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84화 (284/444)

제284화. 촉도난 (1)

사천으로 들어가기 위해 무창의 수군진으로 가는 길.

예해수 선배 외에 한 명의 인원이 더 길동무로 추가되었으니.

당옥기의 오라버니 당준기였다.

“…이 인원이 사천에 간다고?”

“오라버니랑 나 빼면 여섯 명밖에 안 되는데? 우리 집에 남는 방이 몇 갠데, 뭘 그렇게 놀라?”

“…속 편한 녀석.”

“그건 또 뭔 소리야?”

“…됐다.”

“되긴 뭐가 돼?! 야! 당준기! 방금 나 바보 취급했지?!”

“저리가라.”

“캭! 우리 엄마 아들 중에 니가 제일 싫어!”

출발할 즈음 당옥기와 티격태격한 뒤로, 당준기는 묵묵히 여정에 함께했는데.

“오늘 불침번은 저랑 당준기 선배님입니다.”

무창에 다 와 갈 무렵, 나와 불침번을 함께 서게 되었다.

한데, 당준기는 이 순간마저 묵묵히 있어서 우리 사이에는 마른 가지 타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타닥타닥-

마른 가지 타는 소리라는 것이 가만히 듣고 있으면 심신이 안정되는 소리이긴 했다.

하나 이대로 당준기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사천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았는데, 어색한 기류가 계속되면 피차 힘이 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근데, 직속 후배인 궁윤이랑도 딱히 친해 보이지는 않고….’

당옥기는 토라진 상태.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겸사겸사 따로 할 이야기도 있고 해서, 나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부터 입에 올렸다.

“옥기한테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속 편한 녀석이라고 한 거 말인가? 자네가 옥기의 벗이라면 알 텐데? 저 녀석은 어려서부터 아버님이 오냐오냐 키워서 아무 생각이 없어, 버릇도 없고.”

당준기의 말에, 나는 문득 외조부 앞에서 버벅거리던 당옥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래도 예의를 차려야 하는 자리에선 나름대로 노력 하던데요? 근데 제가 물어본 건 그 말 말고 학관 나서기 전에 옥기한테 따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학관 나서기 전에?”

무슨 말인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듯 미간을 좁히는 당준기.

나는 당옥기에게 들었던 말을 대놓고 말했다.

“예. 저희랑 안 친한 거 아니냐고 하셨다면서요?”

“…아. 녀석이 자네들에게 그런 이야기도 했나?”

“길길이 날뛰면서 했습니다.”

“그것만 봐도 저 녀석이 얼마나 속 편한 녀석인지 알 수 있지. 아무리 친해도 할 이야기가 있고 안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인데….”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사실은 동생이 겉도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하셨던 말씀 아니십니까?”

내가 씩 웃으며 말하자.

당준기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내 말을 부정했다.

“큼! 억측은 삼가게, 제 오라버니한테 버릇없이 ‘야’니 ‘우리 엄마 아들’이니 소리를 하는 녀석이 뭐가 이쁘다고 내가 걱정을 한단 말인가.”

그런 당준기의 모습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저 당가 녀석도 솔직하지 못 하구만.

‘입으로 나오는 말과 속마음이 다른 것이 집안 내력인가 봅니다.’

아무튼 어색한 기류는 좀 가신 것 같았기에.

나는 당준기와 나눠보려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끄집어냈다.

“듣자 하니 향란관의 내년도 자치 부회장직을 제안받으셨다고 하던데요?”

“신임 회장이신 소선창 선배가 감사하게도 그런 제안을 해주시긴 했네.”

“한데, 아직 수락하지 않으셨죠?”

내가 묻자 당준기는 되레 되물어왔다.

“자네는 수락하라는 투 같구만?”

지금 자치회장인 매진악 회장은 다가올 봄에 졸업한다.

“예. 저는 수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당 선배는 하고 싶지 않습니까? 향란관의 자치부회장은 자치회장 자리로 가는 길목이자, 향란의 생도들이 영광으로 생각하는 자리 아닙니까?”

여러 사건을 겪으며, 지금은 나를 지지하는 태도로 돌아선 매진악 회장의 시대가 끝나는 것이다.

‘당준기가 저 자리를 고사하면 아마 운혁에게 돌아갈 터.’

향란관의 관풍이 원칙과 전통을 숭상하는 만큼, 조금이라도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수뇌부에 있는 게 나았다.

“고민하시는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요?”

“운혁 그 친구는 일학년부터 자치회 일을 했으니, 나보다 더 오래 해오기도 했고….”

“또 뭐가 더 있습니까?”

“나는 자네랑 총학생회장 자리를 두고 경선을 한 사이잖나. 총회 같은 곳에서 내가 있으면 자네나 총학생회 입장에서 껄끄럽지 않겠나?”

“제 사견입니다만, 자치회의 수뇌부는 오래 해온 공으로 맡을 자리는 아니라 봅니다.”

“…계속해보게.”

“소속 생도를 어떻게 이끌지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고, 천하엔 난세가 와있고 정무학관엔 총학생회가 생긴 지금은 그 각오가 총학생회의 철학과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어야 하겠지요.”

“그게 나란 말인가?”

“모르죠. 어떤 생각으로 향란관을 이끌어 갈지 말씀해주신 적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 내 말에 당준기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남은 말을 이었다.

“뭐, 경선에 나서셨을 때 하셨던 말씀 정도면 저와의 공통분모로는 충분하긴 합니다. 금년의 청죽관처럼 해보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는 진지하게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 고맙네.”

정적이 다시 찾아오길 잠시, 이번에는 당준기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언 회장 자네와 동기들이 가는데다, 무림맹의 수군진이 있는 무창에서 출발하다니. 사천에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옥기랑 달리 나는 그 정도 눈치는 있네.”

전년도 당금수석다운 당준기의 추론이었으나.

당가의 일을 내게 묻는 형국이었기에 나도 궁금증이 들었다.

“가주님이 뭐 따로 하신 말씀이 없으십니까?”

“우리 아버님은 자식들이 걱정할 이야기는 말씀을 잘 안 하시는 분이시네. 나로서는 들은 바가 없다네.”

“저도 일단 무창으로 오라는 전언만 들은 정도라 확답은 못 드리는데, 천독곡이랑 분란이 있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     *     *

이렇다 할 일 없이 우리는 무창의 수군진에 도착했다.

“다들 무사히 도착했구나.”

제갈혜 대군사님은 호위를 이끌고 무창부 어귀까지 친히 마중을 나와주셨는데.

“대군사님을 뵙습니다.”

포권지례를 올린 우리에게 눈인사를 건네시고는, 처음 보는 응용이에게 관심을 보이셨다.

“네가 응용이구나?”

호루룩!

“맹주님이 각궁보에 섭섭해할 만하네. 잘생겼다 너.”

호룩!

그리고는 예해수 선배를 발견하고 반가운 표정으로 입을 여셨다.

“해수도 왔구나?”

“아앗, 네! 예해수입니다!”

“뭐야 그 반응은?”

“아, 대군사님께서 저를 기억하고 계시는 게 놀라워서요. 파견 가 있는 동안 조용히 있다 가서 모르실 줄 알았거든요.”

“맹에 적을 두었던 사람을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나. 직속이 아니라 자주 본 적은 없어도 해수는 뭘 맡겨 놓으면 구멍을 낸 적이 없어서 기특해했는데. 요즘은 용운이가 만든 소식지의 주필을 맡고 있다지?”

“네!”

“잘 받아보고 있어. 근래에는 삽화도 꼭 들어가던데?”

“후배님이 저희 부서를 밀어줘서 그럴 수 있게 됐네요.”

“그럼 내 모습이 소식지에 실릴 수도 있겠네?”

예해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군사님은 스스로의 옷차림을 훑고는 아쉬운 목소리를 내셨다.

“이것 참, 네가 용운이랑 같이 오는 줄 알았으면 좀 예쁜 옷을 입고 있을 걸 그랬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 전에 후배님이 새로운 인연을 맺어왔는데, 삽화에 그대로 넣기가 좀 그래서 미화를 했거든요? 원하시면 대군사님도 무후(武侯)처럼 학우선이랑 백창의를 그려드릴게요!”

“…으응. 배려는 고마운데. 나는 제갈가의 군사 하면 생각나는 그 복장 별로 안 좋아해. 좀 봐주라.”

“앗.”

“기분 나빠하지는 말고. 내가 그 복장을 정말 안 좋아해.”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학창의에 백학선을 들고 있던 대군사님의 모습이 문득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런 것 치고는 잘 어울리셨던 것 같은데요?”

“용운아?”

“예?”

“그날의 모습은 제발 좀 잊어주라.”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후. 일단 가자. 갈 길이 머니, 남은 이야기들은 배에 오르고 나서 하는 걸로.”

그렇게 수군진으로 이동한 우리는 대군사님이 준비해둔 중형 상선에 몸을 올렸고.

이내 곧 배가 출발했다.

배가 장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선실에 모여 앉았다.

대군사님께선 사천의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사천지방의 유지 하나가 독살을 당했어. 검시 결과 관리하기 힘든 극독에 당한 것으로 밝혀졌지. 그냥 그렇게만 나왔는데, 갑자기 사천당가에서 나온 독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어.”

그러자 당준기와 당옥기가 동시에 각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가문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

“어떤 자식들인지! 걸리면 한 줌 핏물로 만들어버려!”

그런 두 사람을 은하성과 우소릉이 말렸다.

“거, 준기 형님 고정하십시오. 이 중에 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옥기 누님도요!”

나도 한마디를 더했다.

“무엇보다도 대군사님 말씀 중이십니다. 궁금한 것은 손을 들고 대군사님이 허락하시면 말합시다.”

“큼. 송구합니다.”

“죄송해요.”

그러자 두 사람이 얌전히 자리에 앉았고, 대군사님은 계속해 말을 이어 가셨다.

“그런 소리가 나오고 있고, 당가에서 운영하는 약방들도 환자들로 실험을 한다느니 어쩌니 하는 괴소문들이 돌고 있어. 맹과 당가는 그 배후를 천독곡으로 보고 있고. 당장은 잠잠하지만 지금 당가가 처한 형국은 풍전등화와 같다. 그래 윤이. 질문 있니?”

“괴소문이 좀 돈다고 해도 당가가 떳떳하다면 결국 진실이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사천당가가 사천 땅에서 바람 앞의 촛불의 형국이라니,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심지가 아주 굵직한 촛불이긴 하지, 하지만 태풍 같은 큰바람이 인다면 어찌 될지 모를 일이잖니?”

“…태풍이라시면?”

남궁윤이 되묻자, 대군사님은 나를 응시했다.

“용운이 너 애들한테 곡마단 이야기 안 했구나?”

“예. 확실한 것은 아니니까 대군사님의 말씀을 듣고 하려 했습니다.”

“모용세가에서 열렸던 요령호옹의 팔순연에 곡마단으로 위장하고 잠입한 마교의 끄나풀들은… 윤이 너는 현장에 있던 당사자니까 알고 있겠지?”

“예.”

“걔들이 요령에 가기 전에 사천 땅에 어슬렁거린 흔적이 발견됐다.”

“…그럼?”

“맹주님과 나는 마교와 천독곡 간에 뭔가 교감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어.”

선실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     *     *

장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 위에서 먹고 잔 지 사흘쯤 지났을 때.

강파랑이 격해졌는지, 배가 꿀렁거리는 게 심해졌다.

대군사님을 찾는 무림맹도의 음성과 나를 찾는 우소릉의 음성이 동시에 들려온 것은 이때였다.

“대군사님!”

“언형!”

그에 선실 밖으로 나가보니, 강의 신이 노하기라도 한 듯 휘몰아치는 장강의 성난 물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이게 그 유명한 장강삼협(長江三峽)이로군요.”

그런 내 말에 대군사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서릉협(西陵峽)의 초입이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 모양이구나?”

“예. 여기까지는 올 일이 없었죠.”

“괜히 사천을 천혜의 요새라 하는 것이 아니야. 육로로는 새도 날아 넘기를 포기한다는 대파산맥이 있고, 수로로는 물고기도 지쳐 포기한다는 일곱 개의 계곡이 만들어 내는 세 개의 격류가 있으니까.”

이 광경을 처음 보는 것은 정현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는지.

입을 쩍 벌리며 한시의 한 수를 언급했는데.

“원시천존. 촉으로 가는 길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던 이백의 촉도난이라는 시가 새삼 떠오르는 광경입니다.”

대군사님께선 잠시 웃으시고는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자, 감탄은 여기까지. 서릉협은 배를 타고 건널 수 없어. 구간이 끝날 때까지 육로를 사용해야 하니 다들 하선할 준비해.”

장강을 거슬러 오르던 배는 그렇게 강변으로 이동했다.

“해가 지겠네. 이 근방이 자귀현인데, 근처의 객점에서 하루를 묵고 먹을거리랑 식수를 보충하도록 하자.”

마침 해가질 즈음이 되었기에.

우리는 서릉협의 강변에 위치한, 포구 마을의 객점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로 했다.

“어서옵쇼! 식사만 하십니까요?! 묵고 가십니까요?”

“묵고 간다.”

“식사 준비는 바로 해드릴까요?”

“그래. 머릿수대로 소면 주고 식탁마다 만두랑 육고기도 깔아줘.”

“분부 받잡겠습니다요!”

마침 저녁때라, 객점의 일 층에 놓인 식탁에 둘러앉아 요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러는 중에 선객들로부터 우리 이야기가 들려왔다.

“벌써 한해가 끝나가는구먼.”

“그래도 올해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주둥이 심심할 일은 없었네. 괴룡이라는 걸출한 후기지수가 나타났으니 말이야.”

“이 사람아, 난세라고 천지에서 난리인데 주둥이 심심할 일이 없었다 하면 어쩌나.”

“아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자네야말로 그 소식지라는 게 돌면 어떻게든 구해서 보더니만? 그나저나 내년 입관생 중에는 괴룡 같은 걸물이 나올 수 있을까?”

“예끼, 이 사람아! 만고의 천재라던데 그런 위인이 매년 어찌 나오겠나?”

그에 은하성이 장난스레 나를 향해 눈짓을 보내오던 이때.

쾅! 쾅!

쾅! 쾅!

객잔의 창문이 구멍이 뚫린다 싶더니.

치이익-

주먹만 한 구체가 연기를 뿜어내며 객점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그에 당옥기가 급히 입을 열었고.

“독공이에요!”

다른 언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일어나며 뇌리에 각인된 외침을 저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독공! 독공!! 독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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