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7화. 소림이 걱정 되는구만 (3)
마지막 갈림길을 뒤로하고 출구를 향해 걸은 지 잠시.
쨍한 빛살이 눈꺼풀 위로 쏟아졌다.
“윽.”
그에 눈을 찌푸렸다 뜨니.
무간동으로 진입하는 초입이 눈에 들어왔고.
동시에 근처에 있던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앵! 대앵! 대앵!
아무래도 무관동에 들어갔던 사람이 나왔음을 알리는 기관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울리는 종을 응시하고 있는데,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다.
-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구나. 소림의 지옥 순례라는 것이 다 끝이 난 모양이로고?
그런 사부님을 향해 나는 뾰족한 생각을 전했다.
‘…용운은 이 일을 잊지 않을 겁니다.’
- ???
‘어쩜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 뭐가 말이냐?
‘…후. 제가 팔이 날아가고 뭐 그런 건 진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근데 그 말씀들은… 진짜 서러웠습니다. 말로 새긴 상처는 아물지 않는 것을 모르십니까? 하나뿐인 제자한테 그런 폭언을 하시다니. 파천검문의 유일한 전승자는 오늘도 서럽습니다.’
- 아까부터 그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는 대도?
‘귀신은 사부님이시고요.’
- ?
‘?’
반응을 보아하니, 안에서 마주한 건 사부님 본인이 아닌 모양이었는데.
사부님께서도 내가 겪은 시련의 내용을 얼추 짐작하고 되물으셨다.
- 이후의 관문에서 내 형상이라도 보았느냐? 앞의 관문과 달리 터울 없이 사흘이나 조용하다가 멍한 상태로 걸음을 올리길래, 심마에 들었는가 걱정하고 있었구만! 뭘 어쨌길래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 말씀에선 나를 아끼는 마음이 묻어났다.
그 음성이 반가웠고, 감사했다.
그런 사부님께 안에서 있던 일들을 속속들이 알려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괜히 속만 상하시지.’
하여, 나는 엄한 소리나 늘어놓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야 사부님께서 잘 아시겠죠! 어쨌거나 제가 봐온 사부님의 모습에서 기인한 존재니까요!’
- 네 녀석이 평소에 생각하는 대로 나왔겠지! 평소에 이 사부를 뭐라 생각했기에 엄한 놈한테 뺨을 맞고 와서 생사람을 잡느냐!
‘그래도 잊지 않을래요. 저 상처받았습니다.’
- 용운이 네가 상처를 받았다니… 그랬구나. 상처를 받은 모양이로구나.
‘예. 그러니까 앞으로 제가 두 번… 아니 세 번은 사부님을 속상하게 해드려도 참아주셔야 합니다.’
- 네가 상처를 받았다니. 평생을 통틀어 가장 안 믿기는 말이로구나.
‘……?’
- 네 녀석이 상처를 받아? 차라리 하연이가 돈에 관심이 전혀 없다는 말을 믿겠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은근슬쩍 면피부(免避符)를 끼워 넣어?! 그것도 두 번이라 했다가 생각해보니 성에 안 찬다 싶어서 세 번으로 늘리고? 에라이!!
그렇게 사부님과 오랜만에 티격태격하고 있은 지 잠시.
- 누가 오는구나!
‘예. 수가 제법 됩니다.’
나와 사부님의 기감에 이쪽으로 달려오는 이들이 잡혔는데.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누런 승복을 입은 소림의 제자들이 양쪽 수풀과 정면의 진입로에서 튀어나왔다.
척! 척! 척! 척! 척!
그리고 나를 향해 각자 손에 쥔 병장기를 겨눠왔다.
소림의 제자들이 보이는 갑작스러운 공격태세.
나는 비스듬히 빗겨 섬과 동시에 회한의 검병을 움켜쥐어 출수할 준비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스님들? 뭐 하자는 겁니까. 한판 붙자는 태도들이신데…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요?”
그러자 정면에 서 있던 제자들이 좌우로 갈리더니.
원철과 함께 소림의 세 고승.
공효, 공덕, 공량이 등장했다.
그중 협심승 공량대사가 반가운 얼굴로 내게 말을 건넸다.
“괴룡 시주. 이 사람을 기억하시겠소? 시주 덕분에 목… 함께 북해의 찬바람을 맞으며 후성을 공략하던 때가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구려.”
세 고승에 원철까지.
소림의 제자들이 나를 포위한 일에 심계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회한에서 손을 떼고 포권을 취했다.
“예. 공량대사님. 별고 없으셨습니까?”
“이 늙은 중은 별일 없이 지냈다오. 아, 얼마 전엔 시주가 마교의 계획을 좌절시키는 데 크게 일조한 사천에 다녀왔소이다.”
“그러셨습니까?”
“허허. 시주와 동무들의 노력 덕에 민가의 피해가 없다시피 하던데. 아미타불. 참으로 의로운 일을 하셨소.”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갑자기 소림의 제자들이 저를 둘러싼 이유를 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물음에 답한 이는 소림의 방장 공효대사였다.
“무간동에 발을 딛은 제자 중 이따금 지독한 심마에 들어 광인이 되어 세상에 나오는 제자들이 있었소. 이는 그런 상황을 상정한 조치인데, 놀랐다면 미안하오, 괴룡.”
“그런 이유였군요. 뭐, 저는 무탈합니다.”
“다행이로고.”
그 말에 답하자 공효대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곁에 있던 공덕대사는 수염을 쓸었는데.
“허허. 백도무림의 복이로고. 열흘 만에 일곱 관문을 돌파하다니. 소림에서 자란 원철도 보름이 걸렸거늘.”
“역시 괴룡이십니다!”
“하여, 성취는 있으셨는가?”
말씀 중에 원철이 감탄을 하는 바람에 대사의 물음에 마냥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어려워졌다.
나는 그 점을 정정하고자 입을 열었다.
“아뇨.”
“으흠? 눈매와 풍겨오는 기도는 성취가 있는 것 같은데?”
“아, 성취가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음?”
“앞에 하신 말씀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일곱 관문이 아니라 열 관문을 돌파했습니다.”
그런 내 말에, 원철이 눈을 키우며 말했다.
“여, 열 관문을 모두 돌파하셨단 말입니까!?”
“처음 열린 문이 닫힌 뒤로는 앞의 관문과 다르게 스스로를 정비할 터울이 없어서 확실치는 않지만. 두 번째로 문이 열렸을 때 나온 거니까요?”
그러자, 노소 할 것 없이 소림의 제자들의 얼굴에 경악이 들어찼다.
“여, 열흘 만에 열 관문을 다 돌파했다고?”
“일곱 번째 관문을 돌파하고 문이 열렸을 때 나온 게 아니라지 않나? 그럼 열 번째 관문까지 돌파한 게 맞지.”
“아니, 소림의 제자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드물지 않나? 원철도 일곱 관문에 그쳤고.”
“원철은 본인이 만족하고 나온 거라 예가 다르지.”
“아무튼 괴룡은 소림의 제자도 아닌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공덕대사는 헛기침을 하며 젊은 제자들의 동요를 가라앉혔다.
“흠흠.”
그리고 나를 향해 확인하듯 물어왔다.
“일곱 번째 관문을 돌파하고 처음 문이 열렸을 때는 나서지 않았고, 이후에 다른 관문을 거치며 문이 새로 열렸다는 말이오?”
“예. 그때는 참았고. 이후에… 근데 시련 내용을 말해도 되는 겁니까?”
“여기 있는 제자들은 이미 무간동의 일곱 관문들을 돌파한 이들이라오. 다시 들어갈 일이 없으니 괜찮소.”
“여덟, 아홉 번째 관문을 통과한 이후로 시커먼 무저갱 같은 곳으로 떨어졌습니다. 거기서 유혹이 한 번 있었는데 물리치고 나왔습니다.”
“…열 관문을 통과한 것이 맞군. 괴룡 시주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한데, 노납이 축하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묻고 싶은 게 있다오.”
“하문하십시오.”
“일곱 번째 관문에서 남았다는 것은 욕심을 내었다는 것이오. 한데, 마지막 관문에선 어찌 욕심을 물리친 것이오? 분명 한 꺼풀을 벗어 던진 느낌이 들었을 테고, 그렇다면 더 큰 욕심이 일었을 터인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유혹을 뿌리쳤는지 궁금하구려.”
공덕대사의 물음에, 나는 그때의 생각들을 축약해 말했다.
“딱히 곤혹스러운 유혹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일곱 번째 관문에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았고. 열 번째 관문에선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나왔습니다. 대사께서도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 내 말에 공덕대사는 수염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고.
“허. 우문현답이로고.”
공량대사는 다른 두 노승을 번갈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허허허, 열흘 만에 열 관문을 다 돌파하다니. 소싯적의 공덕 사형이 열흘 하고 이틀이 더 걸렸는데… 이거 소림의 역사에 기록으로 남겠습니다.”
- 흥. 당연하지. 누구 제잔데. 땡중들과 비교할 게 아니지.
그 말에, 사부님께서 콧방귀를 껴오시는 이때.
공효대사는 공량대사를 향해 핀잔을 주었다.
“빨리 돌파하는 게 중요한 관문이 아닐세. 공량 사제는 다른 제자들이 목표로 삼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하는가.”
“큼.”
그리고 소림의 젊은 제자들을 향해 말했는데.
“하여간 괴룡은 괜찮아 보이는군. 나한들은 물러가 있으라. 두타행을 나가기로 예정이 돼 있는 제자들은 그 준비를 하고.”
이때, 공덕대사가 손바닥을 내보이며 그 말을 막았다.
“장문 사형. 사제의 생각으론 나한들의 두타행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했다.
“시주. 한 걸음을 내디딘 참에 소림의 나한승들을 상대해보면 어떻겠소?”
“지금요?”
“당장은 아니고, 시주가 심신의 정돈을 끝내고 난 뒤라면 어떨까 하오. 내 경험상 원래 돈오의 시간 직후에 그런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게 큰 도움이 되었소.”
“음.”
“그러니 시주에게도 득일 듯하고, 소림의 제자들에게도 좋을 성싶소. 백도 무림에 시주와 같은 무를 가진 사람이 없었으니까.”
공덕대사의 ‘백도 무림에 나 같은 무가 없었다.’라는 말은 내게 중의적으로 들렸다.
‘칭찬 같기도 하지만, 내 무공이 천마신교의 그것과 가장 닮아있다는 생각이실 테지.’
대사의 말마따나 나에게도 소림에게도 득이 될 것 같은 제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시죠.”
* * *
언용운이 공덕대사에게 백팔 나한과 겨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때.
낙양의 무림맹에선 언동생들이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짐이 많은 사람은 당옥기였는데.
그녀는 보따리 안에 짐을 쑤셔 넣던 와중 빠득 하고 이를 갈았다.
그에 곁에 있던 장선이 입을 열었다.
“제,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옥기 누님?”
“아니요.”
“…왜 존댓말을?”
“아. 미안. 한 번씩 깜빡깜빡해. 선이 네가 나보다 동생이라는 사실을. 아무튼 너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생각해 보니까 정작 각필 그 빡빡이 놈을 못 굴렸어! 캭! 열받아!!!”
“원시천존. 어쩌겠습니까. 사지(四肢)의 뼈가 부러져 붙지를 않은 이를 연무장에 세울 수 없는 노릇이지요.”
“언 형만큼은 아니지만, 원철 스님의 손속도 참 무서워요.”
그러다 이어진 정현의 말에, 우소릉은 몸서리를 치는 때.
남궁윤이 건조한 어조로 말했는데.
“적악여앙(積惡餘殃)이라 했다. 악행의 대가는 언제고 찾아가는 법. 너무 아쉬워할 필요가 없을 듯싶다. 우리는 우리 할 일만….”
듣고 있던 은하성이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궁윤 형이 호랑이 똥 거절하다가 멧돼지랑 뒹굴었던 것처럼요?”
“…….”
“그러고 보니 적악여앙 같은 말은 정현 도장이 곧잘 하곤 했는데, 도장도 내심으론 각필 그 빡빡이를 패주고 싶으신 모양이네요? 역시 저 사람 도사가 아냐.”
“…….”
그렇게 은하성이 남궁윤과 정현을 침묵시킨 때.
예해수가 숭산이 있는 남쪽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용운 후배님은 잘 계시려나요?”
그 말에 언동생들이 시선이 일제히 숭산 방면으로 돌아간 이때.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고 있던 팽소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희 스승님 말씀마따나, 되레 소림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 * *
지옥순례 과정에서 내상이나 외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어쩌다 보니 끊었던 곡기(穀氣)를 다시 들이고.
이래저래 몸을 움직이며 이틀을 보내고 나니.
한 꺼풀 벗어던진 심신에 적응했다고 말할 법한 몸 상태가 되었다.
“저는 준비 됐습니다.”
나는 곧바로 그 사실을 공효대사에게 고했다.
“하면, 다가오는 아침에 대련을 갖는 것으로 하세.”
“예.”
그리하여 찾아온 다음 날 아침.
소림의 대연무장을 빼곡히 채우다시피 한, 백여덟 명의 나한승들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휘이잉-
피부에 닿는 아침 바람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는 가운데.
소림의 제자들의 표정과 기도들이 더욱 또렷하게 와닿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스님은 떨고 있군.’
떠는 것도 제각각이었다.
긴장감에 떠는 이도 있었고, 두려움에 떠는 이도 있었으며,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이도 보였다.
‘괴룡이라는 대어를 잡고 싶다는 공명심이려나?’
외에도 순순한 투지를 보이는 이도 있었고.
어째선지 노기를 띤 사람도 보였다.
‘아, 어째선지라는 말은 안 맞나?’
소림의 제자들이 낙양에서 쥐어 터진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전에 없이 예리해진 오감으로 소림의 제자들을 직시하며 회한을 뽑았다.
스렁-
그리고 전에 없이 진한 검강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우우웅 -
“덤벼.”
어째선지.
자신이 없었다.
질 자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