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79화 (279/444)

제279화. 복귀 (5)

곡마단이 사천을 돌아다녔다는 맹주님의 말씀에.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원작에서 일학년 겨울방학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정현이 사천에서 중독이 되지.’

당옥기가 천독단을 내어놓는 사건이었고.

이후 이야기는 이학년이 된 주인공 세대가 혈수만독주를 구하기 위해 약재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 일은.’

사천당가와 천독곡이라는 흑도방파 간의 대립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혈수만독주는 일찍이 구해다 당옥기 품에 안겼고, 천독단 연구는 착착 진행 중이었다.’

사실 굳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그만인 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 사건의 뒤편에 마교의 술수가 끼어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자.

얼마 전 옥기네 아버지를 사귀게 되었을 때, 얼핏 들었던 이야기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맹주님. 저번에 북해에서 후성을 공략했을 때 말입니다. 당 가주님이 사천에서 일어난 일로 맹에 오셨다가 함께 북시까지 오게 되었다 하지 않았습니까?”

“음. 당 선배가 그 이야기를 너한테도 했더냐?”

“그때 가주님께서 저랑 많이 어울려주셨지 않습니까.”

“하기야. 여정 내내 끼고 다니기는 하셨지.”

“그때 들었습니다. 무림맹에 볼일이 있어 오셨다가 북해에서 일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따라오셨다 정도만 들은 게 다지만요.”

내 말에 공손무결은 미간을 좁혔다.

“흠. 당 선배가 맹을 찾은 이유는 흑도방파 중 한 곳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흑도방파요?”

“너도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천독곡이라고 흑도에서 독을 다루는 녀석들이다.”

“…천독곡.”

“그래. 녀석들이 겁도 없이 당가의 영역을 침범해왔다더구나.”

천독곡.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 했다.

“본래라면 당가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려 하셨겠지만, 어지러운 천하와 맹주 노릇을 하고있는 못난 후배 생각을 해주셔서 본인들의 방식대로 그 일을 풀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러 오셨었다.”

나라는 존재가 개입하며 이야기의 궤가 크게 뒤틀렸음에도 그대로 일어나려는 사건.

이건 의심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제 생각에는 그쪽을 좀 중점적으로 파보면 어떨까 싶네요.”

“당가와 천독곡은 이해관계가 겹치는 관계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다툼이라 생각했는데… 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도 신경이 쓰이는구나. 맹에 내려가자마자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알려주도록 하마.”

그렇게 원작에서 이 시기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고 있다 보니.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前)용운이 놈은 이맘때 마인이 됐었는데?’

원작의 언용운.

녀석은 마교의 손을 잡고 이용만 당하다가 이지(理智)를 상실한 마인이 되어 용명이 손에 죽는다.

‘…따지고 보면 담경주가 비슷한 꼴로 죽긴 했어.’

그렇다면 이미 지나간 일로 봐도 될 것 같기도 했다.

하나, 의심을 늦출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곱씹어 보았다.

‘운혁 선배 일당이나 무길이 같이 학관생 중 요주의 인물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찍이 솔거거지들을 붙여놨다.’

언씨들 중에서 나나 용명이는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됐고.

‘작은 할아버지와 함께 진주언가를 통째로 삼키려 했던 진강장의 언용묵.’

녀석이 가장 유심히 살펴봐야 할 대상이었다.

‘온 김에 한 번 더 살펴봐야겠네.’

지난 여름 방학에 단속해놓고 가긴 했으나, 시간이 조금 흘렀다.

‘초심을 잃었다 싶으면 물리치료를, 아니다 싶으면 한 번 더 엄히 단속해놔야겠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 팽소진이 입을 열었다.

“숙부님이 오시는데?”

고개를 문가로 돌려보니, 아버지가 막 언윤각에 들어오고 계셨다.

“맹주님. 용운이랑 이야기는 다 하셨습니까?”

“예. 마침 나눌 이야기를 다 나눈 참이었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분가의 가주님들이 후계들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예. 요령(辽宁)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을 함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소진이랑 용운이도 가자꾸나.”

진주언가의 방계 가솔들이 언가장에 도착했다는 소식과 함께.

*     *     *

아버지를 따라 가주전에 가보니.

언가장을 찾은 손님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하북삼협의 남은 두 분과 은대인, 창량 교수님과 언동생들이 있었고.

진주언가의 여섯 분가 가주들과 그 자녀들도 있었다.

그들 중엔 진강장에서 온 언정진과 언용묵도 있었는데.

‘작은할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장원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더니 오늘도 안 오셨군.’

그쪽을 살피고 있는 사이, 분가에서 온 이들은 나와 맹주님을 향해 예를 표해왔다.

“맹주님과 큰 공자님을 뵙습니다.”

나와 맹주님은 마주 포권을 취했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자, 맹주님께서 바로 입을 여셨다.

“모용세가의 일은 다들 전해 들으셨을 겁니다. 이번 일은 천하에 여러 영향을 끼치게 되겠지요. 특히나 바로 옆에 붙어있는 하북에서는 더 크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운을 뗀 맹주님은 요령에서 일어났던 일 중, 극비 사항에 속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하북 사람들이 알아두어야 할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하여, 앞으로 요동방면 한철길은 무림맹에서 파견하는 인사와 하북과 요령의 인재들이 함께 관리하게 될 것입니다.”

말을 마칠 때쯤에는 우리를 칭찬하며 공을 돌려오셨다.

“팔순연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걱정이 참 많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매듭이 깔끔하게 지어졌습니다. 하북삼협과 은대인 그리고 창량교수님과 정무학관의 젊은 영웅들 덕분입니다. 특히나 용운이 네 공이 정말로 컸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맹주님의 공치사를 나는 묵묵히 받았고.

언동생들은 저마다 뿌듯해했는데.

그 와중에 팽 숙부는 여전히 모용세가가 미덥지 않았던 모양인지 팔짱을 끼고 나섰다.

“요령호옹 그 어르신이 그렇게까지 숙이고 들어오시니, 내가 졸장부도 아니고 받아들이긴 했네만… 다른 꿍꿍이가 있지는 않겠지?”

뭐, 나쁜 시선이라 할 수는 없었다.

술 한잔 나눴다 하여, 하루아침에 두 가문의 앙금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없거니와.

‘모용세가를 계속해서 주시할 시선도 분명히 필요해.’

문제는 당장의 분위기 였는데.

다행히 석가장의 장주 석금필과 은세평 대인이 한마디씩 더해주어 분위기가 풀렸다.

“모용 가주님이 직접 적어낸 서류에 적힌 내용들을 맹주님이 거의 다 집행했다지 않습니까? 그럼 실질적으로 수족이 거의 다 잘린 형국일 것입니다.”

“석 가주님의 말씀이 정확하십니다. 셈이란 지닌 것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분간 모용세가는 모용장의 가솔들과 식객 그리고 분가들을 건사하는 것 외에는 눈 돌릴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그쯤하여 어머니와 시비들이 음식들과 함께 가주 전에 들어오셨다.

맹주님이 잔을 들고 상석에 앉아 계신 아버지를 가리킨 것은 이때였다.

“술과 음식들이 들었으니, 언 가주님. 이제 축하해야 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들 잔을 채우고 언 가주님의 말씀을 경청해주십시오.”

그렇게 맹주님이 운을 띄우자, 아버지께서는 헛기침하시더니.

분가의 가주들을 응시하며 입을 여셨다.

“크흠. 방금 맹주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한가지 전달하지 않은 사실이 있어 의아했는데, 이 사람에게 말하라고 따로 빼두셨나 봅니다.”

그 말에 여섯 분가의 가주 중 처음부터 아버지를 지지해온 진평장주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풍문에 모용세가가 오대세가 자리를 잃게 되었다던데 설마….”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설마가 맞습니다. 모용세가가 백본회 상원의 발언권을 우리 가문에 위임했습니다. 그런 고로 진주언가가 사실상 오대세가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자리한 사람들이 모두 아버지를 향해 축하 인사를 전했는데.

“흠하하하! 축하하네 정웅!”

“감축드립니다 가주님!”

그중 진평장주와 진청장주는 눈물까지 보였다.

“…큽. 저희 언가의 오랜 염원이 드디어!”

“…크흐흑.”

미리 이 사실을 전해 들어 알고 계셨던 어머니께서는 살포시 웃으며 입을 여셨다.

“명장이고 맹장이고 복(福)을 지고 태어난 운장(運將)은 이길 수 없다더니. 저희 상공이 딱 그렇습니다. 아들 잘 둔 복으로 강시종도 복원돼, 오대세가 자리도 되찾아….”

그런 어머니의 말씀에 아버지께서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말씀하셨다.

“맞소. 아들 잘 둔 복이고 부인 잘 둔 복이지. 후회할 일투성이인 내 일생에서, 후회하지 않을 일을 꼽으라면 부인을 만나고 용운이와 용명이를 얻은 일이라오.”

“…어머나.”

어머니의 얼굴이 홍시처럼 벌게지는 순간이었다.

*     *     *

나로서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당황케 하는 광경이었는데.

마침 사부님께서도 한마디를 해오셨다.

- 네 아버지가 어머니를 당황케 하는 것은 처음 보는 성싶구나? 보통은 반대 아니냐?

‘…그러게요.’

- 뭐, 보기는 좋구나.

‘흠흠. 그러게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째선지 가슴속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족이라는 것이 어느새 내 가슴속에도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멍청한 녀석.’

그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전(前) 용운이 놈을 향한 욕지기가 새어 나왔고.

시선이 저절로 언용묵에게로 옮겨갔다.

“자 그럼 진주언가의 오대세가 복귀를 축하하며 한 잔씩 비웁시다.”

그렇게 언용묵을 관찰하던 나는, 잔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힐끔힐끔 내 쪽을 살피던 녀석에게 전음을 보냈다.

[용묵이 이리콤.]

[이리… 코흠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리 와보라고.]

그리고 녀석이 쭈뼛거리며 다가왔을 때.

어깨에 팔을 걸며 말했다.

“잘 있었냐?”

그러자 녀석이 알아듣기 힘든 답을 내놨다.

“예? 아, 네! 아니다. 아닙니다!”

“잘 있었으면 있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 대답은 뭐야? 뭐 죄지었어?”

“아, 아닙니다. 잘 지냈다고 하면 형님께서 불쾌해하실까 봐 말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대답하는 반응만 봐선 이 녀석이 죄를 지어서 이러는지, 내게 겁먹은 것 때문에 이러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손모가지 내봐.”

언용묵은 조심스럽게 우수를 내밀었다.

‘마공을 익힌 흔적은 없긴 하네.’

녀석의 맥을 살펴보니, 별다른 특이점은 보이지 않았고.

지난 여름 주제도 모르고 덤벼왔을 때, 내가 부러뜨려 놓았던 뼈는 붙어있었다.

나는 그 부위를 지그시 감싸 쥐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용묵아. 저번에 내가 한 말 아직 기억해?”

“…허튼짓하면 뒈진다고 하신 것 말입니까?”

“기억하고 있네. 바람직하다.”

“…가, 감사합니다.”

“형 몰래 나쁜 짓 하거나, 내가 뭐 물을 때 거짓말하고 그러면 그땐 이 손모가지 완전히 날아가는 거야? 알지?”

“…….”

“대답.”

“…예.”

그러자 사부님께서 측은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 …살살 해라 살살. 애 오줌싸겠다.

‘혹시나 마교 놈들이 접근할까 싶어서 그러는 거니 확실하게 해둬야죠. 용묵이한테도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사부님과 한마디를 나누고 있는데.

진강장주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언용묵의 아버지 언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가주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오.”

“진주언가에 소가주를 세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언정진의 말에 좌중에 정적이 내려앉았는데.

그는 정적을 깨고 남은 말을 이었다.

“큰 공자님을 소가주로 세우십시오.”

그러자 다른 장원의 가주들도 기립하며 입을 열었다.

“예. 큰 도련님은 강시종을 되살렸고, 오대세가의 지위를 되찾는 데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실로 합당한 후계라 할 것입니다.”

“협객으로 쌓은 명성과 무재 또한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진주언가의 가솔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치 않을 정명한 후계십니다.”

진강장은 지은 죄가 크니 용서를 받고자 나섰을 것이고.

저들 중 몇몇은 눈 밖에 나지 않고자 빠르게 동조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나, 그렇다 하더라도 한때 내가 탐탁지 않다고 소매를 걷어붙였던 이들이 내게 힘을 실어주는 건에 입을 모으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는데.

아버지도 같은 기분이었는지 입꼬리를 씰룩이시더니, 억지로 헛기침을 하시고는 내 의사를 물어오셨다.

“큼. 용운이 네 생각은 어떠냐?”

진주언가.

어느새 내 집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소가주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야.’

집안의 대소사를 챙겨야 할 뿐만 아니라.

내 행동은 저들에게.

저들의 행동은 내게 귀속된다.

그건 날개가 될 수도 있지만, 꼬리표가 될 수도 있었다.

‘굳이 지금 맡을 필요는 없지.’

생각을 마친 나는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아직은 제가 소가주 자리를 맡기에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학관에서 맡게 된 회장이라는 직무도 있고요. 소가주 자리를 지금 맡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그런 내 말에.

“…소가주를 세우는 건은 잠시 미뤄둡시다.”

아버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여셨다.

“그리고 용운이가 스스로 부족하다 하였는데, 솔직히 말해 용운이를 담기에 우리 진주언가가 좁아 보이는 요즘이오. 다들 노력 하십시다.”

*     *     *

그렇게 진주언가에서 보내기로 한 날들이 지나갔다.

이제는 작별을 해야할 때였다.

은 대인은 천진을 통해 강남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언가장에서 은하연과 작별을 나눴고.

“나는 항주에 볼일도 있고 해서, 천진을 통해 휘주로 돌아갈 것이다.”

“예. 말씀드린 추가 투자금은 바로 조치해주세요.”

“그리하마.”

팽씨 부녀도 작별을 나눴다.

“…거.”

“…그.”

“먼저 말해라.”

“먼저 말씀… 네. 보중하세요. 아버지.”

“내 걱정을 네가 왜 하느냐.”

“그냥 알았다고 하면 되지 꼭 그렇게 말하셔야 속이 시원하세요?”

“소진이 너나 몸조심해라.”

나 역시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끼니 거르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 너무 앞에 서지 말라고 하고 싶은 게 어미 마음인데 그래서야 안 되겠지. 용운아 항상 몸조심하거라.”

“예. 어머니.”

“학관에 도착하면 어머니께 잘 도착했다고 서신 하거라.”

“아버님께도 한 줄 꼭 쓰거라.”

“큼. 크흠.”

“예.”

그렇게 진주언가를 나선 우리는 황하를 거슬러 하남 땅 낙양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맹주님 그리고 팽소진과 작별했다.

그 뒤 계속해 남하해 하남 땅에 속한 단강구 북편에 이르렀는데.

우리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미리 전해 놨더니, 응용이 녀석이 마중을 나왔다.

호루룩!!

나는 머리 위를 맴돌고 있는 녀석에게 앉으라고 팔을 내밀었다.

하나, 녀석은 앉으라는 팔이 아니라 내 머리 위에 앉더니.

“여기 앉으라니까. 왜 거기 앉아?”

하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언형. 응용이가 안 데려갔다고 삐졌나 본데요?”

호룩!

“허. 앞으로 내가 너를 데리고 다니려면 네가 거점들 파악하고 있어야 하니까, 예해수 선배가 보내는 비둘기들 따라 남쪽 거점 익혀두라고 했잖아. 너도 알겠다고 했고?”

호룩!!

“이거 완전 지 마음대로네?”

“누구 닮았네요.”

“그게 무슨 소리요 은소저?”

“글쎄요?”

“…큼. 응용이 너는 이거나 제갈 소저한테 전해.”

후루룩!

“방금 응용이게 들려 보낸 서신은 뭐예요?”

“그런 게 있소.”

“있긴 뭐가 있어요! 또 무슨 일거리죠?!”

“귀신이군.”

겨울방학엔 사천에 가야 할 것 같았고.

방학이 끝나면 입관시험이었다.

할 일이 많았다.

“진짜 자유로운 귀신이 되고 싶다. 그럼 도망칠 수 있을 텐데….”

“하연 누님. 저 형 강시랑 백골도 불러다가 일 시키는 거 까먹었수? 도망 못 칠 텐데요?”

“알죠. 그래서 언공자가 사령술만 모르면 이라는 말을 더하려 했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은하연과 천장호를 향해 나는 말했다.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있소. 누가 들으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 줄 알겠네. 일단 오늘은 도착하면 쉴 거요.”

- 맞지 않느냐?

사부님께서는 내 앞말에 딴지를 거셨지만, 정현과 남궁윤은 뒷말에 경악한 모양이었다.

“…저, 정말 그러실 겁니까 언소협?”

“오늘 아침 해는 분명 동쪽에서 떴을 텐데….”

나는 녀석들을 향해 말했다.

“그래. 앞으로 또 먼 길을 가야 하니까.”

그러면 그렇지를 중얼거리는 언동생들을 무시하고.

나는 학관보다 조금 더 남쪽 방향을 응시했다.

‘장선. 원작의 후반부에 활약했던 그 녀석을 내년에 입관시킬 수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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