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34화 (334/444)

제334화. 초왕부 (2)

붓질 한 번으로 그려낸 듯한 강물이, 병풍처럼 겹쳐진 산세 사이사이를 도도히 흐른다.

손가락으로 액자 모양을 만들어 시선이 머무는 곳을 가두기만 하면, 언젠가 필방거리에서 본 적이 있는 송대의 산수화가 되어버리는 풍경.

“그나저나 절경은 절경이네.”

나는 묵린토룡의 내단이니 초왕부니 하는 것은 잠시 잊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으니.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라는 말이 괜히 있겠느냐?

‘으레 그렇듯 과장이 좀 섞인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계림에 대해서 좀 아시는 투이십니다?’

- 알다마다, 계수나무가 많다 하여 계림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계화꽃이 만발하면 더욱더 절경이지. 그리고… 아니다.

‘…왜 말씀을 하다 마십니까?’

- 별거 아니니라.

‘별거 아니면 해주세요. 찝찝합니다.’

- …계화꽃과 찻잎을 섞어 만든 계화차나, 계화주가 유명한 곳이니라.

‘아하. 계화주 쪽이 본심이셨네요.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 알긴 뭘 알아! 네 녀석이 딱 그렇게 나올까 봐 말을 아낀 것이다!

‘뭐, 초왕부에 가면 있지 않겠습니까? 사부님 몫으로 한 병 딱 챙겨 놓겠다는 뜻으로 알겠다고 한 건데 챙기지 말까요?’

- …두 병.

펼쳐진 계림의 풍경에 잠시 감탄하던 나는 은하연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은 소저.”

“예?”

“흥안현은 여기서 얼마나 더 가면 되겠소?”

세인들은 뭉뚱그려 계림이라 부르지만, 계림부는 제법 땅덩이가 넓다.

그중 초왕부의 왕성이 있는 곳은, 우리가 막 발을 디딘 전주현(全州縣)이 아닌 흥안현(興安縣)이었다.

“달려가지는 않으실 거죠?”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필요는 없지.”

“음. 반나절 정도면 닿을 수 있겠는데요?”

“어디보자, 그럼 우리가 예정보다 얼마나 빠르게 도착하게 되는….”

“초나흘쯤 도착하겠다고 해놨으니 닷새 정도 빨리 왔죠.”

“이쯤에서 연락을 하는 게 좋겠군.”

“예.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있겠지만, 그러는 게 좋을 성싶네요.”

맹주님을 통해 연락을 취한 이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따로 조치를 취하진 않았는데.

이 정도 거리라면 슬슬 연락을 하는 게 좋을 듯했다.

“해수 선배. 필기구 좀 주십시오.”

“예. 후배님.”

나는 즉석에서 기별문을 적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활공하고 있던 응용이를 불러 내렸다.

“언응용.”

호룩!

“너 연락소 익히던 시절에 초왕부 가봤지? 거기 가서 이거 좀 전해주고 와.”

호루룩!

그렇게 응용이를 초왕부로 날려 보내고.

다시금 걸음을 옮긴 지 한참.

어느 순간 관도와 사잇길들이 합쳐지며 확 넓어지는 목이 나왔다.

덜크덕-

덜크덕-

길이 합쳐지는 목이다 보니, 다른 길을 통해 이 땅에 이른 상행단과 표마차들이 보였고.

군졸들이 검문하는 검문소도 보였는데.

그 너머로 심부에 궁성을 품고 있는 제법 커다란 도시가 보였다.

은하연은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앞에서부터 흥안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우소릉은 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기 보이는 저 성채가 초왕부인가요? 스무 장쯤 돼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성안에 삐죽 솟아 있는데요?”

그런 녀석의 물음에 정현이 답했다.

“독수봉(独秀峰)인 것 같습니다.”

“독수봉이요?”

“예. 일대가 평탄한데 홀로 뾰족이 솟은 것을 보고 남송의 문인 안연지가 홀로 빼어나다 하여 그리 이름을 붙였다던데. 당금에 이르러서는 초왕부의 왕족들께서 천제를 지내는 곳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목을 지키고 있던 한 무리의 군졸 중, 번쩍이는 투구를 쓴 백호장이 우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이 거기!”

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군졸들이 질문을 해오는 것은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

하나 문제는, 그 태도가 심히 불량했다는 것이었다.

“저희 말입니까?”

“그래! 알아들었으면 냉큼 와서 머리를 조아릴 것이지. 뭘 되묻고 있느냐?!”

의도는 분명해 보였다.

‘칼집만 봐도 괜찮은 검들을 차고 있는 것 같으니, 트집을 잡아 통행세를 세게 물리려는 수작이겠지.’

오는 여정 중에 이미 숱하게 겪어 온 바였는데, 이번 것은 그중에서도 정도가 심했다.

“하.”

내 눈썹이 절로 삐뚤어지자, 언동생들은 합심하여 내 소매를 부여잡았다.

그중 은하연이 입을 열었다.

“…안 돼요.”

“알고 있소. 근데 돈을 뜯으려 하는 주제에 당당한 게, 재수가 없지 않소?”

“아, 그건 인정.”

일부러 들으라는 듯 말한 나는, 이어서 백호장을 응시하며 말했다.

“새치기를 하려 한 것도 아니고, 검문을 받지 않기 위해 그쪽을 매수하려 한 것도 아닌데. 무슨 연유로 선량한 백성을 이리 핍박하시는 겁니까?”

“…그건. 와, 왕부를 보고 이런저런 소리를 지껄였지 않느냐?!”

“그 역시 독수봉의 경치를 칭송한 말이었고, 그 말을 하면서도 왕족에 대한 표현은 꼬박꼬박 높였습니다.”

“…….”

“전하께서는 되레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그럼. 두 번째 묻습니다. 무슨 연유로 선량한 백성을 이리 핍박하시는 겁니까?”

내가 뻣뻣하게 나가자, 백호장은 콧김을 씩씩 뿜었다.

“허리춤에 찬 칼도 그렇고 딱 보니 무림인 나부랭이 같은데, 관무불가침이라는 말을 믿고 장수인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초왕 전하께서 무림인에게 관대하시다는 이야기에 개나 소나 몰려와서는….”

“관무불가침이란 말을 믿고 계신 쪽은 백호장 나으리 같습니다.”

“뭣이?!”

“그리고 나으리야 말로 전하를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나중에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아까부터 전하와 친분이라도 있는 양 주절거리는데, 네놈이 뭐라도 되느냐?”

“전하께 북쪽 관문의 수문장이 착복을 일삼더라 하는 진언을 드릴 정도는 됩니다.”

“이, 이놈이! 그런 귀인이 흥안현에 방문한다는 소식은 내 들은 바가 없다! 네 놈들이 초왕 전하와 연이 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그러더니, 휘하의 군졸들을 향해 명을 내렸는데.

“뭣들 하느냐?! 저놈들을 에워싸라! 관군을 능멸하다니, 차가운 감옥 바닥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릴 놈들이다!”

처처처처척!!!

그 명에 따라 군졸들이 마지못해 창대를 꼬나쥐며 다가서는 이때.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바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 응용이랑 같이 오는 저 젊은 장수는 일전에 용운이 너한테 대판 깨졌던 초왕부의 무관 아니냐?

‘예. 총령제기 양진무. 양 총기 맞네요.’

응용이를 어깨에 올린 초왕부의 총아 양진무.

그가 황급히 말에서 뛰어내리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런 양진무를 향해 백호장은 알은체를 하며 입을 열었다.

“어, 양 총기 마침 잘 왔네. 내가 지금 거동이 상당히 수상한 자들을….”

하나, 양진무는 그런 백호장을 쌩 지나치고 나를 향해 군례를 표했다.

“대협을 뵙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양 총기.”

그리고 창을 꼬나쥐고 있던 군졸들을 향해 불호령을 내렸다.

“뭣들 하는 짓인가?! 왕부의 손님이시다!”

“옛?! 저, 저희는 그냥 백호장 나리께서 시키신 대로 했을 뿐입니다요!”

그런 양진무의 말에, 병졸들은 기겁하며 백호장을 가리켰다.

사색이 된 백호장은 투구를 벗어 허리춤에 끼고 허리를 숙여왔다.

“소, 소장이. 귀인을 몰라뵙고 그만….”

“그만 무명잡세를 걷으려 하셨지.”

“그, 그것이.”

“직무에 임하는 태도는 둘째치고… 남아일언 중천금 아닙니까?”

“…예?”

“장 지지시겠다면서요?”

*    *    *

검문소를 뒤로하고, 우리는 초왕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길에서 나는 양진무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아까는 어수선해서 말할 틈이 없었는데, 시기적절하게 와준 덕분에 더 귀찮아지기 전에 일이 마무리된 것 같소. 고맙소.”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고. 되레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보고 절차가 있다 보니… 송구합니다.”

작년에 처음 마주했을 땐 우악스레 창대를 내밀던 양진무가, 이토록 깍듯해진 모습을 보니 좀 놀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는 왜 그랬소? 그토록 당연한 일을 안 하지 않았나? 심지어 양 총기는 우리가 초왕부의 손님인 걸 알고도 덤비지 않았나?”

하여, 운을 떼니.

하성이가 옆에서 추임새를 맞춰왔다.

“그랬다가 쌍코피가 나셨죠.”

“…크흠. 그때는 소장이 불민하여 왕자님께 충성한답시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렇게, 양진무를 놀리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도착하게 된 초왕부.

나와 언동생들은 간단한 확인 절차를 마치고 객관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목욕을 하고 예복으로 갈아입은 뒤.

환관들의 안내에 따라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예서 잠시 기다리시면 전하께서 행차하실 것이옵니다.”

“감사합니다.”

연회장은 넓은 테두리 안쪽으로 거대한 네모 식탁을 배치한 회(回)자 모양이었다.

그 위에 미리 놓여 있는 과일을 보며 천장호는 침을 줄줄 흘렸다.

“츄릅. 과일만 봐도 이다음에 나올 요리의 상태가 짐작이 가네… 용운 형님. 저는 어쩌면 이날을 위해 살아 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는 중에 괜히 따라왔다는 말만 백 번은 한 주제에.”

녀석의 태세 전환에, 나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한편, 우소릉은 바짝 긴장을 한 채로 앉아 있었다.

“소릉이 너는 처음 뵙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떨고 있어.”

“하, 하하. 워낙 지체가 높으시니까 한번 뵀다고 적응이 되고 그렇지는 않네요?”

녀석을 향해 당옥기도 한마디를 더했는데.

“에이. 뭘 그래. 지체가 높으시긴 하지만 인품도 넉넉하시고, 왕자님도 귀엽잖아.”

그런 당옥기의 말에, 남궁윤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전하의 인품을 평하다니. 그리고 왕자마마를 두고 귀여워? 당옥기. 말을 조심해라.”

“캭. 그 정도 말은 해도 되는 사이거든?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두 녀석이 투덕거리는 이때, 양진무의 음성이 쩌렁하게 울렸다.

“초왕 전하 납시오.”

이내, 연회장 안으로 용포를 갖춰 입은 초왕 내외와 청죽관의 무복을 입고 나온 왕자마마가 들어왔다.

“진주 언가의 용운이. 초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에 나와 언동생들은 정중한 읍과 함께 절을 올렸다.

초왕 전하는 그런 우리의 인사를 흐뭇한 표정으로 받아주었다.

“과례들은 그쯤 하게. 공사다망할 텐데 초청에 응해주어 고맙네.”

“망극한 말씀이십니다.”

“아니야. 일전에 보았을 적에 했던 부탁도 있고, 또 나로서는 왕자에게 아비로서 체면이 서는 일이고 하니. 여러모로 고마운 일이 맞아. 자자, 긴한 이야기는 조금 이따 나누고… 시장들 할 텐데 만찬부터 들도록 하지. 여봐라.”

“예. 전하.”

“요리도 내오고. 예인들도 들여보내라.”

이어진 초왕 전하의 명에, 궁인들이 산해진미를 들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는데.

뒤따라 들어선 예인들의 복장이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싶더니.

‘푸른 장포를 입은 사람의 이마에 용뿔이 있고, 검은 장포에 온몸에 검칠을 한 저 예인의 이마에는 소뿔 같은 게….’

연회장 가운데 놓인 무대에 올라선 예인들이 예해수가 각본을 쓴 용우상박 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혼을 서천의 악귀에게 팔아, 사람 고기 맛을 알게 된 만우라는 식인소가 이 땅의 백성들을 노리고 있다는데?!”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초왕부의 신하들과 궁인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혼잣말을 되뇌었는데.

‘…이게 왜.’

그런 나를 보며 사부님께서는 킬킬 웃으셨다.

- 다, 자업자득이니라.

그렇게, 뜨거워지는 낯에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삼키길 한참.

왕자가 상석에서 내려와 입을 열었다.

“괴룡. 왕부의 요리가 별로인가요? 계속 고개를 숙이고 계시던데요?”

“크흠. 아닙니다. 그건 제가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요리는 맛있었습니다.”

“정말로요?”

나는 잠시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멀찍이 앉아있는 남궁윤을 가리켰다.

“정말입니다. 안 그러냐 남궁윤?”

“예.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왕자마마. 생전 처음 보는 과실들도 맛보고 가문의 광영입니다.”

“안경 남궁가의 윤. 아까 인사하실 때 봤어요. 예전부터 한번 뵙고 싶었었는데 이번에 뵙게 되어 기쁘네요.”

“아, 소인을 말씀이십니까?”

“예! 괴룡 전에 천하제일후기지수 소리를 듣던 분은 누구일까 궁금했거든요!”

“…….”

생각지도 못한 답이 돌아오자, 표정 관리에 실패한 남궁윤의 모습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는데.

언동생들과 함께 잠시 웃은 나는 왕자를 향해 말을 건넸다.

“키가 좀 자라신 것 같습니다.”

“네. 조금 컸어요. 알아봐 주시는군요!?”

그런 내 말에 왕자는 잠시 몸을 비비 꼬더니.

뒤에 선 내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초왕부의 궁인들이 담근 계화주인데, 제가 한 잔씩 드려도 될까요?”

“영광입니다.”

그에 내가 먼저 한잔 술을 받아 마셨는데.

왕자가 내 허리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예인들이 한 공연에도 나오던데, 괴룡은 저렇게 협행을 하고 나면 회한에 술을 치신다던데 정말인가요?”

“…어, 예. 그렇긴 합니다.”

한데, 그 눈동자가 심히 반짝거렸다.

그에 나는 왕자의 내심을 알아채고 입을 열었다.

“…한번, 직접 해보시렵니까?”

“그래도 되나요?!”

“…예. 뭐.”

나는 대답을 하며 회한을 허리춤에서 끌렀는데.

사부님께서 저항을 해오셨다.

- 내 의사는? 아니 용운아! 인석아! 좀 이상할 것 같은데!?

‘자업자득이십니다.’

*    *    *

그렇게 연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와중, 초왕 전하의 대내관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그에 걸음을 옮기니.

왕족만 오른다는 독수봉 앞에 초왕 전하가 기다리고 계셨다.

“소생 언용운….”

“됐네 됐어. 예는 아까 차리지 않았는가. 나랑 같이 이 봉우리나 한번 오르세.”

내 예를 물린 초왕전하는 먼저 독수봉에 놓인 계단으로 걸음을 떼셨다.

나는 그 걸음을 따르며 입을 열었다.

“왕족들만 오르는 곳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제를 올리는 곳이라 와전이 좀 됐을 뿐, 꼭 그렇지도 않네. 생각해 보게. 고가 혼자 제사용품을 지고 여길 올라가겠나? 여기 대내관도 매번 함께한다네. 대신들이 함께할 때도 있고.”

“그렇긴 하네요.”

“그나저나 요령(遼寧)의 일은 참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던데… 고생 많았네. 연왕과 부딪힐 것까지 상정해서 은밀히 지원할 이들을 올려보냈었는데. 어찌 일을 그렇게 풀었는가?”

그렇게 봉우리를 오르며, 초왕은 내게 자신이 부탁했던 요령의 일을 시작으로.

북해빙궁, 초원 각궁보, 사천의 일들을 하나하나 물어보셨다.

나는 그간의 일들을 간략히 전했는데.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딱 끝날 즈음 우리는 독수봉의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독수봉의 정상엔 사당 하나가 있었고, 반대편으론 계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초왕 전하는 독수봉 아래의 풍경을 응시하며 말씀하셨다.

“이곳에선 계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속의 삶은 보이지 않지.”

“…….”

“오는 길에 얼굴 붉힐 일을 겪었다 들었네.”

“작은 실랑이가 있긴 했습니다.”

“고가 다스리는 땅도 그런 자가 있는데 다른 곳은 어떻겠나. 이 나라는 땅이 넓고 사람은 많은데 조정은 머니 관인들이 썩을 수밖에 없는 구조야.”

초왕 전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내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율령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야. 하여, 이 땅엔 바른 마음으로 주먹을 쥔 의협들이 필요하네.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그러고는 뒤편에 놓인 건물을 보며 입을 여셨는데.

“대내관은 보고(寶庫)를 열라.”

그 말에 따라 대내관이 사당문을 열고 안쪽의 기관을 작동시키자.

검, 도, 창, 활, 방패 등등.

딱 봐도 신기로 보이는 번쩍이는 물건들이 들어있는 내실이 드러났다.

초왕 전하는 빙그레 웃으며 뒷짐을 쥐셨다.

“골라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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