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75화 (275/444)

제275화. 복귀 (1)

내가 모용세가의 가주전에 들어섰을 때.

“쥐, 쥐약이라니?”

모용상은 순간적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하나, 이내 시치미를 뚝 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간밤에 악몽을 꿨는데 잠이 덜 깬 것인가?”

“그래 보입니까?”

“대답은 자네가 해야지. 아침 바람부터 찾아와서 내 호위를 무력화하고 허락도 없이 가주전에 들어오더니, 쥐약이니 어쩌니 못 알아듣겠을 소리를 하고 있는 자네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풍문을 다뤄본 것으로 치면, 천하에 따를 자를 꼽기 힘든 은 소저조차도 내가 사용한 ‘세 번째 눈’ 같은 술법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말했다.

모용상이라고 다를 리 없을 터.

‘아침부터 궤장이 움직이길래. 이 방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용상이 알 턱이 없지.’

게다가 마교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쥐약에 빗대 말했으니.

내 말을 본인 편할 대로 해석하여 저렇게 잡아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순간이었다.

“큽.”

하여, 웃음이 새어 나와 버렸는데.

“내 말이 우습나?! 자네를 좋게 봤기에 이렇게 말로 훈계를 하고 있다만, 이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행동일세!”

모용상은 기회는 이때라는 듯, 각탁을 내리치며 축객령을 내렸다.

“이만 나가보도록 하게! 어제 나누었던 대의(大義), 장차 모용세가와 진주언가가 손잡고 무림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그때를 생각해서 내 오늘의 무례는 특별히 넘어가 주도록 하겠네.”

물론 나는 그 축객령에 따르지 않았다.

되레 다리를 꼬고 앉으며, 가주전 앞까지 함께 온 팽소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소진 누님. 지금부터 모용가주님과 좀 긴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철통같은 경계 부탁드립니다.”

“알겠어.”

내 행동에 모용상은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연달아 두 개의 질문을 해왔다.

“나가라는 말 듣지 못했나! 이게 뭐 하는 짓인가! 그리고 팽가의 여식을 달고 온 이유는 뭔가? 내 제안에 대한 자네의 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나?!”

나는 그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궤장에 새긴 술식을 통해 듣고 지켜본 광경을 입에 올렸다.

“한 식경 전쯤. 이 가주전에 곡마단의 단장이 다녀가지 않았습니까?”

“…….”

“그자가 가주님께 뭐라 하던가요?”

“…파, 팔순연에 공연을 하러 온 자들이 내게 할 이야기가 뭐겠나? 공연비를 후하게 쳐달라는 이야기였지.”

“흠.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데요? 제 생각엔 천마신교에서 왔다는 말을 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

내 말에 모용상은 흠칫 놀랐는데.

“그리고는 사람도 재물도 영약도 다 제공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모용씨는 과거에 나라를 세우기도 한 일족 아니냐는 말을 하면서요.”

잠시 눈알을 굴리는가 싶더니.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재차 입을 열었다.

“함정이구나! 우리 모용세가를 마교와 엮어 날려버리려는 수작이렷다?! 이 모용상이 네 녀석이 짜놓은 얕은수에 걸릴 성싶으냐!”

그런 모용상의 행동에, 사부님께서는 의아해하셨다.

- …모용가 놈이 갑자기 왜 저런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제 놈이 마교와 접선한 일을 용운이 네 탓으로 돌리려고 저러는 거냐?

‘그런 속셈이 있다기보다는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가주전에서 은밀히 지나간 대화를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상황.

‘모용상은 제가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보다는 곡마단의 단주를 제 쪽에서 보냈다고 생각하는 쪽이 말이 된다고 본 모양입니다. 뭐, 나쁠 것은 없어 보이네요.’

- 나쁠 것이 없다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내게서 느끼는 미지의 공포와 압박감이 커질 터.

‘예. 저런 마음이 이 대화가 끝났을 때. 모용상이 제 손으로 백기를 들고 모용세가를 바치게 만들 겁니다.’

나는 일부러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가주님께서는 제가 곡마단의 단주를 보냈다고 생각을 하시나 보군요?”

“자네는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군. 아니라면 자네가 그 대화 내용을 어찌 아는가?”

모용상은 콧방귀를 뀌며 내 말에 대꾸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답이었다.

난 히죽 웃으며 중원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고전(古典) 소설의 일화를 입에 올렸다.

“가주님께서는 서유기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서유기?”

“거기 보면 손오공이 부처님과 멀리 가기 내기를 하고, 세상 끝까지 날아가서 마주한 다섯 기둥에 표식을 새기고 돌아오지요. 한데 그게 알고 보니 부처님의 손가락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지금 자네 손바닥 위에 있다는….”

그렇게 운을 뗀 나는, 모용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질 때 즈음.

곡마단의 단장이 가주전에 들기 전에 모용상이 홀로 앉아 중얼거렸던 말을 입에 올렸다.

“요즘 세가의 일이 안 풀린다고 고민이 많으시더군요.”

“……?”

“팔순연을 연다고 무리를 하셨는데, 팽 백부가 장식용 도를 선물로 주는 바람에 속이 많이 상하셨지요? 그래도 그렇지 소진 누님까지 들먹이면서 뒷담을 하시면 어쩝니까. 하려면 본인 앞에서 하시던지, 혼잣말로 모양 빠지게.”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터질 듯이 붉어졌던 모용상의 얼굴이 숫제 귀신을 본 사람처럼 파리해졌다.

“…그, 그걸 어떻게?”

“제가 어떻게 아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 텐데요?”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모용세가와 연왕부 사이에 오간 거래 내역 중 굵직한 것 몇 개를 적어온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잘 안 되시나 본데, 제가 가주님을 위해 정리를 해드리겠습니다.”

“…….”

“모용세가는 방금 부로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됐습니다.”

*     *     *

언용운이 모용상을 어르고 있던 때.

곡마단이 사용하는 객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 누각에, 은하연과 정현 그리고 남궁윤이 올라있었다.

그중 정현과 남궁윤은 주변을 면밀히 살폈고, 은하연은 다시 한번 적의 규모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지네 춤을 추던 자들이 스물. 사자가 두 마리였으니 넷. 차력사와 단장 등등 모두 더하면… 대략 두 개 공작조.”

어디선가 달려온 우소릉이 소리 없이 누각에 내려앉더니,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른들은 다 자리를 잡으셨어요. 거지들의 준비가 끝나면 신호를 주시래요. 곧바로 들이치시겠다고요.”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천장호도 달려왔다.

“하연 누님. 거지들 퇴로로 사용될 수 있는 곳에 몇 명씩 짱박아 놓으라는 일 마치고 왔수.”

“수고하셨어요.”

“…근데 이거 용운 형 없이 시작해도 되는 거요?”

“언 공자께서 가주님을 설득하고 있는 사이에 맹주님이랑 저희가 숨어든 마인들 소탕하기로 이야기 다 끝났을 텐데요?”

“아니 내 말은… 그 뭐냐. 이놈의 집구석에도 강시 같은 게 깔린 거 아닌가 싶어서.”

천장호의 우려에 우소릉이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북해빙궁에서처럼요? 그, 그건 좀 무서운데요.”

그런 두 사람의 우려에, 은하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기는 힘들 거에요. 어젯밤에 언 공자가 말씀 하셨듯 마교가 모용세가를 잠식한 정황이 없어요. 강시는 하루아침에 옮겨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맞다. 나도 향란관의 모산파 생도들에게 들은바 있는 말이야.”

남궁윤이 동조하자, 은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말을 이었다.

“마방연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고, 아무런 비빌 언덕이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오대세가의 영역 그것도 백도무림의 명숙들이 이렇게나 많이 몰려와 있으니 천마신교 내에서 직위가 높은 굵직한 자가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아마 딱 접촉만을 위한 자들이….”

“언제라도 버릴 수 있는 자들이 파견됐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원시천존. 사람 목숨 알기를 무엇으로 아는 것인지….”

“자, 그런 이야기는 이 일 마치고 언공자 오시면 같이 하자고요. 저희는 쭉 지켜보다가 빠져나가는 자가 있으면 뒤쫓는 거예요. 그럼 맹주님께 신호 보낼게요?”

말을 마친 은하연은 청죽관의 무복 귀퉁이를 잘라 만든 파란 깃발을 들어 올렸는데.

쾅!!!!!!

그러자마자 공손무결과 축하사절단원으로 따라온 타격대원들이 객관의 정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실례하겠소. 나는 무림맹주를 하고 있는 공손무결이라고 하오. 거동이 수상한 자를 보았다는 첩보가 들어와서 잠시 조사를 하겠으니, 협조를 좀 부탁드리겠소!”

공손무결의 음성이 쩌렁하게 울리는 이때.

팽무혁과 팽가의 무사들은 후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무결 동생의 이름처럼 평생 무결하게 살아온 백성이라면, 간단한 조사 뒤에 은자까지 쥐여 드릴 것이니 놀라지 말고 자리를 지켜주시오!”

그러나 두 사람의 말에 얌전히 따르는 곡마단원은 없었다.

“…모용상이 이런 선택을 할 이유가 없을 텐데? 끙. 도대체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막아라! 시간을 벌어! 천마께서 재림하실 때 너희들의 자손만대까지 이어질 복을 내릴 것이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놈들은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들고 공손무결과 팽무혁을 향해 뛰어들었는데.

쌔액! 쌔액!!!

쌔애애애액!

그들은 춤에 사용하던 방패와 곡도를 쥐고 꿈틀거리는 지네와 같은 움직임으로 공손무결과 팽무혁을 위협해 들어갔다.

촤라라락-

촤라락-

하나, 그 모든 건 두 사람 앞에선 헛된 몸부림일 뿐이었다.

공손무결의 청홍검이 춤을 추니.

촤악! 촤아악!!

다리 역할을 하던 자들이 말 그대로 썰려 나갔고.

팽무혁의 흑도가 시커먼 도광을 흩뿌릴 때마다 등딱지 역할을 하던 방패들이 쪼개져 나갔다.

따각!! 따각!!!!!!!

물론, 마인들 또한 그런 상황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휙!

휘휙!!

그중 몇몇은 공손무결과 팽무혁의 발이 묶여있는 틈을 타 좌우로 흩어져 벽을 넘으려 했다.

“내 모용세가를 향한 감정이 곱지는 않으나, 남의 잔칫날을 틈타 기어들어 온 네 놈들만 할까.”

하나, 좌측 편에선 소매를 찢고 뛰어든 언정웅의 권장이 벼락처럼 쏟아져 들어왔고.

“참석자의 면면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뒈지려고 환장을 했다는 뜻 일 테지. 원대로 해주마.”

퍽! 퍽!

퍼퍼퍽! 퍼퍼퍽!!!

우측 편에선 창량의 검이 피워내는 매화가 흐드러지며 마인들의 생각을 좌절시켰다.

쌔액! 쌔액!!

쌔애액!!!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마인들.

그걸 지켜보던 천장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용운 형 없이 시작해도 되냐 소리를 한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모르겠는데. 마교 놈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은 또 처음이네.”

하나, 정현과 남궁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인들이 불쌍하다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정현의 말이 맞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나도 악감정 많수! 저 자식들 때문에 놓친 끼니만 몇 끼에 구른 고생길만 몇 번인데?!”

*     *     *

치부책을 옮겨온 종이를 확인한 이후로, 나와 모용상 사이에 침묵이 이어진 지 한참.

팽소진이 기별을 해왔다.

“용운아. 소릉이가 왔어.”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응.”

안으로 들어온 우소릉은 곡마단을 치러간 일에 대해 간략하게 고했다.

“언 형! 한 명은 사로잡고 나머지는 다 소탕했어요!”

“고생했다. 다친 사람은 없고?”

“예! 창량 교수님이랑 아버님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니까 다 쓰러지던데요?”

“사로잡았다는 놈은? 그놈들 혈맥을 폭주시켜서 자폭할 수도 있는 놈들일 텐데?”

“아, 그것도 걱정하지 마시래요. 혈도도 짚었고, 사지 결박에 재갈까지 물려놨어요.”

“수고했다. 맹주님께 가서 여기 대화는 조금 더 걸릴 것 같다고 전해줘.”

“네!”

그렇게 우소릉을 돌려보내고 나자.

모용상이 입술이 터지라 깨무는가 싶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원하는 게 뭔가?”

나는 정색을 하고 답했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셨습니다. 이 치부책의 내용이 공개되면 연왕부와 북직예에서 모용세가를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

“그런데 마교와도 접촉을 하셨네요? 지금 모용세가는 관무 양쪽의 신뢰를 잃은 겁니다.”

내 말에 모용상은 항변을 하듯 입을 열었다.

“마, 마교와 손 잡을 생각은 없었네! 그저 그자들이 찾아왔을 뿐이야!”

“제 손바닥이 말하기를 곡마단의 단장이 찾아왔을 때. 솔깃한 표정을 지으셨던 것 같다는데요?”

“…….”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간 모용가가 쌓아온 업보가 있습니다. 가주님의 그런 항변이 얼마나 통하겠습니까?”

“…….”

“그러니 원하는 게 뭐냐고 물으시면 안 됩니다. 어디까지 내놓으실지를 본인이 직접 말씀하셔야죠.”

다시금 찾아온 정적.

나는 씩 웃으며 남은 말을 이었다.

“일단 각탁 아래 숨긴 금원보가 든 궤짝. 그것부터 이리 내놓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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