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06화 (306/444)

제306화. 확실하다 (1)

은하성을 비롯해 몇몇 언동생들은 독고철을 두고 조마조마하다는 뜻을 내비쳐왔고.

애초부터 노파심을 보이셨던 사부님도 한 말씀을 하셨다.

- 심율이 때는 그놈을 확 휘어잡아놓고 반간계를 진행하니 내 노파심이 덜했는데, 독고철이는 너 치고는 물러 보이긴 하는구나.

하지만, 녀석의 일은 천천히 뜸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독고철을 낚는 게 끝이 아니니까요.’

따지고 보면 녀석은 진짜 대어를 낚기 위한 또 다른 미끼였다.

‘독고철을 미끼로 활용하려면 우선은 신뢰부터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가랑비에 옷이 젖듯 독고철이 오해할 여지를 흘릴 겁니다.’

그래야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혈교의 맹점을 찌를 수 있을 테니까.

- 거, 복잡하게 산다, 복잡하게 살아.

‘복잡한 게 아니라 치밀한 거죠. 어떤 분과는 다르게.’

- …어떤 분이 누굴 말하는 것이냐?

‘글쎄요?’

- ……?

‘?’

- ???

사부님의 노파심은 그렇다 치고.

언동생들의 우려는 본격적으로 개강을 하고, 하루하루를 보냄에 따라 쏙 들어갔다.

간부로서의 직무.

생도로서의 의무.

두 마리 토끼를 쫓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와중에.

언동생들은 신입생들에게 정무의 정신을 주입하는 장인 ‘신입생 교육대’에 조교로서 차출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당산 등반을 다녀온 직후라 병아리들의 체력이 없다는 사실은 본 교관도 알고 있다.”

신교대의 일이 기존의 직무에 추가되어 바빠 그런 것인지.

독고철을 비롯한 신입생들을 내가 딴짓을 못 하겠다 싶을 만큼 굴린다고 생각해 그런 것인지.

“하지만, 이런 순간에 독공이 들어온다면? 병아리들은 무기력하게 당할 것인가?”

“아닙니다앜!”

“그렇다. 결코 당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을 날려 보내는 동작 중 하나인 팔 벌려 높이 뛰기를 실시하겠다. 팔 벌려 높이 뛰기. 최초 천 회. 몇 회?”

어떤 것이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우려들은 쏙 들어갔다.

“천 회!”

“목소리가 작다! 이천 회!”

“이천 회에에엨!!!!”

“저 사람은 미쳤어. 지, 지금이라도 자퇴를….”

“뭐, 자퇴? 방금 중얼거린 거 누구야! 거기 윤국관의 열일곱 번째 줄에 있는 병아리 쪽에서 들려온 것 같은데?!”

“자세! 자세를 똑바로 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병아리들이 정신을 단단히 차리지 못했다는 증거다! 체조 번호 변경한다. 팔 번 체조! 온몸 비틀기 준비이!”

“아악!!!!!!!”

“개수는 무한대로 설정한다. 오늘 수련은 병아리들의 의지에 정무의 정신이 돌아왔을 때. 끝이 날 것이다. 뭐라고?!”

“무, 무한대에에!!!”

“곧 일 교시 수업 시간이 다가오니 적당히 끝내줄지 모른다는 얄궂은 희망은 미리 버려라! 본 교관은 언제든지 교수님께 출석 인정을 받아낼 자신이 있다. 동작 시작 하낫! 둘 셋 넷!”

삑! 삐이빅!

“하나앜!!!!”

삑삐삑비! 삐익!

“두울!!!!!!!!!”

*     *     *

그리하여 삼 주 간의 훈련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어느 날.

나는 신교대의 아침 수련을 마무리하고 청죽관의 언동생들을 불러 모았다.

“다른 기숙사의 언동생들은 제갈 소저 도우러 총학생회실로 가고, 청죽관의 조교들은 이리로.”

그리고 신입 삼인방을 불러 모았는데.

“남궁영, 독고철, 장선도 이리 좀 와.”

그 말에 신입생 삼인방이 부리나케 튀어왔고.

그중 남궁영이 살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르셨어요, 용운 선배?”

“웃네? 안 힘드나?”

“힘들지만 선배들은 잠자는 시간도 쪼개갈 정도로 바쁘신 와중에 저희 생각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건데, 그런 티를 내는 건 남궁세가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죠.”

“남궁 동기의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용운이 형님! 저는 안 힘듭니다! 더 할 수 있습니다!”

그에 사부님께서는 헛웃음을 지어오셨다.

- 그나저나 영이는 궁윤이랑 딴판이로구나. 남궁세가의 자존심 소리가 입에 붙어 있긴 한데, 밉지가 않아. 녀석이 묘하게 곰살맞은 구석이 있어.

사부님의 말씀이 맞긴 했다.

그사이 남궁영이 우리를 대하는 호칭이 조금 편해져 있었는데, 우리 중 누구도 그걸 불쾌해하진 않았으니까.

남궁영은 제 오라버니와는 달리 붙임성이 있었다.

‘원래 남궁세가 같은 명문가의 둘째는 밝은 경우가 많죠. 가문을 물려받을 적장자에게 권리와 책임을 모두 쥐여주고 엄히 교육하는 반동으로, 좀 자유롭게 키우는 편이니까요.’

그러고 있는 사이.

청죽관의 언동생들이 내 곁에 모여들었다.

그중 은하연은 심드렁한 태도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바쁘오? 왜 왜요 소리가 먼저 나오지?”

그 말에 되물음을 전하자, 당옥기가 ‘참 나.’ 소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하연이는 항상 바쁘지! 누구 덕분에!”

“…너한테 물은 거 아니다. 그리고 청죽관 조교들 모이라고 했는데, 너는 왜 끼어 있는 거냐?”

“캭! 그냥 청죽관이라고 좀 쳐.”

“치는 게 어딨냐. 그럴 거면 그냥 기숙사를 옮기든지 해.”

“그건… 창량 교수님이랑 면담을 해야 해서 좀 그래.”

“아. 인정.”

은하연이 입을 연 건 이때였다.

“아무튼 옥기 말이 맞아요. 진짜 바쁘긴 해요. 조만간에 시작될 춘계 기숙사 대항전 준비도 해야 하고, 그거 끝나면 신입생들 무림맹 견학 일정 있잖아요?”

“있지.”

“그때 장학보 관련 자료 영이한테 들려 보내려고 준비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왜요? 뭐 또 다른 일 벌여놓고 저한테 넘기시려고요? 양심이 있으면 진짜 지금 상황에선 일거리 늘리지 마세요. 진짜 그러는 거 아니에요?”

“…….”

“그런 거 맞구나? 양심이란 게 없는 분이셨지 참.”

“…그런 거 아니오.”

“아니라고요?”

“여기 병아리 셋. 얘네들이 따지고 보면 직속에 직속 아니겠소? 바쁘다 보니 면신례도 대충 넘어갔고. 밥이나 한 끼 할까 해서 부른 거요.”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요?”

“…동쪽에서 떴소.”

“음. 제안은 감사한데… 만날 학식에서 먹는 게 밥인데요? 요즘 총학생회실에 주로 계셔서 잘 모르시는데, 저는 얘네랑 밥 자주 먹어요.”

“그렇소?”

내 말에 은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는데.

“네. 정말로 그게 모이라고 한 이유의 전부 시면, 저는 일이 많아서 그거 하러 갈 테니까 그냥 언 공자가 애들 데리고 다녀오세요.”

그러자, 남궁영이 은하연의 팔짱을 끼며 넉살 좋게 떼를 쓰기 시작했고.

“아, 같이 가세요. 하연 선배에에.”

이어서 정현도 입을 열었다.

“남궁 소저 말이 맞습니다. 같이 가시죠. 오랜만에 청죽관 동기끼리 조촐한 자리를 나누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처음 언 소협을 만났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같이 밥을 먹는 사이를 식구라고….”

“정현 도장이 제 일 좀 도와주시면 가능하겠네요. 어떻게? 오늘 야근 함께 하실래요?”

“워, 원시천존. 그건 조금 힘들겠습니다. 저도 맡은 일이 적지 않은지라….”

“이거 봐. 입 바른말이 쏙 들어가죠?”

“누님.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저 사람 이제 도사 아니라니까요?”

은하연은 잠시 툴툴댔으나, 결국 우리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우로반점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와중, 그녀는 나를 향해 질문을 해왔다.

“단강제일객잔 가는 거 아니었나요? 여기서 좌로 꺾어야 하는데 왜 오른쪽으로 가세요?”

“아, 오늘은 다른 곳에서 먹읍시다. 내가 꼭 한번 찾기로 약속을 한 곳이 있소.”

그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자연히 수결을 모으던 주인장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그리고 요즘 단강제일객잔은 손님이 터져 나간다던데?”

그러다 나온 물음에 장선이 입을 열었다.

“엄청 많아요! 용운 형님의 기 받는다고 인근의 후기지수들이랑 정무학관 입관 준비생들도 많이 오고, 또 이 근방에 놀러 온 사람들도 꼭 한 번씩 들르거든요!”

“꼭 본 것처럼 말한다?”

“보죠. 주말에 한 번씩 도와드리러 가는걸요? 양양에서 여기로 왔을 때, 정말 많이 도와주셨는데 은혜 갚아야죠!”

“마음은 예쁘네, 근데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학관 생활 지장 없도록 해.”

“예!”

그렇게 객잔 골목의 끝에 다 달아 갈 무렵.

“불이야아!!!!!!!!”

목적지로 정해뒀던 우로반점 방면에서 치솟는 연기가 보였다.

“우로반점의 주인장… 내가 언젠가는 불을 낼 줄 알았다 진짜.”

*     *     *

나는 치솟는 불길을 확인하자마자 우소릉을 향해 말했다.

“소릉이는 지금 당장 수위부랑 본관에 연락하러 가!”

“예! 언 형!”

“당옥기. 너 침구(鍼灸)는 가지고 있냐?”

“어. 항상 들고 다니지.”

“그럼 나머지는 나랑 같이 간다.”

그리고 다른 언동생들과 함께 반점을 향해 달려간 뒤.

“불이야! 불!!!!”

흉포하게 치솟아 주위로 번지려는 불길을 확인하고, 즉시 현장을 장악했다.

화르르륵-

“언용운입니다. 지금부터 불길 진압에 들어갈 것이니 통제에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언동생들을 향해 명을 내렸는데.

“다른 객잔에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우로 반점 건물 그리고 바로 옆에 붙은 건물의 외벽 부순다!”

얼굴에 검칠을 하고 현장에 널브러져 있던 사람 중, 웬 젊은 여인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절규에 가까운 고함을 내질렀다.

“안 됩니다! 부수면 안 돼요!!!!”

동시에 우로 반점의 주인장도 같은 말을 했다.

“예! 부수면 안 됩니다!!”

“뭔 소리요. 이거 빨리 안 부수면 큰불이 됩니다. 재산이 아까워 그러시는 겁니까?”

“아닙니다요! 부숴도 되는데! 부수면 안 됩니다.”

주인장이 횡설수설하는 이때.

여인 쪽을 향해 독고철이 입을 열었다.

“…어? 형수님? 그, 그럼 설마!”

한시가 급한 상황 나는 독고철을 향해 바로 물었다.

“뭐야? 무슨 상황이야?”

그에 여인과 독고철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다락에 아이가 있어요! 밖에서 노는 줄 알았는데, 여기는 우리 애 친구들만 있고 애들이 숨바꼭질을 했다고… 이따금 다락에 숨어서 아이 아빠를 놀래주곤 했는데!”

“저희 동기 중에 정효철이라고 나이가 좀 많은 형님이 있습니다. 저랑 같이 이 객잔에서 묵었었는데 그 부인이십니다. 두 분 사이에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난리 통에 애가 사라졌나 봅니다.”

두서없이 전하는 아이 엄마의 음성과 독고철의 말로 우리는 상황을 파악했다.

당옥기는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애가 있다는데?”

“나도 들었어. 빠르게 애 꺼내고 곧바로 건물을 부순다. 오랜만에 다들 성취 좀 보자. 정현!”

“예. 언 소협!”

“내가 시작이라고 말하면 먼저 달려가서 태극검으로 불길 틈에 공간 좀 확보해.”

“예!”

“은 소저랑 하성이는 그 틈으로 들어가서 채작진에서 양익을 모을 때 하는 동작으로 발판 좀 만들고.”

“언 공자가 밟고 올라가시러고요?”

이어진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옥기와 신입들을 응시했다.

“그럴 거요. 내가 애 꺼내 올 테니까 옥기 너는 살필 준비 하고 있고. 병아리들은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애 데리고 나오면 바로 건물 부순다. 이해했지?”

“예!”

말을 마친 나는 파천의 내력을 일으킴과 동시에 왼손에 상처를 내 혈조술을 더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가자.”

팟!

그에 정현이 쏜살같이 튀어 나가 태극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쌔액! 쌔액!!

쌔애애액!!!

정현이 펼치는 검초는 우로반점의 외벽의 한 편에 불이 닿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마자 나는 입을 열었고.

“우리도!”

내 말에 은하연과 은하성이 각각 좌우로 튀어 나갔다.

나는 늘어지는 시간 속에 정면을 향해 땅을 박찼다.

채-애애앵!

그리고 은씨 남매의 검이 가위 자로 교차하며 발판이 만들어진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비영파천보를 시전해 날아오른 뒤.

휘릭!!

연기와 불길을 헤집으며 다락을 뚫고 들어갔는데.

쾅!

그렇게 들어선 좁디좁은 다락의 한 편에 쪼그린 채 쓰러져 있는 사내아이가 보였다.

- 살아있느냐?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사부님께 답함과 동시에 녀석을 안아 들고 다락을 빠져나왔는데.

쿵!!!

“아가!!!”

“괴룡이 아이를 구했다!”

“역시 언용운! 고수라 하여 불길이 피해 가는 게 아닐진대!”

“천하제일후기지수! 아니 신진제일협이다!!!”

박수 소리와 함께 온갖 목소리가 어지러이 얽히는 이때.

“으아아아!”

와지끈!

장선이 용을 쓰는 소리와 함께, 언동생들이 우로반점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콰아앙!!!!

*     *     *

언용운을 따라 우로반점으로 향한 사람들에게, 오늘은 참 긴 하루였을 것이다.

특히나 독고철에겐 정말로 긴 하루였다.

신교대의 수련을 해야 했고,

점심을 먹자는 언용운을 따라나섰다가, 화재 진압을 함께했으며.

언용운은 이런 날마저도 생도로서의 의무와 간부로서의 직무를 놓아선 안 된다며, 수업을 듣게 하고 일을 시켰으니까.

‘정말이지 길디긴 하루였다.’

그런데 독고철이 오늘을 더 특히 길게 느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효철 형의 아들을 구하러 뛰어들던 순간… 회장님이 사용한 그 신공은 분명 혈교의 마라역혈대법이었다.’

정파인으로서 외길들을 걸어온 다른 언동생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혈교에 귀의해 그 아류에 해당하는 신공을 전수받은 독고철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혹시 언용운 회장님도 혈교인인가?’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간 학관 생활을 해오며 접했던 언용운의 모습들이 새삼 다시 와닿았다.

‘내 밑에서 열심히 뛰어다닐 사람이면 족해.’

‘장차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싶은 것 아닌가?’

‘자네가 나를 꼭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생각해보니 언용운은 다른 언동생들에 비해 독고철에게 살가울 때가 많았다.

‘…그리고 진주언가는 오대세가의 지위를 되찾았다고, 그러니 나도 할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지.’

그러고 보니 진주언가도 지난 정마대전에서 큰 해를 입은 집안이었다.

혈교에서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회장님의 검술은 언가의 비전이 아니라 망나니라 불리던 시절에 익힌 무공이라고 그랬지. 그럼 그때 귀의를?’

처음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과했으나.

한 번 물꼬가 트인 생각은 계속해 이어졌고.

이내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정파의 무공에 그런 역혈대법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백리겸 상우청은 날려버리셨으면서 나는 왜 총학생회실까지 들여보내 주셨는지도 설명이 돼.’

그러다 보니 언용운도 상부도 왜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하기야, 미리 알았으면 입관시험에서 교수나 마방연의 다른 연구원들에게 들통이 났을 수도 있겠군. 회장님은 점조직이라 긴가민가 하시는 건가?’

스스로 그 의문을 해소하고 나니.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위에다 회장님과 서로를 확인했다고 보고를 해야 하나?’

독고철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달리 명이 없었는데, 내가 먼저 그런 행동을 하면 회장님께 폐가 될지도 모른다.’

경천혈마가 가장 위에 있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친 철저한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게, 작금의 혈교였다.

신분이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혈마의 귀에 들어가면 언용운이 곤란해질 게 분명했다.

‘나를 북돋아 주시고, 길을 보여주신 분이다.’

언용운은 실전된 비전을 복원하고, 가문의 입지를 다시 세웠다.

어떻게 보면 독고철이 가장 바라마지않는 일들을 먼저 해낸 사람이 바로 언용운이었다.

차라리 언용운 쪽과 접촉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도 회장님도 십만대산이 아닌 정파 출신, 교에서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존재.’

서로 힘을 합쳐야 했다.

그러면 서로 큰 힘이 될 터였다.

‘회장님과 접촉한다.’

백척간두 같던 학관 생활에 서광이 비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독고철은 생활관을 나섰는데.

그를 따라 장선이 몸을 일으켰다.

“철이 친구 어디 가게?”

“어. 회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일세.”

“경룡이 형? 아니면 용운이 형?”

“언용운 회장님 쪽.”

“그럼 같이 가자. 전우조 하라고 하셨잖아.”

“…그래.”

그에 오늘은 틀렸다 하는 생각을 하며 언용운의 생활관으로 향했는데.

똑똑-

“누구야?”

“회장님. 독고철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하암. 장선이요. 저는 전우조라서 같이 왔어요.”

“선이는 졸린 것 같은데 가서 자고, 할 말 있는 철이만 들어와.”

언용운이 자연스럽게 장선을 돌려보내 주었다.

그에, 독고철은 다시 한번 확신했다.

‘회장님은 혈교인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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