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91화 (291/444)

제291화. 사천당가 (1)

만우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희화한 노랫가락에.

도올월마 양규의 발이 땅을 박찼다.

팟-

순식간에 장원 밖으로 튀어나온 도올월마의 모습은 흉신악살과도 같았다.

그 모습에 술이 머리끝까지 취해 용우상박의 가락을 흥얼거리던 촌부는 일순 취기가 달아나는 것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도망을 치고자 몸을 돌렸다.

하나 대마두의 걸음을 촌부가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

도올월마는 순식간에 사내의 앞을 가로막은 뒤, 멱을 틀어 올렸다.

“켁.”

“방금 중얼거린 가락. 어디서 주워들었지?”

“케흑. 이걸 쫌 놔주셔야….”

도올월마는 바둥거리는 촌부의 발이 땅에 닿도록 팔을 내려주었다.

죽다 살아난 촌부는 급히 입을 열었다.

“서, 성도의 축제에서 가극을 하는데 거기 나오는 노래입니다!”

답을 들은 도올월마는 촌부를 치우듯 던져버렸다.

쾅!

그렇게 날아간 촌부가 장원의 벽에 박혀 축 늘어진 이때.

벽 뒤에서 네 개의 그림자가 튀어나와 도올월마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혀 앉았다.

네 명의 마인 중 둘은 월왕부의 내사였고, 남은 둘은 칠호와 팔호라 지칭되는 낭중마군과의 연락책이었다.

도월월마는 그중 칠호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가극?”

“본교가 정무학관의 사대기숙사를 불태웠던 일을 언용운이 본인 쪽에 유리하게….”

“너희 두 놈의 머리통을 터트리고 직접 확인하러 가기 전에 사실대로 설명하라.”

“…흑선마군께서 귀천하신 내용을 희화화하여 공연하고 있습니다.”

“낭중마군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

“몰랐다면 송길준 그 녀석은 당장 때려죽여도 무방한 무능한 놈이다. 바른대로 답을 해.”

“…예. 알고 계셨습니다.”

돌아온 답에 도올월마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알았다면 나를 기만한 것이고.”

칠호와 팔호는 동시에 머리를 조아리며 급히 말했다.

“낭중마군이 흑선마군과 친우처럼 지냈음을 월마 어르신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낭중마군 역시 치욕을 견디며 천마신교의 대계를 완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씀을 올리지 않은 것입니다.”

“예. 이는 백도 놈들의 계략이라고, 수모를 잠시만 견디면 완벽한 때가 올 것이라 하셨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도올월마는 미간을 좁히며 재차 입을 열었다.

“신교의 대계를 완성하려면 버러지 같은 백성들을 일부 품어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하나, 교주님 그리고 만마전은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해! 거지들도 아니고, 촌부들이 저런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무슨 때를 얼마나 더 기다린단 말인가!?”

“…….”

“…….”

“백도 놈들과의 일전이 임박했다. 너희 두 놈의 머리를 쪼개지는 않을 테니, 가서 길준이 그 녀석에게 내 말을 전해. 네놈이 기다리는 때는 요원할 것이니 내가 결정을 내려주겠다고.”

말을 마친 도올월마는 본인의 직속 수하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월왕부는 성도로 간다.”

“존명!”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월왕부의 전력이 우르르 장원을 나서자, 칠호와 팔호의 걸음도 바빠졌다.

그들은 소화 고성에서부터 남서쪽으로 얼마간 이동해야 닿을 수 있는 천독곡의 주둔지로 내달렸다.

그리고 급히 송길준의 막사를 찾아가, 월왕부의 일을 보고했다.

“…월마 어르신께서 결정을 내려주시겠다며 월왕부의 전력을 이끌고 직접 성도로 가셨습니다.”

쾅!!!!

두 사람의 보고를 들은 송길준은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젠장! 젠장! 젠장!!!”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엔 얼마 전 마옥군주 연옥란이 팔을 내놓으며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본교의 대계에 걸림돌이 될 인물을 천하에서 한 명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언용운을 꼽겠어요.’

당시 송길준은 언용운을 요주의 인물로 꼽으면서도, 연옥란보다는 위험도를 낮게 보았었다.

하나,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고 나니 그녀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언용운!”

내심으로 연옥란의 말을 인정하고 나니.

지난날 단강구에서 당했던 수모가 송길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다음에 만나면 조져 주겠다고, 본 교관이 약속하겠습니다아아!’

그러자 송길준의 머릿속에 있는 경종이 사천공략 계획을 중단하라 알려왔다.

“…사대기숙사를 불태운 것에 만족하고 물러났으면 그런 실패를 맛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송길준의 시선은 곧바로 성도의 지형도에 올려둔 백도의 세력도로 향했다.

지형도 위엔 사천당가, 무림맹, 개방, 아미파, 청성파의 전력이 표시되어 있었다.

저걸 월왕부 홀로 다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사천공략 계획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언용운. 그놈이 짜 놓은 판에 또 올라가야 하는가?!”

한차례 마른세수를 한 송길준은 이를 갈며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우리도 성도로 가야 한다. 칠호는 교인들에게 비상을 걸고, 팔호는 지금 당장 천독곡의 곡주를 이리로 불러오라!”

“존명!”

*     *     *

사천당가 약독 축제는 끝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축제는 성황리에 진행됐기에, 애초에 도모하고자 한 목표들은 대부분 달성되었다.

그중에 가장 먼저 달성된 목표는 노점구역에 상인들을 유치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직접 노점을 운영했던 이유가 바로 그 일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는데.

노점구역은 발 디딜 틈이 없게 된 만큼,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여, 나와 언동생들은 재료가 모두 소진되었다는 명분으로 점포 운영을 중단했다.

그리고 가극 공연장을 중심으로 순찰을 하는 것에 집중했는데.

응용이는 상공에서, 우리는 지상에서 이곳저곳 경계를 하고있는 이때.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한 사내가 꾸벅 인사를 해왔다.

“옥기 아가씨 아닙니까요? 인석아. 너도 인사드려라.”

“안녕하세요오.”

그들의 인사에 당옥기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를 아세요?”

“어이쿠. 아가씨는 소인네를 모르시지요, 참.”

“네. 처음 뵙는 분 같네요.”

“무료 진료소에서 당문의 의원님들이 제 자식놈을 봐주셔가지고. 저도 모르게 친밀감이 들어서 그만…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럴 리가요. 아드님은 이제 괜찮으신가요?”

“예. 식탐이 많은 녀석이라 많이 먹어서 배앓이를 하는 줄 알았는데, 글쎄 뱃속에 벌레가 들어있었다지 뭡니까요.”

“아? 그건 빨리 치료해야 하는데?”

“예. 그만한 일로 의원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당문 덕분에 인석이 살았습니다요! 감사합니다!”

“제가 한 일도 아닌걸요.”

“당문에 입은 은혜이니 아가씨께도 인사를 드려야죠. 사천 땅에 당문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흫. 흐흠. 축제 끝나고 당가타에 와서 한 번 더 진료받고 가세요. 그거 확실히 없애야 해요. 음식은 충분히 익혀 드시고요.”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던 당옥기였으나.

이야기가 끝났을 때 녀석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기분 좋아 보인다?”

“흠흠. 나쁘진 않아.”

“나쁘진 않은 정도가 아니구만. 입꼬리가 팔랑팔랑하는데?”

“다, 당가타 사람들 말고 이런 인사는 처음 받아봐서 그냥 기분이 좀 묘할 뿐이야!”

그처럼 대놓고 인사를 해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호감 서린 눈인사를 해오는 이들은 훨씬 많았다.

“이젠 사천당가라고 마냥 두려워하기만 하는 것 같지는 않네.”

축제를 열어 달성하고자 한 가장 큰 목표도 달성한 것이나 진배없는 상황.

이제 이 땅에 손아귀를 드리우려 하는 마교의 계획만 좌절시키면 될 터였는데.

사부님께서 질문을 해오신 것은 이때였다.

- 한데, 내일이면 축제도 마지막 아니냐? 그 도올월마라는 자가 여즉 잠잠하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예해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선배님. 지금쯤 가극의 이야기가 성도 분지 인근은 다 돌았겠죠?”

“예. 후배님. 검각을 넘어야 하는 한중이나 저 아래 운남과 닿아있는 곳이면 몰라도, 성도 분지 근처의 크고 작은 마을들에는 얼추 돌았을 거예요.”

예해수의 답에 나는 턱을 매만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교 놈들이 그렇게 멀찍이 군세를 숨겨뒀을 것 같지는 않고…. 소식이 전해졌다면 눈이 뒤집혀서 나서야 하는데 어째 조용하네.”

그런 내 말에 남궁윤이 입을 열었다.

“도올월마를 말하는 거냐?”

“어.”

“그 마두의 성정이 예상외로 참을성이 있을 가능성은 없나?”

그럴 일은 절대 없었다.

하나, 원작을 읽어 아는 정보였기에 단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적절한 말을 골라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같은 무공을 공유하는 스승과 제자는 보통 성격도 비슷한 경우가 많잖냐.”

그런 내 말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는데.

- 그건 아니라고 하고 싶구나.

‘?’

- ?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며 남은 말을 맺었다.

“…궁윤이 너도 그때 흑선마군 성격 봤잖아?”

남궁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너와 내가 쪽지를 허가장에서 막 찾아왔을 때, 대군사님께서 그 쪽지가 계략일 수도 있다고 하셨지 않나? 그럴 가능성은 없을까?”

“그건 암어를 해독하기 전에 하신 말씀이시잖아.”

“흠.”

“거기 적혀 있던 내용은 너무 단편적인 정보였어. 우리를 끌어들일 계략을 짤 거였으면 예컨대… ‘허가장의 막내 아들의 어디로 옮겼다.’ 같은 내용을 써놨겠지.”

“그건 그렇군.”

“지금 그 나무에 다시 가보면 왠지 그런 쪽지가 미끼처럼 들어있을 것 같은데, 슬슬 나타나 주지 않으면 그쪽을 파보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겠네. 그러면 곤란한데….”

내가 턱을 만지고 있는 사이, 정현은 다른 골칫거리를 말해왔다.

“아미파와 청성파에서도 불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군사님께선 아무 말씀 없으시던데?”

“저희에게는 말씀을 안 하신 모양입니다. 저도 조금 전에 언 소협 심부름으로 개방에 들렸다가 알게 된 겁니다.”

“그래? 무슨 불만들이 있으시다던데?”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채 대군사령을 받들어 대기하고 있다 보니,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냐 뭐 그런 불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참. 사정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투정들이네.”

“저는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아미는 불문이고 청성은 도문이니 속세의 축제 한복판에 제자들을 풀어놓고 있는 상황이 탐탁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정현과 몇 마디를 나누고 있는 와중, 하성이도 제 생각을 밝혔다.

“이거 이러다가 그 도올월마라는 양반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래저래 곤란해지는 것 아닙니까? 청성과 아미가 돌아가거나 방금 말씀하신 마교 놈들이 뿌린 미끼를 덥석 물 것 같은데요?”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데, 너는 그래도 사람이라고 일 년 만에 그런 그림도 볼 줄 아네?”

“저 은하성입니다… 가 아니고, 아니 진짜 큰일 나는 것 아닙니까?”

“도올월마는 올 수밖에 없다.”

“…그럼 다행이고요.”

내 말에, 은하성은 고개를 끄덕였고.

곁에 있던 우소릉은 몸서리를 쳤다.

“전혀 다행이 아닌데요? 언 형의 말씀도 무서워요. 대마두가 무조건 온다시잖아요.”

“…아. 그렇긴 하네?”

거지들이 요란하게 바가지를 두드리며 달려온 것은 이때였다.

딱! 딱! 딱! 딱! 딱! 딱!

“비상! 비사아아앙!! 성도 북편에서부터 비상신호가 날라왔수!!”

나와 언동생들은 그 즉시 고함을 내질렀다.

“마교 놈들이 쳐들어오는 중이오! 양민들은 모두 인근의 건물로 들어가시오!”

“실제 상황입니다! 공연의 일부가 아니에요! 모두 피하세요!”

그런 우리의 말을 거지들이 돌림노래처럼 따라 했고.

“거, 피하라면 좀 피하쇼!”

인근에 있던 촉설반점의 동매 또한 하오문도들을 움직여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는데.

“금일 장사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지 얼마쯤 되었을까?

상공을 맴돌던 응용이가 소리를 지르는가 싶더니.

빼애애애액!!!!

얼마 되지 않아.

큼지막한 쌍도끼를 손에 쥔 풍채 좋은 노마두가 우리 앞에 내려앉았다.

쿵!

나는 내려앉은 노마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도올월마 선배님 되십니까?”

“본좌를 더러 그리 부른다. 핏덩이 같은 놈이 내 이명을 알면서 겁도 없이 나서는 것을 보니… 네 녀석이 언용운이라는 놈인가 보구나?”

“제가 핏덩이치고 겁이 좀 없긴 합니다. 한데 그러는 선배님께서도 양반은 못되십니다? 마침 선배님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뭐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귀신을 좀 부릴 줄 아는데 만우 녀석이 사부님이 보고 싶다고 울어대서 말입니다. 어떻게 만나게 해드릴까 고민을 하던….”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도올마군이 양손에 쥔 도끼에 시커먼 강기를 감고 땅을 박차왔다.

“갈!!!”

하지만 해볼 만했다.

이 순간 내 앞에, 파서독제 당호태와 사천쌍괴가 내려앉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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