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13화 (313/444)

제313화. 거목 (1)

등장한 공덕대사의 모습에,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남다른 기도로다. 소림의 방장이라는 공효나 북해의 일로 봤던 공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무골이로고… 이 자가 당금 소림에서 제일가는 땡중인 모양이로구나?

‘예. 천하제일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곤 하는 분이니, 소림에선 당연히 적수가 없겠죠.’

그렇게 사부님과 대화를 하는 사이.

원철은 마른침을 삼키며 공덕을 맞았다.

“스, 스승님께서 여긴 어떻게?”

그 말에, 공덕대사는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는데.

“내가 소림의 벽곡단이나 축내는 늙은이이지만, 맹주님께 사고를 친 제자를 직접 꾸짖을 시간 정도는 허락받을 재간이 있다.”

그러면서 눈초리를 가늘게 하고는 원철을 바라봤다.

“숭산의 뒷방에서 늙어가는 스승이라 아무런 힘도 없는 줄 아느냐? 하기야, 그러니 이런 사고를 쳤겠지. 쯧쯧쯧.”

“그, 그런 게 아니라. 꾸짖으러 오셔도 사형들이 오실 줄 알았습니다. 스승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네 사형들은 네 녀석을 귀여워하기 바쁜 위인들이고, 심지어 나까지 따라온 판국인데 늙은이 눈치 살핀다고 혼이나 제대로 내겠느냐? 가만, 혹 그걸 믿고 이런 일을 벌였더냐?”

“그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다른 제자들과 달리 자라며 사고 한번을 안 치길래, 철석같이 믿고 모처럼의 외유를 만끽하라 자유를 줬더니만. 이렇게 늙은 스승이 뒷목을 잡게 만드는구나.”

공덕대사가 몰아붙이자, 원철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심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하나, 그 말을 들은 공덕대사는 되레 탐탁지 않다는 듯 수염을 쓸었다.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라. 벌인 일 자체는 떳떳하다는 말이로고?”

돌아온 물음에, 원철은 다시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예. 괴룡의 말과 행동이 틀렸다 생각지 않습니다. 이번 일에 가담한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허.”

“괴룡과 다른 후기지수들 사이의 감정이 격해질 무렵. 괴룡이 한 말이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나도 다 듣고 이리로 온 것이다. 어떤 말을 이야기 하는 것이냐?”

“백도가 빛이라 쳐도 그림자는 홀로 지지 않는다는 말. 약자를 무시하고, 적을 간과하고, 동료를 시기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늘이 진다는 말. 제자가 감히 다른 후기지수들의 삶을 재단할 수는 없겠으나… 그 자리에서 보인 태도와 말들은 괴룡이 한 말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원철은 공덕대사를 향해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하물며 이번에 낙양에 모인 후기지수들은 장차 사문과 가문을 이끌어나갈 사람들입니다. 각필 사질도 행사각을 맡고 있는 원경 사형이 장차 산문 밖의 일을 맡길 동량으로 생각해서 데려온 것이지 않습니까?”

“해서?”

“산문에서도 참선 중에 자세가 흐트러지는 제자에게 죽비를 칩니다. 천하를 지키라 전해주신 무를 동도(同道)들에게 사용한 일이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

“하나,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되돌아간다 해도 제자는 같은 행동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원철의 머리에 땀이 맺혀 반질거리는 것을 구경하기를 잠시.

원철에게서 눈을 뗀 공덕대사가 나를 향해 반장(半掌) 했다.

“인사가 늦었구려. 이 사람의 법명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소. 노납은 공덕이라 하오.”

“강호에 몸담은 자가 어찌 신승을 모르겠습니까. 언용운입니다.”

“숭산 곁의 작은 봉우리에서 지내는 몸이지만, 노납 역시 언용운이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왔소. 하여, 시주께서도 노납의 제자와 같은 생각이시오?”

그리고 질문을 해왔다.

‘대답을 잘해야 한다.’

공덕 대사는 백도무림의 최고 전력이나 다름없는 양반이고. 소림을 넘어 무림의 어른으로 여겨지는 분이었다.

이번 일을 잘 마무리 하고, 장차 소림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려면 결국 눈앞의 공덕대사를 움직여야 했다.

‘문제는 이 양반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건데….’

원작이나 지금이나 공덕대사는 소림에서 두문불출하며 수련에만 매진하는 일관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해볼 만하다.’

다행인 점은 내가 그의 제자 원철을 잘 안다는 것이었다.

제자를 보면 스승을 안다고 원철을 길러낸 위인이 심사가 꼬인 사람일 리는 만무했고.

선기가 흐르는듯한 눈동자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구석이 있었다.

그럼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 게 답이었다.

“떳떳하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말로 들리오만?”

“예. 원철 스님은 죽비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만, 승려들이 죽비를 맞는 것은 스스로 참선 중이라는 자각이 있을 텐데… 저희와 다툰 후기지수들이 그런 자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면?”

“그냥 다퉜고. 저희가 이긴 상황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분을 풀었으나, 맞은 녀석들은 분이 쌓였겠지요. 적절한 화해와 반성의 장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내 말에 연공장 안에 정적이 흐르길 잠시, 공덕대사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정진 대회 이래 원철이 시주의 이야기를 때마다 늘어놓고. 장문 사형과 공량 사제도 오가며 괴룡의 이야기를 전해주길래, 인물됨이 어떤가 싶어 바람도 쐴 겸 이리 낙양길에 올랐는데… 들은 대로 심지가 곧고 사려가 깊구려.”

“과찬이십니다.”

“성정이 거침없는 것이 양날의 검 같기는 하나 솔직함이 곁들어지니 흠으로 느껴지지 않는구려. 세상 사람들이 왜 시주를 입에 올리는지 알 것도 같소.”

“근신 중인 상황에 들어도 되나 싶은 말이기도 하고요.”

이어진 말씀에 답하자, 조금 더 진중해진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허허허. 괴룡만 괜찮으면 노납이 긴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하는데, 들어 주시겠소?”

“예. 뭐. 하십시오.”

“삭발을 하고 법복을 입는다고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라오. 더욱이 소림은 여타 사찰들과는 달리 속세의 일에 크게 관심을 두고 있소. 그렇다 보니, 허물을 벗어 던지고 해탈의 길로 나아가야 할 승려들이 되레 허물과 과를 쌓기 일쑤라오. 부끄러운 일이지.”

그렇게 나온 공덕대사의 이야기는, 소림의 과오에 관한 것이었다.

딱히 돌려 드릴 답이 없어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선기 가득한 눈이 다시 한번 나를 훑는 게 느껴졌다.

“소림의 업보가 한둘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오. 천년 소림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숱한 업보가 있으리라 생각하오만… 오늘 노납의 가슴에 걸리는 과오가 하나 있소. 다름 아닌 만박두타라는 분의 이야기오.”

*     *     *

갑자기 튀어나온 태사부님의 이야기에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를 못 할 뻔했다.

내가 그렇게 가까스로 태연한 척하고 있는 사이.

사부님께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셨다.

- …이자가 무슨 생각으로 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단 말이냐?

내 머릿속에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뭘 알고 저러시나? 내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 적도 없으신데?’

공효대사나 공량대사가 보긴 했지만 파천검문의 무와 비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연배들이 칠순에 이른 분들이시지만, 사부님이 활동하실 적엔 태어나지도 않았던 분이시니.

사부님의 검을 견식 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공덕대사 본인의 감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저만큼 불도를 닦으면 보이는 세계가 다른 걸까?’

그에 머릿속에 의문부호만 남은 이때.

“그처럼 빛나는 만박두타의 재능을 시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오….”

공덕대사는 언젠가 사부님께 들었던, 태사부님이 소림에서 겪은 일을 말했고.

그로 인해 사부님이 세상에 출현한 일까지 담담히 이어냈다.

“…검마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 늙은이는 태어나지도 못했으니. 당시의 일을 눈으로 목격한 이들은 다 죽고 없소. 하나, 그 일만큼은 알음알음 전해 내려오고 있다오.”

“그렇더라고요. 어투는 다르지만 각필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전하며 뒤틀릴 수도 있기 마련이라. 각필 그 녀석처럼 곡해하는 이가 나오고 말았지만… 죄스러이 여기는 사람도 남아있소.”

“…그게 대사님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다 이어진 내 물음에.

공덕대사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입적한 스승님께 받은 유지(遺志)가 바로 그 과오를 바로 잡으라는 거였다오.”

“…….”

“하여, 스스로를 천마라 칭하는 천마신교의 교주를 꺾을 무를 닦기 위해 평생을 매진해 왔으나… 한편으론 만박두타도, 위철진도 천하를 주유했던 사람인 만큼. 달리 그 맥을 계승할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왔지. 만약에 그런 이를 만나면 어찌하면 좋을까를 고민했소. 오랜 시간을 고민했으나 결국 답은 사과한다는 것뿐이더이다.”

그리고 소림의 예법인 반장이 아닌, 읍을 해 오셨다.

“하여, 노납이 이렇게 사과를 전할까 하오.”

“…아니. 그 말씀을 왜 저한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박두타의 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소. 그저 노납의 심중엔 시주가 그 일로 화를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라오.”

“…….”

“하나, 그것만으로도 늙은 중이 사과를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오. 이는 그러한 과오이니까. 그리고 이건 다짐이기도 하오.”

“다짐이요?”

“소림 역시 여느 문파와 다름없이 공도 있고 과도 있는 곳이나, 사(邪)를 떨치고 정(正)으로 가기 위해 애쓰겠다는 다짐. 노납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테지만… 여기 있는 원철이 이 마음을 이어갈 것이오.”

*     *     *

읍을 마친 공덕대사는 원철과 내게 입을 열었다.

“노납의 말은 가슴에만 담아주시면 좋겠소. 원철이 너도. 함부로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도록 하거라.”

겉보기엔 입단속을 하시는 투였으나, 기실 내 사문에 관한 이야기는 본인만 알고 있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예. 스승님.”

원철은 답을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자, 공덕대사가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풀어진 어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거듭 실례인데, 괜찮으면 노납이 시주의 무예를 견식 할 수 있겠소? 원철이 이 녀석이 못나긴 하나 어렵게 들인 제자인데, 정진대회에서 승복을 시킨 그 솜씨를 직접 겪어보고 싶어서 말이오.”

나는 사부님을 향해 물었다.

‘어찌할까요?’

- 네가 파천검문의 전인임을 이미 알고서 묻는 물음이다. 저 늙은 중이 나름대로 쌓은 깨달음으로 가르침을 주려는 거겠지.

‘그러니까요.’

- 그러니까요는 뭐가 그러니까요냐? 혈교 돈으로 혈교를 상대하겠다던 녀석이 이걸 왜 고민해. 빼먹을 건 빼먹어야지.

경계를 하시던 조금 전과 달리, 언제나처럼 퉁명스러운 사부님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회한을 뽑아 들었다.

“예. 그럼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렁-

내가 회한을 뽑자, 공덕대사는 반장을 하는 소림 특유의 기수식을 취하며 몸을 틀었다.

“원철이 너는 물러나 있거라. 지켜보는 네게도 공부가 될 것이다. 괴룡 시주는 준비되는 대로 들어오시오.”

그런 공덕대사의 모습이 내겐 어마어마한 거목처럼 느껴졌다.

‘이게 천하제일인으로 꼽히는 양반 기도인가?’

올려다보고 올려다봐도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를 짐작할 수 없어, 가지와 잎사귀의 형태는 어떤 모양으로 달려있는지 가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거목.

‘틈이 전혀 없다.’

그저 기수식을 취한 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등줄기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는데.

가만히 서 있다가는 평생을 이러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왼손에 상처를 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낼 수 있는 전력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혈조술에 파천의 내력을 실어 돌림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팟!

그렇게 시간을 쪼개며 치달은 나는 파천검법의 초식들을 맹렬히 펼쳐냈다.

쌕! 쌔액! 쌔애액!!

쌔애애액!!!!!

하나, 공덕대사는 그런 내 공격을 너무도 가볍게 막아냈다.

펑! 펑! 펑!!

퍼어엉!!!

아니, 막아냈다는 표현은 틀렸다.

공덕대사는 능히 피할 수 있음에도 합을 섞어 주었고.

그 와중에 내가 뻗은 회한을 슬쩍 밀거나 당기어 조금 더 위협적이었을 위치로 옮겨 주기까지 했다.

퍼엉!

그 정도로 실력 차가 나다 보니.

난 살초와 꼼수를 가리지 않고 지금껏 익혀온 모든 것들을 쏟아 낼 수 있었다.

휙! 휙! 휙! 휙! 휙!

날카롭게 세운 회한을 무수히 찔러 대다가, 파천선풍의 초식을 섞어 강기의 격류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쌔액! 쌔애애액!

운등류에서 비롯된 파천권법의 쾌권과 각법을 질러냄과 동시에, 항룡장을 분출하기도 했다.

꽈르르릉!!!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모든 것을 쏟아내고, 막히기를 반복하며 무언의 지도를 받기를 한참.

“!”

혈조술이 허락한 초월 상태가 끝이 날 무렵.

시야가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들며, 뭔가 한 걸음을 더 내디딘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순간 공덕대사가 입을 열었다.

“과함은 모자람만 못한다고 하였소. 시주의 묘한 비술이 허락한 시간이 다 된 듯한데. 이쯤 하는 게 좋겠구려.”

“헉. 흐헉.”

나는 호흡을 고르며 생각했다.

‘애초부터 하늘을 지탱하는 거목 같은 느낌을 받긴 했지만… 이렇게나 멀리 있나?’

백도무림의 기라성같은 명숙들의 무위를 견식도 해보고 때때로 지도도 받아봤던 나였다.

꼼수를 쓰긴 했으나 도올월마의 목을 베기도 했다.

하나, 이런 비슷한 느낌은 사부님이 잠시 실체화를 하셨을 때 말고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더 얻어 내야 한다.’

공덕대사 본인 입으로 천마를 대비하고자 무에 매진한다고 했는데.

원작에서도 그랬다.

공덕대사는 직접 무위를 선보인 적은 없었으나, 대사는 천마신교가 유리한 판국을 차지했음에도 마음 놓고 날뛰지 못 하게 하는 억제기 역할을 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천마를 묶어두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 말은 공덕대사가 당대 천마와도 어느 정도 견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거였다.

‘지금의 나로선 상대도 안 된다.’

나는 가쁜 호흡을 가누고는, 입을 열었다.

“허흑. 저도 대사님께 실례되는 부탁을… 허억. 하나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노납이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몇 수 더 배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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