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쉽지 않다 (1)
나는 종이에 독고철의 이름을 적어 넣으며 생각을 곱씹었다.
‘십만대산에 있는 천마신교 본단에서 나온 녀석들은 가능한 한 입관 단계에서 배제하는 게 좋다.’
상우청과 백리겸.
놈들은 천마신교의 마인들보다 백도 무림을 증오하는 녀석들이었다.
‘본인들의 사문과 집안이 멸문에 가깝게 쪼그라든 원인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로 대표되는 명문대파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니까.’
녀석들이 원작에서 보인 행보는 그야말로 백도무림의 암 덩이라는 말이 적절했다.
‘정현을 비롯한 주인공 세대를 음해하는 파벌을 만들었고….’
학관의 정보를 마교로 빼돌렸으며, 사문이나 가문에서 입지가 좁아 진로를 걱정하는 후기지수들을 꾀어 마교로 끌어들였다.
‘꼬리가 잡힐 즈음엔 내부에서 호응까지 하지.’
그렇게 정무학관이 습격당하는 발판을 제공하고, 본인들도 앞장서서 동기와 선배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다.
다섯에서 둘로 인원이 줄긴 했지만, 같은 울타리에서 지내기엔 이용 가치보다 위험성이 큰 놈들이었다.
‘하지만 혈교는….’
놈들은 천마신교와 백도무림의 공통된 암 덩이라 할 수 있었다.
천마신교 본단 입장에서는 교주의 주화입마로 확장세가 주춤한 틈을 타 제 살림을 차린 역적이었고.
백도무림 입장에서는 똑같은 마인들일뿐만 아니라, 천마신교를 대응하는 것만도 벅찬데 추가로 견제할 대상이 생긴 것과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의 적은 친구라고, 원작의 대군사님은 혈교와 천마신교의 미묘한 관계를 이용해서 백도 무림이 힘을 추스를 시간을 버시지.’
그러니 독고철이 입관시험을 치르고 있는 게, 경천혈마가 본인의 왕부를 십만대산에서 독립시키기 위한 독자적인 행보의 일환이 확실하다면.
‘달리 이용할 방도가 분명히 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상념에 잠기게 됐는데.
“…자?”
은하연의 목소리가 상념에서 나를 끄집어냈다.
“언 공자!!!”
“음? 불렀소?”
“종이에 먹이 다 번졌어요.”
독고철에 대한 생각을 곱씹다 보니, 붓에서 흘러나온 먹이 종이를 물들인 모양이었다.
“아.”
나는 곧바로 붓을 벼루 위로 옮겼다.
그사이 은하연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어디까지 알려 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차, 당옥기가 다가와 종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갑급 독고세가의 독고철? 왕복 오래달리기 제일 오래 버틴 두 사람 중 한 명 아니야? 굳이 따지면 나는 그 둘 중엔 궁윤이 동생 쪽이 더 이상하던데?”
녀석의 말에, 남궁윤이 곧바로 반응했다.
“영이의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냐?”
“뭔가….”
“뭔가?”
“뭔가 눈빛이 부담스러웠어.”
뭔 소리를 하나 들어봤는데, 듣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당옥기를 타박했다.
“좀 생각하고 말해라. 궁윤이 동생이 왜 마교한테 넘어가겠냐? 그냥 남궁세가의 적녀 그 자체더만.”
“…역시 언용운 너는.”
“지금 궁윤이 얘 눈빛을 봐라. 남궁영 응시생이랑 얼추 비슷하지 않아? 집안 내력 뭐 그런 거겠지.”
“……?”
“캭! 네가 사소한 거라도 말하라며.”
“그러긴 했지만, 정도가 있어야지….”
“나도 궁윤이 동생을 의심하는 건 아냐! 굳이 따지면, 이라고 그랬잖아!”
당옥기가 발끈하는 사이 어느새 다른 언동생들도 우리 근처로 와있었는데.
그중 정현과 용명이가 입을 열었다.
“독고 세가면 지난 정마대전 때 말 그대로 멸문지화를 당해서 방계 혈족 몇 명 빼고 다 죽은 곳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독고철 응시생 말고도 백리겸 응시생이랑 상우청 응시생의 이름도 적혀있군요. 백리세가와 공동파. 두 곳도 독고 세가와 비슷한 처지인 분들일 텐데요…?”
“흠. 빈도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마교를 철천지원수처럼 생각하는 분들 아닙니까?”
“저도 정현 도장과 같은 생각입니다. 형님,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정마대전에서 피를 본 집안이라고 마교를 미워할 거라는 건 고정관념이다. 내가 마교의 머리라면 반드시 그 고정관념을 이용해서 간자를 보낼 거야.”
소천이 형은 팔짱을 끼며 천장호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너도 그렇지 천장호?”
“거, 엮이려 들지 마쇼! 나는 오늘 이야기는 이해했으니까!”
“진짜로?”
“허. 진짜 내가 본인 수준이라고 생각하네 이 형이. 용운 형 말씀은 그러니까 저 친구들을 간자로 삼으면 우리가 의심조차 하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맞아. 실제로 너희들 반응부터가 이렇잖아?”
“그렇긴 한데, 진주언가만 해도 멸문까지 안 갔지만 강시종의 맥이 끊겼고… 그 일로 마교를 철천지원수로 여기지 않습니까? 사문과 일족을 멸문케 만든 자들의 편에 선다는 게… 제 대가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말입니다.”
천장호가 머리를 긁으며 묻자, 그 모습을 본 소천이 형이 피식 웃었다.
“역시 이해 못 했구만.”
“아니, 이 이해는 그 이해랑 다른 이해고요!”
그에 천장호가 열불을 내던 때,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난 정마대전의 일은 수 대 전의 이야기다. 시간은 망각과 왜곡을 동반하는 데다, 사람이라는 게 복잡한 존재야. 철천지원수들끼리 손을 잡기도 하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기도 한 그런 존재란 말이야.”
“뭔 소린지 더 모르겠는뎁쇼?”
“마교도 미울 수 있지. 한데 백도무림의 다른 문파가 더 미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야.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 줄게. 지난 정마대전 직후 진주 언가의 가주가 나였다 치자고?”
“옙.”
“마교도 마교지만 그 틈을 타 홀라당 세력 확장을 꾀한 저기 용길이네 집. 모용세가 같은 곳. 가만뒀을 것 같아?”
“…….”
내 말에 모용길이 흠칫하고.
사부님께서는 한마디를 해오시는 이때.
- 매진악이도 화해한 줄 알고 방심하다 터지고 졸업을 했는데… 그랬다면 모용세가가 여즉 남아 있지를 않겠지.
당옥기가 질문을 해왔다.
“무슨 말인 줄은 알겠어. 그런데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거야? 아니면 그냥 마교가 이용하기 좋을 것 같다고 위험도를 높게 잡은 거야?”
“우선은 네 진맥을 거절했지.”
“근데 진맥을 거절한 사람은 얘네 말고도 더 있잖아? 원래 무인은 맥은 잘 짚어보게 해주지 않기도 하고?”
“그리고 눈.”
“눈?”
“내 무공중에 옥기 네가 빨라지는 이상한 비술이라고 말하는 그 비술은, 혈조술이라는 주술에다가 내가 익힌 심법을 더한 거다.”
“그런데?”
“그런데 오늘 굴리다 보니까 독고철의 눈동자에서 그 비술을 썼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보였어.”
“아?”
“혈조술은 나니까 가능한 거지, 보통의 정종 무학을 익힌 사람은 절대로 못 한다고 봐도 무방해. 그런데 이런 식으로 피를 조종하는 무공이 마교의 무공 중엔 있다. 마방연 자료 정리할 때 기억 안 나? 지난 정마대전의 기록 중에 왜 있었잖아?”
그 말에 제갈설지가 답했고.
“역혈수라대법… 지쳤다고 여긴 마두가 아군의 피를 빨아 삼키고 기운을 차리니 상대키 곤란하여 우군이 크게 붕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상우청의 경우는 정현도 상대를 해봤겠지만, 무위가 너무 고강해. 그런 인재가 작년에는 뭘 했는지의문이야.”
그런 내 말에 남궁윤이 입을 열었다.
“작년 이맘때엔 정무학관에 입관할 실력이 갖춰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나?”
“너희들이랑 나는 타고난 재능에, 죽을 고생을 하면서 이런저런 기연이 닿아 이만큼 강해질 수 있었던 거고. 보통은 단기간에 그만큼 강해지기는 쉽지 않지.”
“…하긴, 엄청난 기연을 얻었다 치더라도 상우청이 당당하다면 본인의 행적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겠군.”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문득 겨울방학 동안 시험 준비를 해서 입관에 도전하고 있는 녀석이 떠올랐는데.
“참. 장선 그 녀석은? 남궁윤 너랑 향란관 선배님들이 맡은 병급으로 분류되지 않았냐?”
“맞다. 해남의 제자로 이름을 올린 지 얼마 안 돼서 병급으로 왔지. 남은 단계는 모르겠는데 일단 무위 관문은 합격했다. 힘이 장사더군. 투박하지만 해남의 초급 검술도 몸에 익은 듯 보였다.”
“짜식. 천재는 천재야.”
그렇게 장선 생각을 하고 있은 지 잠시.
은하성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럼 이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면 되는 겁니까?”
“그 정도론 부족하고. 우리 중 몇 명이 신입인 척 응시생들 틈에 섞여 들어가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예?”
“그런 의미에서, 하성이 너랑 소릉이 둘이 응시생인 척하고 시험 기간 동안 신입들이랑 숙소 생활 좀 해봐.”
“저랑 소릉 동생이요?”
“그래. 너희 둘은 어제 말번 서고 오늘 일정에 참여 안 했잖아? 그리고 따로 무가의 후기지수들이랑 만난 적도 없고, 우리 중 가장 유명세가 낮아서 얼굴이나 목소리 안 팔렸고?”
나는 말을 하며 예해수 선배 쪽을 응시했는데.
“선배님. 소식지에 얘들 초상이 나간 적 없지 않나요?”
“아직은 없죠?”
일이 일사천리로 결정되는 것 같자, 우소릉이 급히 입을 열었다.
“어, 언형. 제 성정 아시잖아요?”
“그래서 더 좋지, 고참 같지가 않잖아. 우리 소릉이는 한결같이 신병 같은 게, 그냥 섞여 들어가도 전혀 티가 안 나겠어.”
“…….”
우소릉의 말에 답하자, 은하성이 손을 들었다.
“하라면 하는 거지 너는 또 뭔 소리를 하게? 소릉이니까 봐줬지, 하성이 네가 이상한 소리 하면서 못하겠다고 하면 딱밤 날아간다?”
“아뇨. 장선 그 친구가 저희를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궁윤 형 따라 안경에 갔을 때 남궁 소저랑 스친 적이 있습니다.”
“선이 그 녀석은 원체 순박해서 역용만 하면 못 알아챌 거다. 남궁영 응시생은… 곧 응시생들 석식 먹을 시간이지? 내가 학관생 식당 앞에 나가 있다가 따로 언질을 주도록 하마. 됐지?”
“어. 예. 근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은하성은 답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숙소 생활만 같이하고, 시험은 안 칠 거니까 위원회에 말씀드리면 아마 바로 허락이 날 듯하다. 당락이랑은 상관없으니까. 허락 떨어지면 섞여들어 가서 분위기도 보고 내가 시키는 대로 미끼도 던져봐.”
그에 내가 다시금 입을 열자, 은하연도 한마디를 더했다.
“시험방식도 무위등급에서 탈락하지 않는 응시생들이 모두 모여 관문을 선택하던 작년과 달리, 열 명씩 시험장으로 이동하는 방식을 하기로 했으니. 우 소협이랑 하성이 네가 시험을 쳤는지 안 쳤는지 다른 응시생들은 모를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말을 이었다.
“본관 가서 결재받아올 테니까. 둘은 준비하고 있어. 당옥기. 얘들 역용이랑 변복 좀.”
“알았어!”
* * *
운영위원회의 허락이 떨어진 뒤, 은하성과 우소릉은 각각 병급무사에게 지급되는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두 사람은 배정된 향란관의 숙소를 확인한 뒤, 응시생들과 섞여 학관생 식당으로 향했는데.
그 길목에서 우소릉은 은하성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으, 은형. 저 때문에 망하면 어떡해요? 저 진짜 자신 없는데요?]
[아냐. 소릉 동생은 재능이 있어. 용운 형님 말 듣고 생각해보니까 처음 봤을 때나 지금이나 오들거리는 게 아주 똑같아. 전혀 성장하질 않았어.]
[…그, 그런가요?]
[아니 기죽지는 말고. 이게 그러니까 좋은 의미로 전혀 성장하지 않았… 쓰흡. 이게 말이 맞나?]
[…….]
[아무튼 나만 믿어봐. 용운 형님이 본인 욕이나 명문대파 비판하면서 여지를 흘리고 다니라고 하셨잖아? 내가 주로 운을 뗄 테니까 소릉 동생은 맞장구를 치라고.]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그렇게 학관색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은하성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괴룡 그 인간 너무 설치고 다니는 거 아니야? 따지고 보면 똑같은 후기지수고! 사실 감독관도 아니고 도우미 신분인데 말이야.”
“마, 맞아요.”
“내가 보기엔 세상이 워낙에 난세가 되니까 일부러 무림맹에서 젊은 영웅을 하나 만들려고 과장된 소문을 만든 게 아닌가 싶어.”
“그, 그런가요?”
그렇게 숙소와 학관생 식당을 오가며 언용운과 백도무림을 향한 비판을 한 지 이틀이 지났을 때.
은하성은 숨 쉬듯 언용운을 향한 비난을 일삼게 되었는데.
“언용운 그 인간은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서 주변의 언동생들은 혹이 마를 날이 없다는 소문도 있어.”
“나쁘네요!”
“거기 응시생 둘.”
“…예?”
“…네?”
배식을 하고 있다 그 소리를 들은 학관생 식당의 주사 고고가 두 사람을 식당에서 쫓아내고야 말았다.
“나가! 어디 욕할 사람이 없어서 용운 학생 욕을 해 하기를!”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학관생 식당 앞에서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이때.
각각 갑자와 을자가 쓰인 무복을 입은 응시생이 두 사람을 찾아와 입을 열었다.
“상우청일세. 밥도 못 먹고 쫓겨나는 것을 봤네.”
“나는 백리겸. 학관과 명문대파에 불만이 많아 보이던데, 그런 말은 속에 담아둬야지. 그렇게 입 밖에 내고 그러면 오늘처럼 모난 돌이 정 맞듯 고달파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