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6화. 포식 (1)
귀주성은 중원 남서부 교통의 요지라 할 수 있었다.
운남, 사천, 호남, 광서.
도합 네 개 성(省)과 면을 접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땅이었으니까.
그런 귀주성 한복판에 위치한 성도(省都) 귀양(貴陽).
“비단 사세요 비단! 비단의 왕 촉금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든 이 검을 봐주십시오! 이 검이 바로 괴룡 언용운의 애병!”
“…회한이란 말이오?!”
“…을 벼린 막간산의 장인들! 그들이 호북 탁가철방으로 건너와 만든 백련정강 검이올시다!”
네 개 성에서 뻗어 나온 관도가 집합하는 귀양인 만큼.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가 한데 뒤섞여 붐비는 곳이 여럿이었는데.
이곳엔, 그들을 가림막 삼아 숨어든 천마신교의 거점이 있었다.
“운남 명물 흑차(黑茶)입니다! 특등품들만 선별해 왔으니 보고들 가세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다점(茶店)으로 보이는 이곳이었으나.
여러 방실을 진법의 묘리에 따라 배치하는 방식으로 숨겨둔 안가(安家)에는 낭중마군 송길준.
그가 자숙을 명 받아 근신하고 있었다.
“…….”
일찍이 마뇌(魔腦)의 후계자로 거론되며, 장차 천마신교의 두뇌 역할을 맡아나갈 송길준이었다.
하여, 그의 근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거주지가 고정돼 있을 뿐, 각종 첩보 조직이 송길준에게 보고하고 있었고.
“공자님. 요청하신 하남 일대의 정보입니다.”
교인들을 전력으로 삼는 것을 금지당했을 뿐.
타인을 이용하여 공작을 거는 차도지계(借刀之計)를 벌일 수 있는 권한은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는데.
송길준은 당장에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한 명의 후기지수를 쫓고 있었다.
“…언용운.”
하여, 눈두덩이가 움푹 꺼진 초췌한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송길준이 자리한 이 방엔.
언용운에 대한 정보가 도배되다시피 나붙어 있었다.
천마신교의 정보 보고서부터, 청죽관이 발행한 모든 소식지, 지금까지 옮겨 다닌 행로를 표기한 지도, 심지어 각종 미담과 초상화까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이 방에 발을 디뎠으면, ‘방의 주인이 괴룡의 열렬한 추종자로구나.’ 하고 착각했을 것이다.
“…언용운.”
그만큼 언용운을 붙잡고 싶은 송길준의 마음은 간절하고, 집요했다.
다시 한번 언용운의 이름을 되뇌던 송길준은 수하가 건넨 하남의 보고서를 확인하고는.
슥-
지도가 붙어 있는 벽면으로 이동해 숭산에 가위표를 그었다.
“본가가 있는 진주에도, 외가가 있는 태원에도,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천에도 없다. 그렇다고 무림맹주가 모습을 드러낸 안휘성에 동행하지도 않았지. 그래서 소림으로 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증발하듯 사라진 언용운을 찾기 위해 송길준은 모든 경로를 처음부터 다시 훑기 시작했는데.
“진주에서 쫓겨나서 남으로….”
그러다 어느 순간 묘하게 걸리는 지점을 발견했다.
“모용세가에 모습을 드러낸 게, 그저 하북과 요령의 갈등을 어찌해보러 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모용세가와 연왕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간 것이라면?”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초왕부에 있는 거냐?”
지도를 응시하고 있던 송길준의 눈이 계림으로 향했다.
“초왕은 무림인을 환대한다. 더욱이 그 왕자가 언용운에게 빠져 있었다고 했지… 하.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언용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누군가만 생각했군.”
그렇게 미친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린 송길준은, 하남의 첩보를 올린 이래 죽은 듯 잠자코 있던 수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삼 호.”
“예.”
“너는 지금 즉시 근 한 달간 초왕부가 보인 동향에 관한 모든 첩보를 모아 이리 가져오고. 그 일이 끝나면 곧바로 내사에게 가서 연왕부의 대내관과 접촉하라 일러라.”
“존명.”
군례를 올리고 사라지는 수하의 모습을 지켜보며.
송길준은 다시 한번 혼잣말을 되뇌었다.
“초왕이 아무리 무림인을 아낀다고 해봐야, 흥밋거리 혹은 사냥개 취급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나 존귀한 존재는 다 그런 식이니까.
“인품이 남다르다 어쩐다 위명이 자자하지만… 연왕부를 부추겨 그 귀한 목에 칼이 들어가게 만들거나, 역적의 누명을 쓸 처지에 놓이면 강호의 후기지수 따위 가차 없이 버릴 테지.”
그는 언용운이 초왕부와 연왕부라는 두 고래 사이에 끼어 터져 나갈 새우가 될 것임을 확신하며 마른 웃음을 지었다.
“흐흐. 흐흐흐흐. 흐흐흐흐.”
* * *
무저갱을 오가기 위해 나는 작전을 세웠다.
나와 언동생들이 튼튼한 밧줄을 한 아름씩 들쳐메고 내려가, 메고 있던 밧줄을 연결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여, 남궁윤 당옥기 우소릉이 들쳐멘 밧줄을 차례차례 연결했고.
꽈악.
마지막으로 내가 챙겨 내려온 밧줄까지 튼튼한 매듭을 지어 연결했는데.
- …밧줄은 방금 그게 끝 아니냐?
무저갱의 밑바닥에 완전히 이르기 전에 가져온 밧줄이 동이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한 것이었지만.
보안도 신경 써야 했고, 또 밧줄이라는 것이 무게가 상당히 나가는 녀석이라.
자그마한 배를 타고 이동하는 상황에선 막무가내로 챙길 수가 없어,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것이었는데.
내 위로 줄줄이 매달려 있던 세 사람 중 남궁윤이 입을 열었다.
“밧줄을 다 써버린 건가?”
“어. 최대한 많이 챙긴다고 챙겼는데. 상황이 이렇게 됐네? 그래도 바닥이 보이긴 하지?”
그런 내 말에 당옥기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야! 저게 보이는 거냐?!”
보이는 거냐-
보이는 거냐아-
녀석의 음성이 메아리칠 정도로, 여전히 무저갱의 밑바닥은 어지간한 절벽은 찜 쪄 먹을 아래에 있었고.
벽면은 인근의 폭포수가 쏟아 내는 습기로 인해 번들거리는 게.
‘…이거, 잘못 발을 디뎠다간 어쭙잖은 고수는 비명횡사한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지.
우소릉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오, 올라가서 밧줄을 더 구해 오면 어때요?”
“양 총기가 배 뒤집힌다고 해서 가져온 밧줄은 이게 다잖아.”
“인근의 마을에 가서 구하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거 소문낼 일 있냐? 애초에 왜 조그마한 배를 탔는데? 그거 모르게 하려고 한 거잖아.”
“그, 그렇죠? 그럼 이제 저희 어떻게 해요?”
우소릉은 벌벌 떨고, 당옥기는 한숨을 내 쉬고 있었지만.
사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원작의 주인공 세대에 비하면 희망적인 상황이었다.
‘걔네는 뒤따르는 적이 있어서, 저 위에서부터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지.’
많이들 다치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이 무저갱에 한참 발이 묶이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그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 아니었다.
밧줄을 사용해 어느 정도 높이를 줄였고.
무엇보다, 화경의 고수인 내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자. 나 혼자서는 이 정도면 어떻게든 내려갈 수 있을 것 같거든? 내가 먼저 내려갈게. 그다음에 한 명씩….”
“캭!”
“말도 안 끝났는데 왜 화를 내?”
“받아 줄 테니까 뛰어내리라는 거잖아!”
“예리한데?”
“진짜 미쳤나 봐! 궁윤이 너도 뭐라고 좀 해봐!”
“나는 괜찮은 생각인 것 같다.”
“좋아. 그럼 다수결로 결정 났네.”
“…아니, 언 형. 사람이 네 명인데 어떻게 그게 다수결이에요오.”
“아, 화경의 반열에 든 사람은 투표권이 두 장이야. 그럼 과반수 맞지?”
말을 마친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온몸에 내력을 감은 뒤.
절벽의 벽면에 손을 붙였다.
그리고 밧줄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게 무슨 다수결이야-
다수결이야-
그렇게 울리는 당옥기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한 이때.
긁어내리고 있던 벽이 와스스 부서지며 몸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퍼서석!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제비를 돌아 허공을 박찼다.
휘리릭!
그렇게 다시금 벽면을 향해 손을 붙였다가, 벽이 부서져 내리면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기를 잠시.
“후우우. 봤지?!”
마침내 바닥에 발을 붙이게 된 나는 멀찍이 매달려 있는 녀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쉽죠? 아까 뛰어내린 순서대로 한 명씩 내려와!”
그런 내 말에 남궁윤이 곧바로 밧줄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는데.
내 방식을 답습해 녀석이 내려오던 때.
힘 조절에 실패했는지 벽면이 와르르 무너지며, 녀석이 균형을 잃었다.
그 광경을 쭉 지켜보고 있던 나는 집중력을 끌어올려 남궁윤이 낙하하는 지점으로 내달린 뒤.
그간 무당의 명영 도사와 수련하며 접해온 부드러움을 상기하며 손을 휘저었다.
‘사량발천근.’
파천의 내력에 접목된 부드러움은 주위의 대기를 빨아 삼키듯 당겨 냈고.
휘리리릭!
그 기류에 올라탄 남궁윤은 사뿐히 무저갱의 밑바닥에 발을 디뎠다.
“…고맙다.”
녀석의 인사를 대충 받아준 나는 위쪽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다음! 당옥기!”
* * *
각각 욕설과 앓는 소리를 내긴 했으나, 당옥기와 우소릉도 무사히 내 도움을 받아 무저갱의 바닥에 발을 디뎠는데.
한참 분기를 쏟아 내던 당옥기는 어느 순간 주변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근데 여기 지형은 태영자 어르신이 알려주신 마차가 떨어졌다는 지점이 별 의미가 없겠는데?”
“그런 편이지.”
녀석의 말이 맞았다.
태영자 덕분에 내려올 지점은 정확하게 잡았다.
하나, 그가 이르길 마차는 홀로 다리를 건너다 중간에 떨어졌다고 했다.
‘심지어 그건 태영자가 젊었던 시절 이야기지.’
그때로부터 태영자의 머리가 하얗게 샐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곳을 찾아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무저갱 아래는 대낮임에도 빛이 희미했다.
또, 기괴하게 생긴 암벽들이 천혜의 미궁처럼 펼쳐져 있어서 기실 지도가 큰 의미를 가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해볼 만해.”
“해볼 만하다고?”
“무림 고수인 우리도 준비와 기지를 통해 간신히 안전을 확보한 지형이다. 낙사를 당한 사람과 동물이 없을까? 그리고 여기도 생태계는 있겠지.”
되물어 오는 당옥기의 말에, 씩 웃어 보인 나는 내력을 상단전으로 밀어 올린 뒤.
무저갱의 바닥에 손바닥을 대며 언령을 내렸다.
“일어나라.”
그에 백골이 된 사람과 동물들이 우르르 몸들을 일으켰고.
후둑!
후두두둑!!
나는 녀석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금속으로 된 마차가 여기 어디 있을 거다. 찾아내.”
삐각!
삐가각!
우소릉과 남궁윤은 나를 보며 연이어 입을 열었는데.
“그, 그런 방법이! 언 형의 술법은 진짜 매번 볼 때마다 믿기지 않아요.”
“…저 재주야말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영역이긴 하지.”
“시끄럽고. 근처에 불붙일 거나 좀 찾아와봐. 저것들이 마차 발견할 때까지 불이나 좀 쬐고 있자.”
그런 녀석들을 다그쳐,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있기를 한참.
삐각.
뼈만 남은 수사슴 한 마리가 총총 달려와, 어떤 방향을 뿔로 가리켰다.
삐가각.
나는 내력을 아끼기 위해 다른 해골들과의 연결을 끊어 버린 뒤.
“찾았다는데?”
모닥불에 흙을 차 넣고는, 언동생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렇게 용대인의 마차를 향해 가는 길.
당옥기는 스무 걸음쯤 뗄 때마다 우리를 불러 세웠다.
“얘들아! 잠깐! 잠깐만!”
녀석이 우리를 불러 세운 이유는 약초들을 채집하기 위해서였는데.
미쳤느니 어쩌니 하던 때는 까맣게 잊고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여기는 의원들의 극락정토네.”
“그 정도냐?”
“말이라고 해?! 사람 손이 안 닿은 곳이니까 당연히 영초들이 제법 있겠거니 했지만… 이건 뭐 오십 년쯤 묵은 약초들이 지천에 널려 있네.”
그러고 보니 녀석의 망태기에 담긴 영초가 벌써 꽤 돼 보였는데.
“알이 굵다 싶어서 무작정 캤는데, 잘못하면 다 들고가지도 못할 거 같아서 지금부터는 백 년 이상 돼 보이는 약초만 캐야겠다고 다짐한 참이야.”
싱글거리던 녀석이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건 사슴 똥인데. 골록(骨鹿)이 쟤도 떨어져 죽은 게 아니라, 여기 살던 애일 수도 있겠는데? 언용운 네 말마따나 여기도 생태계가 있나 보다.”
그 말에, 남궁윤이 입을 열었고.
“하면 포식자도 있다는 이야긴가?”
“어?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 봤는데… 초식동물만 있으면 약초들이 남아나지 않았어야 정상인데, 많은 거 보니. 있기는 있지 않을까?”
그 말에 당옥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소릉은 기겁하며 입을 열었다.
“포, 포식자요?”
“그래봐야 미물이다. 뭘 그렇게 겁을 먹고 그러나.”
그런 녀석을 향해 남궁윤은 핀잔을, 당옥기는 장난을 거는 이때.
“또 모르지. 오십 년 묵은 영초가 즐비한데, 호랑이 요괴 같은 게 있을지 누가 알아?! 캬흥!”
“으으으.”
뼈사슴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녀석 너머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마차가 땅에 틀어박혀 있는 광경이 보였다.
“찾았다.”
한데, 그 마차를 향해 다가가려고 하는 순간.
츠츠츠츠츠-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시커먼 어둠 속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시뻘건 눈알이 번쩍 안광을 내뿜어 왔다.
한데 눈알의 숫자가 한 쌍이 아니었다.
그에 당옥기가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둘, 네, 여섯, 여덟. 거미 같은데? 눈알 하나가 내 주먹보다 더 크면 몸집은….”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너희가 말한 포식자인가 보네.”
그걸 어찌 아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
사실 나는 진즉부터 저 녀석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면지주.’
녀석은 장차 당옥기가 하는 각종 연구에 큰 도움이 되어줄 녀석이었다.
“여기서 홀로 왕처럼 군림해서, 겁대가리를 상실했을 텐데….”
나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회한을 뽑았다.
“어서 와라. 이런 상대는 처음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