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292화 (292/444)

제292화. 사천당가 (2)

어린아이만한 크기의 도끼가 도올마군의 양손에서 젓가락처럼 회전했다.

그렇게 회전한 도끼는 강기로 이루어진 시커먼 소용돌이를 사방으로 쏘아냈다.

쌔액! 쌔애액!

쎄애애액!

당호태는 그런 도올월마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사이 나는 입을 열었다.

“서편은 저희가 막겠습니다!”

그러자 남은 두 개의 방위로 괴의와 독괴가 땅을 박찼고.

언동생들도 맡기로 한 서편을 향해 검을 뽑아들고 달려 나갔는데.

딱 한 사람.

예해수가 우뚝 굳어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예해수는 실전을 경험해 본 바가 없는 사람이었다.

평온한 시기에 청죽관 생활을 한 사람이었고, 무림맹에서도 서무만 봤던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방금 도올월마가 뿜어낸 살기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나조차도 살갗이 따가울 정도였으니.

‘기가 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나, 저러고 있어선 본인도 우리도 위험해질 터였다.

나는 서편으로 박차려던 걸음을 멈추고 예해수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선배!”

“예? 아, 예! 후배님!”

“정신 차리십쇼.”

“아, 알겠어요.”

나는 하오문의 사천지부장 동매가 점소이들을 이끌고 들어간 건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리로 가 계세요. 선배를 신경 쓰면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여기 계시면 선배 본인도 위험하고 저희도 위험해질 것 같습니다.”

“…예. 후배님.”

그렇게 예해수를 다잡는 사이, 서편으로 쏘아져 나간 시커먼 소용돌이는 다른 녀석들이 막아냈는데.

정작 당호태 쪽이 도올월마에게 밀리는 모양새였다.

캉!

카캉!

“네놈이 사천당가의 가주라는 놈인가 보지?”

공세를 이어가는 도올월마의 호흡과 걸음에는 한점 흐트러짐이 없었는데.

“…초면에 반말을 찍찍해대는 것이, 그 나이를 처먹고도 싸가지를 배우지 못했나 보군. 십만대산에서는 기본적인 예의도 안 가르쳐주나?”

당호태는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긴 했으나,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천이라는 우물에 갇혀 있던 독두꺼비 놈이, 파서독제다 뭐다 떠받들어 주니 뭐라도 된 양 싶은 모양이로구나. 내 오늘 네놈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마.”

카앙!

카카캉!!!

당 호태가 장기인 독공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걸 고려해도 두 사람 사이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저대로 두면 걸음도, 호흡도 조만간 흐트러질 것이 분명했다.

- 저 도올월마라는 자는 지금껏 용운이 네가 상대해온 자들과 격이 달라 보이긴 하구나.

‘…예. 주변의 대기가 저를 찔러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나는 곧바로 언동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현 너는 나와 같이 가주님께 한 손을 더한다.”

“예!”

“옥기는 엄호 좀 해주고. 나머지는 주변을 경계해줘. 도올월마가 성정이 급해서 먼저 온 것일 뿐. 왕부의 남은 전력들이 곧 뒤따라올 거야.”

그리고는 도올월마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는데.

괴의와 독괴 또한 우리에게 합류했다.

그렇게 도올월마를 향해 달려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다섯 방위를 점한 채 검초를 쏟아냈다.

캉! 캉!!!

카카캉!! 카아앙!!!!

하나, 그러고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휘젓는 도올월마의 도끼를 뚫어내지 못했다.

캉!

카앙!!

특히나 나와 정현은 전해지는 공격에 실린 공력을 흘려 내는 것만으로도 진땀을 빼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이 순간.

대군사님께서 무림맹과 제갈 분가의 전력을 이끌고 달려와 주셨다.

“재동 쪽도 시선을 뗄 수가 없는지라 조금 늦었습니다.”

“언형! 저기 아미파도 와요!”

그리고 경민사태가 이끄는 아미의 지원군도 달려왔다.

“연유를 알려주지도 않고 대군사령과 경혜 사매의 옥패만 내밀면서 성도에 머물러달라기에, 당가의 세력 다툼에 불문인 아미가 이렇게까지 거들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던 차였는데….”

그렇게 운을 뗀 경민사태는 대군사님을 향해 한소리를 하는 듯 했으나.

“이 일에 마가 껴있었군요? 빈니에게 귀띔을 좀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대군사님?”

“죄송합니다 장문인. 비밀 유지가 중요한 사안이고, 확실한 증좌 없이 심증만으로 대비를 하고 있던 차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진 대군사님의 말에.

두말없이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아미의 제자들은 발검하라! 복호 검수들은 앞으로!”

채채채챙!

경민사태의 말에 아미파의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는데.

그러기가 무섭게 한쪽 골목에선 선풍도골의 도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청성의 제자들도 왔습니다!”

이들의 도착을 알리는 소식이 들리자, 대군사님은 잰걸음으로 그들을 맞으셨다.

“심덕 진인께서도 제때 와주셨군요.”

“본파가 속세의 일에는 여간해선 관심을 두지 않으나, 이런 일에 손을 더하지 않고 정파를 자처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드릴 테니 지금부턴 제 지휘에 따라 힘을 더해주십시오.”

“원시천존. 그리하겠소이다.”

그에 도올월마를 둘러싼 포위망이 형성됐다.

하나, 지원군은 우리만 도착한 게 아니었다.

후두두두둑-

최소 내사급으로 보이는, 심상치 않은 기도의 마인 한 명이 날 듯이 허공을 가로질러 포위망 안으로 들어오더니.

도올월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속하들이 왔습니다!”

“우내사인가?”

“예!”

“버러지 같은 놈들이 죽이기 좋게 알아서들 모여주었구나. 닥치는 대로 도륙 내라!”

“존명!”

그러자마자 거지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옷깃과 소매에 새카만 소용돌이 문양을 새긴 마인들이 몰려옵니다!”

그에 대군사님이 급히 입을 여셨다.

“금적금왕! 왕을 잡으면 끝이 나는 싸움입니다! 후방의 제자들은 제가 지휘할 테니, 여기 계신 분들은 도올월마를 처단해주세요!”

*     *     *

대군사님과 아미파 그리고 청성의 전력이 가세하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군사님께서 후방의 지휘를 시작하자.

최초에 포위망 위로 날아들었던 우내사 외엔 월왕부의 마인들은 포위망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덕분에 사천 백도무림의 주전력들은 도올월마와 우내사를 공격하는 데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경혜 사태보다는 무재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 경민 사태였으나, 그녀 역시 천하에 이름을 떨친 검수였고.

쌔애애액!!

심덕 진인은 속세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청성파의 사람인지라 그 이름이 천하를 진동시키지는 못했으나.

청성파 내에선 제일검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쌔애애애액!

두 사람이 가세하자, 도올월마도 이제 공세와 수세를 번갈아 하게 되었다.

“정현! 우리는 저쪽으로 가자!”

“예! 언소협!”

나와 정현은 그 즉시 도올월마를 상대하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우내사를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세했는데.

“은하성 머리 숙여!”

“예!”

쌔애애액!

챙!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 청성의 도사분들도 뒤로… 다 도사지 참.”

척하면 척인 언동생들과 달리.

속세를 멀리하려 하는 두 문파의 기질 때문에 서로 간에 교류하는 일이 없다더니.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의 손발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컥!”

“어흑!”

이 때문인지 청성과 아미의 제자 여럿은 월왕부의 우내사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피를 뿜어야만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급히 입을 열었다.

“정신이 없는 상황이긴 한데 일단 통성명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언용운입니다. 이쪽은 제가 수장역할을 하는데. 청성의 청운검수와 아미의 복호검수 그쪽 대갈… 수장들은 누굽니까?”

“청성의 상원이오.”

“아미의 옥윤입니다.”

“두 분 모두 저보다 연배도 배분도 선배님이신 것 같지만, 지금부터 지휘는 제가 하겠습니다.”

“그건….”

“왜 그래야….”

“저보다 마인들 상대 많이 해보셨습니까?”

“…….”

“…….”

“대답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청성과 아미의 제자를 휘어잡은 나는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우 내사가 도올월마를 돕지 못하도록 견제하며, 우리끼리 합을 맞추는 것에만 주력했는데.

“아미는 빠지시….”

어느 순간 우내사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이쪽으로 쇄도했다.

쌔애액!!

육참골단의 수를 행하려는 건가?

나는 곧바로 몸을 비틀어 빗겨 서며, 회한을 가로 그었다.

그러자 놈의 몸에서 오른팔이 떨어져 나왔다.

촤아악!!

한데 놈이 목표로 한 것은 나나 언동생들을 베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놈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쌩하고 스쳐 지나가더니.

도올월마에게로 찔러 들어가던 경민사태와 심덕진인의 투로를 막고 섰다.

푹!!!

푸욱!!!!

“쿨럭. 신교불패….”

캉!

카아앙!!

그사이 몰려 있던 도올월마는 당호태와 사천쌍괴를 크게 떨치며 사지를 빠져나와 호흡을 골랐는데.

“후.”

뒤쪽의 싸움이 어떠했는지 보고 계셨던 사부님께서 전황을 들려주셨다.

- 네 싸움도 아슬아슬해서 말을 참고 있었는데, 저쪽은 큰 기회를 어렵게 잡은 상황이었었다.

‘…그랬군요. 이거 아쉽게 됐네요.’

- 그래도 이제 우내사가 죽었으니, 너희도 도올월마를 처단하는 일에 가세할 수 있지 않겠느냐?

‘예.’

나는 사부님께 답하며 도올월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언동생들과 청성 아미의 제자들도 그런 나를 따라 검을 세웠다.

그런데 이때.

상공을 맴돌던 응용이가 소리를 낸다 싶더니.

빼애애액!!!!!

아미의 무복을 입은 중년의 여인이 포위망을 헤집으며 다급히 달려와 입을 열었다.

“장문인! 당 가주님! 후방에 마교의 지원군과 천독곡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나타나 독공을 해왔습니다!”

“뭐라?”

“뭐요?”

“전한 그대로입니다! 제자들이 피를 토하고 있습니다! 대군사님께서도 당가주님의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그러자 도올월마가 한마디를 중얼거리더니.

“낭중마군. 빨리도 오는구만.”

다시금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쌔액! 쌔액!!

쌔애애애액!!!

그에 경민 사태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복호검수들과 다시금 검초를 펼치기 시작했고.

“제가 막을 테니 가주님께서는 속히 후방의 일을! 옥윤아, 이리 와서 좀 돕거라!”

“예! 장문인!”

“청운검수들도 이리와 돕거라!”

“예! 사부님!”

심덕 진인과 청성파의 검수들도 도올월마에게 달라붙었는데.

“…….”

당호태는 후방을 향해 땅을 박차려다 말고 우리 쪽을 응시했다.

그에 사부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 후방의 일이 급하다는데, 당 가주는 왜 저러고 서 있는 것이냐?

‘…흠. 제 생각엔 옥기가 걱정되시는 것 같은데요?’

사부님께 떠오른 생각을 말씀드렸는데, 당옥기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녀석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 앞에 나서더니, 당호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빠. 아니 아버님. 저는요. 사천 땅에선 누가 뭐래도 우리 가문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아미, 청성, 개방 외에도 숱한 방파와 가문들이 사천에 있지만 그중 누구도 이름 앞에 이 땅의 이름을 붙이지는 않잖아요.”

“당연한 소리를….”

“그러니까.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 그리고 성도의 양민들을 아버님께서 지켜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크흠.”

“저희는 자랑스러운 사천당가인이고, 아버님은 가주님이시잖아요. 그리고 저, 그렇게 약하게 크지 않았는데요?”

“…….”

그에 당호태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짓고 있기를 잠시.

괴의가 헛기침을 하고 나섰다.

“허험. 저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옥기랑 녀석의 동무들은 지켜낼 것이니 다녀오십시오.”

“두 분 장로님만 믿겠소.”

그에 당호태는 사천쌍괴를 향해 포권을 취했는데.

독괴는 그게 낯이 간지러웠던 모양인지 괜히 툴툴거렸다.

“거, 목숨 바치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바로 믿겠다고 하시니까 쪼금 섭섭해지려 합니다.”

*     *     *

사천쌍괴에게 뒷일을 맡긴 당호태는 급히 땅을 박찼다.

팟-

그렇게 몸을 띄운 당호태는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백도무림 무인들의 어깨를 밟아가며, 말 그대로 날 듯이 달려갔는데.

‘거, 누구 딸내민지 조곤조곤 말도 잘해요.’

그렇게 날 듯이 달려가면서도 머릿속으론 당옥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섯 손가락으로 내 새끼손가락 하나를 간신히 잡던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나.’

마냥 철없어 보이던 딸이 언제 이렇게 대견해졌나 싶어 뿌듯했으나, 아무리 자라도 자식은 자식.

걱정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미의 비구니와 청성의 도사, 그리고 두 장로의 힘을 더해 간신히 기회 한 번을 잡은 상대인데… 나 없이 괜찮을까?’

그냥 내놓기에도 물가에 내놓은 것 같은 자식이거늘, 당옥기가 서 있는 물가엔 도올월마라는 맹수까지 있었다.

‘일단 용운이 그 녀석도 있긴 한데.’

당호태 입장에서는 아미파의 경민이나 청성파의 심덕보다 더 믿음이 가는 녀석이었지만.

믿음이 가는 만큼 걱정이 되기도 했다.

‘녀석도 다쳐서는 안 되는데.’

당문의 친구 소리에, 정말로 목숨을 걸고 나서주는 사람은 당호태 일생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아 낼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천하 사람들이 칭송하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녀석에게는 남다른 심지가 있었다.

‘나도 늙었나. 뭔 놈의 걱정이 끝이 없군.’

그런 걱정을 그만두려면 어서 돌아가 보는 수밖에 없었는데.

때마침 적이 독공을 해왔다는 곳에 다다라 가는지, 시큼한 독향이 코끝에 전해져왔다.

동시에 백도의 무인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복색의 군세가 가득한 지점이 보였다.

팍!

당호태는 마지막 백도인의 어깨를 온 힘을 다해 즈려밟고 하늘로 뛰어올랐다.

기실 단신으로 적이 빽빽이 들어찬 곳을 향해 날아드는 것이었으니, 보통의 무인이라면 ‘죽으려고 환장했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터였지만.

되레 당호태에게는 아군이 전혀 없고 적만 가득한 이 상황이,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스윽-

태양을 등지고 날아오른 당호태는 양손에 내력을 감은 뒤.

지체없이 소매를 휘젓기 시작했다.

그에 그의 소매에서부터 무수한 독침과 암기가 쏟아져 나왔는데.

개중에 당호태의 손을 직접 탄 녀석들은 시퍼런 독꽃을 피우며 떨어져 내렸다.

만천화우(滿天花雨).

죽음의 꽃비가 하늘을 메울 듯이 뒤덮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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