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1화. 장씨네 첫째아들 (2)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박에 장선을 알아볼 수 있었다.
‘성내루.’
녀석의 숙부가 온종일 노름을 한다는 곳에서 ‘사기꾼’ 소리를 하며 열을 내고 있기에, 저 녀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외모가 원작에서 묘사된 그대로였다.
『장선은 귀찮다고 빡빡 민 머리를 고수했다.
한데, 농사일을 하던 시절 인상을 쓰고 다니던 것이 이마와 미간에 주름으로 남아있었고.
면도를 하루만 걸러도 텁석나룻에 까슬까슬한 수염이 올라왔다.
거기에 장사체형이 곁들여지니, 처음 본 사람은 그의 나이를 불혹에 이른 것으로 오해를 하곤 했다.』
그랬다.
장선은 노안(老顔)이었다.
오죽하면 양번광견 소리가 떨어져 나간 뒤 녀석의 이름 앞에 붙는 별호가 노룡(老龍)이었다.
‘…맞겠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지만, 실로 충격적으로 삭은 녀석의 얼굴.
‘저러고 소릉이랑 동갑이라니 믿겨야 말이지.’
혹여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닐까 혼란에 빠져있던 찰나.
“장선이 이놈아! 하라는 일이나 할 것이지 여기는 왜 기어 와서 행패를 부리느냐?!”
“수, 숙부님. 이놈들 순 사기꾼입니다. 어떻게 닷새 내내 지기만 할 수 있습니….”
장선과 비슷한 얼굴의 비쩍 곯은 사내가 객잔에서 나와, 녀석이 장선이 맞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
“이놈아 노름이라는 것은 원래 딸 때도 있고 잃을 때도 있는 것이야!”
“…정무학관에 시험 치러 갈 제 돈도 다 날리셨다면서요.”
“제 이름이나 간신히 쓰는 놈이 정무학관은 무슨 놈의 정무학관이야? 그리고 네 돈이 어디 있느냐! 부모 잃은 것을 가엽게 여겨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숙부를 가르치려 들어?!”
“…그런 게 아니라 사기꾼 놈들에게서 잃은 돈을 찾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제가 도와드리게 해주십시오.”
“이 멍청한 놈아! 여기 성내루 뒤에는 흑양방(黑阳幇) 어른들이 계시는데, 네 놈이 돕기는 뭘 도와?! 네놈 때문에 오히려 우리 가족이 고초를 겪게 생겼다!”
숙질간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듣고 있기를 잠시.
성내루에서 험악하게 생긴 흑도 셋이 걸어 나오더니.
“이봐 장이(張二). 잘 놀다 말고 갑자기 왜 행패야?”
그중 가운데 있던 주먹코 녀석이 우두둑- 주먹을 풀며 장선의 숙부 쪽에 말을 걸었다.
‘숙부 쪽의 이름은 장이로구만.’
그런 흑도 놈의 말에, 장이는 시비를 걸 뜻이 없다는 듯 양손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요. 이놈이 제 조카 놈인데….”
“…조카? 형님 아니고?”
장선이 나선 건 이때였다.
녀석은 긴장했는지 입술을 짓씹었으나, 그렇다고 인상을 풀지는 않았다.
“우리 숙부한테 사기 쳐서 따간 돈 돌려주세요. 그럼 얌전히 돌아갈 테니.”
그러자, 흑도 놈이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허. 목소리는 어린놈이 맞군. 이거 겁을 완전히 상실한 놈이로구나. 좋은 말로 할 때 너희 숙부 모시고 그냥 돌아가라.”
“그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않으면?”
“여,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정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구나.”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흑도 놈들과 장선의 모습에 녀석의 숙부는 호다닥 걸음을 물렸다.
“히익.”
나는 원작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장선이 양번광견이라 불리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일을 떠올렸다.
‘이거 그 사건인가?’
장선이 양번 일대를 주름잡는 흑도패의 하부조직 하나를 박살 내 버린 사건.
이 사건 이후 장선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녀석의 숙부가 장선이 단순히 동네에서 힘이 좀 센 녀석이 아니라 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장선을 흑도패에 담보로 잡고 도박자금을 받아 썼다고 나왔었다.’
덕분에 장선은 초부의 삶을 청산하고 글도 익히고 무공도 배우게 된다.
하나, 흑도 바닥에 굴러다니는 무공이라 해봐야 허접한 이삼류 무학들이 전부여서, 기실 안 좋은 습관만 얻게 된 것으로 나온다.
‘결론적으로 괜히 흑도 출신이라는 꼬리표만 얻는 거지.’
물론, 천성이 선한 녀석이라 선량한 사람을 해하는 일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런 일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장선은 동료가 된 흑양방 놈들에게도 싸움을 건다.
‘양번의 미친개 소리를 듣게 된 것이 그때쯤.’
그런 사정이 고려되어 정무학관 입관시험의 서류심사에서도 탈락하지 않게 되긴 하지만,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만 나타난 건 아니었다.
‘흑도방파의 명부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무학관에서는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게 되니까.’
하여 장선의 학관 생활은 시작부터 꼬이고, 녀석을 감싸던 정현의 삼학년 생활도 순탄치 않게 된다.
뭐, 원작의 장선이 학관에서 겪었던 불행들은 지금의 나라면 무마시킬 수 있으니 상관없겠지만.
‘그 전에 일단 녀석의 자질을 확인해 볼까?’
우선은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었던 녀석의 잠재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여차하면 개입하겠다고 생각하며 군중 속에 섞여 팔짱을 꼈다.
* * *
관을 보니 어쩌니 했던 녀석은 세 명의 흑도 중 주먹코였으나.
먼저 몸을 움직인 자는 놈의 우측에 서 있던 떡대였다.
“어린놈이… 맞지? 아무튼 이 자식아! 내 오늘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놈은 장선을 그저 농사나 짓는 촌부 정도로 여겼는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도(刀)도 뽑지 않고 주먹을 내질렀다.
쌔액!
죽일 생각까지는 없고, 흠씬 두들겨 패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하나, 장선의 재능은 삼류 흑도 놈이 어쭙잖은 마음가짐으로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휙!
장선은 슬쩍 비켜서며 날아드는 주먹을 피했고.
순간적으로 비게 된 흑도 놈의 복부에 양주먹을 번갈아 먹였다.
퍽! 퍽!!
그렇게 한 놈이 고꾸라지자.
장선은 상대가 생각보다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제 주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사이, 주먹코는 미간을 구기며 성내루 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한가락 하는 놈이다! 안에 있는 놈들 다 나와!”
그리고 본인은 차고 있던 도를 뽑았다.
스렁-
도가 뽑혀 나오는 소리에, 상대가 날붙이를 들었음을 확인한 장선은 방금 고꾸라진 놈의 허리에 달려있던 도를 뽑아 들었는데.
“어, 음. 잠시 빌리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성내루 안에서 다섯 명의 흑도인이 몰려나와 도를 뽑았다.
“쳐라!”
그들은 주먹코의 명에 따라 장선을 향해 뛰어들었다.
주먹코는 이류 정도였고, 나머지는 삼류에 불과했으나.
놈들을 상대하는 장선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 저 장선이라는 녀석은 무공을 전혀 배우지 못했나 보구나?
‘그런 모양입니다. 쓸데없는 걸음이 많네요. 도는 그냥 휘젓는 수준이고요.’
그런데도 장선이 내딛는 걸음은 흑도 놈들보다 반보 이상 빨랐고.
휘젓는 도는 어떻게든 적의 투로를 막아냈다.
챙! 챙!
채채챙! 카앙!!!!
그렇게 순식간에 수십 합이 교환되자.
- 흑도 놈들의 초식을 따라 하기 시작하는구나…!
‘예. 원체 허접한 무공이라 초식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장선의 공격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네요.’
투로를 막아내는 데 급급하던 장선의 도가 나름대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자.
전세는 순식간에 장선 쪽으로 기울었다.
캉!!!
그에, 장선이 쥐고 있는 도의 이가 나갈 때마다.
“컥!!”
흑도놈중 한 명이 장선의 주먹을 맞고 날아가는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커흑!”
그렇게 네 놈쯤 날아갔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두 놈 중 한 놈이 도망을 쳤다.
이제 성내루 앞에 남은 흑양방의 졸개는 주먹코 딱 한 명뿐이었는데.
“네놈이 지금 어디를 건드린 줄 아느냐?!”
챙! 채챙!
캉!!!!
뻐억!!!
마침내 주먹코마저 꼬꾸라지게 되었을 때.
한쪽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온 방향에는 조금 전에 내뺐던 흑도 놈.
그리고 놈이 데려온 기도가 남달라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는데.
‘걸음걸이랑 새어 나오는 기운이… 일류 끄트머리쯤 되나?’
녀석의 수준을 잠시 가늠해보고 있는 사이, 남자가 호기롭게 입을 열었다.
“나는 흑양방의 육당주 황동재다. 성내루에 난리가 났다고 해서 와봤는데, 네놈의 이름이….”
“장선이랍니다.”
“장선. 네 솜씨가 쓸만해 보이는구나. 원하는 게 숙부가 우리 업장에서 잃은 돈이냐? 돌려주마, 아니 더 얹어 줄 테니 우리 흑양방에 들어와라.”
황동재의 말에, 싸움에서 멀찍이 물러나 있던 장선의 숙부 장이가 슬쩍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인석의 숙부 되는 사람입니다요. 그런데 얼마나….”
그 순간, 나는 삿갓을 푹 눌러쓰고 앞으로 나섰다.
“이봐 흑양방의 육당주. 널브러진 네 수하들이나 챙겨서 돌아가라.”
“…넌 또 뭐냐?”
“나? 오늘부터 장선이 마니또 하기로 한 사람.”
“마니토(馬尼土)?”
팍씨, 어디서 침을 흘려.
꼴에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 * *
내가 나서자 사부님께서는 질문을 해오셨다.
- 그런데 용운아. 왜 하필 장선이 놈을 찾아와서 이러고 있는 것이냐?
사부님의 질문에 나는 미리 떠올려 두었던 변명거리를 말했다.
‘마교의 끄나풀이 시험장에 올 수도 있겠다 싶어 연고나 사문이 불확실한 녀석들 위주로 조사해볼 생각이었는데… 사정을 알아보니까 애가 좀 딱 하네요.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 …하여간에 묘한 구석에서 착해서는.
‘…그런 거 아닙니다.’
- 뭐, 재능이야 있더구나. 용운이 너를 보았을 때 받았던 충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잘 다듬으면 좋은 재목이 되겠어.
그렇게 사부님과 몇 마디를 나누고 있는 이때.
흑양방의 육당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양번 남부에서 이 황동재의 도가 뽑혔다 하면 액운을 부른다고 하여 사람들이 나를 남양액도(南陽厄刀)라 부르거늘 간도 크구나.”
나는 비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허접 특. 덤비려면 덤비고 말려면 말 것이지 꼭 쓸데없이 별호를 내세움.”
“아까부터 마니토니 뭐니 네놈이 감히 지금 이 남양….”
“아! 남양액도인지 액젓인지 생전 처음 들어보니까. 얌전히 돌아가던지 처맞고 쪽을 팔지나 선택하시라고.”
“놈!”
녀석은 더 참지 않고 액운을 부른다는 도를 뽑아 내게 달려들었다.
쌔액! 쌔액!!
쌔애애액!!!
“에헤이. 꼭 선택지를 줘도 오답을 고른다니까.”
날아오는 황동재의 도초.
조금 전 장선이 상대했던 흑도들에 비하면, 격이 다른 날카로움과 빠르기를 갖추고 있었다.
하나, 내 상대는 아니었다.
휙! 휙!
휙!
나는 회한도 뽑지 않고, 슬쩍슬쩍 빗겨 서는 것으로 녀석의 공격을 흘리고는.
틈이 보일 때마다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날려줬다.
딱!
굴욕적인 공격을 허용한 황동재의 입에서는, 그야말로 극찬이 튀어나왔다.
“이런 씹?!”
딱! 딱! 딱!
한 방, 두 방, 세 방.
단순히 놀리기 위한 딱밤이 아니었기에, 녀석은 얻어맞을 때마다 정신을 못 차리는 기색이었다.
딱!
따악! 따악!!!!
그렇게 얻어맞은 횟수가 늘어갈수록 황동재의 이마는 점차 부풀어갔는데.
정작 자신은 내 옷자락의 귀퉁이 하나 베어내지 못하자, 어느 순간 파리하게 질린 얼굴로 급히 걸음을 물렸다.
“고, 고수!”
그리고 급히 무릎을 꿇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고수를 몰라뵙고 그만 무례를 범했습니다!”
“됐고. 두 번째 선택지 준다.”
“예? 어떤….”
“얘가 달라는 돈 내놓을래, 아니면 나랑 같이 흑양방으로 갈래?”
* * *
황동재에게서 판돈을 받아낸 나는 장씨네 숙질과 함께 그들의 집으로 향했다.
마을 자체는 벽촌에 있었지만, 장이의 집은 부농이라고 불러도 좋을 법했다.
“소도 몇 마리 있고, 지붕은 기와는 아니라도 촘촘하네.”
“헤헤. 누추합니다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여보 마누라!”
“당신! 또 노름판에 가서….”
장이가 잠시 제 부인을 찾아 밖으로 간 사이, 나는 장선을 향해 물었다.
“너는 어디서 지내냐?”
“저는 저기서 지냅니다.”
장선이 가리킨 곳은 방이라기보다는 헛간이었다.
소설에 나왔던 대로 이 집은 장선을 혈육 취급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미간이 찌푸려지려던 찰나, 장선도 내게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
양양성 안에서야 신분을 숨겼지만, 여기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삿갓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정무학관에서 왔다. 언용운이라고 한다.”
그런 내 말에 장선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는데.
녀석은 생긴 것답지 않게 소녀처럼 입을 가리며 말했다.
“어, 언용운이라시면… 그 천하제일 후기지수 괴룡 언용운 대협이시란 말입니까?!”
“대협 소리는 과하고. 뭐 그런 식으로 불리고 있다.”
“와!”
“한데 이런 벽촌에서 지내면서 나에 대해 많이도 아네?”
“양양성의 무관에 다니는 동네 또래들이 소식지라는 것을 가져와서 읽어주곤 하거든요!”
“그래?”
“예! 어려서부터 정무학관 이야기를 들어서 저도 언젠가 입관하고 싶었는데. 그 소식지 이야기를 듣고 더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잠시 홀로 떠들던 장선은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근데 괴룡 대협께서 여기까지는 왜?”
“대협 소리는 하지 말라니까.”
“아.”
“자세한 이야기는 학관의 극비사항이고, 용건만 간단히 말하자면 너를 데리러 왔다.”
“저, 저를요?”
“그래. 단강구에 객관을 잡아줄 테니까 거기서 입관 시험 준비해.”
그런 내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인지, 잠시 방에서 나가 있던 장이 내외가 부리나케 튀어나와 입을 열었다.
“잠깐! 여보! 장선이가 단강구로 가면 겨울 땔감이랑 내년 농사는 누가 해요?”
“허흠. 공자님? 장선이를 저희 내외가 낳은 것은 아니지마는… 이날 이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주고 소중하게 보듬은 자식 같은 녀석 입니다요. 저희 허락도 없이 그렇게 데려가실 수는 없으시겠는데요. 안 그러냐 장선아?”
이 부부의 말은, 돈을 달라는 말을 돌려 하는 것이었는데.
착해빠진 장선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습니다. 숙부님과 숙모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장이 내외도 괘씸했지만, 장선도 벽촌에서 농사일만 하며 지내서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식같이 소중한 조카를 저런 곳에 재웁니까? 어려서부터 정무학관에 들어가고 싶다는 녀석을 무관도 안 보내주고요?”
그런 내 말에 장이는 헛기침하며 변명을 해왔다.
“크흠. 조카의 무재가 저렇게까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요. 어쭙잖게 칼밥을 먹으려 하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천하에 얼마나 많습니까?”
“아, 그게 걱정돼서 안전하게 초부로 살라고 막아오셨다? 부모의 마음으로?”
“그렇지요. 그렇지요.”
“그럼 장가는 왜 안 보내주셨소? 민가의 초부들은 장선이 나이면 다 장가를 가는데?”
“…….”
“그러면 이 댁에서 독립할 테고, 두 분은 일꾼이 사라지니까. 아니오?”
그런 내 말에 장이는 무어라 변명하려 했다.
“…그건.”
“난 그렇게 성격이 좋은 사람이 아니오.”
나는 주머니에서 철전 하나를 꺼내 우그리며 변명을 막았다.
“장선이가 두 분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내 참고 있소만, 허튼소리를 계속하면 내 인내심이 다 닳아버릴지도 모르오.”
“…….”
“그러니까 잡소리 빼고. 본론만.”
“…큼. 조카는 우리 집 대들보입니다. 곧 겨울이 오는데 데려가시면 저희 가족의 생계가 아주 곤란해집니다. 어쨌든 이날까지 키워주고 먹여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 계산은 치르고 데려가십시오.”
드디어 나온 본심.
“계산. 나도 계산 참 좋아하지.”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심지어 두 분 말씀에 답이 있군. 부인은 일은 누가 하냐고 하셨고, 숙부께서는 장선이 대들보라 하셨지?”
“…….”
“…….”
“두 분 내외에, 학당에 다니신다는 이 댁 자제들과 장선이까지 하면 아무리 작게 잡아도 일 년에 넉넉잡아 은자 서른 냥은 들어가겠군. 거기서 장선이 먹고 자는데 들어가는 몫 넉넉하게 다섯 냥씩은 빼고. 너 몇 살 때부터 이 댁 일을 했냐?”
“…어. 여덟 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십 년이면 이백오십 냥. 어릴 때는 제 몫을 못 했다고 치고 통 크게 오십 냥은 빼 드리지.”
“…….”
“…….”
“깔끔하게 은자 이백 냥. 내놓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