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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294화 (294/444)

제294화. 사천당가 (4)

나는 비영파천보를 시전해 땅을 박찼다.

도올월마는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몸을 날렸으나.

이 순간.

통로 곳곳에 뚫려있던 구멍이 독연을 토해냈다.

치이익-

“!”

그 바람에 도올월마가 움찔하는 사이.

난 통로 밖으로 빠져나왔고, 이내 현철로 된 출구의 문이 닫혔다.

쿠궁!

그러자마자 언동생들이 나를 둘러쌌는데.

“야!”

“언 형!”

“언 소협!”

“용운 형님!”

“괜찮나?!”

호룩!

녀석들과 사천쌍괴 외에도, 당옥기의 두 오라버니를 위시한 당가타의 무인들이 보였다.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도 모두는 아니지만, 일부가 이쪽으로 넘어왔군.’

그 모습을 확인하자 가장 먼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는데.

이어서 도올월마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스치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크흐흐흐.”

하나, 그 웃음은 이내 곧 속이 뒤집히는 듯한 기침으로 변했다.

“크흐흑. 커헉, 쿨럭. 크흑.”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도 대로에서 여기까지 이르는 그 얼마 안 되는 길이 결코 녹록지 않았다.

나를 찢어 죽일 수 있는 상대가 살기를 뿜어대며 쫓아오는 상황은 그 자체로 심신을 피로하게 만들었는데.

‘아주 따돌리는 것도 아니고 아슬아슬하게 달고 다녔으니까.’

그러면서 이게 유인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하게 하려고 직접적으로 합을 섞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혈조술을 사용해 몸의 한계치를 넘어선 초식을 시전한 반동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거기다 통로를 빠져나오는 순간 새어 나온 독을 조금 마시기도 했으니, 뱃가죽이 당길 정도로 기침이 나오는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

“커흐흑. 쿨럭.”

그런 내 모습에, 언동생들이 미간을 좁혀왔다.

“언 형!”

“형님?! 아니 잘 웃으시다가 갑자기 왜?”

“언 소협께서 내상을 입으신 것 아닙니까?!”

“당옥기! 네가 진맥을 해봐라!”

“내가 아니라 할아범이 봐야지! 괴의 할아범! 빨리!”

그에 괴의가 내 팔을 잡고 진맥을 해보았다.

“일종의 탈력이구나. 좀 쉬면 괜찮아질 게다.”

괴의의 진맥은 정확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았다.

‘조금 마신 독이야 천독단을 흡수한 몸이 알아서 견뎌 낼 거고.’

기침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니, 잠시 쉬며 호흡을 고르면 괜찮아질 것 같았는데.

언동생들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으니 되레 정신이 사나웠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사래를 치다가, 어느 순간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뭐랬냐. 약속 지킨다고 했지?”

그런 내 말에 당옥기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캭! 뭐라기는 뭘 뭐래! 진짜 인중에 장침 놓고 싶네!”

곁에 있던 은하성도 펄쩍 뛰며 말했다.

“아니 갑자기 실성하신 것처럼 웃으시다가 오장육부를 토할 듯이 기침을 하셔서 큰일 난 줄 알았잖습니까!”

그러자 사부님께서도 한마디를 해오셨다.

- 실성을 한 놈이 맞긴 하지. 안 그래도 너를 죽이려 하는 자에게 무슨 약을 그렇게까지 올리느냐?

‘그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도올월마가 이 덫에 걸린 겁니다.’

- 지랄.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마지막에 당가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소리는 왜 했는데?

‘…그건.’

- 인정하거라. 너는 그냥 성격이 그런 것이야.

‘…그런 성격의 정확한 의미가 뭡니까 사부님?’

- 글쎄다?

그렇게 사부님과 몇 마디를 나누고 있는 이때.

통로 안쪽에서 쿠궁! 거리는 소리와 쾅쾅! 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려오기 시작했다.

쾅! 쾅!

쾅쾅쾅!!!

나는 사천쌍괴를 응시하며 질문했다.

“쾅쾅거리는 건 도올월마 같은데, 쿠궁거리는 건 뭡니까?”

내 질문에 답한 것은, 괴의였다.

“이쪽 통로는 기관을 발동시키면 독연이 들어참과 동시에 구간마다 설치돼 있는 방벽들이 떨어져 내리게 돼 있다.”

“침입자를 완전히 가둬서 중독시키기 위한 장치로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러는 와중에 쾅쾅거리던 소리가 우뚝 멎었다.

그에 은하성이 입을 열었다.

“조용해졌는데요? 해치운 걸까요?”

“아주 부활하라고 염불을 외워라, 염불을 외워.”

“아얏!”

나는 은하성의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은 뒤.

다시금 괴의를 향해 물었다.

“후. 도올월마. 그 괴물 같은 위인이 쓰러지긴 하겠습니까?”

“보통 사람이면 들이마시는 순간 칠공으로 피를 토했을 텐데, 늙은 마두 놈의 경지도 경지지만 마인들은 익히는 무공도 괴이하거니와 혈맥도 보통 사람과는 딴판이니….”

그런 괴의의 말에 독괴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입을 열었다.

“자운이 이놈이 왜 약한 소리를 하지? 마두 놈에게 처맞더니 겁을 집어먹었나?”

“처맞고 날아갔던 건 너 아니냐?”

“…큼. 저기 쏟아부은 독은 일저살상독(一箸殺象毒)이다. 젓가락으로 살짝 찍어다 먹이면 남만의 코끼리라는 놈도 순식간에 혀를 빼고 죽어 나자빠지는 독이지. 그 마두 놈이라고 별수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독괴의 말에 언동생 중 몇 명이 고개를 갸웃했는데.

그중 우소릉이 나를 향해 조용히 질문을 해왔다.

“…언 형. 근데 코끼리가 독에 내성이 있는 짐승인가요? 왜 비유를 코끼리에 하시죠?”

“뭔 소리야. 너 코끼리 몰라?”

“상아는 많이 접해봐서 이름은 들어봤는데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남만이나 천축에 사는 짐승인데 덩치가 집채만….”

그에 설명해주려는데, 남궁윤이 귀를 쫑긋거리는 게 보였다.

“궁윤이 너도 모르는 눈치다?”

“안다. 내가 왜 코끼리를 모르겠나.”

“안다고?”

“그래. 장기 말에도 있지 않나. 덩치가 엄청나게 크고, 이빨이 비싸게 팔리며, 전쟁에도 사용된 바 있는 짐승.”

“…모르네 이거.”

“안다니까.”

“그럼 그려봐. 바닥에다 대충이라도.”

“…….”

남궁윤은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다.

그에, 나한테 꿀밤을 맞은 자리를 문지르고 있던 은하성이 킬킬거렸는데.

“푸하하. 궁윤 형이 가만 보면 은근 촌놈이야.”

이때, 잠시 멎었던 쾅쾅거리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쾅!!

그런데 조금 전에 비해 그 소리의 크기가 훨씬 커졌다 싶더니.

쾅!!!!

출구를 막고 있는 현철문에 도끼 자국이 나기 시작했다.

자리에 모여있던 모든 이가 검을 빼 들고 기수식을 취하는 순간이었는데.

“모두 준비!”

콰아아아앙!!!!!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현철문이 찢어지며, 충혈된 눈에 온몸에 수포가 가득한 몰골이 된 도올월마가 밖으로 나와 고함을 질렀다.

“언용운! 이노옴!!!!!”

*     *     *

도올월마의 모습을 확인한 독괴는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꼬라지를 보니 독이 전혀 안 먹힌 건 아닌 것 같은데, 저 늙은 마두 놈이 어떻게 살아 나왔지?”

그 말에 당옥기가 도올월마의 왼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왼손. 왼손 새끼손가락이 시커멓잖아 할아범. 체내의 독을 저리로 몰았나 본데?”

“…그런 짓이 어찌 가능한 것인가?”

나는 회한을 세우며 답했다.

“어르신. 마교 놈들, 그것도 도올월마쯤 되는 대마두한테는 그런 거 따져봐야 의미가 없습니다.”

그사이 이를 까득 간 도올월마는 시커먼 본인의 새끼손가락을 그 자리에서 잘라내고는, 살기를 풍기며 두 자루 도끼를 휘둘러 왔다.

“본좌를 이토록 능멸하다니! 네놈들만큼은 흔적도 남지 않을 만큼 짓이겨 버릴 테다!”

쌔애애액!

쌔애애애애액!

그런 도올월마를 보며 괴의가 입을 열었다.

“저 늙은 마두도 멀쩡한 상태는 아닐 것이다! 당가타의 식솔들이여! 천하의 사천당가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줘라! 아미와 청성도 거들어주시오!”

그에 당윤기와 당준기가 이끄는 당가의 무인들이 암기를 뿌리며 달려 나갔고.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 또한 땅을 박찼다.

나와 언동생들도 그에 합류하려 했는데.

괴의와 당옥기가 나를 막았다.

“용운이 너는 잠시 빠져있거라.”

“…예?”

“예는 무슨 예야! 너 지금 손 떨리거든? 너 빨라지는 그 이상한 무공 썼지? 그거 쓰면 쉬어줘야 하고.”

“옥기 말이 맞다. 좀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으나 이 정도로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아마 지금 내력을 운용하면 속이 뒤집힐 것이야.”

이어서 다른 언동생들도 말했다.

“예. 언 소협. 잠시 쉬고 계시다가 속이 괜찮아지시면 합류해 주십시오.”

“무슨 소리냐 정현. 언용운이 손을 더할 필요 없도록 어떻게든 저 대마두를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지.”

“하여간에 궁윤 형은 융통성이 없다니까. 저렇게 말을 해야 용운 형님 성격에 잠시라도 쉬시는 거지. 정현 도장이 다 생각이 있으신 건데, 그러니까 코끼리도 못 봤지. 안 그래 소릉 동생?”

“저도 코끼리는 못 봤는데요?”

“저 형은 남궁세가잖아.”

“…그거랑 우리 가문이 뭔 상관이냐?”

“아무튼 가시죠.”

녀석들은 그렇게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곧장 도올월마를 향해 달려들었는데.

그중 정현이 마지막으로 남아, 다시 한번 진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언 소협. 저희가 언 소협을 믿었듯 언 소협도 저희를 한번 믿어주십시오.”

한사코 나를 주저앉히는 녀석들의 모습에.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알았어. 그렇게 할 테니까 너도 빨리 합류해.”

“옙!”

사실 혈조술로 내 수준에 맞지 않는 힘을 끌어다 쓰고 나면 충분히 쉬어줘야 하는 것이 맞았다.

학관에서 혈조술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수련을 할 적에, 충분히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면 팔다리에 경련이 오곤 했다.

‘그래서야 나도 위험하고 다른 사람들도 위험하겠지.’

하나 눈을 감고 운기요상을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팔다리를 주무르며 도올월마와의 전투를 주시했다.

‘우리가 마냥 우세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당가타의 전력들이 추가됐으나.

아미의 복호검수와 청성의 청운검수 전력이 성도대로 쪽과 반분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민사태와 심덕진인은 계신다는 것. 그리고 도올월마에게 독이 통하긴 한 것 같다는 건데.’

사천쌍괴는 저마다 도올월마를 보며 독이 먹히긴 한 것 같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였다.

‘성도대로나 오죽림의 싸움에서보다 초식의 속도가 늦어졌다.’

특히나 새끼손가락을 잘라낸 왼손의 도끼가 그러했다.

부웅웅!

하나, 도올월마는 느려진 속도를 보법을 잘게 밟고 도끼를 길게 잡는 것으로 메꿔냄과 동시에.

쌔애애애애액!

카아아앙!!!

“커흑!”

압도적인 경지의 강력한 일격을 앞세워, 공포를 심는 것으로 일진일퇴가 거듭되는 공방의 추를 자기 쪽으로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정현!”

“예! 남궁 소협!”

그나마 언동생들이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합격진을 펼쳐내며 제 몫을 하고 있었으나.

챙! 챙!!!

채채챙!!!!!

상대적으로 경지가 낮은 무인들이 많이 끼어있는 당가타의 무인들, 그리고 여전히 동선이 겹치곤 하는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이 그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이거 자칫 한끝이 부족해서 전멸할지도 모르겠는데.’

촤아악!!!

반분되며 날아가는 무인들의 모습에, 나는 팔다리를 주무르던 것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 내 모습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합류하려고?

‘예.’

- 네 동생들이 믿어 달라고 하고 나가지 않았느냐? 잘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네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그런 생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 하면? 혹, 죽은 무인들을 동정하느냐?

‘아뇨.’

도올월마의 도끼에 희생된 무인들에게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무인의 선택에 동정이 있을 순 없죠.’

저들은 무인이다.

최초에 검을 든 이유가 있을 것이고, 두려움을 딛고 도올월마에게 검을 뻗어냈다면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을 터였다.

‘그냥 제가 지키고 싶은 것들이 모두 저기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 혈조술을 쓸 테지?

‘그걸 안 쓰면 지금의 제가 어떻게 도올월마에게 닿을 수 있겠습니까?’

- 팔다리가 버티긴 하겠느냐?

‘어떻게든 잠깐은 버텨줄 것 같습니다.’

- 누굴 닮아 이렇게 무모한지.

‘그 제자에 그 스승이죠. 모르시나 본데 제 스승 되시는 분은 곤륜논검이라고 혼자서….’

- 말을 말자, 말을 말아.

나는 긴 숨을 내쉬어 들끓는 속을 다독인 뒤.

“후우우.”

다시금 왼손에 피를 냈다.

그리고 체내에서 혈조술을 시전하며 파천의 내력을 운용했다.

두근-

그러자 오죽림에서 썼을 때와 달리 온몸의 혈관이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 들었는데.

“…허흑. 이거 진짜 잠깐이겠는데.”

동시에 시간이 엿가락 같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체없이 땅을 박차 난전 속으로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 도올월마에게 덤벼들고 있는 아군 사이를 번개처럼 헤치고 들어가, 도올월마에게서 열 보쯤 떨어진 위치까지 다다랐는데.

부우웅-

이 순간.

미묘하게 느려진 도올월마의 왼손에서 발생한 틈이 보였다.

나는 그 즉시 회한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비영파천보를 시전하며 순식간에 도올월마의 간격 안으로 들어간 뒤.

파천맹진의 초식을 찔러냈는데.

쌔애애애애액!

놈은 기꺼이 찌르게 해줄 테니 그 대가로 목을 내놓으라는 듯 몸을 틀며, 도끼를 그어왔다.

부웅!!!!

그래서야 내 쪽이 너무 큰 손해였다.

나는 허리를 젖힘과 동시에 무릎으로 땅을 긁으며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으로 도올월마의 도끼를 피해냈는데.

쌔애-

그 도끼가 내 얼굴 위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나가는 이 순간.

촤아아악!

그 간격 안으로 득달같이 끼어든 독괴가 도끼날을 어깨로 받아 멈춰 세우더니.

날아가는 왼팔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올월마의 얼굴을 향해 입으로 독을 뿌렸다.

“푸후!!!!!!”

도올월마는 반사적으로 목을 당겨 그걸 피했으나.

그 덕분에 절호의 틈이 생겼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땅을 박찼다.

그리고 도올월마의 목에 회한을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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