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58화 (258/444)

제258화. 해볼까 합니다 (1)

나와 용명이는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학관으로 돌아가는 길이 위험할 수 있어 아버지도 함께 돌아가기로 했기 때문이었는데.

다른 아버님들과 작별인사를 마친 후, 세 후기지수가 우리 쪽에 와서 섰을 때.

공손무결이 아버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마교의 추가 공격이 있을 수 있고, 없다 하더라도 산재한 일거리들이 많은데… 저만 빠져나가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백도무림의 싹…. 음. 이제 싹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가?”

“아이들 말씀이십니까?”

“예. 싹이라 하기엔 제법 든든합니다. 젊은 기둥들이라 해야겠어요. 아무튼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한 일입니다. 이런 일 하라고 무림맹주 녹봉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공손무결은 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 일이 마교의 추가적인 준동 없이 마무리되면, 내 짬을 내서 학관에 들를 생각인데. 그때 보도록 하지.”

“예. 보중하십시오.”

“그래. 다들 수고 많았네. 조심해서 돌아가게. 가는 길에 산서금붕께 안부 인사 좀 대신 전해주고.”

“옙.”

이윽고 공손무결이 등을 떠밀자.

팽소진이 머쓱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두 분 숙부 조심해서 가세요. 돼지 너는 밥 먹을 때 채소 좀 곁들여 먹고.”

“왜요?”

“왜요는 왜구들이 덮는 담요가 왜요고.”

“아버지한테 옮았나….”

“큼. 약왕 어르신이 그러시는데 너처럼 너무 고기만 처먹으면 안 좋데. 그리고 언용운.”

“저요?”

“응. 솔직한 마음으론 쫓아가는 사람들 생각해서 좀 천천히 강해지라고 하고 싶은데. 세상이 이러니, 쫓아가는 사람들이 힘을 내야겠네. 누나도 최선을 다할게. 강해지자 우리.”

“그래야죠.”

“모두들 조심해서 가!”

인사를 마친 우리는 후성을 뒤로하고, 귀로(歸路)에 올랐다.

“출발한다.”

“예!”

최초에는 인원이 좀 많았다.

행로가 같아서 초원의 전사들도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는 각궁보를 기점으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부족장 회의 때문에 보주님이 자리를 비우신 게 아쉽네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리 가봐야 해서 송별연을 못 열어 주는 게 아쉽군.”

본디 손님 대접을 후하게 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그들이었으나.

초원에 흩뿌려진 각궁보에 대한 악소문을 걷어내는 일이 급했고, 그 일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또 기회가 있겠지요.”

“그래. 다음번엔 정말로 거하게 한잔하세. 건강하게. 챠간숑홀! 아, 응용이라 하기로 했다 그랬지? 응용아, 너도 건강해라!”

호루룩!!

각궁보를 뒤로하고 우리는 계속해 남하했다.

초원을 지나, 만리장성을 넘은 뒤에는 깔끔한 관도 덕분에 더욱 속도가 붙었는데.

마침내 도착하게 된 산서 땅 태원에선, 미리 연락을 넣어 놓았던 터라 윤영숙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 서방! 용운아! 용명아! 다들 무사했구나?! 어서 가자. 외조부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윤영 숙부를 따라 붕성(鵬城)이라 부르는 태원 성내에 들어서자, 사부님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 사람이 많은 것은 저번에 왔을 때와 같으나, 분위기가 천지 차이로구나.

‘그때는 그야말로 어수선했었죠.’

처음 당도했을 때의 붕성은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가운데, 천하의 땡중과 무당, 방사들이 다 모인 것인가 싶을 정도로 개판이었고.

곽사홍과 붙고 나서는 아비규환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수식할 말이 없는 쑥대밭이 됐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의 얼굴엔 생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 활기가 돌아와 있었다.

“자자, 이리로 오십시오! 식초를 듬뿍 친 도삭면입니다! 태원에 와서 이걸 안 먹고 간다? 큰 손해들 보시는 겁니다?”

“팔찌 사세요! 이 팔지로 말할 것 같으면 귀하디귀한 보석 소금으로 만든 것으로, 서생이 차면 과거에 합격할 것이고, 무인이면 정무학관의 입관시험에 합격할 것입니다!”

그 광경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윤영숙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용운이 너는 어릴 적에 왔다가, 아버님이 변을 당하셨을 때야 다시 왔으니 이런 태원의 모습은 기실 처음이겠구나.”

“예. 활기가 넘치네요.”

“이게 이 도시의 원래 모습이다. 네 어머니가 좋아하던 풍경이지.”

“그렇군요.”

“그래. 그리고 태원에 돌아온 활기만큼이나 너희 외조부님도 좋아지셨다. 음? 저기 나와계시는구나.”

숙부의 말에 시선을 이가장 쪽으로 옮겨보니.

정말로 외조부님께서 문가에 나와계신 것이 보였다.

우리는 서둘러 이가장 앞으로 갔다.

당도한 이가장 앞에서, 아버지는 정중히 예를 올렸다.

“장인어른.”

외조부님께서는 그 인사를 가볍게 받아 주시고는 재혁숙부를 향해 깍듯이 포권을 취하셨다.

“팽 교수님. 먼 길 다녀오신다고 정말로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아이고. 과례십니다. 말씀도 그리 높이시지 마십시오. 정웅 형님과 저는 친형제 간이나 다름없는데, 그리 말씀을 높이시면 족보에 큰일이 납니다.”

그쯤, 윤영 숙부가 나와 용명이를 향해 넌지시 눈빛을 보냈다.

나는 한 걸음을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외조부님.”

“그래.”

나와 외조부는 이런저런 말보다는 눈으로 서로를 살폈다.

나는 외조부의 건강을, 외조부는 달라진 내 기도를.

“…….”

“…….”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살핀 지 잠시.

나는 외조부님께 먼저 말을 건넸다.

“건강을 많이 회복하신 것 같으셔서 소손이 기쁩니다.”

“나도 기쁘다. 용운이도 용명이도 못 본 사이 더 늠름해졌구나.”

겸양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슬쩍 빗겨서며 입을 열었다.

“이쪽은 제 벗들입니다. 이렇게는 먼저 태원에 왔을 때 보신 녀석들이고, 여기 이 친구는 은하연 소저라고 강남상왕의 따님입니다. 상계에선 천금매소, 요즘은 소무후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내가 지목하자.

은하연은 겸손한 얼굴을 하고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은하연입니다. 상계의 여식으로 태어나, 태원상단의 정신을 항상 흠모해 왔는데 이렇게 산서금붕 어르신을 직접 뵈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강남과 이곳 산서는 물산과 풍토가 다른데 우리 태원상단을 흠모를 해왔다?”

“물산과 풍토는 다르나, 상인들이 저울과 되를 속여 장사치라 손가락질을 당하던 시절부터 정직으로 거만(巨萬)의 부를 축적하고 태원 땅에 배곯는 자를 없게 하였다던 그 정신은 상인이라면 반드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허허. 강남상왕이 봉황을 낳았다더니… 그 말이 결코 과장된 게 아니었구먼. 청죽관에서 총무부장을 한다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도 우리 용운이를 많이 도와주시오.”

“이를 말씀이십니까.”

나는 이어서 은하성을 지목했다.

“그녀의 동생입니다.”

그런 내 말에 은하성은 드물게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왔다.

‘용운이 형!’

왜 은하연과 자신의 소개가 이렇게 차이가 나냐는 거였다.

나는 똑같이 눈빛으로 마음을 전해주었다.

‘너. 은 소저처럼 말할 수 있냐?’

은하성은 빠르게 수긍하고 외조부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은하성입니다.”

“저기 우소협과 함께 공보부에서 용운이를 수족처럼 거들어준다고 들었소.”

“예, 그게 바로 접니다.”

“허허허. 고생이 많소.”

다음은 당옥기였는데.

“여기는 당옥기 소저. 파서독제의 따님입니다.”

녀석은 은하연이 앞에서 너무 청산유수로 말을 하자 자기도 뭔가 해야겠다 싶었는지.

답지 않게 예를 차리려다 말이 꼬였다.

“당옥기입니다. 저희 당문은 무가이긴 하나, 산서금붕 어르신의 위명만큼은 사천 땅에도 알려져 있어서 소녀도 전해 들었습니다. 언용…. 아니 언 공자? 언 공자의 호협함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직접 뵈니까요?”

그에 내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는데.

“큽.”

곧바로 귀까지 벌게진 당옥기가 전음을 보내왔다.

[…죽어버려.]

“사천당문의 금지옥엽이시구려. 청죽의 의방 일을 도와주신다지? 많이 도와주시오.”

“…네에.”

마지막은 남궁윤이었다.

“그리고 저기 저 공자는 남궁윤이라고 남궁세가의 장손입니다. 비룡검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고요.”

한데, 이번엔 남궁윤이 입을 열기 전에 외조부님 쪽에서 먼저 말을 하셨다.

“오호. 천하제일 후기지수로 세간에 이름 높았던 비룡검이시구만.”

그런 외조부님의 음성에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네 외조부 말이다. 지금 일부러 천하제일 후기지수 소리를 들먹인 것 같지 않으냐?

‘…그런 것 같습니다.’

하성이와 소릉이가 공보부에서 구르는 것도 아시고, 향란관 소속인 당옥기가 청죽의 의방일을 보고 있다는 것도 아시는 분이.

천하제일 후기지수 소리가 내 쪽으로 넘어온 것을 모르실 리가 없었다.

- 왜?

‘제 맞수인가 싶어서, 견제를 살짝 하시는 것 같은데요?’

- …네 성정이 어디서 왔는지 알겠구나.

‘…?’

- ?

한데, 남궁윤은 그런 외조부님의 말씀을 우직하게 받아냈다.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는 말은 제겐 과분한 이름이었습니다. 언용운 저 친구가 소림의 제자들을 꺾은 날 그 이름이 제 주인을 찾았고요. 민망한 말씀이라 말이 길었습니다. 남궁가의 윤이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르신.”

그 대답이 흡족하셨던 것일까?

외조부께서는 낯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시며 남궁윤의 인사를 받아 주셨다.

“그래. 조부님은 잘 계시고?”

“예. 집안일을 아버님께 다 맡기시긴 하셨지만, 몸은 건강하십니다.”

그렇게 처음 외조부님을 뵙는 언동생들의 소개가 끝나자.

윤영 숙부가 이가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남은 회포는 들어가서 푸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버님.”

“그래, 그래. 다들 들어들 오시오.”

*     *     *

윤영 숙부의 뒤를 따라 이가장 안으로 들어가니.

장원의 식솔들이 반색하며 우리를 반겼고, 푸짐한 잔칫상도 준비되어 있었다.

허례허식은 필요 없었기에 우린 곧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천장호는 양손으로 닭다리를 쥐고는 입으로 쑤셔 넣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

“이게 잔치지! 이번 여정은 쌩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먹을 복이 영 없더니만, 마지막에 복이 터지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열었다.

“…빙백환 먹은 놈이 할 말이냐?”

“용운 형. 그건 음식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빙궁에서는 시비가 걸린 탓에 연회가 중단됐었고. 이후로도 맘 놓고 밥 먹는 날은 오랜만이지 않습니까.”

“…그래. 네 말이 맞다. 많이 먹어라.”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천장호를 향해 그릇 몇 개를 밀어주었다.

외조부님께서 내게 질문을 해오신 것은 이때였다.

“북해땅의 변고는 시찰단이 올라가는 길에 귀뜸을 해주어서 들었다. 하나, 일정이 맞지 않더구나? 중간에 무슨 일이 더 있었던 게지?”

그런 외조부의 말씀에 사부님께서 혀를 내두르셨다.

- 하여간에 네 외조부도 보통 인물이 아니로다.

뭐, 딱히 극비는 아니었다.

맹주님이 아직 후성에 있어서 그렇지.

낙양으로 돌아오면 다 퍼질 이야기였고, 그전에 아마 태원상단에 협력을 구해 올 것이었다.

‘외조부께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에 그런 뜻이 담겨있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후성을 공격했던 일을 간략하게 말했다.

“예. 내려오는 길에 마교가 거점으로 사용하는 성채를 발견했습니다. 시찰단의 어른들과 합종군을 구성해서 그곳을 함락시키고 왔습니다.”

“흠. 북해빙궁을 지원할 준비만 하고 있었는데. 준비의 규모를 좀 더 크게 잡아야겠구나.”

그런데 이때, 윤영 숙부가 입을 여셨다.

“이야기가 너무 간소하다. 좀 더 자세히 좀 이야기를 해보거라.”

“자세한 이야기는 무림맹주님 쪽에서 아마 제대로 연락을 취해올 것입니다. 수치가 다를 수도 있고 해서 제가 이야기하기가 좀….”

“그런 것 말고. 있었던 일들 말이다. 네 외조부님도 나도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아느냐? 무용담을 좀 해봐라 이 말이다.”

그러자, 은하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무용담이라면 제게 맡겨주시죠.”

그렇게 운을 뗀 은하성은 손짓과 발짓 그리고 과장을 곁들여가며 이번 여정 동안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 마두 놈이 천마재림을 외치더니. 퍼어엉! 터져 나가는데 용운 형님이 그걸 언가의 사령술로 딱 막아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공량 대사님이 말씀하시기를!”

“하시기를?”

“이 아둔한 중이 시주 덕에 살았습니다! 소림의 어린 빡빡이 들은 다 필요가 없다! 언용운이가 공량을 구했고 천하도 구했다!”

…어째 가만히 두면 소설을 한 편 쓸 기세였다.

난 적당히 하라며 하성이를 말렸다.

“…하성아. 그건 너무 과장이 심하지 않냐?”

“아주 살짝 과장하긴 했죠.”

“살짝? 공량대사는 덕분에 살았다고만 하셨습니다. 빡빡이가 필요없다는 말은 저 녀석 본심입니다. 정진 대회에 처맞은 거,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네 저거.”

그러자 제갈설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용운님이 천하를 구한 것은 사실이긴 해요. 그때 공량대사님이 크게 다치셨으면 맹주님의 입지가 어떻게 됐겠어요?”

“나 원 참.”

비실비실 웃고 계시던 외조부님께서 아버지를 향해 역정을 내신 것은 그때였다.

“그런데 언서방 자네는 뭘 했나?!”

“…예?”

“아, 용운이가 위험할뻔하지 않았냐 말이야!”

똑같이 입꼬리를 비실거리고 계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날아온 봉변에 눈만 깜빡이셨고.

“용운이를 복권하는 과정도 그래. 내 알아보니 오히려 용운이가 자네 면을 세워줬더만? 지난번에 나한테 술 한잔 받아 가면서 애쓰겠다고 했나 안 했나?”

외조부의 호통은 계속됐지만, 기실 그것이 정말 혼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분위기가 깨지는 일은 없었다.

아니, 도리어 아버지가 내시는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소리에 모두가 즐겁게 웃을 수 있었다.

“자, 소영웅들에게 한잔을 더 주게. 어서!”

잔치는 그렇게 즐겁게 끝이 났고.

모처럼 푸짐한 대접 속에 분위기를 즐긴 우리는 처소로 돌아와 푹신한 침상에 몸을 누였다.

‘천장호가 맘 놓고 밥 먹는 날이 오랜만이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침상에 맘 놓고 눕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래서일까?

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야 바로 잠들기는 힘들겠는데.’

푹신한 침상을 어색해하며 누워있느니 몸을 좀 움직이고 나서 다시 잠을 청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여, 회한을 챙겨 처소 앞마당으로 나왔는데.

끼이익-

“정현? 우소릉?”

“언소협?”

“언 형?”

“안 자냐?”

“아, 잠이 안 와서 몸을 좀 움직일까 했습니다. 그러는 언소협…. 도 같은 생각을 하셨나 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이심전심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끼이익-

끼익-

그런지 잠시.

두 녀석 말고 다른 녀석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잠이 안 온다며 나왔다.

한데, 나를 보고 하나같이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몸을 움직이러 나왔다는 녀석들이 왜 저를 보고 놀라는 걸까요?’

- …적당히 몸을 좀 움직이다 잘 생각으로 나온 것이지, 너랑 같이 구를 생각은 없었겠지.

나는 씩 웃으며 목과 어깨를 풀었다.

“좋네. 달밤에 체조들 좀 해볼까?”

*     *     *

이가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이튿날 아침을 외조부님과 함께하고 곧바로 길을 나섰다.

외조부도 윤영숙부도 회포를 풀기엔 짧다며 아쉬워하셨지만, 학기 중임을 아셨기에 웃는 낯으로 배웅을 해 주셨다.

그렇게 태원을 떠난 우리는 황하를 건너 하남 땅에 이르렀고.

거기서 또 남하하여 정무학관이 있는 단강구에 이르렀다.

“다녀왔습니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경혜 사태를 비롯한 학관의 운영위원들과 청죽관의 생도들이 맞아 주었는데.

경혜사태께서는 우리가 다녀온 길이 얼마나 멀고, 거기서 일어난 일들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아신다는 투로 휴식을 권해오셨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해줘야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생도들은 우선 푹 쉬도록 하세요. 하북권웅 그리고 팽 교수님은 빈니의 방으로 좀 와주세요.”

그렇게 교수님들이 본관으로 향하자마자.

공보부장 예해수 선배가 세필붓과 수첩을 들고 다가와 입을 열었다.

“후배님!”

나는 손바닥을 내보여 그런 예해수 선배의 입을 막은 뒤, 먼저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학관을 떠나있는 동안 보낸 시간들을 점검하는 시간이 있겠습니다. 청죽관. 연무장 앞으로 가서 일렬로 섭니다. 뒤에서부터 열 명은 어떻게 될까요? 궁금하면 늦어봅시다!”

그에 예해수 선배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쉬라고 하셨는데?”

은하연이 그녀의 팔목을 잡아채며 달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선배님은 아직도 언 공자를 모르시네요! 뭐 하세요?!”

그에 파란 무복을 입은 생도들이 청죽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는데.

그중 딱 한 사람 경룡이 형이 남았다.

“경룡이형? 뒤에서부터 열 명 안에 들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신 겁니까?”

“아니, 그거 말고 다른 게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뭐가 궁금하신데요?”

“자네들이 북해에 가 있는 바람에 중간고사 성적이 아직 발표가 안 됐는데, 원래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면 곧이어 자치회장 선거를 하지 않나.”

“아.”

“출마할 거지?”

“예.”

“그럴 줄 알았네. 자네라면 내 믿고 청죽관을….”

“아뇨. 청죽관 말고 총학생회장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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