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21화 (321/444)

제321화. 소림이 걱정 되는구만 (7)

언용운이 막 소림을 나서던 때.

하북 진주언가의 가주전에선 언정웅이 두 명의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독괴 어르신.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중 한 명은 하북과 산서에 차린 약방 관리를 총괄하기로 한 독괴 당자진이었고.

“고생은 무슨. 석가장에서 예까지 얼마나 된다고? 나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를 마실 삼아 온 것이고. 고생이란 말은 여기 은 대인 쪽에 해야지.”

“은 대인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른 한 명은 휘상의 주인 강남상왕 은세평이었다.

“하하. 저도 고생이랄 건 없었습니다. 노는 노잡이들이 젓는 것이고, 마차는 말들이 끌었으니까요.”

언정웅은 당자진과 은세평을 번갈아 응시하며 물었다.

“독괴 어르신이 은 대인을 편하게 대하시는 것을 보니, 두 분은 이미 면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그에 당자진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알다시피 대파산맥이 원체 험해, 사천 산물들의 주요 판로는 장강을 사용하오. 은 대인과는 구면 중의 구면이라 할 수 있지.”

그렇게 운을 뗀 당자진은 은세평을 향해 꾸벅 포권을 취했다.

“사천에 난리가 터졌을 때 도움을 주어 감사하오. 은 대인이 당문의 촉금을 대량으로 매입해준 덕분에 약독 축제를 성대히 치를 수 있었고, 난리가 터진 이후에 보내준 약재와 양곡은 성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소.”

“감사받을 일이 아닙니다. 천하 비단 중에 최고로 치는 당문의 촉금을 헐한 가격에 샀으니 제가 더 감사할 일이고. 당가타를 비롯하여 성도 사람들의 인상에 은휘상단의 이름이 아로새겨졌으니… 그 또한 장기적으로 보면 이득입니다.”

“겸양을 하시기는.”

“이문을 남기려는 장사치를 추켜세우시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보다 사천이 잃은 목숨들에 대해, 다시 한번 조의를 표합니다.”

그렇게 당자진과 은세평 사이에 정중한 포권이 오가고 난 때.

언정웅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어째 매번 은 대인이 하북에 오시는 듯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휘주로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천진에 볼일이 있기도 했고. 당가의 약방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예. 이런 건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기도 하거니와, 다른 사업으로 어찌 연계할지 떠오르기 마련이거든요. 뭐, 별개로 언제 한번 제가 휘주로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귀찮다고 물리지만 말아 주십시오”

“귀찮다니요. 대인께서 날을 잡아 청해주시면 열 일을 제쳐놓고 가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렇게 웃음이 번지길 잠시.

은세평은 낙양이 있는 방면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무림맹 소식 들으셨습니까? 용운이가 백본회에서 아주 멋들어진 발표를 했다던데요? 진주언가에서 무림맹주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 같습니다. 그야말로 왕도를 밟는 듯합니다. 역사상 이런 후기지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은세평의 말에 당자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용운이 그 녀석이 난 놈이긴 하지만, 무림맹주 자리야 만날 강호에서 일 터지면 뒤치다꺼리나 하는 피곤한 자린데… 나는 줘도 안 가지고 싶으이.”

“하나, 그렇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역인 것도 아니지요. 선망하는 이도 많습니다.”

“그리 말하면 또 그렇기는 하지.”

“예. 특히 진주언가 같은 경우 지난 정마대전 이래 가시밭길을 걸어오다 이번에 오대세가 자리에 복귀하지 않았습니까? 용운이 본인 의사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런 은세평의 말에, 언정웅은 언용운이 무림맹의 최상석에 놓인 태사의에 앉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내 아들이라 그런 게 아니라, 솔직히 어울리긴 하지 않은가?’

강호에 기여한 공적 외에도 경지나 경륜도 필요로 하는 자리이니.

당장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었으나, 언용운이 철이 조금만 더 든다 가정하면 녀석보다 어울리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흐흠. 흐흫흠. 흐흐흐흫.”

그에, 언정웅의 입꼬리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 언정웅은 손님을 맞는 중이었다는 사실도 잊고 상상 속에 사로잡히고 말았는데.

“학관에서 총학생회장 자리를 맡은 걸 보면 뜻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고. 녀석이 장차 무림맹주가 된다면 언가에는 뜻깊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렇습니까 가주님?”

“흐흠흫.”

“가주님?!”

“허흠. 아. 송구합니다.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였습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셨습니까?”

은세평 덕분에 상상의 나래에서 벗어난 언정웅은 괜스레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흠. 그보다 무림맹의 이야기를 들으셨으면, 다른 이야기도 들으셨을 텐데요?”

“아, 후기지수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던 일 말씀이십니까?”

“예. 벌로 소림에 근신을 하러 갔다지 않습니까? 무림맹에서 그런 주먹다짐을 벌이다니. 욱하는 성정과 외골수 같은 기질이 있어서 참 큰일입니다. 누굴 닮아 그런 것인지… 아니, 다, 당연히 저를 닮아 그런 것이겠지요.”

언정웅이 마지막 말을 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때마침, 밖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이화부인이 기별을 해왔던 것이다.

“상공. 찬모가 주안상이 다 준비되었다 하여 들여왔습니다.”

“…큼. 들어오시오.”

그렇게 가주전 안으로 들어온 이화부인은 당자진과 은세평에게 다소곳이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부인께서 내 이야기를 못 들으신 모양이군.’

그 모습에 언정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렇게 새어 나온 숨이 한치를 벗어나기도 전에, 이화부인이 입을 열었다.

“누굴 닮아 외골수 같은지 모르시겠으면. 시간 나실 때 동경을 들여다보도록 하세요.”

“드, 들으셨습니까?”

“예.”

“부, 부인을 닮아 그렇다고 말하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나를 닮아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전적으로 상공을 닮긴요. 닮기야 저를 많이 닮았지요.”

“???”

“그리고 용운이가 괜히 그랬겠습니까? 천하에 속 깊은 녀석이 그런 일을 했으면 반대되는 녀석들이 무뢰배 같은 행동을 했겠지요.”

그런 이화부인의 말에, 당자진과 은세평은 장단을 맞추듯 입을 열었다.

“부인 말씀이 맞소이다. 백본회라는 곳이 유심히 들여다보면 옷만 하얗지, 속이 시커먼 놈들이 천지입니다.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겠지요.”

“더욱이 무당파와 개방을 비롯하여 여러 가문이 탄원서도 제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두 사람의 말에.

언정웅은 내심 뿌듯함을 느끼면서도, 버릇처럼 겸양을 했는데.

“흐흫흠. 하나, 다 용운이와 절친하게 지내는 동무들의 가문들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냥 편을 드는 곳은 아닙니다. 남궁세가가 그러하고, 특히 무당은 되레 정현 도장과 껄끄럽지 않습니까?”

“두 사람도 뵌 적이 있겠지만. 신승 선배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구석이 있으시네. 용운이 녀석의 성정도 딱 보면 알 것이니… 그저 나무라시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야. 되레 녀석에게 복이 될 수도 있겠지.”

언정웅의 말에, 은세평과 당자진이 재차 입을 연 때.

“그럼 소첩은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두 분 손님은 많이들 즐겨 주셔요.”

숱한 안줏거리들이 시비의 손에 의해 식탁 위에 내려놔지고 있는 와중.

이화부인은 손수 밥과 간장을 언정웅 앞에 놓고 나갔다.

“…….”

언정웅은 앞에 놓인 밥그릇과 간장 종지를 보고 잠시 한숨을 내쉬다가, 은세평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이렇게 은 대인을 뵙고자 청한 이유는 당가 약방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장인께 들은 바가 있어서입니다.”

“산서금붕 어르신께서요?”

“예. 운남 이남을 주요 산지로 하는 굉청탄의 가격변동이 심상치 않다고 하시더군요.”

*     *     *

숭산에서 출발한 걸음이 정무학관이 있는 단강구에 닿기까지, 이렇다 할 일은 없었고.

나는 마중을 나온 학관의 운영위를 향해 신고를 마쳤다.

“…말씀드린 사유로 소림에 체류하기로 한 두 생도를 제외하고는 특이사항 없습니다. 보고 끝.”

경혜 사태를 필두로 한 학관의 운영위원 교수님들은 달라진 내 기도에 깜짝 놀라셨는데.

“아니, 잠깐 못 본 그사이에 벽을 넘었군요?! 무림의 홍복 입니… 아, 이게 아니지 참.”

그러던 중, 눈을 흘기며 애정 어린 쓴소리를 하셨다.

“모용길 생도를 품어준 것을 보면 포용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면서, 알만한 사람이 무림맹까지 가서 그런 일을 벌였습니까? 소림의 암자에 가서 근신한다는 소리에 빈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하나, 내가 그 말에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며 공효대사가 써준 서간을 내밀자.

“그 점은 충분히 반성하고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공효대사께 이런 것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음? 서신이 아닙니까?”

“예. 대사님께서 써주셨습니다.”

“노납은 소림과 정무학관의 교류가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이걸 공효대사께서 직접 써주셨다고요?”

“예. 끝에 방장의 인이 찍혀 있지 않나요?”

“…인도 찍혀 있고, 제가 아는 공효대사의 서체가 맞기도 하는데. 그 자존심 강한 소림이 이런 이야기와 제안들을 전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말입니다.”

경혜 사태는 여러 감정이 섞인 얼굴을 하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셨다.

“…에효. 하여간에 야단도 못 치게 하는군요. 다친 곳은 없습니까? 신승께서 야단을 엄히 치시지는 않던가요?”

“이런저런 시련을 겪고 왔으니, 혼이 났다고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벽을 하나 넘어서는 계기가 됐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고단할 텐데 가서 쉬세요.”

“옙.”

쉬라는 말씀에 답을 한 나였지만, 학관을 비운 동안 할 일이 산재해 있을 터였다.

나는 견학조를 해산시킨 뒤, 교수님들과 함께 마중을 나온 잔류조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은 소저, 제갈 소저. 나 없는 동안 빈자리 메워준다고 고생 많았소. 거기 기타 등등들도.”

“기타 등등이라뇨! 용길 형이랑은 짬이 다른데 구분 좀 해주십쇼!”

“장호야.”

“예?”

“나 지금부터 사대기숙사 점검하러 돌아다닐 건데, 너도 ‘점검’ 받고 싶냐?”

“제가 ‘기’, 용명이 이 친구가 ‘타’. 나머지는 등등이라고 알아서 생각하겠습니다!”

“말 나온 김에, 장호 너는 솔거 거지들한테 가서 나 돌아올 동안 개방발 강호 동향 보고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으라고 전해.”

“옙!”

그렇게 짧게 회포를 나눈 나는 매난국죽 사대기숙사를 차례로 돌며, 자리를 비운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파악했는데.

삑삐빅! 삑삐빅삐 빅!

척!

“좋네요 향란관. 그래도 청죽관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내 밑에서 굴러본 티가 납니다.”

“감사합니다!”

“점검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일반 생도들은 생활관으로 돌아가도 좋고. 자치회 간부들은 저 없는 동안 발생한 특이사항 같은 거 있으면 총학생회실로 보고 올리세요.”

향란관의 점검이 끝났을 때.

자치부회장을 맡고 있는 당준기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언 회장?”

“예. 급한 사안이라도 있으십니까?”

“그건 아닐세. 반대로 보고서에 적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미미한 일이라 말로 하려고.”

“음. 일단 말씀해보십시오.”

“일이라고 하기도 좀 뭐하긴 한데… 요새 무당의 제자들이 저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사례가 좀 있었네.”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이번에 무림맹에서 여러 사문이 자네를 위해 탄원서를 낸 일 말일세. 그걸 두고 정현을 용서한 것이라느니 아니라느니 갑론을박을 했던 모양이야.”

“그래요?”

“그렇다네. 학관이나 기숙사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가 좀 있네.”

“흠. 일단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뭐, 다른 일이 더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 옥기한테는 별일 없었나 해서 말일세.”

“본인한테 물으시지 않고요?”

“큼. 직접 묻기는 좀 그래서 말이야. 본인도 오자마자 외박계를 자치회에 문틈으로 쑤셔 넣고는 어디로 내빼버렸고.”

“…청죽관에 갔나 보네요. 뭐, 별일은 없었습니다. 약왕 어르신이 예뻐라 하시거든요. 제가 무림맹에서 친 사고와 엮이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사대기숙사를 점검하는 일을 차례로 마친 나는 학생회실에 돌아와 필요한 일들을 처리함과 동시에.

천장호에게 부탁해두었던 개방의 보고서를 훑었는데.

“음.”

여기에도 무당의 제자들이 불만이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강호는 비교적 잠잠한 것 같은데… 개방의 보고서도 그렇고, 자치회장들의 말도 그렇고. 무당의 제자들 이야기를 하네?”

그에 머릿속으로 당준기에게 들은 이야기와 눈앞의 보고서의 내용을 짜 맞추고 있던 사이.

향란관의 전(前) 공보부장이자, 정현의 사숙이고 앙숙이며, 무당의 제자인 운혁이 나를 찾아와 입을 열었다.

“…흠흠. 언 회장.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