누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일이다. 기관진식이 설치돼 있을 수도 있으니 긴장들 놓지 마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우리는 조심스럽게 동굴에 놓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겸과 수하들이 바쁘게 내려온다고 해제를 한 것인지 기관진식은 달리 없었지만.
“빨리빨리 해라!”
“서둘러라!”
통로의 끄트머리에 다 와 가니, 인기척과 함께 굉음이 들려왔다.
쿵!
쿵!
[누가 있는 것 같군.]
[집기 같은 것을 던지는 듯한 소리도 들립니다.]
우리는 너나 할 거 없이 호흡들을 고른 뒤.
[좌우 양쪽으로 소리가 치우친 것 같은데, 너희가 좌측 우리가 우측을 들이친다. 그럼 이 문을 부수마.]
공손무결이 기운을 실은 발로 석문을 박차자마자.
콰아아아앙!!!
우린 통로와 이어진 내실 안으로 진입했다.
그렇게 들어선 내실의 한 가운데에는 인공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좌우로 나뉜 채로 연못 속으로 책장들을 밀어 넣고 있는 마교의 졸개들이 있었다.
안에서 나던 인기척들의 주인인 모양이었다.
팟!
나와 언동생들은 좌측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검초를 휘둘렀는데.
쌔애애애액!!
놈들은 우리의 검초를 막는 것보다 책장을 연못 속에 밀어 넣는 것을 우선했기에.
어렵지 않게 베어낼 수 있었다.
촤악!!
촤아아악!!!
그러고 우측을 보니 공손무결과 타격대도 마인들은 모두 베어낸 상태였다.
문제는 연못 안으로 들어간 책이었다.
장부가 됐던, 마공서가 됐던 뭔가 우리 쪽에 단서가 될만한 것이 있으니까 저렇게 인멸을 하려고 한 것일 테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은하연이 입을 열었다.
“건져야 해요!”
“알고 있소. 하나 수면이 끓고 있소! 다들 조심하십시오. 이거 그냥 물이 아닙니다! 안에 있던 물고기가 뼈만 남았습니다!”
나는 주변의 집기들을 뜯어내며 말했다.
“이것들을 해체해서, 건질 수 있는 것만 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공손무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타격대를 향해 명을 내렸다.
“대주와 부대주는 나와 함께 주변을 살펴보고 온다! 나머지 타격대원들은 마방연의 지휘에 따라 단서를 확보하라!”
“예! 다녀오십시오 맹주님!”
그렇게 책들을 건지기 시작 한 우리를 보며, 사부님께서는 질문을 해오셨다.
- 한데 이놈들은 불을 싸지르는 방법 말고 왜 이런 방법을 택한 것이냐?
‘그랬다간 저희가 애초에 불길을 보고 이곳으로 먼저 오지 않았겠습니까? 애초에 책들을 보관하는 곳이라 건물도 석재고, 이편이 더 많은 양을 인멸할 수 있다고 본 것이겠죠. 그리고….’
- 그리고?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미 조겸이 제 손으로 없앴을 겁니다.’
- 허, 하면 지금 하는 짓이 다 쓸모가 없는 것 아니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놈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마공의 비밀이나 사람 피 뽑아서 만드는 강시 제조법일텐데, 저희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 그야 그렇지?
‘예. 저놈들이 어디서 뭘 하려 하는지 알고자 하는 것이니 조각들이 모이다 보면 뭐가 보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사부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일 마지막에 던져졌던 책들이 오롯이 건져졌다.
그 책장을 넘겨본 은하연은 나를 향해 말했다.
“음? 이건 평범한 지리지들인데요?”
“흠. 어디 몰래 수작을 벌일 곳을 물색하려고 들여다봤나?”
“근데 공교롭게도 전부 다 호수가 있는 곳들이에요.”
“…호수?”
“예. 태호(太湖), 청해호(靑海湖), 동정호(洞庭湖), 파양호(鄱陽湖)? 아, 황해(黃海)의 섬들에 관한 것도 있는데 여긴 아니긴 하네요.”
그런 은하연의 말에 내 머릿속에 번뜩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태호의 진짜 섬을 찾아라.’
사부님, 검마 위철진의 무덤을 찾기 위한 과제.
원작의 마교 놈들도 사부님의 무덤을 찾기 위해 호수란 호수는 다 뒤지고, 은유적 표현인가 싶어 황해바다의 섬들까지 뒤졌었다.
그 생각이 스치자, 내 얼굴에 피식 웃음이 걸렸다.
‘백날 찾아봐라, 찾을 수 있나.’
한데, 그와 동시에 다른 생각도 머릿속을 스쳐 갔다.
‘가만. 이걸 잘만 이용하면… 나중에 거꾸로 우리 쪽에서 덫을 놓을 수도 있는 거 아냐?’
* * *
십만대산.
세인들은 북해와 초원 신강과 청해까지 이어져 있는,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산맥을 두고 그리 불렀다.
하나, 마교인들이 일컫는 십만대산이란, 그 산맥의 서쪽 끝에 위치한 분지에 우뚝 선 거대한 성채인 천마신교의 본단을 말했다.
십만대산에선 굵직한 사안을 논하는 정청(政廳)을 두고 만마전(萬魔殿)이라 불렀다.
“도올월마님께서 드셨습니다.”
“마뇌님과 낭중마군께서 드셨습니다.”
“역천괴마님과 마옥군주님께서 드셨습니다.”
이 만마전엔 지금 천마신교의 교인들에게 ‘마(魔)’라고 떠받들리는 호교법왕들이 무려 셋이나 모여 형형한 눈빛들을 빛내고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좌석을 두고 가운데에 꿇어앉아 있는 연옥란의 모습이었다.
“광명좌사께서 드십니다!”
천마신교의 서열 삼 위에 해당하는 교주의 오른팔이 만마전 안으로 들어선 것은 이때였다.
안으로 들어선 광명좌사는 비어있는 좌석을 응시하며 혀를 찼다.
“경천혈마(驚天血魔)께서는 이번에도 오시지 않았군.”
그 말에 답한 것은 마교의 대전략을 전담하는 마뇌였다.
“…본디 그런 위인 아닙니까.”
답을 들은 광명좌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시작합시다.”
그에 마뇌가 연옥란을 향해 말했다.
“…마옥군주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
“교주님과 천마신교를 보위하기 위해 바쁘신 광명좌사 어른과 호교법왕 어르신들을 걸음하시게 한 점, 우선 송구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당해요.”
“…북해빙궁의 일을 그르쳐 놓고 당당하다? 그 계획에 들어간 재물이며 인력이 얼마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예. 최초의 판단 실수는 있었습니다. 하나 그건 누구라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괴룡 언용운. 그 누가 한 명의 후기지수 때문에 일이 어그러지리라 생각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겠어요? 실제로 저기 있는 낭중마군과 저승길을 떠난 흑선마군도 그리 실패를 하지 않았던가요?”
연옥란의 말에 낭중마군 송길준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고.
쾅!!!!
흑선마군 만우의 스승인 도올월마는 앞에 놓인 탁상을 때려 부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나, 연옥란은 주눅 든 기색 없이 계속해 말을 이었다.
“당장에 북해빙궁을 취해봐야 계륵이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선택한 담경주는 생각보다 빙궁을 제대로 휘어잡지 못했고, 반쪽짜리 빙궁을 먹자고 백도무림과 전면전을 치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생각도 그렇지 않니, 길준아?”
“…….”
“그래서 깔끔하게 손을 털고 언용운이 공을 세우게 뒀어요. 녀석이 마음껏 활보하고 다녀야 사로잡을 기회가 생길 테니까요.”
여기까지 들은 광명좌사는 연옥란을 향해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북해 땅보다 언용운을 사로잡는 게 낫다는 건가?”
“예. 식견이 부족한 저이지만 본교의 대계의 걸림돌이 될 인물을 천하에서 한 명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언용운을 꼽겠어요.”
언용운의 이름이 입에서 나올 때마다 히죽이는 연옥란.
광명좌사는 마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뇌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마옥군주의 평가가 좀 과한 것 같은데? 낭중마군, 네가 답해봐라.”
“당장에 천하에서 첫째가는 걸림돌이라는 것은 동의하기 힘드나, 언용운이 요주의 인물에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나이나 주변 인물과의 관계 그 성정을 감안하면 장차 그리될 확률이 높은 녀석이긴 하지요.”
“마뇌도 동의하시는 주장이오?”
“…그러합니다.”
만마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급보입니다!”
“들어오라.”
“만마들을 뵙습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후성(喉成)이 함락당했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광명좌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뭣이?! 확실한 이야기냐?”
“예! 정기 보고가 들어오지 않아 직접 확인해봤답니다!”
“누가? 어떻게?”
“속하도 아직 알지 못합니다만, 공격을 한 자들은 백도무림과 북해빙궁의 합종군이랍니다.”
연옥란이 웃음을 터트린 것은 이때였다.
“아하하하! 언용운! 언용운이에요. 정마대전이 터지는 게 무서울 테니,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죠. 녀석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에요. 하. 근데 후성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지? 내가 해둔 매복에도 걸리지 않았는데…. 진짜 난 놈이네. 좌사어른. 이것만 봐도 제가 녀석을 과대평가한 게 아니라는 게 감이 오시지 않나요?”
그에 광명좌사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이 급하니 이만 마옥군주의 처분을 결정하겠소. 마뇌부의 생각과 옥란의 주장이 일치하고, 그 재주를 아껴 목숨은 붙여둘 것이나… 후성은 교주님께서 장차 천하를 집어삼킬 목구멍이란 뜻에서 목구멍 후(喉)자를 붙인 성이오. 그곳이 함락된 일을 그냥 넘어가서는 교의 기강이 흐트러질 것이오. 역천괴마, 마옥군주 모두 동의하시오?”
광명좌사의 말에 역천괴마는 고개를 끄덕였고, 연옥란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예. 동의해요.”
“그럼 옥란은 팔을 하나 내놓고, 괴왕부는 교주님께서 달리 명을 하시기 전까지 근신하며 단약과 강시연구에 힘써주시오.”
* * *
밤이 홀딱 지나는 사이.
성안에 남아있던 마인들을 섬멸하는 일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마인들이 없애려던 책의 내용을 살펴보는 일도 슬슬 끝이 보여 갔는데.
마교 놈들이 사부님의 무덤을 찾고 있다는 정보 외에, 또 하나의 단서가 눈에 들어왔다.
“은 소저. 여기 번진 글자가 만(萬)자 같지 않소?”
“네. 그래 보이네요?”
그런 나를 향해 맹주님이 물었다.
“또 뭘 찾았나?”
“예. 여기 이 글자가 만자라고 치면 만인혈이 됩니다.”
“만인혈(萬人血)? 강력한 강시를 만드는 데 동남동녀의 피가 필요하다 그랬지. 그만큼 많이 만들겠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는데, 영약의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영약?”
“흠. 영약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마교에는 만 명의 사람을 짜내 환단을 빚는 방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막아야 할 일이로구만.”
“북해에서의 음모가 좌절되었고, 초원에서 암약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명문대파가 있는 곳에서도 쉽지 않겠죠. 해적의 소행으로 꾸미기 좋은 해안가나 운남 등지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작업 끝에, 공손무결은 나를 따로 불러 어딘가로 데려갔다.
그가 데려간 곳을 묵묵히 따라가 보니, 성내가 내려다보이는 창가가 있었다.
“우리가 이겼다.”
“…예, 이겼네요.”
“큰 의미가 있는 승리야. 마교 놈들에게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 승리이고, 오랜 평화로 권태에 빠진 백본회 내부의 구파들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 줄 승리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용운이 네 덕분이야.”
“다 같이 한 거죠. 어찌 저 혼자만의 덕이겠습니까.”
내 말에 공손무결은 씩 웃었다.
그러면서 저 멀리 켜켜이 겹쳐진 서편의 산맥을 가리켰다.
“저게 십만대산이라 부르는 산맥이다.”
“알고 있습니다.”
“네 말마따나 마교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당장은 여기까지가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선이었지만, 언젠가는 저 산맥 너머로 가야 할 테지. 너도, 나도 그날을 준비하자꾸나.”
그렇게 마교의 거점을 공략하는 일이 끝났다.
자연히 합종군은 해산을 하게 되었다.
성채를 지켜야 하니 남을 사람은 남아야 했지만, 돌아가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미 빙궁을 제법 오래 비워둔 담용주는 북해빙궁으로.
야율위와 초원의 전사들은 각궁보로.
우리는 정무학관으로 돌아가야 했다.
“담형. 고생 많으셨소.”
“괴룡이야 말로.”
“다시 뵐 때는 궁주님이라고 불러야 하겠구만.”
“그때도 담형이라 불러줬으면 좋겠소.”
“알겠소. 빙궁은 분명 다시 일어날 거요.”
“그래야지. 다시 보는 날까지 몸조심하시오.”
가장 먼저 북해빙궁으로 가는 인원들이 성채를 떠났고, 다음으로 우리도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옥기야! 끼니 거르지 말거라! 항상 독 검사 잊지 말고!”
“아! 제발 좀! 내가 아기야?”
“아비 눈엔 항상 아기다!”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어 진짜!”
“설지 너도 끼니….”
“아버님. 제가 알아서 할게요.”
“…큼. 그, 그래.”
이번 합종군에 이대(二代)가 참여했던 가문이 여러 곳이었던 만큼 헤어지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풍경들이 속출했다.
“풍문이 하도 다양해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한데, 직접 보니 좋은 벗을 사귀었더구나.”
“…예.”
“열심히 해라.”
그 광경들을 지켜보다 나는 문득 십만대산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천마신교.’
놈들로 인해 이번처럼 급하게 힘을 모아야 할 일이 생기거나, 저 산맥을 넘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신뢰가 쌓인 곳이라면 소집에도 응하고 딴죽을 거는 일 없이 힘을 보태줄 것이다. 하나 그렇지 않은 곳들은 백본회의 부회주 장손립이나 곤륜의 덕여 도장처럼 행동할 가능성이 높겠지.’
이번에야 어찌어찌 우리 쪽이 눌렀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런 일이 발생해서야 큰일이 난다.
‘이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지?’
명분도 없이 백본회의 너구리들을 다 잡아 족칠 수도 없고?
‘…애들부터 꼬실까?’
오늘만 봐도 그렇다.
자식 이기는 부모란 없는 것이다.
‘그 장손립도 후기지수 신분인 내 가 정론을 내뱉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꼭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더라도, 우리가 움직이면 부끄러워서라도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하나 객기가 되어선 곤란하다.
몸과 마음을 준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대기숙사의 후기지수들을 완전히 휘어잡아야 한다.
‘맹주님은 맹주님대로. 나는 나대로.’
그리고 내겐, 그렇게 만들 방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