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27화 (327/444)

제327화. 다음 단계 (2)

혈교는 기본적으로 점조직으로 운영됐다.

하나, 언제까지고 조직을 그렇게 운영하지는 않을 터였다.

‘요지라 생각되는 곳에 조금 더 굵은 점을 찍어 관리하지.’

그렇게 굵은 점이 하나둘 늘어가다가, 경천혈마가 천마신교와의 단절을 선언하며 그 점들이 연결되는 때가 온다.

‘그렇게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될 때. 혈마를 향해 내달리려면….’

독고철을 내 사람을 넘어, 완벽히 나를 추종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독고철의 고삐를 죄는 것과 동시에 당근을 부여해야 했다.

‘각주급에 녀석이 관리하는 인력까지 생긴다면, 오늘은 조금 특별한 당근을 건네는 게 좋겠지.’

어떤 당근이 좋을까?

[어디 보자. 우리 교에서 각주면 네 개 조를 관리하는 자리인데, 보통 네 개 조 중 하나는 특임조라 부르면서 다른 조장보다 높이 치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독고철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럼 철이 너는 사실상 단번에 몇 계단에 올라선 초고속 승급인데? 조만간에 나도 넘어서는 것 아니냐?]

내가 원작의 지식을 꺼내 혈교에 능통한 듯 이야기를 하자.

독고철은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놀리지 마십시오. 회장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냐, 이거 둘만 있을 때는 각주님이라고 불러 드려야겠어.]

[…민망합니다. 그리고 급은 각주 급이지만. 인원은 네 개 조를 다 주지는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한 개 조만 배치해주고 세 개 조는 소집권을 주는 식이랍니다.]

[그래도 특임조 급을 보내주겠지. 그나저나 한 개 조만 해도 열 명인데, 네가 열 명의 인원을 관리해도 세간에 오해를 사지 않을 법할 구실이 필요하겠는데?]

[안 그래도 윗줄에서 학관의 사정과 분위기를 고려하여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 보라 했습니다.]

[그래?]

[예. 그래서 생각해본 건데, 이번에 회장님께서 만드신 장학보에 하부조직을 하나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정말 혈교인이었다면 그럴싸하게 들렸겠지만.

유망한 후기지수를 관리하는 장학보 조직에 혈교가 대롱을 꼽도록 허락할 이유는 없었다.

[그건 딱히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어차피 그쪽 정보는 언제든 내가 취급할 수 있는 데다, 장거리 출장업무가 잦은 부서라. 기껏 부여받은 인력을 필요할 때 사용하지 못할 수가 있어.]

[듣고 보니 회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는 독고철의 제안을 물렸다.

그리고 녀석의 마음과 혈교의 인력을 손아귀에 동시에 넣을 수 있는 묘안을 고민했다.

그러기를 잠시.

독고철이 침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는데.

[저는 당장은 마땅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회장님께선 좋은 생각이 있으십니까?]

덩달아 좁혀진 녀석의 미간을 보니,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독고세가를 다시 일으키자.]

그러자 독고철은 당황하여 육성으로 말했다.

“도, 독고세가를 일으키자고 하셨습니까?”

기실 누가 들어도 상관없는 이야기였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인근에 있는 소원(小園) 하나 매입해서 현판 하나 달자는 이야기야. 그럼 자연히 관리하는 인력을 들일 필요성이 생기잖아?”

“…….”

“소원은 제갈 소저나 은 소저한테 부탁해서 적당한 위치에 적절한 가격으로 수배하면 되겠고. 현판식할 때 친분 있는 교수님들께 참석 좀 해달라 부탁하면 구색은 맞겠지.”

“…….”

“그 소식을 예 선배 소식지에 실으면 천하로 흩어진 독고세가의 식솔 중에 살아남은 누군가는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시작하면 어떻겠냐?”

“…….”

“…듣고 있냐?”

“드, 듣고 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었습니다!”

“근데 왜 답이 없어? 소원에서 독고세가를 일으키는 게 불만이면… 네 수준과 자금력에 괜히 장원만 커봐야 관리 안 돼.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꼴이다.”

내가 말하자, 독고철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다.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 반대입니다. 큽. 너무 감사해서 그렇습니다.”

“감사할 거 없어. 받기로 한 인력은 열 명이라도 공작금은 네 개조만큼 다 받아와. 그걸로 비용처리 할 거니까. 그러고도 남은 건 네가 나한테 갚아야 할 빚이고.”

“아닙니다. 저 혼자서는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연신 고개를 숙여오는 독고철.

그 모습을 함께 지켜보고 있던 사부님께선 한 마디를 해오셨다.

- 맞기야 맞는 말이지. 그저 집을 하나 구해 현판을 단다고 가문이 다시 서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렇긴 하죠.’

천하 사람이 해당 가문이 다시 일어섰다는 사실을 알게 만들어야 했으며.

가문을 일으킬 땅을 쥐고 있는 터줏대감들의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강호 명숙들의 공인이 필요하곤 했다.

무턱대고 현판만 내걸었다간 멸문지화의 지름길이었다.

‘터줏대감들이 굴러온 돌을 내버려 둘 리가 없으니까.’

뭐, 내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약간의 품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독고철이 부여받은 조직은 결국 완전한 내 수족이 되어 혈교를 꿀꺽하는 첨병이 될 터.

약간의 품을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래.”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훌쩍이는 독고철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    *    *

독고철과 이야기를 끝낸 나는 언동생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독고세가를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그러자 독고철과 동기인 남궁영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왔고.

“선배는 역시….”

“와! 철이 친구 축하해!”

장선은 뛸 듯이 기뻐했다.

“병아리들은 조금 이따 오후 수련이 있지? 이야기 들었으면 가서 그거 준비해.”

“예!”

“옙!”

“넵!”

그렇게 신입생 삼인방을 돌려보낸 나는 본격적으로 독고세가의 현판을 내거는 일을 의논했다.

“마땅한 위치와 소원을 수배하는 일은 은 소저와 제갈 소저가 힘써주면 좋겠소.”

“흠. 비용이야 상관없겠는데…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가문들을 잘 고려해야겠네요.”

“하연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님이나 이모님께 여쭤보면 마땅한 곳이 있을 거예요.”

“예. 같이 고민해봐요. 언 공자 이런 건 차분히 살펴봐야 하는 일인 거 아시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눈빛이. 신속하게 하라는 눈빛이에요.”

“정확하게가 빠졌소. 가능한 한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

“그렇게 위치선정이 끝나면, 대민지원 일정은 그 주변의 민심을 달래는 것으로 신청하면 될 것 같소.”

독고세가를 일으키는 일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일인데다, 혈교와 연관돼있음을 은하연과 제갈설지도 모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안건은 끝이었다.

나머지는 학관의 운영위원회에 보고한 뒤에 나눠야 할 이야기들이었다.

“예 선배.”

“네. 후배님.”

“회의록 정리한 거 용길이 주십쇼.”

“예.”

“용길이는 총장실에 그것 좀 전달해주고.”

“…모용. 후. 알았다.”

그렇게 모용길까지 내보내고 나니.

총학생회실엔 정현 걱정에 무당산에 함께 올랐던 사람들만 남았다.

나는 녀석들을 향해 묵린토룡의 내단을 구하러 갈 일정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태영자 장로님께 전해들은 묵린토룡의 내단건 말인데… 오는 여름방학 때 가볼까 한다.”

그런 내 말에.

은하성이 씩 웃으며 답했다.

“광서라면 장강 이남이니 이 은하성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죠.”

“그렇게 접근할 일이 아니다. 내가 지도를 가져가서 장로님께 위치를 받아왔는데, 엄청난 험지야. 신법과 내공이 일정 수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접근을 불허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은하성의 너스레를 일축한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또 천고의 영약이라는 특성상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예로부터 영약의 출현은 혈사(血史)를 동반하곤 했다. 게다가 마교의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내 말에 언동생들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보안 유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오늘은 이 말만 하고. 따라갈 사람은 일정이 다 돼갈 즈음 정하도록 하겠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고.

언동생들은 준비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런 준비엔 생도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일도 포함돼 있었다.

다른 생도들이 ‘저 녀석들은 학관의 제도를 없는 듯 전횡하는구나?’ 하는 인식이 들어선 안 됐다.

‘그래서야 기강이 무너지지.’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은 일이 바빠 출석계를 자주 내온 나였으나.

굵직한 일들이 끝난 터라, 시간표대로 수업에 임했다.

“양손오.”

“예!”

“언용운… 은 오늘도 출석계를 내는 것인가?”

“아닙니다!”

“아닙니다? 음? 웬일로 본인이 직접 왔군?!”

그렇게 성실히 수업에도 참여하였고.

특히나 강시학총론 수업에선 영환 교수님과 함께 연구과제를 수행하였다.

“…이 술식과 주부술이라면, 비교적 적은 내력으로 많은 강시를 통제할 수 있겠군! 허허허. 언 회장. 자네까지는 아니라도. 마교의 강시술은 한걸음 따라잡은 느낌이야!”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다 자네 덕분이야!”

“함께한 거죠.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배우기는! 둘만 있으니 하는 말이네만, 자네가 교수고 내가 조수 역할을 하였지!”

‘주부술 개량에 관한 고찰’이라는 주제를 성공시키는 데 내 역할이 지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나, 나 역시 얻은 것이 있었다.

이 시대의 방술들은 말 그대로 재래식 술법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긴 했다.

‘하지만. 호식총(虎食塚)의 술 같은 건… 잘만 연구하면 내력이 부족해서 사용하지 못하던 고위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줄 것 같은데?’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히 몸보신을 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그나저나, 천하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좋은 것은 다 먹고 다녔는데. 여전히 고위 흑마법은 사용할 수 없으니… 이 세상은 어지간한 건 다 마음에 드는데. 흑마법 효율은 구려도 너무 구려.’

그러니 몸보신이 필요했다.

*    *    *

묵린토룡의 내단을 구하러 갈 여정을 떠나려면 생도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역시나 일신의 무를 갈고 닦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에, 나는 의욕 백배한 언동생들과 돌아가며 대련했다.

물론, 내 쪽이 큰 벽을 하나 넘은 만큼 녀석들은 짝을 지어 덤비게 했다.

“하흑. 허흑. 허흑.”

“웩.”

“괜찮소 은 소저? 제갈 소저?”

“저, 저는 더 할 수 있어요.”

“못할 것 같은데….”

“저는 안 괜찮아요. 진짜 괴물 딱지… 제갈 소저랑 동시에 토가 치밀 때까지 덤볐는데, 호흡도 안 흐트러져. 무림 역사상 언 공자 같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하흑. 글쎄요오? 용운님이면 모르긴 몰라도 열 손가락? 아니 같은 나이로 한정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는 꼽히지 않을까요?”

언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고.

나도 난전을 대비하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됐다.

하지만 신승과 대련을 했을 때 느꼈던 그런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여, 나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총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경혜사태는 온화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셨는데.

“어서 오세요. 언 회장. 근래 뜻깊은 일을 했다던데요?”

“독고철 생도의 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고 마침 시기가 적절하다 생각되어 추진한 겁니다.”

이 이야기엔 고개를 가로저으셨다.

“아뇨. 그거 말고요.”

“예?”

“빈니는 이번 주에 언 회장이 수강 신청한 모든 과목에 직접 출석한 일을 말하는 겁니다.”

“아?”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요.”

“바람이 불다뇨. 그간 제게 피치 못할 사정들이 있어서 그렇지. 천하에 저보다 교수님들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실한 생도는 없을 것입니다.”

“???”

- ?

“?”

그렇게 이어진 이야기 끝에.

총장실에 정적이 흐르길 잠시.

“…뭐, 그런 것으로 하지요. 어쨌거나 맡은 바를 허투루 한 적은 없으니까요.”

경혜 사태는 차를 홀짝이며, 독고세가의 일을 말씀하셨고.

“앞서 말한 독고철 생도의 일은 빈니도 뜻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현판식을 할 때 참석하지요. 그 일을 확답받으러 온 건가요?”

이번엔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다른 부탁을 좀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부탁이요? 무슨?”

“총장님. 아니, 멸마사태의 검을 견식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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