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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286화 (286/444)

제286화. 축제로구나 (1)

잠시 반대 방향을 쏘아본 당씨 부녀는 다시금 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비가 먼저 묻지 않았느냐. 오는 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야?”

“당가타에….”

물론, 파서독제 당호태의 손속이 훨씬 빨랐다.

그는 당옥기의 볼을 와락 쥐고서, 다시 한번 금지옥엽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캭!”

그에 붕어 같은 얼굴이 된 당옥기가 질색을 했다.

“이거 놓고 말해요! 애들도 있는데!”

“아, 그래. 같이 온 동무들이 있었지 참? 용운이. 언용운이 어디 갔어?”

“옙. 가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옥기 이 녀석이 아비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녀석이라 대화가 안 통한다. 네가 대신 말 좀 해주겠느냐? 오는 중에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너희들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냐?”

대군사님이 나서신 것은 이때였다.

“흠흠. 가주님?”

“크흠. 대군사님도 계셨지 참. 내가 순간 정신이 좀 없었소.”

“이해합니다.”

그렇게 운을 뗀 대군사님은 당호태 주변에 서 있는 어르신들에게도 깍듯이 읍을 했는데.

“당문의 장로님들은 정말로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그런 대군사님의 음성에.

사천당가의 장로라 지칭되는 자들 중 홀로 하얀 의복을 입고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허허. 대군사님께서 지금의 책무를 맡기 전, 성도의 분가에 와계시던 시절에나 뵙고 처음 보니 그렇긴 합니다.”

“강녕하셨습니까?”

“저희 늙은이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요. 약이랑 독에 파묻혀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정정하신걸요?”

웃으며 인사를 마친 대군사님은 당가타가 있는 성도 방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튼 저희 이야기도 가주님의 이야기도 여기서 풀어 놓을 이야기들은 아닌 것 같네요. 보시다시피 오는 길에 고초를 조금 겪어서 아이들의 꼴이 말이 아니기도 하고요.”

그러자 당호태도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큼. 대군사님의 말이 맞소. 내가 마음이 너무 앞섰구만. 다들 당가타로 가십시다.”

그렇게 당가타로 향하는 길.

당호태와 대군사님이 앞서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때.

사천당가의 장로 중 두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왔으니.

“네가 언용운이라는 녀석이지?”

한 명은 조금 전 대군사님과 이야기를 나눈 하얀 의복의 어르신이었고.

“거, 가주님이 언용운을 찾을 때 인석이 대답을 했잖수. 노망이 왔나, 얼마나 됐다고 그걸 까먹어?”

“내가 독 빨다가 한 번씩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너도 아니고 까먹기는 왜 까먹어! 예의상 물어본 거지.”

다른 한 명은 그와 대비되는 새카만 의복을 입은 어르신이었다.

- 다들 비색의복을 입고 있는데, 이 두 늙은이만 하얗고 까만 의복을 입고 있구나?

‘저도 실제로 뵙는 것은 처음이라 긴가민가한데. 사천쌍괴라고 불리는 분들 같습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은 괴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독괴.

파서독제 당호태가 사천당가의 대들보라면 그 대들보를 받치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싶었는데.

“예. 제가 언용운입니다.”

하얀 의복을 입은 어르신의 입에서 예상대로 괴의와 독괴의 이름이 나왔다.

“나는 당자운. 여기 얼굴 시커먼 놈은 당자진이라고 한다.”

“사천쌍괴 어르신들이셨군요. 무림말학 언용운이 두 분 대선배님께 인사 올립니다.”

내 인사를 괴의는 고개를 끄덕여 받아주었고, 독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주님도 그렇고 옥기도 그렇고 자네 칭찬이 아주 자자하던데, 뭐 뜯어 먹으려고 그렇게 살갑게 구는 건가?”

이야기는 독괴가 꺼냈지만, 괴의도 궁금하긴 한 모양이었는지 두 사람의 눈빛엔 의심과 호기심이 똑같이 들어 있었는데.

내가 두 사람의 진의를 가늠하는 사이,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이 바둑알 같은 영감탱이들이 지금 시비를 거는 것이냐?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사천당가 사람들이 성격 특이하고 모가 좀 나 있는 거.’

당옥기는 그런 우리를 보고는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할아범! 내가 언제 언용운을 칭찬했어?! 그리고 왜 말을 그런 식으로 해?”

“인석아, 우리 아직 귀 안 먹었다. 그리고 평생을 당가에 바쳤는데, 손녀뻘 되는 녀석의 친구한테 이런 것도 못 물어보느냐?”

“말을 이쁘게 해야지!”

“너나 우리한테 예쁘게 말 좀 해봐라.”

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괜히 별호에 괴이할 괴 자가 붙은 양반들이 아니니까.’

원래 성정이 저런 양반들이었고, 당옥기와 사천당가를 걱정한답시고 저러는 것일 터였다.

‘사실 뜯어 먹으려는 게 있기도 하고.’

나는 땍땍거리는 당옥기를 향해 괜찮다고 손바닥을 내보인 뒤.

사천쌍괴를 향해 말했다.

“예전에 옥기가 저한테 너는 당문의 친구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 넌 또 뭔 그런 이야기를 해.”

“당시에는 옥기 네가 가주님도 아닌데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문의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내 말에 독괴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러니까 뭐 뜯어 먹으려고 그러냐고, 내 두 번째 묻고 있느니라.”

“당문이 백본회와 사천땅에서 가지는 지위, 독에 관한 지식과 의학지식, 암기술, 사람들의 의리와 힘. 사천당가 전체가 탐이 나는데요? 다 뜯어먹고 싶습니다.”

“뭣이?”

“물론, 제 살을 내어줄 준비도 되어있습니다. 당문은 제게서 뜯어 먹고 싶은 게 없으십니까?”

“…….”

“난세가 아닙니까. 세가들이 지역에서 따로따로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긴밀히 연계할 필요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내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괴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괴룡이라는 이름이 천하에 진동하고, 우리 가주님이 칭찬하시는 이유가 있었구만.”

그리고 묵묵히 있던 당준기를 향해 물었다.

“준기 너는 왜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것이냐? 진심으로 이 녀석을 이길 생각이었더냐?”

“…….”

“괜히 옥기만 사이에 껴서 곤란했겠구만.”

그 대화를 시작으로 여러 이야기를 하며 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당가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당옥기의 어머니 되시는 유씨 부인과 큰오라버니 되는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윤기가 나와 있었다.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건 당윤기였다.

“대군사님을 뵙습니다. 정무학관의 후배님들도 반갑네. 당윤기라 하네.”

“반가워요 소가주.”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우리가 당윤기와 포권을 나누고 있는 사이.

당옥기는 제 어머니를 향해 달려가 안겼다.

“엄마!”

“옥기 너는 남들 앞에선 어리광부리지 말라고 내가 누누이 이야기했잖니.”

“그치만 힘들었다고. 시작부터 엄마 둘째 아들이 열받게 하지를 않나….”

“인석이. 친구들 앞에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아 맞다. 여기는 우리 청죽관 친구들 언용운, 정현, 은하성, 우소릉이고 이분은 예해수 선배님. 저기는 향란관의 궁윤이.”

“옥기 너 향란관 아니니? 그리고 궁윤이?”

“아 맞다.”

“남궁윤 생도를 말하는 거야?”

“아무튼 알아들었으면 됐지이.”

“…….”

*     *     *

그렇게 당가장에 들어선 우리는 한참 만에 더운물로 목욕을 한 뒤.

깨끗한 의복으로 갈아입고 가주전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당호태와 사천쌍괴 그리고 당윤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 당호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런 당호태의 말에, 은하성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흠흠. 이야기 푸는 솜씨 하면 저 아니겠습니까.”

하나, 내가 녀석의 입을 막았다.

“너는 조미료를 너무 많이 치잖아. 제가 핵심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서릉협에서 인근의 수변 마을 객점으로 향했다가 독공을 당한 일부터, 오면서 당한 일들을 가감 없이 말했다.

“…그렇다 보니 그 꼴을 하고 민강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내 이야기가 끝나자.

당호태는 본인 앞의 각탁을 때려 부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쾅!!!

“이런 죽일 놈들을 보았나! 두 분 장로님은 지금 당장 만천대를….”

대군사님이 입을 여신 것은 이때였다.

“만천대를 소집해서 그리로 달려가봤자, 적의 실체를 잡지는 못할 겁니다. 곡절이 있긴 했으나, 모두 무탈하게 도착했습니다. 일단 고정하시지요.”

“끙.”

대군사님의 말에, 당호태는 분을 삭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이제 가주님께서 이곳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차례이신 것 같습니다.”

“별일 아니다. 너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 그냥 친구 집에 놀러 왔다 생각하고 수련도 하고 맛있는 거 먹고 사천 관광도 좀 하다가 돌아가면 된다.”

사천쌍괴가 입을 연 것은 이때였다.

먼저 말을 한 것은 독괴였는데.

“별일이 아니다 할 것은 아니지요. 오면서 이야기를 좀 해보니 젊은 친구가 식견이 보통이 아니더이다. 본인도 당문의 친구가 되고 싶다 하던데… 이야기를 나눠보시지요?”

뒤이어 괴의도 말했다.

“예. 천하에서 마교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가 저기 괴룡이라지 않습니까?”

“아 답답해. 그냥 할아범들이 말해줘.”

그런 두 사람을 향해 당옥기가 가슴을 치며 말하자, 독괴가 재차 입을 열었다.

“재동허가(梓潼許家)의 태가주가 독살을 당했다.”

그 말에 당준기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독살을 당했다던 분이 그댁 어르신이셨군요. 한데, 그분은 애초에 오늘내일하던 사람이셨지 않습니까?”

“오냐. 기실 나이로 치면 갈 때가 돼서 간 것이고, 자리보전한 지도 제법 됐지. 한데 그 늙은이의 시신에서 독을 쓴 흔적이 나와서 우리 당문이 그 흉수라는 소문이 돌았느니라.”

그렇게 독괴가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괴의는 당장에 사천당가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말했다.

“소문이 일파만파 퍼져 당문의 약방을 찾던 고관대작들의 걸음이 뚝 끊어지고 말았지. 우리 가문에서 만드는 촉금(蜀錦)도 문제다. 안 팔릴 것 같다고 받아 가기로 한 상인들이 위약금을 내고 취소를 해서, 은휘상단에서 가져가기로 한 것을 제외하면 창고에 재고가 가득하다. 그렇다고 헐값에 팔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처치가 곤란한 상황이 됐지.”

정현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이야기가 끝났을 때 손을 들었다.

“소문을 낸 자들을 쫓아보셨습니까?”

“당연히 찾아봤지. 웬 놈들이 몇 달 전에 예언 비스무리하게 지껄여 놓고 갔다더라고. 허가장의 노송이 쓰러지면 당가의 독수가 마침내 미친 것이라고 말이야.”

돌아온 독괴의 답에, 우소릉이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예, 예언이요? 이번에 싸울 적은 신통력이 그 정도로 있는 사람들인 건가요?”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진짜 예언을 한 게 아니지. 이 경우엔 미리 저런 말을 민가에 풀어 놓고 상황을 거기다 맞춘 거다. 백성들은 한참 전에 예고한 일이 일어나니까 너처럼 예언인 줄 아는 거고.”

“아하.”

“괴의 어르신. 그럼 예언이랍시고 그런 말을 성도에 뿌려놓고 간 자들이 만추 곡마단인 겁니까?”

“맞네. 요령에서 뒈지고 잡혔다는 그놈들일세. 마교와 천독곡이 우리 당문을 옥죄는 것은 분명한데, 검을 뽑아 겨눌 곳이 없는 형국일세. 곡마단 놈들은 그렇게 됐고, 재동허가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이니 거기를 공격해봤자 역효과고,”

그렇게 괴의의 말이 끝났을 때, 독괴가 대군사님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된통 걸린 꼴이지. 대군사. 뭐, 좋은 방법이 없겠소이까?”

“그런 식으로 숨어있기로 작정하고 있는 적을 끌어낼 방법은 아무리 저라도 없죠. 하지만 괴소문을 걷어내고 숨통을 틔울 방법은 있을 것도 같네요.”

그 말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러자 대군사님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용운이 너도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 본데?”

“아, 예.”

“먼저 말해보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네.”

“축제를 열면 어떻겠습니까?”

“축제?”

“예. 어차피 촉금도 처치가 곤란할 정도로 쌓였다고 하셨고, 의원을 찾는 발걸음도 뚝 끊어졌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성도가 떠나가라 큰 축제를 여는 겁니다.”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차근차근 말을 이었는데.

“맛있는 것도 베풀고 선물도 손에 쥐여 주고, 무료로 진료도 해주고. 쉬이 접할 수 있는 독에 대처하는 법도 알려주고요.”

독괴가 내 말을 듣다 말고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독에 대처하는 방법을 왜 알려줘?! 지금 당문의 비전을 내놓으라는 겐 가? 우리 가문은 출가라는 개념이 없어. 하여, 여식들의 짝도 데릴사위를 들이는 게 보통일세. 그런데 비전을 내놓으라고?”

“바로 그겁니다. 이건 결국 당문의 가법의 허점을 노린 녀석들의 수작질입니다. 그리고 관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일단 계속해보게.”

“지금껏 당문은 독에 관해서는 철저히 함구를 해왔습니다. 마교와 천독곡은 그걸 노리고 독을 사용하여 당문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운 겁니다. 입을 열지 않는 당가를 보는 대중의 심리를 부추긴 것이지요. 게다가 음해를 하는 자들은 보통 철저히 응징하니, 그 혐의는 더더욱 짙어질 거라 봤겠지요.”

여기까지 말한 나는 당호태를 응시하며 말했다.

“한데 가주님께서 융통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소문을 떠벌리고 다니는 백성들을 엄벌하지 않은 것 말인가?”

“예. 맹주님과 그 일을 의논하시고 벌하지 않기로 하셨다지요.”

“크흠. 천하가 워낙 어지러우니까.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것들이 애들이기도 하고.”

“기왕 보여주신 융통성 조금 더 보여주시면 어떻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백성들이 삶에서 접하게 되는 독이라 해봐야 기실 독버섯이나 뱀, 독충들에게 당하는 것 아닙니까? 당문의 비전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만, 그런 거 상대하는 방법 정도면 대단한 비밀도 아닐 텐데요?”

“…….”

“축제를 열어서 그런 것을 알려주고, 당문은 사람을 해하기 위해 독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과 사천을 지키기 위해 독을 연구한다는 것을 널리 알린다면….”

여기까지 말하자, 대군사님이 피식 웃으시며 내가 할 말을 대신 맺었다.

“독살사건의 배후라는 풍문 속의 혐의를 벗고 관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지.”

장내의 공기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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