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3화. 사천당가 (3)
아미파의 복호검수와 청성의 청운검수.
두 문파의 제자가 한편을 먹고 독공을 사용하지 않는 당호태와 대련을 한다고 가정을 해본다.
아마 열 번 중에 예닐곱 번은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이 승리를 거둘 터였다.
하나, 도올월마와의 싸움에서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은 당호태의 빈자리를 제대로 메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악!”
“옥여야!”
“괘, 괜찮습니다. 장문인.”
“…그래. 괜찮을 것이다. 혜정아!”
“자, 장문인… 사고가?!”
“뭣하고 섰느냐?! 입을 놀릴 시간에 사고를 당 소저에게 데려다주고 오너라!”
난생처음 마주하는 압도적인 무와 살기 속에 기가 질리니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정신들 차리거라! 청성의 제자라는 녀석들이 어찌 마두를 보고 겁먹은 티를 내느냐!”
동고동락한 사형제들이 피범벅이 되어 끌려 나가는 상황 속에 공포를 집어먹고 오금이 굳는 것이다.
캉! 캉!!!!
중심부의 싸움은 다시금 도올월마 쪽으로 균형의 추가 기울고 있었다.
그에, 도올월마는 파리를 쫓듯 아미와 청성의 제자를 튕겨내고 나와 언동생들을 노려왔다.
“언용운. 네놈과 친하게 지내는 녀석들을 언동생이라 한다지?”
우리는 채작진을 펼치며 그런 도올월마에 대항했으나.
카앙!!!
그와 우리의 수준 차이가 명백해, 당옥기를 제외한 모두가 달라붙어 아슬아슬하게 사지를 빠져나오는 게 고작이었다.
“후우. 많이도 아십니다?”
하나, 나는 굴하지 않고 약간의 틈이라도 만들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관심을 만우 그 녀석에게 더 쏟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그 나이에 요절하지는 않았을 텐데. 불쌍한 녀석.”
의미 없는 입놀림은 아니었다.
내가 속을 긁는 족족 나를 향한 도올월마의 분노는 점차 커졌고.
“혓바닥이 길다 소문이 자자하더니, 부아를 치밀게 하는 재주 하나는 확실하구나.”
“별말씀을요.”
”언가, 당가, 무당파, 남궁가, 은휘상단까지 골고루 섞인 네놈들이니. 목을 잘라다 나란히 걸어둔다면 본교를 가로막은 자의 말로가 어떠한지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
나를 향한 도올월마의 집착은 싸움을 풀어가는 열쇠가 되어주고 있었다.
쌔애애액!!
물론, 열쇠라 하여 승기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도올 월마가 내 쪽에 신경을 쏟는 틈에 아미와 청성 그리고 사천쌍괴가 숨을 돌리거나, 공격을 하는 식으로 최소한의 균형을 맞춰내고 있는 정도였는데.
“늙어빠진 당가의 독물들이 귀찮게도 구는구나.”
이번에는 사천쌍괴가 달려들어 도올월마가 휘두르는 도끼에 자신들의 검을 끼워 넣었다.
캉!!!
카아앙!!!
한데, 독괴 쪽이 도올월마의 공격을 제대로 흘려내지 못했다.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낸 그는 내 쪽으로 튕겨 나와 피를 뿜었다.
“푸흡.”
나는 도올월마의 위치를 힐끔 확인 했다.
챙! 챙!
채채채챙! 채애앵!
그사이 전열을 정비한 아미와 청성의 제자가 가세했기에, 숨돌릴 여유는 있었다.
나는 독괴를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할아범!”
그사이 아미의 제자에게 응급처치를 마친 당옥기도 놀란 눈으로 달려왔다.
독괴는 우리의 걱정을 물리치며 괜히 웃었는데.
“웬 호들갑들이냐. 점심때 먹은 닭고기가 좀 얹혀있었는데 그게 튀어나왔을 뿐이다.”
그 상태로 호흡을 고르며 도올월마를 응시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늙어빠진 마두 놈도 온몸에 상처가 났으니… 독공만 사용할 수 있으면 전황이 바뀔 것도 같은데.”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복화술을 하듯 나직이 입을 열었다.
“…쓰죠. 독공.”
그런 내 말에 당옥기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입을 열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입가로 검지를 가져가자 녀석도 목소리를 낮추며 남은 말을 맺었다.
“…여기서 독공을 쓰면 아미랑 청성의 제자들은 다 죽지.”
독괴도 덩달아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옥기 말이 맞다. 가주님이나 우리가 괜히 안 쓴 게 아니야. 저기 비구니랑 도사들은 다 뒈져나갈 것이고.”
그렇게 운을 뗀 독귀는 나와 언동생들을 가리키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너희도 위험하다. 저 괴물 같은 놈에게 통하려면 극독 중의 극독을 써야 하는데. 용운이 네가 천독단을, 다른 놈들이 옥기가 만든 백독단을 먹은 건 나도 알고 있다만… 그만한 극독에는 너희들도 맥을 못 출 것이야.”
“그렇겠죠.”
“그렇겠죠? 그런데 뭔 독공이냐. 똘똘한 놈인 줄 알았는데. 지쳐서 머리가 안 돌아가느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서 쓰자는 게 아닙니다.”
“그럼?”
“정빈각의 비밀통로. 허가장에 갈 때 그 길을 통했었는데, 벽에 구멍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구멍. 독을 방출하기 위해 파놓은 거 아닙니까?”
“장식처럼 파놓은 것을 유심히도 봤구나. 본가가 공격당할 것을 대비해 파놓은 비밀통로들인지라, 그런 기관들이 있긴 하지.”
“그걸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 한쪽이 도올월마를 그리로 유인하는 사이, 다른 한쪽이 출구 쪽에 가서 기관을 발동시키는 겁니다.”
* * *
내 의견을 들은 남궁윤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당 가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제대로 된 수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순이란 게 어딨냐.”
나는 상공에 있던 응용이를 손짓으로 불러 내렸다.
호룩!
“후방의 상황은 어때?”
내 물음에 응용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저 없는 소리를 내왔다.
호룩.
그것이 곧 답이었다.
고저가 없는 걸 보니,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채 팽팽한 전황이 유지되는 모양이었다.
“…….”
“…….”
“…….”
그간 함께 생활하며 응용이가 얼마나 영리한 녀석인지 아는 언동생들도 그 점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낭중마군도 만만한 놈은 아니야. 대군사님에 가주님이 계시니 걱정은 안 된다만. 가주님이 그쪽을 정리하고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가 버텨낸다는 보장이 없다. 결정해야 해. 독괴 어르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생각 자체는 그럴싸하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근데 도올월마를 당가타로 끌고 가도 되는 겁니까? 거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무공을 모르는 아녀자들과 식객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시켜 놓았고. 소가주와 준기 그리고 백 명쯤 되는 전력이 지키고 있다.”
은하성이 질문을 해온 것은 이때였다.
“용운 형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그래서 그 유인은 누가 하는 겁니까? 말씀하시는 투가 꼭 형님 혼자 하시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요?”
“맞아. 내가 가야지.”
그 말에 답을 하자 당옥기가 큰소리를 내려 했다.
“미쳤…”
나는 녀석의 입을 틀어막으며 먼저 말했는데.
“도올월마는 바보가 아니야. 어쭙잖은 유인책에 당해주지 않아. 지금 분위기론 내가 나서야 가능성이 있다. 내가 하찮아 보이기도 할 거고, 그만큼 나를 죽이고 싶을 테니까.”
내가 말을 마치자.
아미를 좁힌 당옥기가 내 손을 치우며 입을 열었고.
“그냥 그런 게 싫다고.”
정현도 입을 열었다.
“예. 빈도도 당 소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정 가셔야 한다면 빈도든 누구든 데려가십시오.”
정현의 말에 다른 녀석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들을 데려가라는 거였다.
하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뒈지러 가는 사람처럼 호들갑이야. 너희는 느려서 안 돼.”
“저는 안 느린데요?”
“소릉이 너는 겁이 많아서 안 되고. 나 안 죽어. 약속한다. 어떻게든 저 마두 놈을 그 통로로 끌고 들어갈 거다.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
그렇게 언동생들의 주장을 일축한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너희는 방금 나눈 이야기 어른들한테 전하고, 단단히 준비해서 반대편에 가 있어. 그리고 당옥기.”
“싫어.”
“셋을 셀 테니. 너는 나를 떠밀면서 당가타에 가서 오라버니들 모셔오라는 말을 해. 셋.”
“분명히 싫다고 했어.”
“둘.”
“너는 진짜 왜 그래?”
“하나.”
“…죽으면 죽여 버릴 거야.”
* * *
챙! 챙!
채채채챙!
벌떼같이 달려드는 아미의 비구니와 청성의 도사들의 검을 바쁘게 쳐내는 와중이었지만.
도올월마의 한쪽 신경은 언용운에게로 가 있었는데.
‘늙은 독물을 챙기는 것 치고는 지나치게 오래 쑥덕거리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당가의 금지옥엽이 빽하고 소리를 지르며 언용운을 떠밀었다.
“안 되겠어! 언용운 너는 오라버니들한테 가서 당가타를 지키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전해줘!”
곧이어 언용운이 당가타가 있는 서문 방면으로 땅을 박차는 것이 보였다.
‘지원군을 부르러 가는 것인가?’
말은 당가타라 했으나, 언용운은 꾀가 많은 놈이라 했다.
당가타가 아닌, 더 멀리 있는 지원군을 부르러 간다면 그건 사실상 도망을 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언용운.
저놈만큼은 여기서 죽여놔야 했다.
만우의 복수를 하고 월왕부의 위엄을 세우는 일도 중요했지만.
실제로 지켜보니 핏덩이 주제에 저보다 배분이 높은 자들을 휘어잡아 구심점이 되는 재주가 있었다.
‘마옥군주. 그 녀석이 지껄인 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니야….’
어쩌면 유인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어차피, 사천 백도 무림의 요인 중 가장 껄끄러운 존재인 당호태는 낭중마군이 잡아두고 있을 테니.
뭐가 됐든 어울려주면 그만이었다.
생각을 마친 도올월마는 쌍도끼를 휘둘러 날파리 같이 덤벼드는 비구니와 도사들을 크게 떨친 뒤.
카아아앙!!!!!!!!!
언용운이 튀어 나간 방면을 응시했다.
“선배님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속히 당가타에 가봐야 합니다!”
‘저리로 간다면.’
도올월마는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경신술에도 조예가 있었다.
방향을 잡자마자 그의 다리엔 시커먼 소용돌이가 감겼고.
‘나는 이쪽으로!’
엄청난 도약으로 단박에 인접해있던 건물의 지붕 위로 뛰어오를 수 있었다.
탁! 탁! 탁! 탁! 탁!
그렇게 지붕 위를 가로지른 지 잠시.
언용운의 뒤를 거의 다 잡았을 즈음 도올월마는 지상에 내려왔는데.
쾅!!!!
대략 삼십 보쯤 되는 거리를 두고 언용운이 내빼고 있었기에.
그는 땅을 박참과 동시에 언용운의 등짝을 향해 도끼를 집어 던졌다.
쌔애애애액!
하나, 언용운은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도올월마가 던지는 도끼를 아슬아슬 피해내며.
“오른쪽!”
약을 올리듯 방향을 맞췄다.
쌔애액!
“왼쪽!”
도올월마는 이를 갈며 땅에 박힌 도끼를 주워 들었다.
“…놈!”
그리고 그사이 거리를 벌린 언용운을 다시 쫓았는데.
스물다섯 보.
스무 보.
열여덟 보.
점점 거리가 좁혀지던 와중, 당가타 인근에 위치한 시커먼 대나무 숲.
오죽림(烏竹林)에 진입하게 되었다.
척-
한데, 도망을 치던 언용운이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손에 쥔 검으로 반대 손에 피를 내며 기수식을 취해왔다.
그에 도올월마는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왜. 잡힐 것 같더냐?”
하나, 그 웃음이 날아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뇨. 만우 놈이 스승님 좀 빨리 염라부로 모셔달라고 귀에다 대고 고함을 처질러서요. 좀 기다려라, 이 새끼야. 지금 보내드릴 테니까.”
그건 언용운이 도올월마의 속을 긁어왔기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네 놈이 겁에 질려 실성을 한 모양….”
일순 눈동자가 붉어진 언용운이, 성도 대로에서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여왔기 때문이었다.
쌔액! 쌔액!
쌔액! 쌔액! 쌔액!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언용운은 도올월마를 향해 속사를 하듯 검을 내질러 왔다.
한데, 그 일검 일검이 도올월마가 긴장을 하며 몸을 뒤틀어야 할 정도로 빨랐고.
그에 대처하기 위해 도올월마가 휘두르는 도끼의 투로를 빽빽한 대나무들이 방해를 해왔다.
썽겅! 썽겅! 썽겅!
캉!!
그에 천하의 도올월마가 백도무림의 하룻강아지에게 말려 잠시 수세에 전념하게 되었다.
쌕! 쌕! 쌕! 쌕!
그렇게 순식간에 십여 합이 흘렀는데.
달라진 언용운의 모습에서, 도올월마는 문득 만마전의 한 축인 경천혈마의 무공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경천혈마의 역혈수라대법인가? 그걸 왜 저놈이?’
도올월마의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가던 때.
언용운은 무슨 생각인지 기수식을 풀더니, 거리를 벌리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봤는데 역시나 안되네요. 아직 멀었네.”
그런 언용운을 향해 도올월마도 도끼를 내리고 입을 열었다.
“방금 그건 꼭 경천혈마의… 네 놈. 혈마와 무슨 사이냐?”
“아, 이건 말이죠?”
하나, 언용운은 말을 할 것처럼 운을 떼더니.
곧바로 몸을 돌려 다시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저놈이 끝까지!”
머리끝까지 화가 난 도올월마는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찍어 넘기며 언용운의 뒤를 쫓았는데.
쾅!
언용운은 당가타의 복판에 위치한 장원의 담을 넘어 한 전각으로 들어가더니.
쿠궁-
기관을 작동시키고는 나타난 비밀통로를 통해 빠져나갔다.
도올월마 역시 그런 언용운을 따라 급히 통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출구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눈에 들어올 즈음, 언용운이 다시금 몸을 돌리더니 벽을 쿵쿵 치며 입을 열었다.
“사천당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