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22화 (322/444)

제322화. 싸울 것입니다 (1)

“예. 들어오십시오. ”

나는 운혁을 총학생회실 응접실로 안내했다.

“거기 앉으시면 됩니다.”

“바쁠 텐데 시간을 내주어 고맙네.”

그렇게 착석을 마치길 잠시.

운혁이 머쓱한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차 한 잔 내어주지 않을 텐가?”

그런 운혁의 말에 사부님께서 콧방귀를 뀌셨다.

- 허. 운혁 저 말코 놈에게 저런 넉살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용운이 네게 차를 내어달라 하다니. 내어주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는 한단 말이냐?

‘괜히 뻘쭘하니까 저러는 거죠.’

운혁.

정현과의 악연은 말할 것도 없고, 나와의 악연도 하나하나 꼽아보자면 무수히 많았다.

‘번번이 내 쪽에서 엿을 먹여 주긴 했지만.’

재밌는 건 권위를 존중하는 위인인지라, 내가 총학생회장직에 당선된 이후로는 확실히 수그리고 들어오긴 했다는 거였다.

‘이건 대부분의 향란관 생도들이 다 해당되는 사안이긴 하지만.’

아무튼, 나와 운혁은 피차 여유롭게 다과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다.

그건 산전수전을 겪을 대로 겪어본 나보다 운혁 입장에서 더더욱 그러할 터.

쪼로로록-

나는 주전자에 든 찻물을 따라주며,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전했다.

“운혁 선배님께도 지금 이 상황이 상당한 고역이실 텐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언 회장은 참 한결같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래서 어쩐 일이십니까?”

“다른 건 아니고. 무림맹에서 자네와 참석한 다른 후기지수들 사이에 소란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학관에도 전해졌었네.”

“그런데요?”

“여러 문파와 세가들이 자네를 위해 탄원서를 제출했다던데. 그렇게 이름을 올린 문파 중에 무당의 이름이 있었다더군. 무당의 대의원들께서 자네를 위해 탄원을 한 게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무당의 이름이 함부로 오르락내리락했을 리 없지 않습니까?”

운혁의 물음에 답을 해주고 있다 보니. 나도 궁금증이 들었다.

“되레 제가 묻고 싶어지네요. 그걸 왜 저한테 묻고 계신 지를요.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흠흠. 절대로 시비를 걸러 온 것은 아니니 곡해는 말게.”

“감안하겠습니다.”

“언 회장 자네가 원체 정무 감각이 뛰어나지 않나? 혹시 자네가 정현을 시켜 의도한 바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러 온 것일세.”

안 그래도 감정의 골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현과 무당이었다.

괜한 오해를 추가할 필요는 없었다.

“제가 시킨 일이 아닙니다. 다른 생도들이 저마다 가문과 사문에 탄원을 넣는다고 하니, 정현도 무당을 찾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답하자, 운혁은 앞에 놓인 차를 후루룩 마시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군. 그럼 그렇게 알고 다른 무당의 제자들이 오해치 않도록 단속하겠네.”

나는 그런 운혁을 향해 말했다.

“만약 제가 시킨 일이라 답을 했다 치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셨습니까?”

“…그냥 자네에게 조언을 하나 하려 했네.”

“조언이요?”

“내가 자네에게 조언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네만… 정현과 우리 일은 억지로 풀릴 일이 아님을 말해주려고 했다네.”

“흠.”

“자네들은 정현과 절친하니, 우리가 무턱대고 녀석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네.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나는 운혁의 찻잔에 다시금 찻물을 따랐다.

“말 나온 김에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가시죠. 그 나름의 이유라는 거. 결국 태허자 장로님의 일 때문 아닙니까?”

쪼르륵-

“전 원화궁주이셨던 그분은 본인의 욕망 때문에 생긴 손실을 메꾸기 위해 흑도방파를 용인하신 분으로 아는데요? 삼대제자가 용기를 내서 그 일을 밝혔으면, 저는 기사멸조의 죄를 지었다고 탐탁지 않아 할 게 아니라 칭찬할 일이라고 보거든요.”

“…….”

“선배님도 곡해는 마십시오. 정현은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맡은 직책이 많다 보니 알게 됐을 뿐입니다.”

내가 태허자의 이름을 입 밖에 내자, 운혁은 한숨을 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 원화궁주님을 발고한 일 자체를 기사멸조의 죄라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네. 없다고 말할 수야 없지.”

“본인은 아니시라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그분이 도를 구하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잘못을 한 것은 맞다고 생각하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정현을 왜 그리 박대하신 겁니까?”

“하나, 정현이 무당의 계율을 깡그리 무시하고, 관에 발고한 일은… 무당의 사형제와 계율을 믿지 못하겠다 선언한 것일세.”

말을 하는 운혁의 눈동자엔 분명한 노기가 묻어났다.

“녀석을 아끼고, 녀석에게 기대를 걸었던 모두를 싸잡아 썩어빠졌다 한 일이란 말일세. 우리가 정현을 내친 게 아니라. 녀석이 우리를 밀친 것이야.”

하나, 노기만 있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묻어나는 감정은 애증에 가까웠다.

‘…빠가 까가 된 건가.’

정현과 무당의 일은 역시 함부로 건드리기 조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     *     *

불만이 좀 있다 뿐이지, 무당의 제자들이 학사 일정을 훼방 놓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여, 나는 무당의 일은 최소한 정현이 돌아올 때까지는 덮어두는 게 맞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린 뒤.

총학생회장으로서의 직무와 생도로서의 의무에 충실했다.

가장 먼저 중간고사를 치렀고.

독고철을 통해 혈교에 알토란처럼 포장한 쭉정이 정보들을 흘렸다.

“철아.”

“예. 회장님.”

“여기 적힌 내용. 교에 흘리면 된다.”

“예. 딱 이렇게만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내 무공이 진일보한 일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다. 득보다는 경계심만 키울 가능성이 커.”

“옙.”

사대기숙사의 자치회장들과 생도들을 발전시킬 방법과 각종 지원책을 고민했으며.

틈틈이 마방연에서 영환도사와 함께 진주언가의 강시종을 부활시키기 위한 초석을 다졌는데.

그러는 사이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훌쩍 흘러, 정현과 남궁윤이 소림에서 돌아왔다.

“언 소협, 저희 돌아왔습니다.”

“그래. 복귀 신고를 받아 줘라.”

“우리밖에 없는데, 뭔, 복귀 신고야. 총장님께 보고하고 온 거 아냐? 그럼 그냥 너희 책상 가서 앉아.”

“그래도 할 건 해야지.”

“해도 정현이 해야지. 왜 궁윤이 네가 하려고 해? 무위로 보나 짬으로 보나 정현이 먼전데.”

“…….”

“아하하. 저보다는 남궁 소협이 이런 일에 익숙하실 성싶어서 제가 부탁을 했었습니다. 한데 다른 분들이 안 보이십니다?”

“날짜 감각이 덜 돌아왔나 보네. 오늘 강시학총론 수업 있는 날이다.”

“아, 언 소협과 당 소저는 오전수업만 있으시고 저희는 공강 없이 시간표가 꽉 찬 날이었군요.”

“그래. 나는 그래서 너희가 일부러 오늘 날짜 맞춰서 온 줄 알았는데? 오늘까지 쉬려는 심보 아니었어?”

“예?”

“하성이는 너더러 그 인간 역시 도사 아니라면서 수업 들어갔어.”

“저, 절대로 그런 심산은 없었습니다!”

정현은 양손을 내저어 보이며 결백을 주장했고.

남궁윤은 자기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냐며 콧방귀를 꼈다.

그런 두 녀석 모두 눈동자가 깊어져 있었고, 미묘하게 곧아진 자세에 달라진 기도가 느껴졌다.

“두 사람 모두 무간동에서 얻어 온 게 있긴 한 모양이네. 분위기가 달라졌어.”

“나도 정현도. 일곱 관문을 견뎌냈다. 한데, 관문을 나오니 원철스님이 너는 열 관문을 돌파했다는 말씀을 말씀해 주시던데 정말인가?”

“어. 그랬었지.”

“과연, 언용운이군.”

“원시천존. 저는 일곱 관문을 돌파하는 것도 비동에 붙은 이름처럼 지옥과 같았는데.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두 녀석을 향해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아무튼 고생 많았다. 궁윤이는 향란관 돌아가서 여독 좀 풀고. 정현은 나랑 잠시 이야기 좀 하자. 너 없을 때 운혁 선배가 나를 찾아왔었다.”

내가 운혁의 이야기를 입에 올리자.

남궁윤은 두말하지 않고 총학생회실을 나갔고.

홀로 남은 정현은 짧게 숨을 내쉬고는 되물어왔다.

“…운혁 사숙이 말입니까?”

“응. 내가 무림맹에서 막 복귀했을 즈음 찾아왔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운혁과 나눈 이야기를 가감 없이 말한 뒤.

“…그렇게 된 것인데. 그런 말을 하면서, 괜히 내가 끼면 더 큰 오해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고 갔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침나절에 무당파에서 전해온 전서를 내보였다.

“그리고 오늘은 명한 도사께서 이런 서간을 보내오셨다.”

정현은 내가 내민 서간을 받아 훑고는 입을 열었다.

“닷새 뒤에 도동(道童)들을 정식제자로 받아들이는 입문례를 실시한다는 말씀이 적혀있군요. 하기야 그럴 때가 되긴 했습니다. 마방연 귀하라고 돼 있긴 한데, 기실 제게 보낸 서간인 듯합니다.”

“내 생각도 그렇긴 해. 무당의 살림을 이끄는 분들이 생각이 있으시니, 너를 도관 안으로 부르시는 거겠지만. 그간 내가 취합한 정보에 의하면 제자들 중에는 너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아.”

“그럴 것입니다.”

“분명 심사 뒤틀리게 하는 놈이 있을 수 있어. 어쩌고 싶냐? 마방연 앞으로 온 서간인 만큼 바쁘다고 답신을 보내면 그만이긴 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굳이 응할 필요가 없다는 내 제안에 정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운혁 사숙의 말씀도 맞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미숙한 예단(豫斷)으로 사형제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도 맞고. 당사자인 제가 결자해지를 해야 하는 문제인 것도 맞습니다.”

“혼자 가겠다는 투로 들린다?”

“예. 그리하고자 합니다.”

“흠. 무당의 어른들과 사형제들을 마주할 준비가 정말로 됐어?”

“그간 언 소협과 함께하고, 또 다른 언동생들과 연을 맺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무간동에서 새롭게 느낀 바도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 떳떳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형제들에게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더는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     *     *

닷새 뒤.

나는 언동생들과 함께 예복을 입고 무당을 향해 걸음을 떼는 정현을 멀찍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중 은하성이 입을 열었다.

“어휴. 물가에 내놓은 애 같네. 정현 도장. 괜찮을까요?”

그런 은하성의 말에 은하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고.

“하성이 네가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곁에 있던 천장호와 용명이가 한마디씩을 더했다.

“보통은 정현 도장보다 하성이가 새는 바가지이긴 하지만, 오늘은 저쪽이 걱정이긴 한데요. 안 그런가 용명이?”

“남궁 소협과 더불어 정현 도장도 인간관계에 서투르신 편이시니까.”

“내 이야기가 왜 나오나?”

남궁윤의 물음엔 아무도 답을 해주진 않았다.

남궁윤이 고개를 갸웃하는 때.

은하성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용운 형님?”

“뭐가 그런 의미에서야?”

“가시죠.”

“어디를.”

내가 못 알아들은 척하자, 당옥기도 한마디를 더했고.

“캭! 당연히 정현 뒤따라가자는 거지! 솔직히 여기 있는 사람 지금 다들 같은 마음일걸?”

“정현이 믿어달라고 하고 갔다.”

뒤이은 말엔 제갈설지가 입을 열었다.

“믿죠. 정현 님이야. 믿는 만큼 아끼니까 걱정이 되는 거죠.”

사실 나도 불안하기는 했다.

“…입문례에 초대한다는 서간이 사실 딱 정현 앞으로 온 게 아니긴 해. 이거 마방연 앞으로 온 서간이거든.”

하여 무의식이 살짝 새어 나온 때.

우소릉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야행복 챙길까요?!”

“대낮에 뭔 야행복이야. 다들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현철 족쇄 챙겨서 다시 집합해.”

그런 내 말에 소천이 형은 반색을 했고.

“오! 겸사겸사 수련도 하자는 건가? 그거 좋겠군!”

천장호와 예해수를 필두로 다른 언동생들은 기겁했다.

“소천 형은 좀 닥치쇼. 용운 형? 생각해보니까. 정현 도장이 알아서 잘할 것 같습니다.”

“…아니, 후, 후배님? 왜 갑자기 이야기가 왜 현철 족쇄로 튄 걸 까요?”

“소천이 형 말대로 겸사겸사 수련도 하고. 또 들키더라도 할 말이 있잖습니까. 수련하다가 목이 말라서, 어? 무당에 물 한잔 얻어 마시러 갈 수 있잖아요? 우리가 남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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