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00화 (300/444)

제300화. 티가 나게 돼 있어 (5)

남궁세가의 금지옥엽 남궁영.

그녀는 작년에 입관한 오라버니 남궁윤에 이어 정무학관의 입관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천하제일세가 소리를 듣는 남궁세가의 여식일 뿐만 아니라, 남궁윤 정도는 아니어도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질리도록 들어온 터.

학관은 그녀에게 갑급 무사 등급을 부여했다.

하여, 무위 관문이 면제되었기에 첫날에는 숙소에 짐을 푸는 것 외엔 아무런 일정이 없어야 했으나.

그녀는 지금 동기 응시생들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무당산을 뛰어오르는 언용운과 당옥기의 등을 쫓고 있었다.

‘심심하니까 하자는 등산의 수준이….’

내력의 사용을 금하고, 온몸에 현철로 된 족쇄를 차고 산을 뛰어오르길 한참.

무복이 땀범벅이 되고, ‘내 몸에 이런 근육도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들 무렵.

널찍한 공터를 갖춘 무당산의 봉우리에 이르러 언용운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남궁영 주변에 서 있던 동기생들 중 몇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저마다 입을 열었는데.

“헉. 흐억.”

“끄, 끝인가?”

“이게 정무학관의 등산? 지금까지 내가 알던 것은?”

그런 응시생들의 바람이 무색하게, 언용운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준비했다.

“당옥기. 너 검 좀 이리 내봐.”

언용운은 독봉이라 불리기 시작한 당옥기에게서 검을 빌리더니.

“지금부터 왕복 오래달리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스무 장(丈) 정도 되는 거리를 두고 당옥기의 검과 본인의 검을 땅에 박아 넣고 다시 입을 열었다.

“본 교관… 아 이게 아니지 참. 아무튼 제가 호각을 불면 저기 꽂힌 검까지 전력 질주를 하고, 또 한 번 호각을 불면 다시 여기까지 전력 질주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호각을 입에 물며 말했다.

“모두 횡대로 섭니다. 셋을 세고 호각을 불겠습니다. 셋. 둘. 하나.”

삑!!!!!!

울려 퍼지는 호각 소리와 함께 갑급 응시생들은 죽어라고 검과 검 사이를 달렸는데.

그렇게 검과 검 사이를 왕복하는 사람들 틈엔 언용운과 당옥기도 끼어있었기에.

누구 하나 왜 이런 걸 해야 하나 묻거나 따질 수가 없었다.

삐익!!!!!!

그렇게 지옥 같은 호각 소리가 울려대기를 한참.

무당산을 올라온 직후, 속을 고를 시간도 주지 않고 이런 달리기를 해버리니.

천하 어디를 가든 고수 행세를 해도 무방한 갑급의 후기지수들이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는데.

“우웩!”

언용운은 그런 생도들에게 다가가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건넸다.

“힘듭니까?”

“혜? 커흑!”

“허허. 이거 가지고 힘들어하면 안 되는데.”

“……!”

“농담입니다 농담. 정무학관은 배움의 장인데요. 입관생은 가능성을 보고 뽑습니다. 체력이 부족하다고 합격의 당락을 가를 소견을 달지는 않습니다. 그냥 잠시 대화 좀 하러 온 겁니다.”

그러고 있으면 당옥기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언용… 회장님이랑 하는 수련이 원래 이렇게 가차 없어요. 괜찮으시면 맥 좀 봐 드려도 될까요?”

이 과정을 모두 함께했음에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당옥기와 언용운을 보며, 남궁영은 생각했다.

‘본인들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함께하시고… 토를 한 사람도 있는데 서슴없이 다가와 챙겨주시네.’

그 모습은 남궁세가가 가훈으로 강조해온 천하를 생각하는 자의 걸음, 심계천하의 모습이었다.

‘…선배님들. 멋있어.’

*     *     *

한편, 태원의 이가장엔 산서와 하북에 당가의 약방을 설립하는 일을 논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산서에선 이길환과 이윤영.

사천에선 당자운, 당자진.

하북에선 언정웅과 석금필이 참석해 있었으니.

각지에서 두 사람씩 참석한 꼴이 되었는데.

모임의 최연장자인 이길환이 하북의 손님 쪽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언 서방과 내 딸의 혼례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으니… 석 장주는 이리 보는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구려?”

“그날 이가장을 찾았던 손님이 구름같이 많았는데, 이 사람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어르신의 기억력에 놀라고 그 정정하심에 또 한 번 놀랍니다.”

“허허. 죽을 날 받아 놓은 늙은이한테 무슨 그런 아부를 하고 그러시나.”

“아부가 아닙니다. 이화부인의 현명함과 용운 용명 형제의 총명함이 어디서 왔는지 새삼 깨닫는 중인 걸요. 그리고 죽을 날 같은 말씀은 되도록 아껴주십시오. 어르신께서는 산서상인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거, 사람하고는. 언 서방도 온다고 수고했네.”

“예.”

그렇게 하북의 손님을 맞은 이길환은 사천의 손님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독괴, 괴의. 두 분 장로님은 먼 길 오신다고 정말로 고생이 많으셨소. 아울러 이 늙은이가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오. 용운이의 목숨을 구해주어 고맙소.”

그러자 사천쌍괴가 당황한 기색으로 소매를 붙여 허리를 숙였다.

“어르신! 어찌 그런 과례를 하십니까?!”

“과례라니 당치도 않소. 독괴는 이번 일로 그 왼팔까지 잃었는데. 내 상계에 몸담아 강호에서는 한걸음 떨어져 있는 늙은이지만, 무인에게 팔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 않는다오.”

“자운아 좀 말려봐라!”

“어르신. 사천 땅에서 벌어진 변고는 응당 당문의 몫입니다. 게다가 저희가 용운이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표현이 저희로서는 참으로 받들기 민망합니다. 되레 당가타의 모든 식솔이 용운이의 기지와 용기 덕에 목숨을 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허흫흠. 그렇소? 무림맹에서 전해온 이야기랑은 좀 다른데?”

“그건, 사마외도의 관심이 너무 용운이나 후기지수들에게 쏠릴까 싶어 아이들의 동의하에 맹주님과 대군사님께서 발표내용을 사실과 조금 다르게 쓰셔서 그렇습니다.”

“자운이 이 녀석 말이 맞습니다. 가주님께서 당가타를 대표하여 용운이에게 당가의 은공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니, 태원이가도 진주언가도 저희 가문의 벗이자 은공입니다.”

그런 사천 쌍괴의 음성에.

이길환, 언정웅, 이윤영의 입꼬리가 동시에 씰룩이기를 잠시.

“헣흫흠.”

“파서독제께서 용운이에게 그런 말씀을? 허허허. 녀석이 난놈은 난놈이야. 아니 그런가 언 서방?”

“그 친구가 좀 기분파이긴 합니다. 백도 무림의 무인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을 두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흐흠흫.”

가장 먼저 입꼬리를 진정시킨 이윤영이 주의를 환기했다.

“사천의 일을 자세히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통쾌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고 무거운 이야기도 있을 듯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술잔을 나누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맨정신에 나눠야 할 당문의 약방설립 이야기부터 윤곽을 잡아 놓는 게 좋을 성싶습니다.”

이윤영의 말에, 자리한 사람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뒤이어 언정웅과 석금필이 입을 열었다.

“여기 석 장주님이 오신 것을 보면 아시겠지만, 하북은 석가장이 가장 적합할 것 같습니다. 산서에 오기 전 하북삼협의 정기모임을 가졌는데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 놓았습니다.”

“언 가주님의 말씀에 조금 덧붙이겠습니다. 진주는 지리상 입지가 좋지 않고, 팽가가 있는 보정 이북은… 기껏 휴전한 모용세가와 괜한 부스럼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은 미리 피하려 합니다.”

“대파산맥 너머에 박혀있었지만, 하북과 요령의 일은 모르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에. 괴의 어르신. 부지로 쓸 장원도 때마침 저희 석씨세가가 보유한 장원 중에 괜찮은 곳이 있습니다. 아마 가서 보시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최종 결정은 가서 보고 내려야 하겠지만, 듣기엔 합당한 판단 같습니다. 안 그러냐 자진아?”

“석가장이면… 산서, 하남, 산동과 통하는 요지이니 용운이 녀석이 이 일을 추진하자고 한 취지와도 맞지. 나도 좋은 것 같다.”

그렇게 하북 쪽 논의가 얼추 끝나자, 이길환이 말했다.

“산서는 입지가 괜찮은 곳이 두 곳이 있소. 윤영아 말씀드리거라.”

“예. 아버님, 사천쌍괴 어르신. 저희 상단이 물색한 곳은 두 군데입니다. 하나는 마시(馬市) 다른 곳은 삼문협.”

“마시는 한철길의 종착지고, 삼문협은 섬서와도 가깝고 황하를 끼고 있는 곳이로군요?”

“예. 당문에서 여력이 된다면 두 곳에 다 여는 것도 추천을 드립니다. 상계에선 점포를 낼 때 그런 식으로 한 번에 여러 점포를 내는 전략을 취할 때도 있습니다. 소문도 빨리 돌고 빠르게 영향력을 증가시킬 수 있지요.”

“하나, 마시도 그렇고 삼문협도 그렇고 교통과 교역의 요지들이라 부지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할 것 같은데….”

“은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에 속합니다.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삼문협 쪽은 종남의 속가 문파가 하나 있는데 그것만 당가가 해결해 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약방을 설립하는 일의 윤곽이 잡히고 나자.

“자, 그럼 한 잔씩들 하십시다.”

명주로 이름난 행화촌의 분주가 자리한 사람들의 술잔에 따라지기 시작했고.

화제 또한 바뀌었다.

“…그러다가 용운이가 본인이 대마두를 유인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늙은 목숨이 나서려 하였으나, 자신이 아니면 대마두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조목조목 이야기를 하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제 어미가 낮 밤으로 걱정하는 것도 모르고 또 그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행동을….”

“언 가주님이나 부인 입장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이야기입니다만, 이 독괴로서는 배분을 잊고 감탄을 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안 그러냐 자운아?”

“저는 자진이 이 친구보다 조금 늦게 사태를 파악했었는데, 과거 계한의 소열제가 조자룡더러 전신이 담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하였는데.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용운이 그 녀석은 가히 백도무림의 보물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녀석입니다.”

“거, 녀석. 누굴 닮았는지….”

“영영이가 어린 시절부터 또랑또랑하지 않았습니까 아버님?”

“그렇긴 했지!”

“허흠. 흐흫흠.”

그에 이길환이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고, 언정웅의 입꼬리가 주책없이 팔랑거리기 시작하며 연회 분위기가 익어갔는데.

“제가 한 잔씩들 올리겠습니다.”

이윤영이 사천쌍괴와 석금필에게 다가가 직접 술을 나누기 시작한 이때.

이길환은 언정웅에게 가까이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언 서방.”

그에, 언정웅이 팔랑이던 입꼬리를 멈추고 경건한 자세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예. 장인어른.”

“자네. 강남상왕과 몇 번 사사로운 자리를 한 적이 있다지?”

“아. 상왕의 자녀들이 청죽관에서 용운이와 동문수학하고 있는지라, 인연이 되어 면을 트게 되었습니다. 한데, 그 이야기는…?”

“자네 굉청탄(轟靑炭)이 뭔지 아나?”

“병장기를 제련할 때 사용하는 땔감 아닌지요?”

“맞네. 산지가 운남, 남만, 천축 등지인데. 그놈 가격이 요즘 심상치가 않아.”

“그렇습니까?”

이길환의 말에 언정웅은 고개를 갸웃했다.

언정웅 역시 가문을 운영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굉청탄이라는 품목을 장부에서 살펴본 적이 있었다.

하나,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눈치를 알아챈 이길환은 눈을 가늘게 뜨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모르겠던데? 같은 생각을 하는 겐가?”

“…예.”

“이럴 때는 빈말로라도 ‘아닙니다.’라고 해야지, 이런 곰탱이 같은 위인을 보았나.”

“…죄송합니다.”

“돈푼으로 치면 많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아닌데, 느낌이 이상해. 북해에 난리가 났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야. 상계에서 평생을 구른 노랑이의 느낌이니 한번 알아봐.”

“한데….”

“내가 나서는 쪽이 낫지 않냐고?”

“예.”

“그러면 산서상인과 휘상의 일이 되고, 천하의 물가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어. 증좌라곤 없는 감만으로 그런 일을 초래해서 되겠나 안 되겠나.”

“안 될 일입니다.”

“그래. 언 서방 자네가 은 대인이랑 자리를 마련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해.”

*     *     *

을급 무사들의 무위시험과 갑급 무사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총학생회실에 돌아오니.

자기 역할을 다한 언동생들도 속속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그중 남궁윤이 은근슬쩍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

“뭐.”

“갑급 무사들하고는 뭘 했나?”

“가볍게 등산 좀 했어.”

그런 내 말에 사부님께서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여셨고.

- …가볍게?

남궁윤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가볍게?”

당옥기는 펄쩍 뛰며 열불을 냈다.

“캬악! 가볍기는 개뿔이 가볍냐?!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 애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일 수도 없고 나까지 죽는 줄 알았네!”

“…뭘 했길래?”

나는 더 이어지려 하는 이야기를 중단시키며 입을 열었다.

“자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다들 시험감독 도우미 하면서 수상했던 것들 말해 봐봐.”

“언 형. 정말 사소한 것도 말해도 되나요?”

“어. 어차피 나를 거쳐서 운영위원 교수님들이 최종 판단하는 거니까. 상관없어. 뭐가 됐든 말해 봐봐.”

그에 언동생들의 입에서 이런 저런 생도들의 이름과 수상한 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적었다.

그리고 내가 수상하다고 생각한 녀석의 이름도 적었다.

을급 공동파의 상우청.

갑급 백리세가의 백리겸.

‘원작의 둘 말고, 독고철 이 녀석도 거의 확실한 것 같은데?’

불시에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속을 뒤집어 놨더니, 혈교를 기반으로 한 심법을 사용한 특징이 녀석의 눈동자에서 드러났었다.

‘당옥기의 진맥도 거절했고.’

무인은 본디 타인에게 맥을 짚게 해주는 것을 잘 허락지 않긴 했지만, 두 가지 심증이 겹치니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들었다.

‘독고철이 혈교의 끄나풀이라 치면… 혈교가 벌써 떨어져나온단 말인데?’

하기야 마교의 계획이 여러 차례 좌절이 됐으니.

역심이 있는 경천혈마가 딴생각을 시작할 법도 했다.

나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들어갔다.

‘…이거 다른 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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