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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296화 (296/444)

제296화. 티가 나게 돼 있어 (1)

눈을 뜬 뒤로 이틀 정도는 밥 먹고 운기조식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천당가의 시술 덕에 얻은 내력들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무리를 시켰던 몸속의 경맥을 풀기 위함이었는데.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가 받은 당가의 시술을 다른 언동생들도 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생각을 곧바로 괴의에게 전했다.

“용운이 네 녀석의 체질이 좀 특이하긴 했으나, 다른 녀석도 맥을 짚어보면 체질에 맞는 시술이 있기야 하겠지.”

“어르신, 말씀이 조금 모호하십니다?”

“당장은 안돼.”

“왜 안 되죠?”

“왜는 왜야! 네 녀석이 모아둔 영초를 다 빨아먹었다고 진즉에 이야기했잖느냐?”

“그 말씀은 과장이 들어간 너스레인 줄 알았는데요?”

“과장이 들어가기야 했지. 한데, 다 떨어진 영초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너희같이 이미 좋은 영약을 많이 먹어본 녀석들의 혈을 더 열어 준다는 게 결국 몸에 쌓인 독기를 빼내는 일인데, 그러려면 사재초(士載草)라는 게 필요하다.”

“사재초… 약초 쪽으론 문외한인데 이름이 좀 익숙한데요? 혹 등사재에서 비롯된 이름입니까?”

“맞다. 먼 옛날 대파산맥을 넘어 이 파촉 땅으로 들어왔던 등사재의 이름을 약초꾼들이 거기다 붙였지.”

“…절벽에서 자라는 모양이군요?”

“그래. 그걸 다 썼다. 대파산맥의 절벽 곳곳에 자생해서 기실 영초치고는 그리 귀한 녀석은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 구하기가 힘들어.”

“흠. 위험한데 돈은 안 되니 약초꾼들이 캐러 다니질 않겠군요.”

“정확하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캐러 다니는데, 알다시피 당가타가 이번 일로 정신이 없지 않으냐. 확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구나.”

“그럼 그거 저희가 캐오겠습니다.”

“너희가?”

“예. 안 그래도 슬슬 몸도 풀고 밀린 수련도 해야겠다 싶었는데, 잘됐네요. 약초 담을 때 쓰는 망태기 일곱 개만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망태기가 별거라고, 당연히 가능하지.”

“아. 그리고 혹시 여기 팔다리에 채우는 족쇄 같은 것 없습니까? 무거운 현철로 된 거면 좋을 것 같은데요.”

“…죄인들에게 채울 때 쓰는 것들이 있기야 한데 그건 왜?”

“쓸 데가 좀 있습니다. 그럼 그것도 일곱 벌. 아니다, 당 선배 거까지 쳐야겠구나. 여덟 벌 빌려주십시오.”

그렇게 괴의에게서 망태기와 족쇄를 얻어온 나는 언동생들과 사이좋게 그것들을 나눠 장비했다.

“다들 이거 차고. 옥기 너는 가서 준기 선배 좀 모셔와.”

“…….”

그리고 가파른 절벽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대파산맥으로 향했는데.

내력을 감은 손가락과 잔도(棧道)라는 위태로운 길에 의지해, 벼랑을 옮겨 다니며 사재초를 채취하기 시작한 지 얼마쯤 지났을 때.

떼구르르르.

우소릉이 밟고 있던 잔도에서 제법 큼지막한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갔다.

“히익!”

그러자 우소릉이 기겁했고, 그 뒤에 붙어 있던 남궁윤도 입을 열었다.

“놀래… 천하 일절의 경신술을 가진 녀석이 왜 그렇게 겁을 먹고 그러나?!”

“그거랑 그거랑 다르죠. 여기는 그냥 천 길 낭떠러진데요. 이런 족쇄도 차고 있고요. 그러는 남궁 형도 놀라신 것 같은데요? 남궁 세가시면서!”

“그거랑 무슨 상관….”

그런 둘을 향해 당준기는 미간을 좁혔고.

“…그만 티격태격하고 앞으로 좀 가주겠나? 내가 딛고 있는 잔도에서 방금 이상한 소리가 난 것 같다.”

은하성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니 저희 다 죽다 살아난 지 이제 고작 이레 정도밖에 안 됐는데…. 어째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죠?”

예해수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사과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정현은 그런 예해수를 향해 말을 건넸는데.

“선배님께서 죄송하실 일이 뭐가 있습니까?”

“아니에요. 제 잘못이에요. 제가 강해지고 싶다고 했더니 후배님이….”

“괜찮습니다. 이렇게 잔도를 체험해보니 예로부터 왜 촉도의 험난함을 사람들이 말해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울러 고사도 하나 생각나는군요. 과거 춘추전국시대에 촉왕이 작은 이득을 탐해 스스로 이 험하디 헙한 협곡에 다리를 놓는 우를 저질러 적이 그 길을 타고 들어와 나라가 망했다는 소탐대실의 고사가….”

당옥기는 그런 정현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나 가라고!”

그렇게 절벽을 옮겨 다니기를 한참.

망태기에 사재초를 비롯해 절벽에서 피는 영초와 약재들이 가득 찼을 무렵,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당가장으로 돌아왔는데.

대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가주 당윤기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왔구만. 기다리고 있었네.”

“저희를 기다리셨습니까?”

“정확히는 자네를 기다렸네. 아미와 청성의 어른들께서 오셔서 말이야.”

당윤기의 말에 언동생들은 하나 같이 반색했다.

“그럼 어서 이 친구를 데려가 봐야 하겠습니다. 소가주님.”

“남궁 후배의 말이 참으로 일리가 있군. 형님. 어서 언 회장을 데려가십시오.”

“사, 살았다!”

“이제 쉴 수 있어요!”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원시천존.”

나는 그런 녀석들을 향해 미간을 좁혔다.

“방금 반색한 사람들. 약재당에 가서 망태기 비우고 한 번 더 올라갔다 와. 두 번째로 올라갔던 봉우리 꼭대기에 있는 바위에 내가 가위 표시해두고 왔는데, 그 밑에 수결 새겨 놓고 와. 확인한다.”

그런 내 말에 언동생들이 청천벽력을 마주한 표정이 된 이때.

당옥기가 급히 입을 열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럼 처소로 가도 되는 거지? 자야겠어. 죽은 듯이 잘 거야. 아무도 나 찾지 마.”

“뭔 소리야.”

“…?”

“옥기 너는 천독단 연구 어르신들이랑 매듭지어야지. 너 그거 손도 안 댔지? 그러고 잠이 온다는 말이 잘도 나오네.”

“캬아악! 그럴 시간이나 있었냐!”

*     *     *

언동생들을 뒤로하고 나는 가주전으로 향했다.

가주전에는 당윤기의 말대로 대군사님과 당가의 어른들 외에도 청성파의 심덕 진인과 아미파의 경민 사태가 자리해 있었는데.

그중 심덕 진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포권을 취해 왔다.

“괴룡, 자네의 기지와 용기 덕에, 사천의 백성들과 청성의 제자들이 살았네. 고마우이.”

“청성의 제자들이 돕지 않았다면 저 역시 위험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심덕 진인에게 답례를 하고 나니.

이번엔 경민 사태가 경혜 사태의 옥패를 돌려주며 포권을 취해왔다.

“아미도 신세를 크게 졌네. 이번에 진 신세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네.”

경민사태.

그녀는 나로서는 썩 인상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일 학기에 치러졌던 신구대면식에서 입관도 하지 않은 혜정이라는 제자를 내세워 은하연에게 면박을 주려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검후라는 별호를 아미로 되찾아오는 게 숙원인 양반.’

하나, 이번에 보여준 모습은 백도 무림의 기둥 중 하나라 불릴 만했다.

나는 그녀에게도 깍듯이 답례했다.

“경혜 사태께서 평소 저를 많이 보살펴주십니다. 저야말로 아미에게 신세가 있다 할 것입니다.”

“호호호. 사매가 서신마다 꼭 한두 줄씩 자네 칭찬을 적더니만, 왜 그리 아끼는지 알겠구먼.”

그러고 나자, 대군사님께서 입을 여셨다.

“자, 인사들 나누신 것 같으니. 이제 다들 자리에 앉으시지요. 현 상황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용운이 너도 거기 앉고.”

나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곧 대군사님께서 사천의 지형이 그려진 흑판을 가져와 마교를 사천에서 몰아내는 일이 일단락되었음을 설명하셨다.

“…하니, 이번 일에 동원된 마인들과 천독곡의 잔당들은 사천분지를 떠났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허가장의 일도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예. 경민사태 질문하십시오.”

“허가장은 문가(文家)라 조심스러웠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마무리를 하였습니까?”

“이런저런 정황적인 증좌들이 있었기에, 그걸 빌미 삼아 별동대를 꾸려 들이쳤는데 당대의 장주 일가가 실종되었습니다.”

“흠.”

“마교에 완전히 귀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종친회에서 새 장주를 세운다고 합니다. 향후의 동향은 사천당가에서 주시를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답이 되었을까요?”

경민사태는 고개를 끄덕였고.

“뒷정리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만, 백도 무림은 큰 숙제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마교의 저력이 실로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때보다 백도무림이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군사님은 재차 입을 여셨다.

“두 분 장문인 역시 이번 일로 그 점을 뼈저리게 느끼셨으리라 봅니다. 아시겠지만 맹주님께서는 예전부터 백도 무림의 협력할 필요성을 주장해 오셨습니다. 두 분이 백본회에서 힘을 실어 주시면 그 일에 탄력이 더해질 것입니다.”

“원시천존.”

“아미타불.”

“자, 이제 향후 대책에 관해 논해야 할 텐데. 제가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 있으실까요?”

그러다 이어진 대군사님의 음성에 나는 슬며시 손을 들었다.

“응. 그래 용운이.”

“우선은 당문에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그런 내 말에 당호태가 답했다.

“우리한테?”

“예.”

구파는 기본적으로 산에 틀어박혀 사는 산문들이었다.

‘뜻을 맞추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야.’

대군사님이 읍소했고 청성과 아미의 장문인들이 여기서 고개를 끄덕였으나, 저들은 본산에 있는 다른 장로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했다.

그렇게 의견이 옳게 모였다 쳐도 백본회에 들어가면 언제 어떻게 결론이 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기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다른 수도 함께 추진해야 했다.

“하북과 산서에 당문이 약방을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북과 산서에?”

“예. 제 본가와 외가가 있는 곳이니 가주님만 뜻을 굳혀주시면 이 일은 바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흠.”

“두 곳은 한철길이 통하는 곳입니다. 당문이 약방을 설립해 유사시를 함께 대비하면 천하에도 이로울 것이고, 당문으로서도 앞으로 가문의 여러 사업을 추진하는 데 발판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내 말에 대군사님께서도 한마디를 더해오셨다.

“그야말로 모두가 좋은 제안이네, 게다가 당문, 태원이가, 진주언가, 하북팽가가 뭉쳐서 뭐가 됐든 이득을 보면 다른 문파들도 느끼는 바가 생길 테고.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요. 가주님?”

“나도 좋은 생각이라 여기던 중입니다.”

“한데 왜 그렇게 고민하는 표정이셨어요?”

“아, 그건 누굴 보낼지 고민하느라.”

돌아온 답에 피식 웃은 대군사님은 다시금 시선을 옮겨오며 입을 여셨다.

“그런데 말을 하면서 우선은 이라고 그런 것 같은데. 다른 의견이 더 있니?”

“네. 이건 당문과 아미 그리고 청성 모두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집중되는 시선 속에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번 마교와의 싸움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적이 강하기도 했지만 제가 보기엔 서로 간에 손발이 맞지 않아서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 내 말에 자리에 모인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중 심덕진인과 경민사태는 차례로 입을 열었다.

“빈도도 인정하는 바이오.”

“…그랬지. 괴룡 자네와 동무들은 한 몸 같던데. 아미의 제자들도 그렇게 움직였다면 흘릴 피가 분명 줄었을 것이야.”

“그래서 말인데, 제가 사천에 있는 동안 좀 도와드리면 어떨까요?”

“괴룡 자네가?”

“예. 담력과 조직력을 함께 기를 만한 곳이 있더라고요? 저희도 막 수련을 시작한 참인데, 아미와 청성의 제자들을 보내주시면 같이 해보겠습니다.”

내 제안이 심덕 진인과 경민 사태는 솔깃한 모양이었는데.

- 용운이 이 녀석이 마수를 뻗치는데, 부처와 천존 이 양반들이 가만히 있는구나.

‘…마수라뇨.’

그 모습을 보며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시는 이때.

대군사님께서 전음을 보내오셨다.

[용운아.]

[예?]

[하는 김에 화생방? 독공 훈련 그것도 좀 같이하렴. 할만한 곳이랑 재료가 당가에는 마침 다 있잖니?]

[아! 역시 대군사님이십니다!]

*     *     *

청성과 아미는 젊은 제자들을 당가타로 보내왔다.

“전원 어깨동무를 합니다. 하나에 앉으면서 사천은! 둘에 일어서면서 하나다! 하나앗!!!”

“사천은!!”

“청성산을 찍고 왔는데 목소리 이거밖에 안 나옵니까아?! 일어날 때 목소리가 작으면 이번에는 아미산을 찍고 오겠습니다! 둘!!!!”

“하나다아앗!!!!!!”

나는 협동력을 주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체조를 통해 무림인들이 잘 단련하지 않는 구석구석의 근육을 단련하는 법을 친절히 가르쳐 주었고.

독공에 대처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화생방 훈련도 실시했다.

“사형제나 전우가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발견자는 방금 알려준 구호를 즉시 외칩니다. 뭐라고?”

“독공!! 독공!! 독공!!!”

그렇게 사천의 젊은 무인들을 조련하는 일 그리고 나와 언동생들의 무위를 향상시키는 일에 골몰하며 눈코 뜰 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정무학관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는데.

우리가 떠나는 날.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윤기, 청성파의 대사형 상원, 아미파의 대사저 옥윤을 필두로.

“잘. 가. 시. 게.”

“염라부… 아니 원시천존의 돌봄이 있기를.”

“단강구의 밤길이 내 기억엔 조심했어야 했던 것 같은데, 여전히 그럴지도 모르니 조심하게.”

수련을 함께한 이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함께 수련한 보람이 있네요. 다들 배웅을 나와 주다니.’

- …다들 이를 갈고 있는 것 같다만?

사부님의 억측은 못 들은 것으로 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땀을 흘렸고 같은 솥에 지은 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함께 먹는 사이를 식구라 합니다.”

나는 사천의 후기지수들에게 깍듯하게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도올월마와의 싸움에서 청성과 아미의 제자들과 당가타의 사람들이 피를 흘릴 때. 저는 그저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순수한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하나, 여기 계신 분들이 앞으로 피를 흘린다면 슬퍼질 것 같습니다. 식구가 되었으니까요. 적의 칼이 우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부디 정진하시고 또 보중하십시오.”

그에 배웅을 나온 이들이 일제히 포권을 취했다.

나와 언동생들은 그 광경을 뒤로하고 장강으로 통하는 민강구를 향해 걸음을 내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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