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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297화 (297/444)

제297화. 티가 나게 돼 있어 (2)

청성과 아미의 제자들과는 성도에서 작별했다.

하나 사천당가의 사람들은 당가타를 지킬 인원들만 제외하고 민강구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다.

- 많이도 따라 나왔구나.

‘세간의 인식이 당가 하면 독하다고 생각하는데, 은근히 정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배웅 나온 당가 사람 중, 사천쌍괴는 단강구까지 함께 가기로 되어있었다.

우리를 호위하고 산서‧하북에서 사천당가의 이름을 내건 약방을 설립하기 위함이었는데.

당호태는 그 두 가지 임무를 맡은 사천쌍괴에게 말했다.

“두 분 장로님만 믿겠습니다.”

당호태의 말에, 괴의와 독괴는 차례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가주님. 아이들을 무사히 학관까지 데려다주는 일과 약방 일 모두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입만 산 자운이 저놈보다는 저를 믿으시면 됩니다. 여기 이 펄럭이는 소매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실력이 부족해서 한 팔을 날려 먹은 놈이 아주 뒈질 때까지 유세를 떨 기세네.”

“내가 네놈보다는 최소 하루는 오래 살 것이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에라이, 그런 일이 또 생기면 내가 더러워서라도 몸을 던진다!”

그러다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사천쌍괴를 향해 당옥기가 빽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할아범들은 떠나는 길에 뭔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해!”

“아니, 옥기야 너도 봤잖느냐. 자진이 이놈이 이토록 유세를 떠는 것을 내 어찌 참겠….”

이어진 변명에 당준기가 마른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냥 두 분이 똑같으십니다.”

입을 연 당준기는 당호태를 향해 꾸벅 포권을 취했는데.

“아버님. 보중 하십시오.”

“오냐. 우리 가문의 가훈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은혜와 원한은 반드시 갚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래. 학관에 가거들랑 이상한 놈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제가 어울리는 사람 중에 이상한 벗은 없습니다.”

“근데 총학생회장에는 왜 출마했어?”

“큼. 그건….”

“아무튼 용운이를 많이 도와주거라. 너도 이번 일로 느꼈겠지만 이런 녀석이 없다.”

“예.”

그런 당준기를 따라 당옥기도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압… 빠가 아니고 아버님. 나… 가 아니라 소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런 당옥기의 인사에.

당호태는 간장을 들이마신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옥기야.”

“응?”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다. 성도대로에서 이 아비에게 한마디 한 뒤로 네가 존댓말을 하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

“그 어색한 존댓말 걷어치우고 그냥 다시 아빠라고 해라. 사실 이 아비도 아직 너를 다 키웠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

“아, 뭐래! 애들도 있는데 그게 뭔 소리야! 요!”

“솔직히 너도 적응 안 되지 않느냐? 하던 대로 해라. 하던 대로.”

그렇게 자식들과 작별 인사를 한 당호태는 뒷짐을 쥐고서 나와 다른 언동생들을 응시하더니.

“사천을 위해 발 벗고 나서준 젊은 영웅들을 향한 가주로서의 인사는 일전에 하였으니, 오늘은 준기와 옥기의 아비로서 인사하마.”

씩 웃으며 말을 맺었다.

“사천도 당가타도 어수선하다 보니 손님 대접이 참으로 미흡했다. 다음번엔 마음 편히 왔다 갈 수 있도록 내 노력하마, 다들 또 놀러 오거라.”

그를 향해 포권을 취해 보인 우리는 손을 흔드는 당가타 사람들을 뒤로하고.

준비돼 있던 배에 몸을 올렸다.

*     *     *

그렇게 제갈혜와 언용운이 데리고 온 무리를 이끌고 사천을 떠나가는 배에 몸을 올린 이때.

사천에서 운남으로 넘어가는 길목 중 하나인 남녕 땅에 위치한 외딴 장원에선, 천마신교의 또 다른 대마두가 수하에게 보고를 듣고 있었으니.

“혈마님. 교단의 사천공략이 어그러졌다는 소식입니다.”

다름 아닌 경천혈마였다.

“자세히 고하라. 자왕(子王).”

천마신교에서 왕이라 부르는 존재는 본디 호교법왕 뿐이었고.

그들의 제자는 군호가 붙었으며, 보좌하는 마인들은 내사라 부르는 게 정상이었으나.

혈마는 본인을 보좌하는 자들에게 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세히 고할 것도 없습니다. 도올월마는 전사했고 낭중마군은 완전히 쫓겨갔다는 소식이니까요.”

“크하하하. 도올월마. 그 친구 얼간이 같이 교단에 충성하더니, 갈 때도 참 얼간이처럼 갔구만.”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고 마뇌부나 교단에서 항의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큭큭. 본좌는 도와줄 수도 있다고 했지, 무조건 돕겠다 한 적은 없다.”

그건 경천혈마에게 역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마신교에서 혈왕부를 떼어내 본인만의 교단을 세우겠다는 역심이.

“할 테면 하라지. 그럴 정신이 있으려나 모르겠군. 호교법왕이 뒈져버렸는데, 교주가 천마신공을 대성하겠다고 처박혀 있을 테니. 좌사와 우사는 우리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쁠 것이다. 크하하하하.”

경천혈마는 말을 마치며 앙천대소를 했고.

자왕이라 지칭된 자도 그를 따라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하기야. 그렇겠습니다. 지금 도올월마의 죽음을 명분 삼아 대군을 일으켰다간 그야말로 백도무림이 총결집을 할 테니 그러지도 못할 것이고. 그런 조치 없이 내부 단속을 하려면 엄청난 품이 들어가겠지요.”

“쯧쯧. 그러게 본좌가 야금야금 귀퉁이를 먹는 것보다는 크게 들이쳐야 한다고 누누이 말을 했거늘. 자업자득이다.”

그렇게 웃음기가 오가길 잠시.

자왕은 눈동자를 빛내며 재차 입을 열었는데.

“저희로서는 혈왕부를 반석에 올릴 기회입니다. 교단도 교단이지만, 백도무림도 사천의 일 그리고 정무학관의 입관시험에 관심이 쏠릴 겁니다. 그사이 혈교의 교단을 꾸리는 일에 집중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경천혈마는 그 말에 흡족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 그래. 그 입관시험에 잠입시킬 녀석들은?”

“십만대산의 교단과 관계없이, 저희도 따로 준비를 해뒀습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마정대전의 여파로 몰락한 가문 출신이니 저들은 감히 의심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     *     *

민강구에서 출발한 배가 장강의 물줄기를 타고 내려간 지 며칠.

아침 안개가 자욱한 와중에, 선수에 나가 있던 우소릉이 목청을 높였다.

“언형! 대군사님! 저기 안개 틈에 대선 한 척이 거슬러오는 게 보이는데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우리는 모두 갑판으로 나와 병장기에 손을 가져갔는데.

호루룩!

응용이가 하늘에서 원을 그린다 싶더니.

자욱한 안개 틈으로 무림맹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걸 확인한 나는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기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 내 말에 대군사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면서도 긴장을 풀지는 않으셨다.

“보고를 했던 시각과 거리를 감안하면 맹주님께서 오실 때가 되긴 했지만. 기를 바꿔 다는 것이야 누구라도 할 수 있으니 경계를 풀지는 말자.”

“예!”

그렇게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은 지 잠시.

“언 공자! 옥기야! 다들 무사했군요!”

“용운님! 고모님!”

다가오는 배의 선수에서 은하연과 제갈설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는 그 즉시 경계를 풀고 두 배를 붙였다.

그리고 대선 쪽으로 넘어가려 했는데.

배에 타고 계시던 맹주님께서 우리가 쉬이 넘어 올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셨다.

“대군사님.”

“맹주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동정총호 때는 기실 허장성세만 부렸을 뿐이고, 대군사 직함 달고난 뒤엔 내도록 서무만 본 거 같은데 오랜만에 현장 일을 한 것 같네요.”

“맹주님을 뵙습니다.”

“너희들도 고생 많았다. 정말 대견한 일을 해주었어.”

“여러모로 운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교환하고 나니.

어른들끼리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괴의 선배님과 독괴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맹주님.”

“우리 맹주님은 다 좋은데 항상 괴의를 앞에 불러, 나는 그게 조금 불만이오.”

“하하하. 신경 쓰겠습니다. 대군사님이 서편으로 써주신 내용은 파악했는데, 몇 가지 서간에 적힌 것만으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에 우리도 우리대로 회포를 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당옥기가 은하연과 제갈설지를 끌어안았다.

“얘들아!”

“옥기 너 근데 눈 밑이 왜 이렇게 새카매?”

“그러게요. 사천 명물인 웅묘가 생각날 정도인데…. 마교와의 싸움이 힘들었구나 옥기야?”

“…그것도 힘들었지.”

그러다 나온 당옥기의 말에 은하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도? 따로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러자 은하성이 입을 열었고.

“뭐겠습니까?”

곁에 있던 남궁윤과 예해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에 은하연과 제갈설지가 나를 응시하며 뜻 모를 탄식을 뱉어냈는데.

“…앗.”

“…아.”

두 사람을 향해 정현은 멋쩍게 웃으며 질문을 했다.

“한데, 다른 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두 분만 오셨습니까?”

제갈설지는 그 질문에 곧바로 답을 했다.

“맹주님께서 혼란이 일 수 있다고 극비에 부치셨어요. 그래서 타격대와 저희만 우선적으로 급히 움직였다가, 일이 정리됐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 구당협 부근을 경계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아, 그럼 하북 쪽에는 아예 소식 전달이 되지 않았겠습니다.”

“예. 장호님은 개방의 총타에 가셨으니 아실 수도 있으시긴 하겠네요.”

그리고 나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사천의 일은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마교가 쳐들어왔고 어찌어찌 막았다는 것은 제갈 소저도 들어 알고 있지 않소?”

“그렇죠?”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어른들 이야기가 끝나면 대군사님께 듣는 게 더 나을성싶소. 일단 마무리가 된 일이라 급하지 않으니까. 그보다 당가의 약방을 하북과 산서에 내기로 했소.”

그런 내 말에 제갈설지와 은하연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한철길의 방비를 더욱 든든히 하면서, 백도무림의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잘됐네요 언 공자. 그래서 사천쌍괴 어르신들이 함께 오신 거군요?”

“잘 됐다는 말이 은 소저의 입에서 먼저 나오다니. 그것참 잘됐군.”

“…잘됐다뇨. 사람 불안하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약방설립이란 게. 제갈소저의 말마따나 마교에 관한 방비책이기도 하지만 백도 무림의 협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려면 겸사겸사 수익성을 갖춰야 하오.”

“…….”

“지리, 인구, 주요 방파들과의 접근성, 다른 의방과의 갈등 요소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지.”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그 일을 도우시라는 거죠?”

“그렇지.”

“…어디에 구멍을 내야 이 배가 가라앉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어른들의 이야기가 끝났고.

우리는 다 같이 대선의 선실로 이동했다.

옮긴 자리에서 대군사님은 사천에서 있었던 일을 맹주님께 정식으로 보고했다.

그 일이 끝나자, 맹주님께서는 엷은 한숨을 내쉬셨다.

“후. 호교법왕이라는 자들의 강함도 강함이지만, 기실 천하에서 마교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곳이 없다고 봐야겠군. 이름을 떨친 유명 곡마단도 놈들이 잠식했고, 재동 허가 같은 명문가도 본인들의 숙주로 삼았으니 말이오.”

그 말에 대군사님께서도 고개를 끄덕이시며 답을 하셨다.

“예. 차후 돌다리를 두드려본다는 심정으로 맹의 정책과 책략들을 입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너무 조심해서야 아무 일도 못 할 테니 꼭 추진해야 할 일은 대범히 추진해야겠지만요.”

“꼭 추진해야 할 일이라 하니, 해가 바뀌면 다가올 정무학관의 입관 시험이 걱정이군. 마교 놈들이라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그럴싸한 신분으로 충분히 잠입을 시도할 놈들인데….”

맹주님의 예상은 맞았다.

원작에서도 마교는 몰락한 백도 문파의 자제들을 앞세워 정무학관에 잠입을 했었다.

‘그렇게 잠입했던 녀석들을 내가 안다.’

물론, 이제 원작의 이야기는 뒤틀릴 대로 뒤틀렸다.

‘나비효과로 전혀 다른 인물이 잠입조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지.’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해볼 만했다.

‘내 밑에서 구르다 보면 결국 티가 나게 돼 있어.’

나를 필두로 한 지금의 주인공 세대는 마인들을 솎아낼만한 위치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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