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15화 (315/444)

제315화. 소림이 걱정 되는구만 (1)

언용운은 공덕대사를 따라 소림으로 떠났고.

이후 동이 터 올랐다.

그렇게 찾아오게 된 아침나절.

“밀직원장. 대의원들은 모두 오셨는가?”

공손무결은 백본회의 임시회를 소집했다.

“예. 맹주님.”

“후기지수들은?”

“분부하신 대로 개회식에 참석했던 후기지수들도 위층의 방청석에 다 자리해 있습니다. 아, 약왕당 신세를 지고 있는 이들은 빼고 말입니다.”

인원이 다 모였다는 보고를 들은 공손무결은 헛기침으로 주위를 환기했다.

“흠, 흠. 백본회 본회 안건은 오후에 다시 논의하기로 되어있었습니다만, 이렇게 대의원 여러분들을 소집한 이유는 그에 앞서 전달해드려야 할 사항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운을 뗀 공손무결은 언용운과 입을 맞춰 놓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밤에 공덕대사께서 이 사람의 방으로 찾아와 언용운과 원철 두 후기지수의 처분에 대해 여쭈셨습니다.”

그에, 백본회의 부회주 장손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승께서 말이오?”

“예. 어떤 처분을 받게 될 것 같냐 여쭈시기에, 주먹다짐을 벌인 양자 모두 잘잘못이 있고. 또 먼저 벌을 청하기도 했으니, 근신 처분 정도면 적당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대사께서는 고작 그런 처분으로 망아지 같은 두 후기지수가 뉘우치겠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호. 그래서요?”

“근신을 시킬 거면 본인의 암자로 데려가서 따끔하게 훈육을 하겠다고 하시더군요. 무림의 큰 어른의 말씀이시기도 하고,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고 느껴져서 그리하시라는 답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공손무결의 말이 끝나자.

이 층의 방청석에서 빽! 하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이윽고 일 층에 자리하고 있던 대의원들도 입을 열었다.

“이유야 어쨌건, 무림맹에서 주먹다짐을 벌인 녀석들에게 타격대의 연공실에서 보내는 근신 처분은 솜방망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공덕대사께서 직접 훈육하신다면야 제대로 된 근신 처분이라 할 수 있겠지요.”

“맞습니다. 공덕 대사께서는 젊어서는 소림의 계율원주를 맡으셨던 분이시고, 일생을 엄격한 참선과 수련에 매진하신 분 아닙니까?”

“늘그막에 들인 수제자인 원철 스님께도 엄격하기로 유명하신 분이니. 대사님 밑에서 근신을 하면 그 모난 성정이 조금은 다듬어지겠지요.”

공손무결은 웅성이는 좌중을 진정시키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흠흠. 두 후기지수의 신병인도에 관한 것은 사실 무림맹주의 직권에 속하는 사안이라 백본회의 허락이 필요치 않으나, 다들 궁금해하실 것 같아 알려드렸습니다. 이상으로 전파(傳播)를 마치며, 본래 회의는 잠시간의 휴회 후 예정대로 오후에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공손무결은 다시금 휴회를 선언했다.

그리고 제갈혜와 함께 맹주실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떻게 용운이가 엄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새겨진 것 같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죠. 사실 저희도 어제 공덕대사님 말씀만 들었을 때는 뭔가 싶어서 용운이에게 직접 확인까지 했었잖아요?”

“하기야.”

“그리고 용운이를 따르는 애들이 빽! 하고 소리 지르는 거 못 들으셨나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두 사람이 언급한 당사자들이 국도진을 통해 기별을 해왔다.

“맹주님. 대군사님. 정무학관의 후기지수들이 뵙기를 청합니다.”

“참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하여튼 양반들이 못돼요.”

제갈혜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고, 마주 웃어 보인 공손무결은 밖을 향해 답했다.

“들여보내게.”

그러자 벌컥 문이 열리며, 언동생들이 쏟아지듯 맹주실 안으로 들어왔다.

“혜 고모! 무능하세요!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나요?!”

“맞아요오!”

선두에 있던 당옥기가 소리를 내자 언동생들은 맞장구를 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제갈혜가 아미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너희 지금 정무학관의 생도 자격으로 온 거 아니니? 특히 옥기 너. 여기 사가(私家) 아니다? 혜 고모라니.”

제갈혜의 말에 담이 작은 우소릉은 바로 꼬리를 말았다.

“…죄, 죄송해요.”

하나, 당옥기는 배 째라는 듯 더 목청을 높였다.

“캭! 알게 뭐람?! 저도 잡아가시던가요!”

“얘가?!”

그에 제갈혜의 표정이 굳어지려 하던 때.

예해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용운 후배님의 일인 지라 다들 격양이 좀 됐는데, 저희가 여기 온 이유는 왜 그런 결론이 난 건지 여쭙고 싶어서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가문과 사문이 탄원까지 했는데, 후배님을 향한 처분이 더 중해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예해수가 말을 마치자.

공손무결이 입을 열었다.

“차근차근 설명해줄 테니 진정들 하게, 다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질 걸세. 그리고 대군사님.”

“예. 맹주님.”

“아이들 반응이 이럴 것이야 예상하셨지 않습니까?”

“예상은 했지만, 옥기 쟤가 너무 철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이를 악물고 말았네요.”

그렇게 좌우를 진정시킨 공손무결은 재차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결정은 용운이가 선택한 것일세. 나도 돕고 본인도 이참에 무(武)를 가다듬겠다며 본인 스스로 공덕대사님을 따라갔지.”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공덕대사와의 독대 뒤에 공손무결과 제갈혜가 연공실을 찾아갔던 이야기로 이어졌고.

언용운이 ‘언동생들도 모르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라는 말을 했던 순간까지 이어졌다.

그러자, 당옥기가 다시 한번 목청을 높였고.

“언용우운! 죽어어어어!!”

우소릉은 맞장구를, 은하성은 헛웃음을 지었다.

“저희까지 모르게 하신 것은 너무해요!”

“용운 형님이 용운 형님 했다 진짜.”

입을 연 것은 세 사람이었지만, 다른 언동생들도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남궁윤은 그들을 나무라듯 입을 열었다.

“시끄럽다. 옛말에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언용운 그 녀석이 심중에 천하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에 내린 결정일 것이다. 그리고 녀석도 속으로는 우리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 녀석이니까.”

평소 오라버니를 핀잔하기 일쑤인 남궁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남궁윤의 말에 동조했다.

“이건 저희 오라버니 말이 맞죠. 용운 선배가 심계 천하를 품고 사시는 분이기도 하고, 은근히 속정이 깊으시지 않나요?”

그동안 정현과 팽소진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 소협도 말씀하셨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저희한테까지 말을 안 하실 수가 있습니까? 도가 아닙니다. 원시천존. 도가 아니에요. 저는 뭐라도 해보려는 심정으로 영일 사숙조까지 뵈러 갔었는데….”

“진짜 대단해 언용운. 하기야, 이 자식 혼자 마교를 쫓다가 비급을 날린 거였으면서, 가문에서 쫓겨나고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녀석이었지 참….”

가만히 언동생들의 성토를 듣고 있던 제갈혜가 다시 입을 연 것은 이때였다.

“자자. 아무튼 사정들 알았으면 이제 진정들 해. 그리고 용운이가 아예 비밀로 한 건 아냐. 독고철. 철이 쟤한테는 말했을걸?”

제갈혜의 말에 언동생들은 일제히 독고철을 응시했고.

독고철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회, 회장님께서 선배님들이 맹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실 경우를 걱정하시며, 제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말씀을 하시긴 하셨습니다.”

장선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성토를 했고.

“동기는 하나라고 배웠는데! 나랑 영이 친구한테도 숨기다니 너무하다!”

다른 언동생들도 독고철이 혈교에 귀의한 사람이란 것을 까맣게 잊고 배신감이 서린 눈빛을 보냈다.

그런 시선들에 기가 눌려 절로 말을 더듬게 되는 독고철이었지만.

“하, 함구하라고 하셔서 어쩔 수가 없었다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그는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역시 회장님은 나를 가장 아끼신다. 이번에 불같이 화를 내신 것도 교에 귀의한 이들을 싸잡아 곰팡이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하시니 그런 것이겠지….’

독고철이 그러고 있던 때.

언동생들은 저마다 한숨을 쉬며 언용운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후. 그래서 후배님은 괜찮으시려나요?”

“쓰흡. 그 빡빡이 새기들… 이번에 그 각필이라는 녀석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머리만 새하얗지, 속은 시커먼 놈들이 천진데. 그 소굴에서 형님 혼자 괜찮나?”

“안 괜찮으면… 그 빡빡이들 이마에 찍혀 있는 그 주사위 눈 같은 그거 뭐라고 그러더라?”

“원시천존. 계인(戒印) 말씀이십니까?”

“그래! 거기다가 독침 찔러버려!”

“…은 소협. 당 소저. 맹주님 앞입니다.”

그런 언동생들의 모습에.

공손무결은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한참을 원수처럼 성토한다 싶더니. 이젠 또 걱정을 하나? 너무 걱정들 하지 말게. 용운이 그 녀석이 어디 녹록한 위인인가? 나는 되레 소림이 걱정 되는구만.”

그렇게 웃음을 지은 공손무결은 새로운 이야기의 운을 뗐고.

“아무튼 용운이는 정무학관의 견학단이 복귀하는 길에 숭산에 들리면 합류하기로 했고. 녀석이 자네들을 남겨놓고 간 이유가 따로 있다네.”

“왜 다들 그렇게 할 일이 뭐냐는 눈들을 뜨고 있어? 용운이랑 원철스님의 처분은 결정 난 상황에서 달리 남은 일이 뭐겠니?”

곁에 있던 제갈혜는 그 말에 한마디를 더했다.

“약왕당에 누워 있는 애들도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 얼마 전에 건물 올린 화생방실의 첫 개시를 좀 해야겠다. 독을 마시는 훈련인 만큼 얼을 바짝 차려야 할 텐데… 너희가 용운이 밑에서 배운 체조들을 전수해 줘야 하겠다 싶네.”

언동생들의 눈동자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     *     *

소림의 지옥 순례.

그 첫 관문이었던 도산지옥(刀山地獄)을 돌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쏟아지는 암기들을 쳐내고 또 쳐내다 보니, 어느 순간 뿌연 안개가 걷히며 사위가 또렷해졌고.

사부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모양이로구나.

그에 나는 열 개의 지옥 중 첫 번째 관문을 돌파했음을 깨달았다.

두 번째 지옥인 초강지옥(初江地獄)과 세 번째 지옥인 한빙지옥(寒氷地獄)은 인내력과 정신력을 시험하는 구간이었다.

촤아아악-

각각 비위를 시험하는 오물 세례와 혹한의 한기가 나를 찾아들었으니까.

사하악-

썩은 시체의 악취와 망자의 음기에 익숙한 내겐, 두 번째 관문과 세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것 역시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윽고 들게 된 네 번째 관문인 검수지옥(劍樹地獄).

챙! 챙!

채채챙!

이 관문에선 검을 빼든 시커먼 그림자들이 합격진을 이루고 촘촘한 공격을 끝도 없이 이어냈는데.

채앵!!

나는 회한을 휘둘러 그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진법의 생리를 파악하여 핵을 점하고 있던 그림자를 베어냈다.

“이거다.”

샥!!!!!

그러자, 안개가 걷힘과 동시에 사위가 돌아왔다.

네 번째 관문까지 돌파해낸 것이었는데.

“후. 사부님 지금 시각이 얼마쯤 지났습니까?”

- 실제 시각은 나흘쯤 되었을 것이다. 안과 밖의 시간은 다를 테니 말이다.

“스물여덟 날은 이 안에 있은 느낌인데, 실제론 그것밖에 안 지났군요. 애들은 뭐 하고 있으려나?”

- 네 욕을 하고 있겠지. 그게 판단이 안 서느냐?

“?”

- 하여, 네 번째 관문은 어떻더냐?

“할만하던데요? 공덕대사님과의 대련 덕분에 눈이 좀 트인 느낌입니다.”

- 허어.

“뭡니까 그 맥빠지는 소리는?”

- …몰라서 묻느냐?

“모르니까 묻죠.”

- 내가 가르침을 내린 시간들이 아니라 늙은 중과의 찰나를 꼽아? 에이이잉!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아니.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됩니까? 그건 기본이죠. 사부님과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덕에 공덕 대사와의 대련에서 뭐라도 건질 수 있었던 거죠. 당연한 말이라 되레 이야기할 필요가….”

- …….

“…사부님?”

- …….

“저기요? 듣고 계십니까? 나 누구랑 말하니? 대답 좀 해주시지… 에잉. 삐지셨네.”

그렇게 사부님과 몇 마디를 나누고 있는 이때.

다시금 사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호흡을 고르며 원작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지옥순례의 내용을 상기했다.

‘원작에선 소림의 제자들이 거치는 관문이라고만 묘사되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았지….’

하나, 다섯 번째 관문과 일곱 번째 관문 그리고 열 번째 관문이 중요하고 어렵다는 말은 나왔다.

‘불교의 지옥 순서를 생각하면 염라지옥(閻羅地獄) 차례인데….’

저승 전체를 총괄하는 대왕처럼 여겨지는 양반인 만큼 머리 세 개에 팔 여섯 개 달린 요괴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기도 잠시.

귀에 익은 익숙한 음성이 내 이름을 불렀는데.

“언 형!”

“우소릉?”

“여기서 뭐 하세요?”

동시에, 녀석 특유의 쾌검이 나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쌔애애애애애액!!!!

혈색, 호흡. 동작.

지내오며 쭉 보아온 그 모습과 판박이처럼 똑같은 우소릉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실소를 머금게 했는데.

‘내 심상에서 기인해서 그런가? 진짜 똑같네.’

채챙!

채애애앵!

내게 투로를 제압당하고 나면 으레 짓곤 하던 울상까지 그야말로 똑같았다.

“언 형. 자, 잘못했어요.”

이를 악물고 녀석을 베어냈으나.

촤악!!!

회한을 쥔 오른손에 땀이 차는 느낌이 들었다.

“하하. 와. 이거 아닌 거 아는데. 쉽지 않네.”

진짜가 아님을 아는데도, 손에서 땀이 나고 검신이 엷게 떨려왔다.

“전생엔 누가 이런 함정들에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별거 아닌 거에 왜 당하지, 생각했었는데….”

내겐 정신 면역이 있어 해당 사항 자체가 없었지만, 면역이 없다 하더라도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절의 내겐 그저 끊어낼 정이 없었을 뿐인 모양이었다.

“정이 들긴 들었네.”

그렇게 헛웃음을 흘리고 있은 지 잠시.

또다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으니.

다름 아닌 윤영 숙부였다.

“용운아.”

“하.”

앞의 관문들로 미루어 짐작건대 각 관문에서 내가 보내야 하는 시간은 칠일.

칠일이면 이 세상에 흘러들어와 정을 쌓은 사람들을 모두 만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너무하긴 하네. 부처님도 여기 들어오시면 돌아앉겠다.”

눈앞의 윤영 숙부가 나를 향해 말을 건넨 건 이때였다.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뭐가 됐든 고단하면 그만두거라. 용운이 네겐 어미도 있고 나도 있고 또 외조부님도 계시지 않느냐.”

“너무하다 그랬지. 그만둔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아…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가네.”

나는 긴 숨을 내쉬었다.

“후.”

그리고 이를 악물고는 회한을 꽉 움켜쥐어 떨리던 검신을 고정시켰다.

장차 다가올 위협으로부터, 진짜를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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