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2화. 인연과 악연 (5)
백본회의 대회의실.
이곳에선 무림맹주 공손무결의 제안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었다.
안건의 내용이 합종군을 일으켜 십만대산을 공격하자는 것이었던 만큼 열띤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소이다!”
팽무혁을 필두로, 마교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목청을 높여 찬성을 말했다.
“팽 가주님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예로부터 적이 위태로울 때를 공략하라 했습니다. 후성을 공략하고 사천에서 대마두를 베어낸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니겠습니까?”
반대의견을 가진 이들도 지지 않고 목청을 높였다.
“말씀 한번 잘하셨소. 후성과 사천. 그렇게 분쇄를 당하면 천년을 이어 내려온 문파도 휘청할 것이오. 하물며 천마신교는 고작 백 년이 조금 넘은, 집단 자체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들. 그 정도 타격을 입었으면 가만히 내버려 둬도 알아서 망할 것이라 봅니다.”
“장손 부회주님의 말씀이 옳소이다. 십만대산은 척박한 땅. 가만히 두면 알아서 망할 터인데. 궁지에 몰린 쥐를 뭣 하러 쫓는단 말입니까?”
“다 떠나서 백도무림이 먼저 정마간의 전쟁을 일으키자니요!”
“예방전쟁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 한들 전쟁은 전쟁입니다. 피가 내를 이루고 시체가 산처럼 쌓일 수 있는 일입니다. 내 집 앞마당도 아니고 곤륜산맥 너머 놈들의 땅으로 원정을 하자는 말을 무슨 잔치 열자는 식으로 말씀들을 하십니까?!”
“쉬이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교가 중원을 향한 야욕을 포기할 것 같습니까? 발톱을 드러낸 것만 몇 번인데요?! 정무학관이 위험할 뻔한 것만 두 번입니다. 되레 그쪽이야말로 마교의 위험을 너무 간과하는 것 아닙니까? 마인들을 겪은 생도들이 백본회에 와서 발표까지 한 마당입니다. 애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뭐, 뭐요!?”
사안 자체가 민감한지라 양측의 의견이 첨예했고.
찬반 외에 신중론을 말하는 제갈세가 같은 곳도 있었기에.
발언자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계속된 지 한참.
회의장의 문이 열리더니.
벌컥-
밀직원장 국도진과 맹주 직속 타격대의 명태성이 회의장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맹주님.”
공손무결을 보좌해온 국도진.
백본회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는 그가 회의 중에 끼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한 일이 터진 것일 터.
갑론을박이 한창이던 회의장에 일순 정적이 찾아들었다.
공손무결은 들어선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식당에서 후기지수들끼리 싸움이 났다고 합니다.”
돌아온 답에 공손무결의 입이 쩍 벌어졌는데.
“뭐라?!”
어째선지 뇌리를 스치는 언용운의 얼굴에, 공손무결이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정적이 찾아들었던 회의장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싸움? 애들끼리 시비가 붙었단 말이오? 말싸움?”
“송구합니다. 부회주님. 실제로 치고받고까지 했답니다.”
“신성한 무림맹에서 치고받았단 말이오? 어느 파의 누가?!”
그러다 이어진 질문에 명태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는데.
“괴룡과….”
명태성이 하려던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언용운의 별호를 들은 몇몇 대의원들이 입을 열었다.
“언용운?!”
“허. 이런 소문 저런 소문이 다 따라다니더니! 성정에 모가 나 있다는 그 말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 모양이로고!”
그에 공손무결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싸움은 혼자 하는가?’
공손무결이 아는 언용운은 생각이 없는 녀석이 아니었다.
되레 냉철하기 그지없는 녀석이었다.
그런 행동을 했다면, 뭔가 사정이 있을 터.
공손무결은 떠오른 생각을 바로 말했다.
“제가 보아온 바로, 언용운 생도는 사려가 깊은 친구였습니다. 뭔가 원인이 된 전후 관계가 있을 성싶습니다.”
백본회 부회주 장손립을 필두로 합종군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 말에 더욱 목청을 높였다.
“괴룡이 천하에 세운 공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만, 맹주님께서는 그 친구를 너무 아끼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후기지수 신분으로 마교와 맞서려 뛰어다니는 것으로 모자라, 백본회에서 발표까지 해서 합종군에 반대하는 이들의 숨을 턱 막히게 만든 언용운이 사고를 쳤다 하니 옳다구나 싶었던 것이다.
“맞습니다! 그리 싸고도시니까! 기고만장해서 신성한 무림맹을 제집 안방이라 여기고 이렇게 주먹다짐까지 한 것 아닙니까?”
“예! 따끔하게 혼을 낼 때는 내야 합니다!”
“무림맹주 직속 타격대의 제 일 각주 명태성. 여러 선배님께 감히 말씀 올립니다.”
국도진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던 명태성이 입을 연 것은 이때였다.
“방금의 말씀들은 사실과 다릅니다. 전후의 사실관계를 간략히 말씀을 올리자면… 후기지수들이 먼저 괴룡을 헐뜯었다 합니다.”
“먼저 헐뜯었다?”
“예.”
“마교는 별거 아닌 상대고 맹주님이 작은 위험을 호도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여 시비가 붙은 것 같습니다.”
“그, 그게 사실이오?”
“예. 자리에 있던 후기지수들이 모두 싸움에 가담한 것이 아닙니다. 지켜봤던 이들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남은 말씀을 계속 올려도 되겠습니까?”
“크흠. 그리하시오.”
“그에 소림의 원철이 중재하려 했고, 언용운 생도는 사과를 하면 참겠다는 태도를 보였으나. 다른 후기지수들이 사과를 거절하고 먼저 출수를 해서 일이 터진 모양입니다.”
그런 명태성의 말에.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던 팽무혁이 무릎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 용운이 그 녀석이 다 계획이 있는 녀석인데 그냥 그랬을 리가 없지. 처맞을 짓들을 했구만?!”
그런 팽무혁의 추임새를 등에 업고 명태성은 계속해 말을 이었는데.
“상황이 그렇다 보니 언용운 생도와 원철 스님이 한패가 되어 다른 후기지수들과 다투게 되었는데. 이쪽은 둘인 데 반해 반대편은 소림의 각필, 산동악가의 악동운, 곤륜의 심창, 종남의….”
“커흠.”
“큼. 크흐흠.”
줄줄이 나오기 시작하는 이름에, 방금 목청을 높였던 이들의 입에서 헛기침 소리가 튀어나왔고.
공손무결은 다시 입을 열었다.
“휴회를 좀 하는 게 좋겠지요?”
“…….”
반대의견은 없었다.
휴회는 바로 이루어졌다.
복잡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대의원들이 회의장 문을 열고 우르르 식당으로 향하려던 때.
명태성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선배님들. 그쪽은 식당입니다.”
“식당에서 주먹다짐이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나?”
“일단 상황은 종료됐습니다. 한쪽이 모두 정신을 잃었거든요. 데리고 오신 후기지수가 걱정되시는 거라면 약왕당으로 가보십시오.”
“…….”
그에 대의원들이 정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튼 이때.
공손무결이 몸을 일으켰다.
“나도 약왕당에 가봐야겠군. 대군사님께서 회의장을 지키고 계셔주시오.”
제갈혜는 그런 공손무결의 소매를 붙들고 입을 열었다.
“살짝 시간 터울을 두고 가시죠. 막상 제 새끼들이 기절해 있는 꼴을 보면, 명 각주에게 들은 전후 사정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흰소리를 늘어놓을 텐데요?”
“그야 그렇겠지요.”
“그러니까요. 뭐하러 그거 들어 주러 가세요? 좀 날뛰다 보면 이성이 돌아오고 분노가 본인 새끼들 쪽으로 옮겨 가겠죠. 그때 가세요. 그때.”
“그런 꼴이야 자주 봐서 이골이 났고… 용운이는 무탈한가 싶어서 말입니다.”
“용운이는 멀쩡할걸요? 명태성 각주가 우르르 나가는 대의원들한테 ‘한쪽이 모두 정신을 잃었다.’라고 했잖아요. 그럼 용운이는 멀쩡한 거죠.”
제갈혜의 말을 들은 공손무결은 다시금 자리에 앉으며 명태성에게 물었다.
“하기야. 혼자서도 어지간한 인원은 찜 쪄 먹었을 텐데. 원철까지 가세했다 그랬지?”
“예. 용운이는 멀쩡합니다. 원철스님과 함께 제 발로 뇌옥에 갇히겠다고 왔는데. 제가 보기엔 사안이 애매해서 근신이란 명목으로 우선 지하 연공장에 데려다 놨습니다.”
“잘했네.”
그러다 나온 언용운이 제 발로 뇌옥을 찾았다는 말에.
제갈혜는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아하하. 언용운. 하여간에 고단수야. 제 발로 뇌옥으로 가다니. 백본회의 늙은 너구리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심지어 저쪽이 먼저 출수를 했다는데.”
“용운이 녀석이 살살 긁었겠지. 그 녀석이 대마두의 속도 뒤집어 놓는 녀석 아닙니까. 요즘 백도의 후기지수들을 쥐어팼다는 소리는 안 들려온다 싶더니만….”
“그것도 재주죠. 덕분에 뒷정리는 어렵지 않겠는데요?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반성도 한다는데 어쩔 거야. 심지어 소림의 대표로는 공덕 신승이 와 계시는데 수제자인 원철이랑 같이 연공장에 들어갔잖아요?”
“그건 그렇긴 합니다.”
“하. 얘는 어디까지 계산을 한 거지? 근데 저희끼리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속이 시원하긴 하지 않나요? 애초에 부결이 될 거라 예상한 일이지만, 막상 너구리 같은 늙은이들 말하는 거 보니 한 대씩 쥐어박고 싶었는데. 용운이가 대신 쥐어 박아준 느낌이랄까요?”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그렇게 차를 홀짝이며 앉아 있기를 잠시.
공손무결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이쯤 되면 이성들이 돌아왔겠지. 다녀오겠습니다.”
“용운이가 무탈한지 궁금해하셨잖아요? 연공장부터 가고 싶으신 것 같은데 약왕당부터 가시게요?”
“뭐, 멀쩡하다니. 보는 눈들 생각해서 저쪽부터 가봐야겠습니다. 명 각주는 연공장에 있는 두 사람 불편함 없도록 챙겨주고, 용운이한테는 뒷걱정은 할 필요 없다고 전해주게.”
“예!”
* * *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들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언용운이 제 발로 뇌옥을 찾아간 지 한참.
백본회의 회의는 아예 하루 뒤로 연기가 되고, 어느덧 해가 넘어갈 시간이 되어 어둑해질 무렵.
정무학관의 후기지수 숙소에선 언동생들이 모여있었다.
그중 당옥기는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고는 지가 쳐놓고! 누가 누구보고 얌전히 있으래! 진짜 언용우우우운!”
당옥기의 외침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길 잠시.
우소릉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언 형은 괜찮으신 거겠죠?”
그런 우소릉의 말에 예해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글쎄요. 용운 후배님이 원철 스님과 때려눕힌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저마다 명문대파라 자부하는 곳의 후기지수들이라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오네요….”
“캭!!! 이럴 때 하연이나 설지가 있었으면 백본회 돌아가는 판도 예상해서 답을 알려 줬을 텐데. 하여간에 언용운이 문제야! 걔네는 왜 안 데려왔어! 또!”
그러던 중에 남궁윤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면 어떤가?”
“이런 상황에서까지 이상한 소리 하면 진짜. 궁윤이고 뭐고 독침 나간다?”
“…큼. 왜 후성을 공략할 적에 당옥기 너와 나 그리고 제갈설지가 아버님들을 움직인 적이 있지 않나? 예해수 선배님과 우소릉을 제외하면 가문이든 사문이든 백본회에 대의원을 보내왔으니.”
“그때처럼 움직여 보자고?”
“그래. 중한 처벌은 부당하다고 의견을 내달라는 청 정도는 과한 것도 아니지 않나?”
그 말에 남궁영이 반색했다.
“오라버니답지 않게 좋은 의견이네요!”
“……?”
“따지고 보면 용운 선배도 진짜 위험해 보이면 나서라고 하셨잖아요? 안 그래 동기들?”
“맞네! 저도 들었습니다! 영이 친구 말이 맞아요!”
“확실히… 그런 말씀도 하시긴 하셨지.”
“저희 입장에서는 지금이 바로 선배가 위험해 보이는 상황 아닌가요?”
남궁영의 말에 언동생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중 은하성이 의욕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은휘 상단은 제가, 옥기 누님은 당가로, 남궁 남매는 남궁가로, 선이는 해남파에… 아, 근데 선이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나? 입문례할 때 쓴 명부에 먹도 안 마른 거 아냐?”
“아닙니다! 말할 수 있습니다! 다들 제 이야기는 경청해주시는 편이세요. 존댓말도 해주시면서요!”
“…그럴 거 같기도 하다 싶네. 그럼 선이는 해남. 정현 도장은 개방으로.”
“저는 왜 개방입니까?”
“노삼 교수님이나 강골개 방주님이나 우리는 다 안면이 있어서 딱히 남이 아니고 하니까요?”
“그럼 우 소협이 가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무당으로 가겠습니다.”
“…그, 괜찮겠습니까? 아직 사문이랑 좀 그렇잖아요? 솔직히 용운 형님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을 벌이셨을까 싶은데, 혹시나 싶어 뭐라도 해보는 거니깐 굳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은데.”
은하성의 말에, 다른 언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정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역시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은 같습니다.”
그렇게 언동생들은 각자 사문과 가문을 찾아 흩어졌다.
정현은 장담한 대로 무당의 대의원이 묵는 객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다잡으며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시오.”
들려오는 목소리는 세간에 탈백검이라고 알려진 무당오협의 셋째 명일이었다.
수련 각주인 그는 정현에게 무당의 검을 처음 알려준 사람.
정현에겐 어렵기 그지없는 무당의 어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다.
백본회에서 발표를 할 때 이미 확인을 했었고, 오면서 마음을 다잡았지만.
막상 그 목소리를 들으니 입이 붙은 듯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하나 정현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정현입니다.”
“누구라고? 정현?”
“예.”
“들어오너라.”
그렇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가차 없기로 유명해 혼백을 앗는다는 별호가 붙은 탈백(奪魄)의 눈초리가 매섭게 정현을 향해왔다.
“나는 잘못들은 줄 알았다. 네가 어쩐 일이냐? 산문에서 나가 있으라 했다고 정말로 무당에는 얼씬도 안 하던 녀석이?”
“…그건.”
“어쩐 일이라고 묻지 않느냐. 수련이랍시고 해검지 앞에까지 거의 매일 올라오면서도, 도관에는 한 걸음도 들이지 않는 녀석이. 나를 찾아왔다면 안부 인사를 하러 온 것은 아닐 터. 달리 용건이 있는 것 아니냐?”
이 광경을 언용운이 보고 있었다면, 가슴을 쳤을 것이다.
명일은 원작에서 정현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었다.
정현 역시 무당을 미워하진 않았다.
스스로가 떳떳하다 여기는 것과 별개로 미안함이 있어 무당 앞에만 서면 조심스러워지고 작아지는 거였다.
한 마디로 두 사람 모두 고지식한 위인들인 것이다.
하여, 둘의 대화는 그간의 회포도 가슴에 담고 있는 말들도 생략한 채 곧바로 본론으로 치달았다.
“언용운 생도가. 부당하게 중벌을 받는 일은 피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드리고자 왔습니다. 그것은 도(道)가 아닙니다.”
* * *
나와 원철은 명태성이 데려다준 지하 연공실에서 운기조식을 했다.
그러고 나니 타격대 선배들이 난리 통에 끼니를 거르지 않았냐며 밥을 가져다주셨는데.
그걸 먹고 나니 새삼 귀가 간지러웠다.
“누가 내 이야기를 하나? 갑자기 귀가 왜 이렇게 간지럽지?”
- 지금 네 이야기를 하는 자가 꼴랑 한 명뿐이겠느냐? 하여간에 사부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천하에 고얀놈 같으니.
‘만날 제 길을 가라고 하시면서, 제 마음대로 했는데 그게 왜 고얀놈이 됩니까? 파천검문의 제자는 참 서럽네요. 저니까 합니다.’
- …제발 너를 꼭 닮은 제자든 자식이든 만나기를 내 기원하고 또 기원하마.
사부님의 마지막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고.
나는 근신을 명 받은 연공장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유사시 대피를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인지라 침구 같은 것도 다 있었고.
평소 타격대가 수련하는 곳인 지라, 수련에 필요한 용구는 없는 게 없었다.
“궁윤이를 본받아 무림맹의 뇌옥 구경이나 좀 하려 했는데. 이건 뭐 완전 호텔이네.”
“호투앨? 시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수련하기 좋겠다고요.”
“아하. 호투애루(好鬪愛樓). 싸우기 좋은 사랑스런 곳이라! 그러고 보니 정말 호투애루한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단어 아닙니다.”
“…아? 죄, 죄송합니다.”
머리를 긁는 원철을 향해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사질들을 그리 때려잡으셔 가지고 어찌합니까?”
“…때려잡다니요. 시주. 저는 승려입니다. 말씀이 좀.”
“그러니까요. 무슨 승려의 손속이 그렇게 살벌해. 어휴.”
“그, 그건! 제가 나서지 않으면 괴룡이….”
“아무튼. 숭산에 가면 완전 외톨이 되는 거 아닙니까? 이제 밥도 혼자 드시겠네.”
“사부님께서 매끼를 챙기시지 않으셔서, 공양 시간은 원래 혼자 갖는 편입니다.”
“…아.”
“…….”
그에 연공장에 숙연함이 내려앉기를 잠시.
- 누가 오는구나?
‘그렇네요? 맹주님이신가?’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기에 나와 원철의 고개가 동시에 연공장의 입구 쪽으로 향했는데.
철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내 예상과 달리 맹주님이 아니셨다.
“스, 스승님?!”
‘신승?’
다름 아닌 원철의 스승이자.
세간에선 천하제일인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불리는 공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