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61화 (261/444)

제261화. 그렇게 나오시겠다? (2)

막 입관을 했던 시절만 하더라도 학관 내에서 걸음을 옮기면 들려오는 소리 중 대부분이 내 욕 아니면 청죽관을 무시하는 소리였다.

‘요즘 와서는 잠잠해졌지만.’

과장 좀 보태서 열 걸음을 옮기면 시비가 세 번은 걸렸던 것 같다.

걸어오는 시비를 피하지 않는 내 성정은 자연히 수많은 참교육 수료생들을 만들어 냈다.

그런 수료생들의 면면은 언동생들 입장에서도 익숙한 모양이었다.

“쟤는 언용운한테 바둑으로 내기 걸었다가 딱밤 맞고 기절한 사마랑인데? 그때 용돈 좀 벌었었는데. 그렇지 하연아?”

“나는 벌 만큼 벌었는데도 언 공자가 쪼아대던 기억이 있네….”

“하여간에 언용운…. 어, 지금 올라온 사람은 향란관 사람이 아닌데?”

“옥기 너는 모르겠구나. 운매관 선배님인데, 일학기 초에 나랑 언 공자랑 둘이 강의실로 가는 중에 언 공자한테 망나니 운운하다가 참교육을 당했었어.”

“아 그래?”

“응. 지금도 언 공자가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금창약 값을 내고 있어. 음? 윤국관 사람도 올라왔다. 너희 오라버니 쪽이 준비를 단단히 했나 본데…?”

당옥기와 은하연을 비롯한 언동생들은 단상에 오른 당준기 뒤에 서는 놈들을 보고 저마다 목격했던 참교육 현장을 떠올렸는데.

그중 우소릉은 마른침을 삼키며 소감을 말했다.

“…저렇게 모아놓고 보니 많긴 하네요.”

그 말에 은하성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실제로는 더 많지. 원래라면 연무장 한 바퀴 줄 세우고도 남을걸? 일단 나부터가 여기 있잖….”

“…….”

“…닥치겠습니다. 용운 형님.”

“아냐, 계속해봐. 네 말이 어떻게 끝나는지 궁금하던 차야.”

그러고 있는데, 정현이 입을 열었다.

“그 수가 연무장이 아니라 동정호를 메운다고 하더라도 저들에겐 도가 없습니다. 정파를 자처하는 백도무림의 후기지수가 되어서, 하나같이 경솔한 언사를 내뱉거나 먼저 술수 혹은 위력을 행사하려 하던 자들 아닙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정현 도장이 대신 하셨네요. 이 사람 도사 맞네. 용운 형님 제가 하려던 말이 딱 이거였습니다.”

은하성은 재빨리 숟가락을 얹었고.

사부님께서는 정현의 말을 한마디로 축약하셨다.

- 그래. 죄다 처맞을 짓을 한 놈들 아니냐?

‘그야 그렇죠?’

- 무길이 같이 교수들이 있던 자리에서 처맞은 놈들 아니면, 본인들이 뉘우치겠다고 다짐하고 그걸 하연이랑 서류로 남기기까지 했던 녀석들이지 않느냐?

‘그것도 그렇습니다.’

- 저놈들로 네게 흠집을 낼 수가 없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저것들을 저렇게나 모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구나.

‘그 역시 동감입니다.’

뭐 당준기 선배가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알게 될 터였다.

“천하제일 후기지수. 괴룡. 언용운 후보 덕분에 우리 정무학관은 마인들의 습격 속에서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진심으로 언용운 생도의 기지와 용기에 감사를 표했었습니다.”

당준기가 본격적으로 연설을 시작한 것도 이쯤이었다.

“얼마 전에 열렸던 정진대회에서 소림에서 제일가는 후기지수인 원철 스님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언용운 후보를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향란관과 청죽관 사이에 앙금이 그렇게나 많은데 말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나를 칭송하는 말들로 연설을 이어나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산서에서도 마인들의 계획을 좌절시켰고, 이번에는 북해 땅에서 마교를 몰아내는 일에 크게 일조를 했습니다. 정말이지 자랑스러운 후배입니다.”

그런 당준기의 말에, 나는 되레 미간을 좁혔다.

‘참교육 수료생들을 세워놓고 내 칭송이라. 슬슬 하지만, 같은 소리가 나오겠군.’

당준기의 입에서 내가 예상한 말이 튀어나온 건 이때였다.

“하지만! 독선적이고 매사에 무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생도들은 기숙사도 학년도 다르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언용운 후보에게 맞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렇게 본론의 운을 뗀 당준기는 뒤에선 이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물론, 속된 말로 맞을 짓을 했습니다.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세간의 소문에 편승해 언용운 후보를 음해하거나 시비를 걸었다가 그리되었으니까요. 제가 간곡히 부탁하여 학관을 위해 나섰을 뿐 본인들도 뉘우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과연 그 방법밖에 없었냐는 겁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좌중을 보며 남은 말을 뱉었다.

“언용운 후보는 장차 우리 세대의 가장 앞줄에 서서. 많은 일을 해나갈 재목입니다. 다만 당장은 그의 뒤를 무작정 따르기가 주저됩니다. 만사의 해결 방식이 무(武)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입후보했습니다! 제가 총학생회장이 된다면 언용운 생도를 총학생부회장으로 삼겠습니다. 직위는 제 쪽이 회장이겠으나, 조력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언용운 후보와 학관을 이끌어 보겠습니다. 지금의 청죽관도 진경룡 자치회장과 언용운 부회장 체제로 잘 운영되고 있지 않습니까?”

당준기가 말을 마치자.

향란관 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옳소!”

“당준기를 총학생회장으로!”

운매관과 윤국관 생도들이 서 있는 곳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     *     *

향란관의 당준기에 이어 단상에 오른 사람은 각각 운매관과 윤국관에서 자치부회장 자리를 맡고 있는 계운열과 곽우명 선배였다.

그중 계운열 선배는 시종일관 운매의 정신을 예찬(禮讚)하다가 본인의 표어를 외치고 내려갔고.

“협심으로 대동단결!”

윤국관의 곽우명 선배는 전략 자체는 향란관과 같았으나.

“…마지막 공약이자 제일 중요한 공약입니다. 이 곽우명 또한 당선되면 언용운 후보에게 총학생부회장을 부탁할 생각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정무학관의 번영을 도모하겠습니다.”

생도들의 반응이 향란관 때와는 조금 달랐다.

나중에 발표를 했다는 것과, 제갈설지가 내 학생회의 부회장을 맡기로 한 것 등이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향란의 당준기랑 같은 주장인데 어째 밍숭맹숭한 느낌이 드는구만.”

“똑똑한 사람이니 따라 한 것은 아니겠지만, 뭔가 절실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은 사실이야. 언용운 쪽의 부회장이 제갈설지라던데 그래서 그런가?”

“하여, 자네는 어디에 투표할 건가?”

“아직 투표일까지는 좀 남지 않았나? 공약이랑 후보들의 활동 같은 것을 좀 보고 결정할 생각이네만.”

“그래도 당장에 마음이 끌리는 후보가 있을 것 아닌가?”

“글쎄? 우리 계 부회장은 글러 먹은 것 같고. 지금으로서는 언용운 쪽이 끌리긴 하는군. 힘들겠지만 강해지자는 생각. 남자답고 솔직하잖나! 그러는 자네는?”

“공적상으로는 무조건 언용운이 맞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친구는 사람이 좀 야생마 같은 구석이 있지 않나?”

“그게 좋은 건데?!”

“나는 장단점이 있다고 보네. 근데 당준기의 주장이 그걸 딱 중화해주는 느낌이야. 지금의 언용운은 좀 그래.”

하여, 총학생회장 입후보자들이 포부를 밝히는 자리가 끝났을 때.

사실상 정무학관의 초대 총학생회장 경선은 이파전의 분위기를 띠게 되었는데.

일정을 마치고 청죽관의 자치회실에 돌아오자, 은하연은 그 순간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당준기 선배 쪽이 전략을 잘 들고나오기는 했네요.”

“그러게요. 용운 님의 공적을 인정하면서 본인이 편승할 수 있는 수를 들고나왔어요. 향란관 자존심에 이런 자리에서 용운 님을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기념비적이긴 한데, 수 자체가 까다롭네요.”

은하연의 말에 제갈설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명이는 분하다는 듯 주먹을 쥐었는데.

“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형님 더러 망나니니 어쩌니 했던 자들이 무슨 낯짝으로 단상 위에 올라갔는지!”

금방이라도 그중 하나를 찾아가 언가권을 내지를 기색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진정하라는 투로 말했다.

“워, 워. 용명아. 그렇게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자 예해수 선배가 나를 보며 물었다.

“후배님. 제가 나서면 어떨까요? 총학생회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었을 때처럼, 이번 에도 붓 한번 놀려보는 거죠.”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이건 주먹을 써서 해결할 일도 아니고, 대자보 좀 써 붙여서 될 일도 아닙니다. 결국 저라는 사람에 대한 인식의 문제니까요. 이걸 억지로 바꾸면 되레 총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탈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 내 말에 경룡이 형이 엷은 숨을 내쉬며 물었다.

“후… 그래서 어찌하면 좋겠나?”

“정면 돌파를 할 생각입니다.”

“정면 돌파?”

“예.”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제가 총학생회장이 되면 어떻게 할지 체험을 시켜줄 생각입니다.”

“…체험? 그, 그러니까 청죽관의 일상을 체험하게 해주겠다는 건가? 족쇄 차고 수련하고 산 타고… 그런 것들?”

“예. 다른 기숙사의 자치회와 협의해서 제가 파견을 가볼까 합니다.”

“빠, 빨간모자도 쓰고?”

“예.”

“…어. 그게 정면 돌파가 맞나? 이보게들?”

경룡이 형은 도와달라는 투로 주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은하연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어왔다.

“언 공자. 저희 놀리려고 하시는 말씀이시죠? 진심은 아니시잖아요?”

“진심이오. 애초에 힘들어도 강해지게 해주겠다는 게 내 공약이잖소?”

“알죠. 아는데…. 상황이 마냥 유리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요. 그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불리할 것도 없소. 천하가 돌아가는 게 심상치 않다는 것은 다른 생도들도 다 알고 있고, 그 창량 교수님도 나를 추천했소.”

“…그야 그렇지만.”

“그리고 정무학관의 생도들은 일부 문과생을 제외하면 전원이 무인이오. 사문과 병기가 어떻게 다르든 강해지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소. 게다가 우리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생도들도 학관이 습격당했을 때, 나름대로 죽을 고비들과 마인들을 겪어봤지. 되레 제대로 나를 겪어보고 나면 어느 쪽이 강해지는 길인지 감들을 잡으리라 생각하오.”

그런 내 말에.

언동생들 중 몇몇이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정현이 격양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원시천존. 역시 언소협이십니다. 당장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보다 진정으로 정무학관과 천하를 생각하시는 모습에서 빈도는 오늘도 도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정현은 다른 언동생들을 응시하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여러분 다들 생각해보십시오. 제갈 소저와 남궁 소협은 언 소협의 첫인상이 어땠습니까? 제갈 소저는 거머리처럼 따라다니셨고, 남궁 소협은 날을 세우셨습니다.”

“…거, 거머리.”

“…….”

“듣기로는 은 소협도 첫 단추가 좋지는 않았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쌍코피가 났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언소협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저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겠습니다.”

그렇게 정현이 도를 찾고 있던 때.

나는 당옥기를 향해 말을 걸었다.

“당옥기.”

“어?”

“너는 왜 오늘 아무 말이 없어. 평소라면 정현 보고 쟤가 더 미친 것 같다느니 그런 말 했을 거 아냐.”

“…아, 뭔가 오라버니가 너희 곤란하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가지고.”

당준기는 자신의 신념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일 터.

딱히 저열한 수작을 걸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에, 악감정이 들지는 않았으나.

당옥기의 심정도 이해는 갔다.

“그런 걸로 미안할 필요는 없고. 너는 연구실로 가라.”

“갑자기?”

“어차피 선거 운동하다가 오라버니 마주치고 하면 그쪽에도 미안할 거 아냐.”

“그건 그렇긴 한데.”

“당장에 우리 쪽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방금 생각해봤는데 나를 제대로 겪어보려면 역시 ‘그게’ 빠질 수는 없지 않겠냐?”

“…네가 생각하는 그거가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아?”

나는 씩 웃으며 답했다.

“그래. 정무학관 생도 전원이 넉넉히 사용할 만큼 준비 좀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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