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05화 (305/444)

제305화. 쉽지 않다 (5)

나는 곧바로 독고철이 묵고 있다는 객잔으로 향했다.

“우로반점(隅路飯店). 여긴가?”

독고철이 숙소로 삼고 있는 곳은, 우로(隅路)라는 이름답게, 단강구의 객잔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자그마한 곳이었다.

“말씀 좀 물읍시다.”

“어서 옵쇼. 그런데 제가 지금 뭘 볶는 중이라 조금만 기다려주십… 괴! 괴룡?!”

내가 들어가자, 주방일을 보고 있던 객잔 주인은 깜짝 놀라 뛰쳐나왔다.

“초, 총학생회장님이 누추한 저희 객잔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냄비와 국자까지 들고나오셨네. 주방은 저리 둬도 괜찮소? 화구에 불이 치솟아 있소만?”

“불 좀 나도 괜찮습니다! 단강구의 은인이시자, 백도 무림의 젊은 영웅을 맞는 일이 더 중요하지요!”

“그게 뭔….”

“안 그래도 화구의 배치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새로 맞추면 됩니다! 아니다, 주방이 타면 대접이 안 되겠구나. 여기 잠시만 계십쇼 제가 금방 가서 미주랑….”

나는 손바닥을 내보이며 주인장을 진정시켰다.

“아니오. 미안한데, 이제 막 신입생들을 맞는 시기라 내가 한가하지가 않소. 가게도 불타면 안 되고.”

“아차차. 하기야. 그러시겠습니다요.”

“주인장의 음식 솜씨는 이다음에 내가 여유가 좀 생기면 구경하러 오도록 하겠소.”

“약속하셨습니다요?”

“그럽시다. 아무튼 오늘 온 이유는 여기 묵고 있는 신입생 중에 독고철이라고….”

“이 층에 두 번째 방입니다.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요!”

“주인장은 주방으로 가셔야지… 혼자 가겠소.”

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방으로 가려 했는데.

주인장의 호들갑 소리가 들렸던 모양인지, 이미 독고철이 나와 있었다.

“…언용운 회장님?”

“그래 날세. 우리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좀 할까?”

“예. 그럼 누추하지만 이리로.”

독고철은 짐짓 태연한 척을 했다.

‘마교와 연이 있든 없든, 신입생 입장에선 나 같은 선배가 오면 초긴장을 하는 게 되레 정상이다.’

특히나 시험 도중에 상위권 생도가 쫓겨난 사건이 터진 이번은 더더욱 그러해야 했다.

독고철의 태연함은 되레 녀석이 긴장했다는 방증이었다.

‘하기야 상우청과 백리겸이 걸리는 모습을 지켜봤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 그럼 녀석이 초조해지도록 조금만 더 이 긴장감을 유지해 볼까?’

거창한 방법도 필요 없었다.

녀석의 머릿속은 이미 온갖 생각으로 복잡할 것이니, 아무 말이나 해서 정신을 흩트리고.

“입관하기 딱 좋은 날씨야.”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봄이니까요.”

“아 참. ‘무사히’ 입관한 것을 축하하네.”

“…어. 예. 감사합니다.”

“이제 공식적으로 후배가 되었으니 말은 편하게 해도 되나?”

“예.”

은근슬쩍 더 많은 생각이 들도록 묘한 물음을 던지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 내가 자네한테 물을 게 좀 있어.”

“예! 하문하시면 됩니다.”

“여유가 좀 없어 보이는데. 원래 그렇나, 아니면 내가 온 탓에 그러는 건가?”

“…예?”

“주인장 말이야 여기 주인장. 좀 산만하신 느낌이시던데?”

“아. 아아. 주인장 말씀이시군요.”

“달리 누구를 말하겠나. 여기 와서 본 게 자네랑 주인장뿐인데, 당연히 주인장 이야기지.”

“…어. 음. 시험 치기 전후로 한 달 정도 묵고 있는 것 같은데, 원래 좀 성정이 산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건망증도 좀 있으시고요.”

그렇게 독고철의 속을 태운 지 잠시.

녀석이 마른침을 삼키며 질문을 해왔다.

“…한데, 회장님께서 저는 왜?”

“아, 제안을 하나 할까 해서.”

“제, 제안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한테 득이 될 제안을 하나 가져왔어.”

“무슨 제안이길래….”

“허. 나 때는 선배님이나 교수님께서 득이 될 제안이라고 하면, 듣지도 않고 바로 하겠습니다! 라고 외쳤는데, 그렇게 이리저리 재는 게… 자네 혹시?”

“……!”

“어려서 자라를 많이 달여 먹었나? 성정이 침착하군.”

“…….”

녀석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여기까지.

나는 씩 웃으며 독고철을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다른 건 아니고. 총학생회에 들어와 주면 좋겠네.”

“초, 총학생회 말씀이십니까?”

“왜? 싫어?”

“아뇨.”

“그럼 좋아?”

“아, 아뇨!”

“뭐야 이거.”

“죄송합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라 갑작스러워서요.”

내 제안에 독고철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우청이나 백리겸이 받았던 제안과 비슷한 제안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니까.’

정무학관 생도자치조직의 중추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제안은 독고철 입장에서 너무도 매력적일 터였는데.

그만큼 의심도 드는 모양인지 녀석은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왜 저한테 이런 제안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입관시험 성적도 딱 중간치기 밖에 못 했습니다.”

“입관 시험은 정무의 길을 걸을 최소한의 자질을 판단할 뿐, 석차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 장선이라고, 턱걸이로 간신히 합격한 녀석도 오늘 입부 신청을 했고 받아주기로 했어.”

“그 친구는 저도 압니다. 재능이 대단하던데요? 그리고 해남의 제자 아닙니까? 학관의 배려로 갑급 배정을 받긴 했지만, 저희 가문은 멸문을 겪었던지라 명문이라고 하기도 뭣합니다.”

“나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 그저 내 밑에서 열심히 뛰어다닐 사람이면 족해. 독고철 자네라면 그렇게 할 것 같고. 장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싶은 것 아닌가?”

“…맞습니다.”

“나를 보게. 천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망나니라 하고, 내가 지내는 방향을 향해 손가락질하던 시절이 있었네. 하지만 지금은 괴룡이니 천하제일후기지수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있지. 진주언가는 오대세가의 지위를 되찾았고. 자네도 할 수 있어.”

“……!”

내 말에 독고철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마음속에 있는 의심이 조금은 걷힌 모양이었다.

‘하지만 근원적인 의심은 걷히지 않았겠지.’

결국 독고철에게만 이득일 뿐.

내게는 무슨 이득이 있는지 여전히 의문일 테니까.

그렇다면 여기선 일부러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번 입관시험에선 백리겸 상우청 두 사람의 일이 있었잖나? 나는 지난 정마대전에서 희생된 문파들을 홀대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독고세가 출신인 제가 총학생회에 들어가면 그런 소리가 사그라들긴 하겠군요.”

“삼할 정도는 그런 복안이 깔려 있지. 너무 노골적인가?”

“아닙니다.”

“아니라고 느껴지면, 여기 이 입부 신청서 지금 바로 작성해. 자네가 나를 꼭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     *     *

독고철에게 입부 신청서를 받아 총학생회실로 돌아오는 길.

사부님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 용운아.

‘예. 사부님.’

- 나는 네가 저 독고철이라는 녀석을 너무 가까이 두는 것 같구나.

‘가까이 둬야 관리를 하죠. 되레 풀어 놓으면 녀석이 뭘 하고 다니는지 알 겨를이 없지 않습니까?’

- 그 뜻은 알겠다만, 총학생회실에선 장차 정무학관의 여러 정책과 학사 일정에 관여할 것이고… 심지어 마방연도 건물을 함께 쓰지 않느냐? 막말로 불이라도 놓으면 어쩌려고?

‘이제 막 독립을 꾀하려 하는 혈교가 독고철을 그렇게 써먹지는 않을성싶습니다. 그리고 마방연의 자료는 무당산 서고에 사본을 옮겨놨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사부님이 우려하시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다시 한번 옮겨적고 강시들을 이끌고 가서 가져 내려오면 그만이었다.

‘당분간은 학생회의 정보가 새지 않게 하는 것도 문제없습니다.’

- 정신없이 굴릴 거니까?

‘굴리다뇨. 신입생 교육대 줄여서 ‘신교대’가 정식 명칭입니다.’

- 결국 모두가 학을 떼는 온갖 체조에 쌩독을 먹일 거면서? 하여간에 포장은 잘해요.

‘…아무튼. 당분간은 이래저래 적응한다고 정신없을 겁니다.’

거기다 장선과 남궁영이랑 전우조를 짜서 같이 다니게끔 할 생각이니, 사부님의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선을 제외하면 모두가 독고철이 간자임을 아는 상황이니,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는 적당히 심부름을 보내면 되지 싶습니다.’

- 하나 그러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그런 식으로는 못하지 않겠느냐? 독고철이 그 녀석도 눈치가 있을 것인데 번번이 배제되다 보면 정체가 탄로 났음을 눈치를 챌 텐데?

‘예. 그래서 저도 당분간은 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염두에 둔 복안이 따로 있는 것이냐?

‘복안이라기보다는 미끼죠.’

- 미끼?

‘왜, 도올월마와 사천의 오죽림에서 붙었던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그때 제가 혈조술과 파천신공을 섞어 쓰는 것을 보고 혈마와 관계가 있다고 오해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사부님께서는 감탄하셨다.

- 오호? 독고철도 같은 오해를 할 것이라는 게로구나?

‘예. 그걸 바탕으로 혈교와 서로 알아가는 단계가 돼볼 생각입니다.’

하나 곧바로 그 감탄을 멈추시고 의문을 표하셨다.

- 아니지? 독고철 저 녀석이 혈교의 누군가와 접촉하면 바로 들통이 나는 것 아니냐?

그런 사부님의 말씀에 나는 씩 웃었다.

혈교는 천마신교 내에서 몰래 세력을 불려야 했다.

때문에 혈교를 준비하기 위한 산하의 조직들은 구성원들끼리도 서로 알지 못하는 철저한 점조직으로 운영했다.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     *     *

남궁영, 장선, 독고철.

정무학관의 총학생회는 세 명의 신입생을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일복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대 기숙사가 신입생을 받기 시작하고, 학관은 개강을 앞두고 수강 신청을 받기 시작하니.

밀려드는 학사일정 속에 회장으로서의 업무와 생도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사이.

총학생회에 입부한 세 명의 신입생도 기숙사를 정했다.

남궁영, 장선, 독고철 세 사람 모두 청죽관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당옥기.”

“응?”

“네 옆에 앉은 궁윤이 저건 왜 저렇게 죽상인지 혹시 이유를 아냐?”

“앜. 이거? 얘 은근 영이가 자기 따라 향란관에 들어오길 바랐나 봐.”

남궁영이 청죽관에 입사했다는 사실은 남궁윤의 입이 튀어나오게 했는데.

“남궁 후배는 진즉부터 청죽관 지원했다고 말하고 다녔던 것 같은데?”

“아, 저번에 남궁윤 구시렁거렸었는데 그때 너 없었나?”

“언제?”

내가 되묻자.

제갈설지가 답했고.

“그때 없으셨어. 용운 님이 영 님이랑 선 님 신청서 받아주라고 하시고, 철 님의 신청서 받으러 가셨을 때. 장호 님이 두 후배님 한테 기숙사는 어디 신청할 거냐고 물었다가 나온 말이잖아?”

당옥기는 깔깔거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아, 맞네. 큭큭큭. 아무튼, 일부러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라고, 영이 성격이 원래 그렇다면서 결국 향란관 지원할 거라면서 안 믿더닠.”

“그랬다가 오늘 파란 무복 입은 거 보고 충격 먹었구만?”

“어. 캬캬캬. 가겠냐고 향란관 같은 데를!”

그에 당옥기를 비롯한 다른 언동생들이 배를 잡고 웃는 이때.

남궁윤이 당옥기를 향해 언성을 높였고.

“너도 향란관이다 당옥기!”

모용길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더하는 이때.

“…그래. 제발 자각 좀 가져라.”

장선과 독고철이 총학생회실을 찾아와 꾸벅 포권을 취했다.

“형님 누님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고개를 끄덕여 그 인사를 받아주자.

독고철은 우소릉 쪽으로 다가가 질문을 했다.

“우소릉 선배님.”

“예… 가 아니고 응?”

“개강과 동시에 신교대가 시작한다는 공문에 신입생들 수결받아오는 거 말입니다.”

“…그게. 뭐?”

“저희가 직접 받으러 다닐 필요는 없는 거죠? 자치회에 명확하게 알리고 그쪽에서 수결이 끝나면 회수해오면 되는 거 맞습니까?”

“맞아요… 가 아니라, 그래.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아, 어제 이 일 맡기실 때 다른 일을 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는데 혹시나 싶어서 여쭤봤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장선이 가세.”

“물러가 보겠습니다아!!!”

그렇게 독고철과 장선이 나가자.

힐끔 창밖을 보고 두 사람이 멀어졌음을 확인한 우소릉이 긴 한숨을 내 쉬었고.

“후우우우.”

곁에 있던 은하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쉽지 않다. 쉽지 않아. 용운 형님. 제 생각엔 소릉 동생도 장선이처럼 독고철의 정체를 모르게 두는 게 나았습니다.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해 죽겠네.”

“…죄송해요 은 형.”

“소릉이는 그냥 선배 대접받는 거 자체가 어색한 거기도 해. 남궁 후배한테도 똑같잖아?”

“그건 또 그렇네요. 내심으로 혈교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신경이 더 쓰이나 봅니다. 후. 근데 이거 언제까지 합니까?”

“반드시 낚아야 하는 물고기를 기다리는데 언제까지가 어딨어?”

대어가 미끼를 물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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