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8화. 지금부터 반격이니까 (1)
낙하하는 정현의 모습에, 사부님은 한마디를 해오셨다.
- 경지도 경지지만, 무당의 녀석이라 그런지 투박했던 궁윤이와 다르게 자세가 썩 괜찮구나?
사부님의 말씀대로였다.
정현은 무당 특유의 신법인 제운종을 사용해 나풀나풀 잘 내려오고 있었다.
‘그렇네요. 하지만 혹시 모를 사태라는 게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좀 도와줘야겠습니다.’
나는 녀석이 착지할 지점으로 달려간 뒤, 내력을 손에 감아 기류를 일으켰다.
“감사합니다.”
그 덕분에 사뿐히 착지할 수 있었던 정현은 감사를 표하더니.
무슨 말을 하려 했는데.
“지금 위쪽….”
이때, 침투조의 언동생들이 정현을 둘러쌌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우소릉이었다.
“정현 도장! 여기 미궁처럼 돼 있는데, 엇갈렸으면 큰일 날 뻔하셨어요!”
“예. 안 그래도 내려오며 이거 어찌 찾아야 하나 당황했는데, 다행히 바로 아래 계셨습니다.”
뒤이어 당옥기와 남궁윤도 한마디씩 했다.
“으이구. 언용운이 열흘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내려왔네. 하연이가 시켰지? 걔도 은근히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그래. 어련히 알아서 돌아갈까.”
우소릉과 남궁윤은 묵린토룡의 내단을 흡수했고.
당옥기는 연구에 도움이 될 재료들을 한가득 손에 넣었다.
녀석들은 한마디로 신이 좀 나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정현이 우리를 찾아온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곧바로 입을 열어 녀석들의 입을 막았다.
“이 자식들이 들떠서 상황 파악을 못 하네. 조용히 좀 해봐. 저 고지식한 녀석이 여기 내려왔으면 위에 무슨 일이 생긴 거잖냐!”
그 말에 세 사람이 헉하는 표정을 짓는 이때.
정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한데, 저희가 지키던 곳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럼?”
“지금 초왕부 전역에 봉연(烽煙)이 오르고 있습니다.”
“봉수대에서 연기가 올라왔다고? 어디서부터? 해안가나 국경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면 외침(外侵)이고, 흥안에서부터 퍼지는 거면 왕성이 위험한 걸 텐데?”
“흥안쪽에서 시작됐습니다.”
정현의 말에 남궁윤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반역이라도 일어난 건가?”
“빈도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봉연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은 소저가 초왕부의 전력과 함께 천 소협을 역참으로 보냈고. 저는 내려왔습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조금 전의 일이라는 거네. 왕성에서부터 봉연이라니….”
하나, 어쨌거나 결론은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둘러 가봐야겠네.”
내가 그 점을 되새기자, 당옥기가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우리 어떻게 올라가?”
“원시천존. 밧줄이 드려진 부분이 상당한데도, 무저갱의 단애절벽 길이에 비추면 턱없이 부족하더군요.”
그에 정현이 고개를 끄덕였고, 남궁윤은 의견을 내왔다.
“벽에 강기를 감은 손을 박아 넣으면서, 손을 끼워 넣을 틈을 만들어가며 올라가면 어떨까?”
그에 당옥기가 미간을 와락 구기며 입을 열었다.
“뭔 소리야. 너 내려올 때 벽 부서지던 거 까먹었어? 미끄럽기도 하고.”
“…나 말고. 언용운이 나서서 조심스럽게 한다면 가능할 것 같아서 한 말이다.”
“흠. 쟤는 가능하겠지, 근데 결국 짚고 올라가는 게 우리잖아?”
“일단 저 녀석만이라도 보내는 게 맞지 않겠나? 달리 방법이 없다면?”
그렇게 녀석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나는 땅바닥에 술식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걸 알아본 사부님은 질문을 해오셨다.
- 건(乾), 태(兌), 감(坎), 곤(坤). 에다 알아볼 수 없는 꼬부랑글자들… 모산의 말코와 학관에서 연구하던 술식이로구나. 술법의 도움을 받아 나갈 심산이냐?
‘예. 묵린토룡의 내단 덕분에 내력이 충만하긴 한데. 봉화가 오른 상황에서 흥청망청 써선 안 되니, 효율을 올리는 진법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습니다.’
그렇게 사부님과 대화를 주고받기를 잠시.
어느덧 술식이 완성되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나를 지켜보고 있던 언동생들을 좌우로 비켜서게 한 뒤.
“다들 비켜.”
상단전에서 뽑아 올린 내력을 술식에 주입했다.
우우우웅-
그에 바닥에 그려 넣은 진법이 시퍼런 빛을 뿜어내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복판에 걸어 들어간 뒤.
지면에 손바닥을 가져다 붙이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그에 언령이 둥그런 파장으로 화해 무저갱의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곧이어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
그리고, 깊숙이 묻혀있던 해골들이 땅을 파내며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용대인의 마차를 찾기 위해 풀어두었던 해골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절벽을 가리키며 녀석들에게 명을 내렸다.
“만들어. 길.”
그에, 절벽을 향해 무수한 해골들이 달려가 겹쳐지기 시작했다.
삐각! 삐가악!
삐가가각!!
그렇게, 겹쳐지고 겹쳐진 해골들이 산처럼 쌓였을 때.
“가자.”
나는 언동생들과 함께 해골산 위로 뛰어올라, 드리워 놓은 밧줄을 낚아챘다.
그리고 절벽을 내달리듯 거슬러 올라갔는데.
탓! 탓! 탓! 탓! 탓!
그렇게 말뚝을 박아 놓은 지점에 도착하니.
언동생들이 우르르 뛰어나와 우리를 맞았다.
“용운 형님!”
“언 공자! 옥기야!”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 인사를 받아주며, 무저갱 아래 쌓아놓은 백골들을 무로 돌린 뒤.
“상황이 급한 것 같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는 뒤로 미룬다.”
멀찍이 보이는 봉연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은 소저. 초왕부 쪽에서 봉화가 올라왔다는 소리는 들었소. 한데, 파악하러 보낸 천장호가 아직 안 돌아온 모양이로군?”
“예.”
“여기서 가장 가까운 역참이 어디지?”
“몽산현이요.”
“…개방의 움막만 있는 곳이군. 제대로 된 정보가 모이는 지타는 려포현인가?”
“예. 려포현에 있죠.”
“역참에선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일 것이오. 초왕부 사람들도 거기까지는 장호와 동행할 테지….”
“예. 그럴 것 같네요.”
“초왕부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고, 충신들이 있으니 잘 버텨내고 있을 테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에 장호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소. 질러가 있읍시다.”
“예!”
* * *
같은 시각.
양진무를 필두로 한 초왕의 친위대 십번조는 몽산현의 역참에 도착했는데.
“신분을 증명하고 소속을 대시오.”
창을 겨눠오는 병졸들을 향해 양진무는 초왕부의 마패를 꺼내들었다.
“나는 친위대의 총령제기다. 전하의 심부름을 가던 길에 봉연을 보았다. 역참으로 들어온 소식은 없는가?”
친위대 소리에, 역참지기가 뛰어나온 것은 이때였다.
“있습니다! 왕성에 살수가 침입했답니다!”
그런 역참지기의 말에, 양진무는 미간을 좁혔다.
“살수? 어느 안전이라고 살수 나부랭이가 감히 초왕부의 왕성에 침입을 한단 말인가? 그자들이 누군가?”
“소관도 그것까지는 잘… 해안가를 지키는 장졸들과 각 소(所)의 필수 인력을 제외하곤 달려와 근왕(勤王)하라는 총독(總督) 각하의 명만 있었습니다.”
그에, 양진무가 입술을 씹자.
천장호가 입을 열었다.
“진무 형. 이럴 게 아니라 려포현까지 가십시다.”
“려포현 말입니까?”
“예. 어차피 흥안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잖수? 거기 가면 개방의 지타가 있어요. 파발이 말을 바꿔타며 한마디 흘리고 간 여기보단 조금 더 구체적인 정보가 들어와 있을 겁니다.”
그렇게, 개방의 지타로 향해 달려가며.
천장호와 양진무는 계속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번 일은 아무래도 기염곡의 짓 같습니다.”
“기염곡?”
“중원이대살수조직이라 불리는 곳 중 하나인데… 천살막은 종적을 감춘 지가 좀 됐으니까. 제 생각엔 거기가 아닐까 싶네요.”
“…기염곡이라.”
“큼. 확실한 건 아니고. 아, 이런 건 용운 형이 귀신같이 딱딱 찝어 내는데. 지금쯤 올라 오셨을라나?”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새어나온 이야기에.
양진무는 잠시 생각을 곱씹었다.
그리고 동료 중 한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려포현에서 개방의 정보를 구하고 나면, 정 내관이 조원들을 인솔해서 왕성으로 가주십시오.”
“…양 총기는 함께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예. 급한 마음에 여기까지 달려왔으나. 우리 모두 가는 것은 기실 괴룡을 지키라던 전하의 명에도 맞지 않거니와… 상황에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괴룡을 모시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의 말씀은 알겠는데, 상황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말씀은?”
“믿을 수 있는 아군 한 명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괴룡이라면 큰 힘이 되어주실….”
부스럭-
옆쪽 수풀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며, 언용운이 튀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나랑 뭐를 어째요?”
“!!?”
* * *
먼저 출발한 녀석들과 합류한 나는 개방의 지타에서 정보를 구했다.
거기서 확인된 정보는 기염곡이 움직였다는 것.
그리고 아직 황족이 시해당했거나 사로잡히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것 두 가지였는데.
“…기염곡이라.”
다시금 왕성이 있는 흥안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와중, 들은 정보를 되새기고 있으니.
우소릉이 질문을 해왔다.
“아까. 남궁 형이 반역이 일어난 거냐고 하셨었는데, 정말로 그런 걸까요?”
“그건 아닐 거라고 본다. 초왕 전하는 성군이라는 칭송이 자자하고, 논공행상에 공평하시다. 심지어 관리들이 어느 정도 착복할 수밖에 없는 녹봉제도의 폐해까지도 이해해주시는 편인데. 이런 땅에서 누가 전하께 반기를 들겠냐.”
그런 내 말에, 은하연이 맞장구를 쳐왔고.
“맞아요. 반역도 호응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럼 문제는 기염곡을 누가 움직였냐는 건데, 제대로 된 보수만 주면 누구든 암살하는 자들이긴 하지만….”
“초왕 전하쯤 되는 분을 어찌하는 일에 착수하는 대가는 어마어마하겠지.”
“네. 돈은 곧 의지죠. 그런 비용을 들여서 전하께 위해를 가하고자 할 생각을 품은 사람이면….”
“아니꼬워할 사람은 제법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실행에 옮길 사람은… 연왕 정도인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니, 분위기가 자연히 심각해졌다.
적당한 긴장감이야 필요했지만, 이미 최대 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는 지금, 이 이상 심각해질 필요는 없었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냐저나. 양 총기는 왜 나와 함께 돌아가려고 한거요?”
“…봉화대에서 올라오는 봉연을 보니 마음이 급해 발이 움직였었는데. 역참에서 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있어야 불필요한 시비 없이 괴룡이 왕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기는 했다.
오면서 거쳐온 몇몇 관문들은 초왕부의 사람들이 있어서 단박에 통과할 수 있었으니까.
‘위기 상황인 만큼 저들이 없었으면, 통행이 제한되거나 억류될 수 있었겠지.’
그 과정에서 아군의 범주에 들어가는 광서의 병졸들과 불필요한 싸움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양진무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양총기가 나를 얼마나 봤다고.”
“예. 사실 잘 알지 못하지요. 면을 튼 자리에선 무례를 범했고, 지금도 감히 괴룡을 잘 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한데?”
“다만, 저마다 출중한 지용을 갖춘 동기분들이 하나같이 믿는 분이시고, 전하와 왕자마마께서 신뢰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길 뿐입니다.”
“나 원 참.”
우리는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해 북상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기를 한참.
마침내 흥안현에 있는 초왕부의 왕성에 닿았는데.
여기저기 치솟은 불길이 보이는 가운데, 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챙챙 울려왔다.
화륵-
화르르륵-
초왕부를 둘러싼 마을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은 광경에 사부님께서는 한숨을 내쉬어 오셨는데.
- 쯧쯧. 산수갑천하의 정점이라 할 수 있었던 도시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구나.
‘내성의 병력을 끌어내려고 외곽에 불부터 지른 것 같습니다. 천하제일 살수집단이라더니. 체계적이네요.’
- 매검(賣劍)을 하는 놈들은 예로부터 존중이 없어 존중이. 그딴 놈들에게 천하제일 같은 소리 붙이지 말거라. 같잖으니까.
그 말씀에 대꾸하는 때.
양진무가 나를 향해 전음을 보내왔다.
[이쪽으로 가면 친위대가 사용하는 비밀통로가 있습니다.]
양진무의 안내에 따라 왕성 안에 진입하자.
매캐한 탄내와 비릿한 피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르는 가운데.
챙! 챙!
채채채챙!!!!!!
원진을 이룬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흑의인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한 무리의 내관들이 보였다.
스르렁-
굳이 지시를 내릴 것도 없었다.
내가 회한을 뽑자.
스릉- 스릉-
스르릉-
언동생들도 곧바로 검을 뽑았다.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채작진의 대형으로 펼치며 그들의 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흑의인들을 향해 맹공을 쏟아냈다.
챙! 채애애앵!
원진을 이루고 있는 내관들과 우리의 협공.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된 흑의인들이 버틴 건 잠시였는데.
푹! 푹!
푸푸푸푹!
‘죽으면서 단말마도 내지 않는다니. 제대로 된 살수들이긴 하네.’
기염곡의 살수들의 독함에 내심 놀라고 있는 때.
양진무와 내관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전하는? 왕비마마와 왕자마마는 어찌 되셨소?”
“동궁! 동궁이 위험합니다! 난리가 터지고 나서, 방어조칙에 따라 전하와 왕비마마는 안가로 모시었는데 동궁은 완전히 둘러싸여, 동궁전의 내관들이 왕자마마를 안전히 모셨다는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우리는 곧바로 동궁으로 향했는데.
어째 날붙이 부딪히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싶더니.
도착한 동궁전엔 죽음의 냄새만이 가득했다.
“…….”
“…….”
우리는 누구도 함부로 입을 떼지 않은 채.
사방에 널부러진 시체만 가득한, 동궁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양 총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왕자마마로 보이는 시체는 없는 듯싶소.”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사혼을 좀 부릴 수 있는데, 그걸로 단서를 한번 찾아봅시다. 격이 낮은 혼들은 살고 싶다는 외침을 반복할 뿐이지만… 혹시 모르니.”
사혼이라도 불러내 단서를 모으려는 때.
“음?”
왕자의 침소 한편에 삐뚤빼뚤한 솜씨로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보였다.
“행산방서승(行山方西勝). 이거 새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왕자마마가 써놓으신 건가?”
“그, 그런 것 같습니다. 행산방서? 서쪽에 있는 산으로 가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동궁에도 비밀통로가 몇 개 있습니다. 거길 통해 서쪽 산으로 가신 모양입니다.”
“잠깐.”
“괴룡! 한시가 급합니다!”
“나도 압니다. 한데, 왕자마마께서 총명하신 분인데, 살수들도 읽고 이해하도록 행선지를 쓰셨겠소?”
“!”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은데? 동궁에서 사용하는 암어 같은 거 없소?”
“…그런 것은 없습니다만.”
암어가 없다는 말에, 나는 생각을 거듭했는데.
그러다 보니 문득 청죽관의 무복을 줄여 입고 있던 모습이 뇌리에 스쳤다.
‘…왕자마마께서는 나를 좋아하시지.’
그 생각을 하며 적힌 글귀를 중얼거리다 보니.
“행산방서승. 글자를 거꾸로? 승서방산행?”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제대로 된 글귀가 맞춰졌다.
“산서행방승! 산서에서 승리한 방도!”
“예?”
“왕자마마께서는 내 이야기를 즐겨 읽으셨다 하지 않았소? 산서에 내 외가가 있는데, 거기서 이긴 방도는 사당을 들이쳤기 때문이오. 여기 역대 초왕전하들을 모신 사당, 종묘가 어디에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