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4화. 호가호위 (2)
벽돌을 밀자 드러난 지하로 통하는 계단.
주위에 사람은 없었기에, 복면을 슬쩍 내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내 말에 우소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앞장을 섰다.
나는 은하연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은 소저가 소릉이 뒤에 바로 붙으시오. 이런 식으로는 처음 손발을 맞춰보는 거기도 하고. 혹시 뒤쪽에서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기감이 좋은 내가 후미를 맡는 게 좋겠소.”
“알겠어요.”
그렇게 진입한 지하통로의 초입에서, 은하연은 한쪽 벽에 붙어있는 마방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어. 저거 맞추면 기관진식 작동 안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우소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요?”
“은 누님의 말씀은 맞아요. 마방진의 암호를 맞추면 모든 기관진식이 작동을 정지할 거예요. 그 대신 연결된 태엽이 돌면서 어디론가 신호가 갈 거예요.”
“…그렇군요.”
“네. 아버지 따라 들어갔던 황궁에서나 본 건데, 이게 민가에 있네요. 설치된 다른 기관진식들도 황궁 저리 가라일지도요?”
“하긴, 황궁 안에 들어가 본 우소협이 잘 아시겠죠.”
“내궁은 아니고 주방이 있는 외궁이긴 했지만요.”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한 듯, 모용세가의 비밀창고로 향하는 길에는 온갖 기관진식이 가득했다.
“이 발판을 밟은 다음에 곧바로 저기 일곱 번째 발판을 밟으셔야 해요.”
다행인 건, 우소릉이 앞장서서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여기는 천잠사가 거미줄처럼 처져 있네요. 건드리면 안 되니, 잘 보시고 따라 해 주세요.”
그렇게 함정을 헤쳐가며 창고가 있는 곳에 다 와 갈 무렵.
우소릉이 우리를 향해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이건 상하좌우, 네 방향에서 창살이 튀어나오는 기관이에요. 해제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는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후. 저희 은휘상단도 이 정도로 기관을 깔아 놓지는 않았는데… 어떤 의미로는 존경스럽네요. 모용세가.”
그에 은하연이 고개를 젓고는, 나를 향해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언 공자. 저 안에 정말로 치부책이 있긴 한 건가요? 이러고 들어갔는데, 그냥 금은보화만 있으면 헛고생일 텐데요?”
“나를 못 믿는 거요?”
“못 믿는 게 아니라, 언공자는 저기에 치부책이 있다고 확신을 하시는 느낌이셔서 묻는 거예요.”
어차피 소릉이가 시간을 조금 달라고 하기도 했으니.
나는 체험을 시켜줄 요량으로 손가락을 까딱이며 입을 열었다.
“이마 좀 이리 내보시오.”
한데, 은하연은 되레 양손으로 이마를 감추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로 못 믿어서 그런 거 아니라고요.”
“?”
“…딱밤 때리시려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런 은하연의 행동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는데.
- 그냥 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하기야 하연이 만큼이나 너를 겪은 녀석이 없지, 그 친구비라는 것도 여즉….
그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하기로 하고, 나는 은하연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어떻게 확신하는지 알려주려고 하는 거요.”
“…진짜죠?”
나는 엄지손가락에 바늘구멍만 한 상처를 낸 뒤, 은하연의 이마를 살짝 찍었다.
“된 건가요? 잘 모르겠는데….”
“이제 눈을 감아 보시오.”
그리고 은하연이 눈꺼풀을 닫았을 때, 궤장에 새겨 놓은 술식을 발동시켰다.
“?!”
그러자 은하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넋이 나간 듯 입을 열었다.
“다, 단순히 위치를 쫓는 주술을 걸어 두신 게 아니라, 창고 안이 보이는데요?”
“이제 어찌 확신하는지 알겠소?”
“…예. 연호 별로 정리된 책장이 있네요. 저는 이런 주술도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뭐에요 이거?”
그렇게 감탄하던 그녀는, 곧 눈을 확 뜨며 내게 물었다.
“이거, 저도 배울 수 있나요?”
“있고 없고를 떠나서 왜 그런 생각을?”
“내년도에 제가 청죽관을 관리해야 하잖아요. 자리 비울 때 이거로 밑에 애들 잘하고 있나 살피면 딱이겠는데요?”
“…청출어람이구만 그래.”
나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무서운 생각을 은하연이 말하던 그때.
해제가 끝난 것인지, 우소릉이 나를 불렀다.
“언 형.”
“그래, 들어가자.”
그렇게 온갖 기관진식들을 넘어 도착한 모용세가의 비밀창고 안.
철커덕-
“소릉아 네가 망 좀 봐라. 나랑 은소저는 지금부터 저기 저 장부들 살펴야 한다.”
“예. 언 형.”
나와 은하연은 금은보화와 예술품들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창고의 한쪽 벽에 놓인 책장 앞으로 다가가 장부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된 것은 살필 필요가 없겠지, 여기부터 시작하면 되겠군.”
“예. 저는 우측부터 살필게요. 언공자는 좌측부터 살피세요.”
“그럽시다.”
은하연과 갈라진 나는 좌측 편에 꽂힌 장부를 뽑아 들어 훑기 시작했다.
‘음?’
내가 처음 집어 든 책을 읽다 고개를 갸웃하자,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한방에 찾은 것이냐?
‘아뇨. 여기 적힌 건 그냥 모용세가가 지출한 내역들입니다.’
- 한데 방금 고개는 왜 그런 것이냐?
‘장부라는 게 그냥 돈이 드나든 기록 같아 보이지만, 면밀히 보면 사람이든 가문이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거든요.’
- 그래?
‘예를 들어 갑자기 먹고 입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게 늘었다면, 먹여 살리는 사람이 늘었다는 식으로요.’
- 듣고 보니 그렇구나. 그럼 모용가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으냐?
‘조금 더 살펴보면 더 정확해지겠지만… 초조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가들에게 베푸는 게 아니라 되레 상납미를 늘렸고, 장차 여러 방면으로 진출해 가문의 힘이 되어줄 식객은 줄였다.
‘내실이 엉망입니다. 그런데 이번 팔순연처럼 위세를 드러내는 행사에서는 또 엄청나게 무리를 했네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모용세가는 거듭된 악수와 맹주님의 견제가 합쳐져, 손발이 잘린 형국.
백본회를 움직여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도 근래 들어 여의치 않았을 테고.
이에 더해 내 이름과 함께 진주언가의 이름이 각계각층에서 오르내린 걸 들었을 테니, 무척이나 초조했을 것이다.
‘이러다간 오대세가 자리는 진주언가에 밀려 날아가고, 군소세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모양이네요.’
그렇게 장부를 살핀 지 얼마나 되었을까?
모용가 녀석들이 어떤 생각으로 연왕부를 동아줄로 삼았는지 대략 파악이 끝났을 무렵.
은하연이 나를 불렀다.
“언 공자. 찾은 거 같은데요?”
“찾았소?”
“보세요. 들어온 기록은 없이 계속 나간 기록만 있죠? 받아 간 사람의 이름도 쓰여있지 않고요.”
“그렇군.”
“황족들과 은밀한 거래를 할 때 이런 식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은밀한 거래를 참 많이도 했군.”
“크게도 했고요.”
확인을 끝낸 나는 은하연에게 다시금 장부를 돌려주며 물었다.
“이 자리에서 외워버릴 수 있겠소?”
“상단에 있을 때 늘 하던 건데요.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외울 수 있어요.”
* * *
우리는 혹시 모를 발각이나 습격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객관으로 복귀했다.
달칵-
그렇게 창문을 열고 남자 숙소로 진입한 우리를 맞은 것은, 입에 검지를 대고 있는 정현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무슨 일 있냐?]
[모용 소협이 옆방에 와있습니다.]
[아, 그래?]
[예. 남궁 소협, 천 소협이 대작을 하고 있고, 나머지는 자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창량 교수님은?]
[또 누가 더 올까 불안하셨던 모양인지 소원의 문가에서 서성이고 계십니다.]
[…참 요령 없으시다.]
[큽. 그러게 말입니다. 다녀오신 일은 잘된 겁니까?]
[교수님 모셔와. 오시는 길에 모용길한테 늦었으니 돌아가라는 말씀 한번 해달라고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전음을 보낸 뒤,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교수님.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고생이요? 술만 마시다 갑니다만….”
“아, 이 형이 취했나. 모용 형 지금 교수님 말꼬리를 잡는 거요?”
“아, 아닐세. 교수님 절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편히 쉬십시오. 장호 자네랑 윤 자네도.”
모용길을 배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잠깐 사이 몇 년은 늙은 듯한 창량 교수님과 남은 언동생들이 들이닥쳤다.
그중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창량 교수님이었다.
“어떻게 됐느냐?! 다친 곳은 없고?”
“일단 진정하십시오.”
“지금 내가 진정을 하게 생겼느냐? 얼마나 마음을 졸였…. 다시는 이런 부탁을 내게 하지 말거라!”
그런 창량 교수님에 이어서 남궁윤과 천장호도 입을 열었다.
“그래. 교수님께는 그런 부탁을 안 하는 게 나을 성싶다. 거짓말도 재능이 있는 것이다.”
“윤 형도 똑같은데, 뭘 교수님만 그런 것처럼 말하시오?! 나 참 진짜 어이가 없네.”
그러면서 흥분들이 좀 가라앉은 것 같았기에.
나는 다녀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들키지는 않았고, 다친 곳도 없습니다. 찾으려던 물건도 찾았고요.”
“내가 좀 볼 수 있겠느냐?”
“챙겨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치부책을 챙겨 나오지 않았다고?”
“예. 외워서 나왔습니다. 왕부와의 거래라서 어차피 주고받았음을 증명하는 도장도, 받아 간 자의 이름도 없이 오직 나간 내역만 적혀있었습니다. ”
확인한 내용을 자세히 말씀드리자, 교수님께서는 이내 질문을 해오셨다.
“…그걸 증좌로 사용할 수가 있느냐?”
과연 학관에서 연구만 하는 도사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
내가 답을 하기 전, 팽소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모용세가와 연왕부. 당사자들은 내역만 들어도 알 테니까요. 저런 것을 뒤에서 작성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연왕부 입장에서는….”
“괘씸하다고 여기겠구나.”
거기에 나도 한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이렇게 밀월을 나누던 관계에 실체가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저희는 관아에 가서 송사를 할 게 아니라, 초왕부에 넘겨드릴 것이니까요.”
정현이 질문을 해온 것은 이때였다.
“그 외에 다른 증좌는 없었습니까?”
“뭘 염두에 두고 말하는 거냐?”
“마교 입니다. 빈도의 상식으로는 모용세가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정현 네가 가문이라는 굴레에 매인 적이 없어서 그럴 거다.”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나도 같은 의심은 해봤다. 그래서 장부를 살펴봤지만… 마교랑 손을 잡았다는 명확한 흔적은 없었어.”
“그렇군요.”
“다만 모용세가가 지금의 지위를 지키려고 무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백성들은 물론이고 방계 혈족들에게도 횡포를 부리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마교의 숨통을 틔워줬을 가능성은 있겠지.”
그런 내 말에 정현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고.
“마교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먹잇감 아닙니까? 당장에 모용세가를 방벌… 하면 요동 땅이 무주공산이 되겠군요?”
마방연에서 함께 마교에 대해 연구해온 다른 언동생들도 팔짱들을 끼며 침음성을 냈다.
“맞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이야.”
* * *
팔순연쯤 되면 여러 날 동안 잔치를 벌이는 게 보통이다.
첫날이 지나가고 찾아온 둘째 날.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상은 가주 전의 의자에 신경질적으로 걸터앉으며 밖에 있을 호위무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학이 밖에 있느냐?”
“예. 가주님.”
“아버님께서 오늘 연회의 공연은 후기지수들이 선물한 궤장에 앉아 보실 것이라 하셨다. 시간이 좀 남았으니, 일단 이 방으로 가져다 놓거라.”
“예.”
궤장을 가져오라는 명을 내린 모용상은 어제 일어난 일들을 가만히 상기해 보았다.
“…안 풀리는구만.”
본래 모용상은, 문전박대를 통해 무림맹주의 기를 꺾어놓고, 맹주에게 불만이 있는 세력을 규합하여 맹주를 교체하자는 주장을 하려 했었다.
한데, 그 일행에 창량 도장이 끼어있는 바람에 되레 모용세가의 체면만 상했고.
가장 중요한 귀빈들에게서 공개적으로 선물을 받는 일정에선 팽무혁에게 능욕을 당했다.
“이 잔치를 열자고 얼마를 들였는데. 염병할 팽 가놈 같으니. 친딸도 오호단문도를 버리고 검을 들었는데, 제 놈이 무슨 낯짝으로 도의 종가를 자처한단 말인가.”
그렇게 팽무혁을 욕하고 있던지 잠시.
심부름을 보낸 모용학이 돌아와 기별을 해왔다.
“가주님. 학입니다.”
“들여다 놓거라.”
가주전에 들어온 궤장을 보며 모용상은 생각했다.
‘언용운.’
저 궤장을 준비해온 그 녀석은 이야기가 통하는 듯했다.
하나, 본인이 그랬듯 장차의 이야기였다.
‘기실 아들놈들 대의 일이다.’
당장에 아들놈들에게 온전히 가문을 물려주는 일 자체가 난국인데, 그를 포섭한다고 해서 당장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안배 삼아 훗날을 위한 포석을 조금 깔아 둘 뿐이었다.
그에 모용상의 인상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는데.
궤장을 놓고 가주전 밖에 나가 있던 모용학이 기별을 해왔다.
“가주님.”
“말하거라.”
“곡마단의 단장이 가주님을 뵙고 싶다는데 어찌할까요?”
“공연비를 더 달라는 이야기 아니냐? 지금도 후하게 쳐주고 있거늘 욕심이 과하구나. 매를 맞기 싫으면 돌아가서 공연 준비나 똑바로 하라고 해라.”
“…꼭 좀 뵙게 해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돈 이야기가 아니라는데요.”
“허. 강호에서 한번 얕잡아 보이니까 별 잡것들이 염병을 떠는구나.”
“만나주시지 않으면 오늘 공연을 하지 않겠답니다.”
“…일단 들여보내라.”
안 그래도 짜증이 날 대로 나 있던 찰나에 찾아온 천한 불청객.
여차하면 때려죽이겠다는 마음으로 곡마단의 단장을 가주전으로 들인 모용상이었으나.
그는 처음 품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천마신교에서 왔습니다.”
들어선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도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뭣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모용세가를 돕고 싶습니다.”
“우리 가문이 우스워지긴 한 모양이군. 감히 네깟 놈들이….”
“모용세가가 겉만 번지르르하지, 속은 곪을 대로 곪아 조만간 진주언가에게 밀려 이류 가문으로 내려앉을 위기에 처해있음을 본교는 다 알고 있습니다.”
“…….”
“도와 드리겠습니다. 사람도, 재물도, 영약도 다 드릴 수 있습니다. 팽가를 누르고 도의 종가 자리도 되찾으셔야지요. 과거 나라를 세우기도 한 모용씨 아닙니까?”
씩 웃어 보인 곡마단의 단장은, 이어서 가져온 궤짝을 각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태가주님의 생신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가져온 선물입니다.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시면 됩니다. 그럼 가주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볼일은 끝났다는 듯 가주전을 빠져나갔다.
모용상은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덩그러니 남은 궤짝을 열어보니 궤짝 안에 금원보가 빽빽이 들어있었다.
‘…이 정도면 팔순연을 치른 금액을 충분히 만회하겠는데?’
그에 절로 마른침이 넘어가는 이때.
밖에서 또 한 번의 기별이 있었다.
“가주님. 언용운이 찾아…. 컥.”
한데 모용상의 허락이 있기 전에 밖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겠습니다.”
“뭐, 뭐?”
그에 모용상은 급히 궤짝의 문을 닫고 각탁 아래로 숨겼는데.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언용운이 가주전 안으로 들어왔다.
‘이놈은 또 왜?’
모용상은 황당한 눈으로 언용운을 바라봤다.
기대치 않은 손님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것이다.
지금 언용운은 갑자기 찾아온 무례를 넘어, 허락도 받지 않고 가주전에 들어온 셈이었으니까.
대체 모용학은 무얼 했길래 이 녀석을 안으로 들여보낸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뭘 알고 왔을 리는 없을 텐데….’
언용운이 여유롭게 포권을 취하는 모습을 보자 모용상의 불안감은 배가 됐다.
하나, 모용상은 그 불안감을 애써 떨쳤다.
‘곡마단의 단주가 제 말을 마치고 나간 지 한참이다.’
그때 나눴던 이야기, 각탁 아래 숨긴 금원보가 든 궤짝.
그것을 언용운이 알 가능성은 만무했다.
이럴 때일수록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법.
모용상은 언용운을 향해 어깨를 쭉 피고는 언성을 높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한데 그 말을 들은 언용운은, 비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가주님, 그거 쥐약입니다.”
모용상의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