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88화 (288/444)

제288화. 축제로구나 (3)

나는 남궁윤이 걸고 있던 광고판을 벗긴 뒤, 잘 보이는 위치에 걸어두었다.

“남궁윤. 이거 여기 걸면 되겠지? 멀리서도 잘 보이고?”

“…잘 보인다.”

“그럼 우리는 가자.”

그런 내 모습에 사부님께서는 질문을 해오셨다.

- 재동의 허가장에 갈 거면 북문으로 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죠?’

- 한데, 어찌 당가타가 있는 서문으로 가느냐?

‘바로 갈 게 아니니까요. 이런 차림으로 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남궁윤이야 노점 밖에서 호객행위만 했기에, 옷매무새가 조금 흐트러진 정도였지만.

나는 접객도 하고 불 앞에 섰다.

‘제 꼴을 좀 보십쇼.’

그렇게 전천후로 뛰어다녔더니 의복 곳곳에 양념이 튀어있는 데다가, 불 냄새와 땀 냄새 그리고 사천의 강렬한 향신료 냄새가 전신에 흠뻑 배버렸다.

‘허가 사람들은 초면이기도 하고, 심지어 그 댁은 상중이지 않습니까? 의복을 바로 하고 혹시 모르니 응용이도 데려가려고요.’

- 하기야, 거지꼴이긴 하구나.

‘에이. 이 꼴이지만 노삼 교수님이나 장호보다는 제가 나은 것 같은데요?’

- 따지고 들지 말 거라. 하여간 제자라는 녀석이 한마디를 안 져요.

사부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긴 지 잠시.

어느덧 당가타의 어귀에 다다르게 되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본가의 객관에 두고 온 응용이가 날아와 내 머리 위에 앉았다.

호룩!

녀석이 불만이 있을 때마다 하곤 하는 행동이었는데, 왜 그러는지야 뻔했다.

“이 녀석 이거 안 데려갔다고 또 삐졌네. 거기는 여러 가지 의미로 네가 갈 곳이 아니야. 우리는 닭발을 팔고 옆집은 꿩고기 육수로 국수 팔고 그러는 곳인데다가….”

호룩- 취!

“거봐라. 재채기 나오지?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는 곳인데, 후각이 예민한 너를 뭐하러 데려가냐.”

호루루룩!!

“이게 오냐오냐해주니까 아주 맞먹으려 드네? 이 정도 달래줬으면 알아들어야지. 언응용. 너 셋 셀 동안 어깨로 안 내려오면 내가 오늘 물 끓인다. 셋.”

호루욱!

“두울.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더 숫자를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

눈치 빠른 응용이가 슬그머니 어깨 위로 내려앉았으니까.

호룩!

그렇게 응용이를 어르고 달래는 사이, 우리는 어느덧 당가타의 복판에 있는 당가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하여, 낯을 씻고 의복을 갈아입기 위해 객관으로 가려는데.

남궁윤이 정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남궁윤. 어디 가냐?”

나는 입을 열어 녀석을 불러세웠다.

“주방에.”

“거기는 왜?”

“……? 식자재를 가지러 온 것 아니었나?”

“아닌데?”

“아니라고? 부르면서 이제 내가 없어도 된다고 하길래… 식자재 옮기는 일이나 하라고 부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내가 어디 좀 가자고만 하고, 장소나 취지를 말을 안 해준 것 같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이고 있는 남궁윤을 향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려고 부른 거 아냐.”

“그럼 왜?”

“재동의 허가장에 갈 거니까. 정무학관 예복. 그 하얀색 무복으로 갈아입어.”

“허가장에 가자고?”

“어쨌든 거기가 이번에 사천에서 일어난 일의 원인이잖냐. 가서 분위기 좀 보자고.”

그런 내 말에 남궁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나랑?”

…이걸 괜히 데려왔나.

*     *     *

나는 땀을 가볍게 씻어낸 뒤, 정무학관의 이름이 박힌 하얀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그사이 남궁윤도 준비를 끝내놓았다.

“이제 재동으로 가는 거냐?”

“아니. 대군사님께 고해놓고 가야지.”

행선지는 고해놓고 가야 했기에, 우리는 대군사님이 계시는 전각인 정빈각(情賓閣)을 찾았다.

정빈각엔 대군사님 외에도 당호태가 와 있었는데.

“…너희끼리 허가장에 다녀오겠다고?”

“…흠.”

내가 허가장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꺼내자, 두 사람 모두 미간을 좁히는 게 보였다.

“예. 갑작스러운 축제에 마교의 눈초리도 성도에 쏠려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것 같기는 한데….”

하나, 내가 차분하게 가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저희 둘이서 가면, 무림맹에서 공식적으로 갔을 때와는 의미 자체가 달라지니 허가장이 다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긴 하지.”

“일 벌이지 않고, 분위기만 살짝 보고 오겠습니다.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이리로 오겠습니다. 응용이도 데리고 가고요.”

또 다짐을 내놓자, 대군사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약속 지켜라?”

“옙.”

그러자, 내내 팔짱을 끼고 있던 당호태가 팔짱을 풀더니.

기관 하나를 작동시켜 정빈각과 연결된 비밀통로를 열어주었다.

쿠쿵-

“그럼 이리로 나가거라.”

“오. 뭡니까 여긴?”

“우리 당문은 본가가 공격당할 것을 대비해 준비해둔 비밀통로가 여럿 있다. 혹여 성도대로에서 꼬리가 붙었다 하더라도 이 통로의 출구는 모를 거다.”

“그렇겠네요.”

그렇게 허락을 받은 우리는 비밀통로를 통해 당가타를 벗어난 뒤.

곧장 허가장이 있는 재동으로 향했다.

“흠. 흐흠.”

한데, 재동으로 향하는 길에서 남궁윤이 계속해 입꼬리를 씰룩이는 게 보였다.

“…진짜 표정 압수하고 싶네. 궁윤이 너는 아까부터 왜 그렇게 실실 쪼개는 거냐?”

“그런 적 없다.”

“그런 적 없기는… 지금도 이빨 빠진 사람처럼 입이 흐물거리는구만.”

“괜히 그렇게 세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젠 알았으니까.”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당옥기야 당가의 여식이라 허가에 데려가기 부적합하지만, 정현이나 우소릉도 있는데 굳이 나를 더러 함께 가자고 한 것은… 너도 내심으론 나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겠지.”

눈을 감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남궁윤의 모습에, 진짜 괜히 데려왔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팠다.

녀석은 그런 내 마음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이어서 질문을 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허가에가서 뭘 하는 거냐? 잠입을 하나?”

잠입을 할 거면 우소릉을 데려왔겠지, 바보야.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괜히 남궁윤의 사기를 꺾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참았다.

“그냥 궁윤이 너 잘하는 거 하면 돼.”

“검술?”

“검술이 필요하면 정….”

정현을 데려왔겠지라는 말이 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은 나는 빠르게 말을 돌렸다.

“…정. 정빈각에서 하고 나온 약속을 어기는 상황이잖냐.”

“아. 그건 그렇군.”

“그냥 예법대로 인사하고 대놓고 들어갈 거야. 허가장도 피해자일 수도 있으니까. 정빈각에서 말한 그대로 분위기를 보려고 온 거다.”

“그렇군.”

“그래. 내가 허가장 사람들 표정이랑 분위기를 중점적으로 볼 테니까. 너는 남궁 세가 대공자의 품위와 예의를 보여줘 봐. 어려서부터 후계자 수업받았잖아?”

그렇게 재동을 향해 걸음을 옮긴 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는 허가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허가장은 울창한 산세를 등진 아름다운 장원이었다.

“응용이 너는 저기 나무 중 하나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어. 무슨 일 있으면 휘파람 불게.”

호룩.

그렇게 응용이를 보낸 나는, 남궁윤과 잠시 시선을 교환한 뒤.

허가장의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그러자 곧 삼베옷을 입은 가복 하나가 나왔다.

“처음 뵙는 분들 같은데 무슨 일이십니까요?”

“장주님께 인사를 드리러 왔네.”

“어, 뭐라고 전해드리면 되겠습니까요?”

“남궁세가에서 왔다고 전해주시게.”

남궁세가 소리를 들은 녀석이 안으로 뛰어 들어간 지 잠시.

평생 붓보다 무거운 것은 들어본 적이 없어 보이는, 머리가 반쯤 샌 중년인이 대문가로 나와 포권을 해왔다.

“본인이 허가장의 장주 되는 허만입니다.”

남궁윤은 허만을 향해 깍듯이 읍을 하며 입을 열었다.

“소생은 안경 남궁가의 윤이라 합니다.”

“아, 남궁윤 공자셨구려. 이름이야 많이 들어봤습니다만, 딱히 기억나는 인연이 없는데, 이곳엔 무슨 일로?”

“허가는 한나라 시절부터 지금까지 재상을 두루 배출해온 명문가라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사천에 오게 되면 꼭 한번 인사를 드리겠다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허허. 이 사람은 재주가 부족하여 거인(擧人)에 그쳤으나, 저희 가문이 문으로 이름을 떨치기는 하였습니다.”

운을 뗀 남궁윤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예. 진즉에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만. 동기생 중에 당가의 자녀가 있어 그 댁에 묵게 되었는데, 하필 당가와 허가 사이에 조금 껄끄러운 일이 생긴 시국에 사천에 오게 되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걸음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지요. 당가와의 일은 저희도 곤란하던 차였습니다.”

그런 남궁윤의 모습에, 사부님께서는 혀를 내둘러 오셨는데.

- 허, 우리가 알던 궁윤이가 아닌데?

‘거짓말이나 호객행위를 하라고 하면 혀가 굳더니만, 예의를 다하라 하니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네요.’

- 누구랑은 정반대로구나.

‘…그 누구가 누구입니까?’

- 글쎄다?

‘?’

사부님께 답을 하며 허만의 표정을 면밀히 살피고 있으니,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내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셨군요. 한데, 이분은?”

“아, 제 ‘친우.’ 언용운입니다.”

“진주언가의 용운입니다.”

“…아. 언용운. 괴룡이셨구려. 일단 안으로들 들어오십시오. 삼년상을 시작한 참이라 대접할 게 마땅치 않지만 멀리서 오신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 또한 선비의 예가 아니지요.”

나는 허만의 표정을 세밀히 살피며, 허가장 안으로 향했다.

*     *     *

그렇게 허가장에 들어선 나와 남궁윤은 가장 먼저 가묘로 향했다.

그리고 독살을 당했다는 이 댁 태가주의 위패에 향을 올린 뒤.

허만을 따라 사랑채로 향했다.

“여기 차 한 잔씩 드십시오. 전녹(滇绿)이라고 운남에서 들여온 차인데 향이 그윽합니다.”

사랑채까지 들어온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나는 찻잔이 앞에 놓이자마자, 가장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태가주님께서 변고를 당하셨다지요?”

내 물음에 허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본디 지병이 있으셔서 자리보전을 하고 계셨는데, 그렇게 가셨습니다. 하나, 절대로 당가가 흉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도 그런 소문이 돌아서 곤란합니다.”

허만의 태도에서 불쾌한 기색이 묻어나진 않았으나, 내겐 되레 그 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하지? 당가가 흉수라고 의심이나 원망을 해볼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차를 홀짝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말을 돌리다가, 어느 순간 민감한 질문을 다시금 해보았다.

“한데, 듣자 하니 이 댁 막내 아드님이 몸이 안 좋으시다던데요?”

“…아. 그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당가에서 시료를 받은 적이 있으시다는 정도로만 들었습니다. 제가 약왕 어르신과 인연이 좀 있어서 전수받은 비술이 있습니다. 제 선에서 안 되면 어르신을 소개해드릴 수도 있고요. 한번 봐 드릴까요?”

“허허. 호의는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당가의 의원들이 못 고치는 병이라 못을 박더이다.”

“그래도….”

“다른 의원들한테도 많이 보여봤는데 다 같은 이야기들이고, 시료 과정과 탕약 먹는 걸 고통스러워해서 더는 의원에 보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질문에도 허만은 차분하게 답을 내놓았다.

하나, 이 역시 석연치가 않았다.

나는 허가장을 나서며 남궁윤을 향해 그런 생각을 말했다.

“좀 이상하지?”

“네가 이 댁 막내아들을 봐주겠다고 했을 때 말이냐?”

“어. 자식 아픈 부모는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게 정상일 텐데… 너무 차분하지 않았어?”

“늘어놓는 이유가 그럴싸하다 싶으면서도 너무 초연한 느낌이긴 했다. 한데, 정말로 약왕 어른께 그런 비술을 배운 거냐?”

“아니. 그냥 장주의 태도가 수상해서 던져본 거야.”

“…진짜로 보여줬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혈맥이 막혔는지 정도야 너나 나나 알 수 있잖아. 내 수준으로 안 된다고, 약왕 어르신 소개해드린다고 하려 했지. 그 정도 청을 넣을 사이는 되니까.”

응용이가 날아온 것은 이때였다.

녀석은 평소와 달리 애교도 심술도 부리지 않고, 소리 없이 내 어깨에 앉더니.

부리로 내 볼을 콕콕 찍고는 따라오라는 듯 서서히 날아 앞장을 섰다.

“따라오라고?”

녀석을 따라, 허가장 인근의 숲에 들어서기를 잠시.

응용이 녀석이 웬 나무의 가지에 내려앉더니 부리로 나무의 몸통을 콕콕 찍었다.

그에 나무를 살펴보니 마개가 있는 옹이구멍이 보였다.

딸깍-

나는 지체없이 그 마개를 젖혔는데.

옹이구멍 안에는 불꽃 문양의 인이 찍힌 쪽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이건 마교 놈들이 쓰는 성화 문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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