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16화 (316/444)

제316화. 소림이 걱정 되는구만 (2)

“공손무결입니다. 약왕당에서 각필과 소림의 제자 몇을 제외한 다른 후기지수들이 모두 기력을 회복했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언용운과 원철이 엄한 징계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

“하여, 오늘은 며칠 전에 전파한 두 후기지수와 주먹다짐을 벌인 다른 후기지수들의 처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림맹에서 주먹다짐을 벌인 일은 가벼이 보기 어려우나, 여러 사정들을 고려하여 맹은 해당 후기지수들에게 내년부터 적용될 타격대의 신규 훈련 양식을 체험시킬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이의 있으신 대의원 있으십니까?”

“…적절한 처분이라 생각됩니다.”

“하면, 전파를 마치겠습니다.”

두 사람과 주먹다짐을 벌인 다른 후기지수들의 처분은 일사천리로 결정이 났다.

“약왕당에선 다 나았다고 하는데. 아직도 뼈가 시리는구만.”

“나는 몸은 괜찮은데 밤마다 언용운의 악귀 같은 손속이 꿈에 나온다네. 이 와중에 훈련이라니….”

그렇게 처분에 관한 전언을 들은 후기지수들은 무림맹의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연무장에 모이게 되었다.

“그러게 말일세. 후. 나는 아버님께서 언용운에 비해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이라고. 여기서까지 사고를 치면 호적에서 파겠다고 엄포까지 놓으셨다네.”

“우리 사부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네. 한데, 타격대의 신규 훈련 양식이면 뭐가 달라진 것인가?”

“기존의 것에 근성과 조직력을 기르는 훈련 그리고 얼마 전 사천에서 일이 터졌을 때 화제가 됐던 독공을 대비하는 훈련이 추가되었다 하던데?”

그런 이들을 향해 빨간 모자를 눌러쓴 언동생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일사불란하게 뒷짐을 지고 섰는데.

그들 중 가운데 선 남궁윤이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어느 문파의 어떤 올빼미가 잡담을 하는가?!”

갑작스레 달려 나와 일갈하는 남궁윤의 모습에, 연무장에 서 있던 후기지수들 사이에선 웅성거림이 새어 나왔다.

“…올빼미?”

“저들은 언용운을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들이 아닌가?”

그러자마자 남궁윤은 일갈했다.

“닥쳐라! 본인 그리고 옆에 선 이들은 무림맹의 결정에 의해 올빼미들을 훈련 시킬 교육관이다.”

“…….”

“지금부터 상호 간의 호칭은 교관님과 올빼미로 통일한다. 허락되지 않은 질문이나 발언은 모두 불복으로 간주할 것이며. 불만이 있는 자는 거수해도 좋다. 즉시 훈련에서 제외시켜주지.”

그 일갈에 순식간에 사람에서 올빼미가 된 후기지수들이 합죽이가 되자, 남궁윤은 계속해 말을 이었다.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알겠다. 그럼 교육을 시작하지. 올빼미들의 심중에는 천하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 천하를 생각하지 않는 무인은 한낱 무부이고 폭력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모두 옆에 있는 다른 올빼미의 어깨에 팔을 걸어라! 실시!”

“시, 실시.”

“하나에 앉으면서 천하를 둘에 서면서 생각하자. 하나.”

“천하를.”

“목소리가 작다! 그 상태로 앞으로 취침!!!”

당옥기와 예해수는 맡은 바가 따로 있어 교관역을 맡지 않고 멀찍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언용운과는 다른 느낌으로 빡빡함이 느껴지는 남궁윤의 모습에, 당옥기는 혀를 내둘렀다.

“…와. 궁윤이의 천하 타령이 이렇게 절묘할 때가 다 있네. 남궁세가라는 배경에다 고압적인 말투, 언용운에게 물든 정신상태까지 완전히 제 옷을 찾은 느낌인데? 해수 선배 생각에도 그렇죠?”

“예. 그런데 옥기 후배님?”

“넹?”

“그러고 계셔도 돼요? 화생방 쪽 점검은 다 하셨나요?”

“…엑. 언용운이 없으니까. 이제 선배가 쪼는 거예요?”

“쫀다기보다는 할 일이 많으시니까요.”

“화생방 시설이랑 사용될 호초탄들은 다 점검했어요!”

“만독단 연구는요?”

“…….”

“제가 걱정돼서 그래요. 용운 후배 만났을 때 한 소리 들으실까 봐. 겸사겸사 연대 책임으로 저희까지 힘들어지고… 막 그럴까 봐요.”

“캭! 물이 안 든 사람이 없어! 갈게요! 가!”

*     *     *

한편, 소림의 방장실.

공효와 공덕이 차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늙수그레한 음성이 기별을 해왔으니.

“방장 사형! 공량입니다!”

소림의 제자로, 낡은 승복을 기워 입어 가며 천하를 주유하고 다니는 협심승 공량이었다.

그 음성에, 공덕은 자신의 뒤편에 있던 방장실의 문을 열었고.

“공량 사제 오셨는가.”

“아이고. 공덕 사형도 계셨습니다?”

함박웃음을 짓는 사제를 향해, 소림의 방장 공효대사가 입을 열었다.

“사제가 어쩐 일인가?”

“어쩐 일이라뇨. 늙은 사제를 핍박하십니다, 그려. 천성이 나돌기를 좋아한다고 이제 소림의 문간에 발도 못 들이게 하시렵니까?”

“사람 말을 곡해하기는… 사제가 어디서 지내겠다 하면 최소 반년이 아닌가? 사천에서 지내겠다고 딸랑 서신 한 장 남기고 사라진 지 넉 달이 채 안 지났기에 묻는 게지.”

“대마두가 나타난 곳인지라, 희생된 백성들은 없는가 싶어 가봤는데… 아미와 청성, 당가의 제자들이 죽고 다친 것과 별개로 민초들이 입은 피해는 거의 없더이다.”

“불행 중 다행이로고.”

“예. 하여 황하를 타고 돌아오는데 괴룡이 숭산에 왔다는 이야기가 들리길래, 생명의 은인 얼굴이나 볼까 해서 왔지요.”

공량의 입에서 이 말이 나왔을 때, 공덕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생명의 은인? 사제. 그 말이 괴룡 시주를 두고 하는 말이신가?”

“예. 저번에 제가 북해 갔다 와서 했던 이야기 기억 안 나십니까? 이 사제가 조심성이 없어서 변을 당할 뻔한 것을 언용운 그 친구가 구해줬었더랬지요. 괴룡이 숭산에 없는 것입니까?”

“시주가 예 있기는 하네만, 그런 소리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말게. 젊은 떡잎에게 부담이 될 수가 있어.”

“사형이 괴룡 시주를 잘 모르나 본데, 그 친구 성정이 여간 단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는….”

“본인의 심성이 단단한 것과 별개로 흔들려는 자들도 생길 수 있고, 시기하는 무리가 생길 수 있네. 사제는 괴룡 시주가 숭산에 왔다는 이야기만 듣고 각필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가?”

“각필이 그놈이야 제가 예전부터 싹수가 노랗다고 했는데. 원경 그 녀석이 중으로서는 드물게 셈이 밝다며 끼고 돌더니만, 내 언젠간 사고를 칠 줄 알았습니다.”

“이 사람아. 지금 내가 각필의 이야기를 하자고 그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지 않은가.”

“수백, 아니 수천수만 번을 흔들려야 고수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어찌 그리 사제를 면박 주십니까. 심지어 원철이보다 더 싸고도시는 느낌이네.”

공효가 다시 입을 연 것은 이때였다.

“공덕 사제 앞에서 무를 논하는가? 그만 투덜대시게. 그리고 원철은 소림의 제자고 품 안에 있는 녀석이야, 괴룡은 그렇지 않으니 조심스러운 것을 왜 몰라?”

“크흠.”

“어찌 눈썹이 하얗게 세고도 철이 없으신가. 사제가 그러고 다니면 남들이 소림을 뭐라 생각하겠어?”

“제가 사형들 앞에서나 이러지, 나가서는 늙어 빠진 중답게 체통을 지키고 다닙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여튼 괴룡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습니까?”

“무간동에 들어간 지 이레쯤 되었네.”

공효의 말에 공량은 기함했다.

“무간동?! 소림의 제자도 아닌 녀석을 무간동으로 들여보냈단 말입니까?”

“소림의 제자만 무간동에 들여보내야 한다는 계율 같은 것은 없네. 사제도 천하를 주유하며 몇 번이고 시국이 수상하다 하였고, 공덕 사제도 늘 십만대산을 걱정하고 있지 않나? 될성부른 후기지수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시점이야.”

“제가 지금 무간동에 괴룡을 들여보낸 것을 두고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참선과 동떨어진 삶을 산 녀석이 심마에 들까 그렇지요.”

그에 듣고 있던 공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본 바로는 소림의 제자들이 필수로 거치는 일곱 관문은 능히 견뎌낼 성정이었네.”

“…그럼 일곱 관문이 끝나면 진법에서 벗어나라고 일러 주셨습니까? 이후의 관문을 속세에서 자란 괴룡이 견디기는 힘들 텐데요? 소림의 제자들도 통과한 예가 드뭅니다.”

“그걸 말해줘서야 그릇을 넓힐 기회가 되지를 않지.”

“…허. 하면 지금쯤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려서부터 소림에 들어와 내 밑에서 깨끗한 심상 위에 단호함을 쌓은 원철도 일곱 관문을 끝내는 데는 꼬박 보름이 걸렸네.”

“괴룡의 무위가 원철이보다 낫지 않습니까?”

“무위야 원철보다 나을지 몰라도, 시주는 속세에서 자랐으니… 아마 다섯 번째 관문에서 한창 고역을 치르고 있지 않겠는가? 그 고역을 치르고 나면 일곱 번째 관문이 끝났을 때 제 발로 밖으로 나오게 되리라 보네.”

*     *     *

부처님도 돌아앉겠다 평했던 다섯 번째 관문을 지났다.

그리고 여섯 번째 관문과 일곱 번째 관문을 해치우고 나니.

쿠구궁-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출구가 드러났다.

- 이만 나가도 좋다는 것으로 보이는구나?

“지옥 순례라는 것이 불가의 지옥을 모태로 삼은 곳이니까요. 일곱 지옥을 돌파했으니… 제가 진짜 죽은 사람이라 치면 사십구재의 기간이 끝나고 환생문 앞에 설 즈음 아닙니까?”

- 하여, 나갈 것이냐?

“아뇨. 염라지옥을 돌파한 터라 무서운 게 없습니다. 조금만 더 궁구(窮究)하면 뭔가 손에 쥘 수 있을 듯도 하고. 안의 시간이 밖과 다르게 흐른다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그렇게 더 남겠다 결정을 내리니, 다시금 철문이 닫혔고.

이윽고 여덟 번째 관문이 시작됐다.

이번에 마주하게 된 시련은 만천화우의 한복판에 위치하게 된 것처럼 바늘과 못들이 빽빽이 쏟아지는 시련이었는데.

챙! 챙!!!

채채채챙!!!!

맞아야 할 것은 맞고 쳐내야 할 것은 쳐내며, 버티기를 한참.

쏟아지던 바늘 세례가 우뚝 끊겼다.

“끝났나? 한데 이번에는 왜 사위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지?”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들던 이때.

눈앞에 실체화한 사부님의 형상이 나타났다.

“!”

다섯 번째 관문에서 다른 사람들로 먼저 경험한 바 있지만, 눈 앞의 사부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육안으로는 구별이 되지 않았는데.

사부님의 경우는 존재 자체가 세상의 섭리를 벗어난 존재셨기에 더더욱 그랬다.

“다섯 번째 관문에서 사부님은 왜 나오시지 않나 싶더니만….”

그에 나는 단박에 아홉 번째 관문이 시작됐음을 알아챘다.

마지막 세 관문에선 쉬는 시간처럼 작용했던 순간이 주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부님의 형상이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이때였다.

“네 녀석과 사승을 맺을 시기엔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얼결에 제자를 맺었는데… 이 자리를 기회 삼아 네 녀석이 파천검문에 어울리는 그릇을 갖췄는지 제대로 확인을 해야겠다.”

나는 그런 사부님을 향해 너스레를 건넸다.

“하나뿐인 제자를 어쩌시려고요? 그러다 저희 사문 문 닫습니다?”

“파천의 길을 감당치 못할 그릇이라면, 내 손으로 깨버리고 문을 닫아걸어야지.”

으레 주고받던 너스레조차 거절하는 사부님의 모습에서 나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 보면 사부님은 피를 나눈 가족이나 언동생들보다도 더 오래 정을 쌓은 분이었으니까.

달칵-

하나, 나는 곧 그런 마음을 접어두고 회한을 고쳐잡았다.

눈앞의 사부님이 가짜든 진짜든 내 각오를 보여 드리는 게 이 관문을 통과하는 해법이자, 제자로서의 도리일 터였다.

“네 녀석이 덤벼드는 것은 무리겠지. 내 쪽에서 가도록 하마.”

사부님께서는 그 즉시 땅을 박차 오셨는데.

쐐애애애애애액!!!

전해지는 위압감은 마치 태산이 달려드는 듯했고.

휘둘러지는 검초는 손이 부르트도록 휘둘러,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파천의 검초임에도 감히 변초를 종잡을 수 없었으며.

휙! 휙! 휙! 휙! 휙!

챙!!

예리함의 격 역시 달랐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들어간 수업료는 오른팔이었다.

촤아악!!!

하나, 나는 오른팔이 잘려 나가는 순간에도 굴하지 않고 왼팔을 내뻗었고.

촤악!

그렇게 왼팔마저 잃게 되었을 땐.

땅을 박참과 동시에 박치기를 내질렀다.

쌔액!!

하나, 사부님은 너무도 쉽게 일격을 피해낸 뒤 나를 걷어찼다.

뻑!

우당타탕!!

덕분에 땅을 구른 나는 기를 쓰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사부님을 향해 기어갔다.

사부님은 내가 뭘 하려나 싶으셨는지 가만히 두고 보고 계셨는데.

잘근!

기를 쓰고 기어간 내가 사부님의 다리를 깨물자.

빡!!

다시금 나를 걷어참과 동시에 혀를 차 오셨다.

“쯧쯧쯧. 하찮구나. 파천검문의 제자라는 녀석이… 스스로의 모자람을 인정하고 그릇을 깨 달라고 하였으면 차라리 장부다웠을 것을. 하찮고도 구질구질하구나. 머리가 없어지면 이제 어쩌려는고?”

“그럼 저주라도 해야지요. 제자는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합니다. 죽으면 죽었지 포기 안 합니다.”

“…두렵지는 않으냐?”

나는 다시금 땅을 기며 입을 열었다.

“파천(破天). 하늘을 깨고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가 뼈와 살이 녹는 것을 어찌 겁내겠습니까. 사부님의 눈엔 이 제자의 모습이 하찮고 구질구질해 보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오직 태사부님의 명예를 되찾고자 불꽃처럼 살다 가신 분이시니까.

“아시다시피 이 제자는 욕심이 좀 많습니다. 사부님과의 약속, 목숨을 맡겨오는 언동생들, 부모님, 맹주님, 정무 학관의 교수님과 생도들… 일일이 열거하려면 끝이 없죠.”

나는 그런 불꽃은 될 수 없다.

“하찮고 구질구질하여 누군가는 객기라 여길지라도, 저는 두려워하지도 뜻을 꺾지도 않을 겁니다. 그럼 제가 녹아 없어지더라도 누군가가 반드시 제 뜻을 이어갈 테니까요.”

때로는 탁해지고 이따금 가로막힐지라도 끝끝내 대양에 이르는 물줄기를 만들고야 말 것이다.

“그게 제자가 파천의 길에 임하는 각오입니다.”

그런 내 모습에 사부님은 아무 답도 하지 않으셨다.

말없이 다시 검을 부여잡을 뿐.

그 검이 다시금 내리치리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졌지만,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던졌고.

동시에 사부님의 검이 휘둘러졌다.

슈욱!!!!!

그러자, 주변이 빨려 들어가듯 암전됐는데.

“!?”

사방이 시커먼 공간에서 오직 나 홀로 독존하는 가운데, 잘려 나간 팔다리가 돌아와 있었다.

아홉 번째 관문이 끝남과 동시에, 열 번째 관문이 시작된 듯했다.

“흑암지옥(黑闇地獄)인가?”

한데, 이 와중에 몸이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몸을 움직여 보았다.

“느낌만 그런 게 아니야.”

본디라면 이곳은 수행자에게서 오감을 빼앗아 절망을 주는 곳.

하나 내가 느끼고 있는 느낌은 오히려 그와 반대였다.

조금 전 죽음의 관문을 넘으며 조화경을 향해 또 한 걸음을 내디디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는지.

신체 장악이 극에 달하여, 생각하는 즉시 몸이 그대로 따라주고 있었다.

‘…뭔가 알 것도 같다.’

그렇게 시커먼 공간에서 홀로 몸을 움직이고 있은 지 한참.

일곱 번째 관문을 통과할 때 보았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쿠구궁-

한 줄기 빛과 함께.

출구가 열린 것이다.

“열 번째 관문까지 끝이 난 건가?”

그곳을 향해 걸어간 지 잠시.

“음?”

출구로 향하는 길에서 갈라지는 또 하나의 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놈이 그 길에서 걸어 나와 입을 열었다.

“언용운. 더 큰 힘이 필요하지 않나?”

“…….”

“찰나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게 이곳이다. 현세에서 결코 연습 삼아 겪어보기 힘든 생사고락과 오욕칠정의 경계들도 경험할 수 있다. 여기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수련하면 더 높은 경지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힘을 위한 힘이 아니다.”

“…뭐?”

“힘이 필요해서 얻고자 하는 게 아니라, 지키고 싶은 게 많아서 강해지려는 거란 말이다.”

가운뎃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회한을 내리그었다.

“그러니까 꺼져.”

촤악!!!

그렇게 내 모습을 한 형상을 베어낸 나는 미련 없이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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