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2화. 지금부터 반격이니까 (5)
조범의 시신을 보며 데스나이트를 떠올리던 때.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는데.
- 왜 말을 하다가 마느냐?
‘데스….’
생각해보니 중원 식으로 말하지 않으면 이해하시지 못할 듯해서, 나는 말을 바꿨다.
‘사령기사(死靈騎士)라는 것이 있습니다.’
- 대수사령기사(大帥死靈騎士)?
‘…대수는 빼셔도 됩니다. 큰대에 장수 수면 의미는 맞는데, 그냥 사령기사라고 하면 되겠네요. 생각을 좀 하느라 말이 헛나왔습니다.’
- 하여, 그건 또 뭐 하는 물건인고?
‘지배계 흑마술의 꽃이라 해도 될법한 녀석이죠.’
- 인석아, 그리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내가 어찌 아느냐?
나는 사부님의 말에 답하며, 조범의 시신을 응시했다.
‘쉽게 말해, 구울이나 강시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를 제 그림자에 귀속시키는 겁니다.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장수를 얻게 되는 셈이죠.’
흑과 백 그리고 동서를 막론하고, 술사들의 고민거리는 술법을 시전하는 동안 곁을 지켜줄 존재다.
‘가장 위험한 순간이니까.’
평범한 마법사나 주술사는 보통 동료가 그 역할을 해주는 반면.
흑마법사의 경우 망자의 혼과 시신을 무기로 삼기에, 혐오하는 자들이 많아 정말로 믿을 수 있는 동료를 찾기 힘들었다.
‘…음.’
믿을 만한 동료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니, 문득 언동생들이 뇌리에 스쳤다.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투닥이고 있는 녀석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유교가 통치 철학인 이 시대야말로, 나 같은 존재에게 혐오감을 느끼기 쉬울 텐데….’
- 사령기사 이야기를 하다 말고 왜 갑자기 동생들을 보면서 웃느냐.
‘참. 별종이다 싶어서요.’
- …너만 하겠느냐?
‘?’
- 뭐?
‘???’
아무튼.
절대 배신하지 않는 강력한 호위이자, 시체병단을 뚝 떼어 맡길 수 있는 사령기사는 흑마법사와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존재였다.
데스나이트가 괜히 지배계 흑마법의 꽃이라 불리는 게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령기사는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우선 대상이 될 혼령이 어느 정도 격을 갖추고 있어야 했는데.
사람이든 사람이 아닌 무언가이든 그만한 존재의 사체를 얻는 것부터가 고비였고.
‘중원기준으론 초절정 고수도 대상으로 삼기에 애매하다고 봐야겠지.’
그 혼령이 나와의 계약을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했으며, 그 존재를 부리는 술사의 격이 대마도사라 불릴 정도는 돼야 했다.
전생의 나는 그 까다로운 조건들에 부합하는 존재였다.
하여, 대상이 될 격이 높은 대상만 찾으면 됐다.
‘찾아서 혼령을 묶어놓고 갈구… 달래다 보면 녀석들이 기사가 되기를 자처했으니까. 어려울 게 없었지.’
하지만 이 시대로 흘러들어온 내겐 몇 가지 제약이 생겼다.
영혼이야 그대로였지만, 사부님을 받아들이다가 얼어붙을 뻔한 신체의 격을 갖추어야 했고.
내력도 쌓아야 했다.
‘각종 영약에 묵린토룡의 내단까지 삼킨 지금이라, 무공을 사용하는 것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사령기사와 계약을 맺기에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워낙에 흑마법의 효율이 좋지 않은 세상이었고.
사령기사를 만드는 일은 내력이 얼마나 들어갈지 장담할 수가 없었으니까.
‘혼령을 끄집어 내리고, 묶고, 어르고 달래고 계약을 맺어, 내 영혼에 귀속시켜야 하니. 내력이 얼마나 빨려 나갈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뭐, 그래도 조범의 격은 맞았다.
아슬아슬하게 화경에 걸쳐있는 조범의 사혼이라면 대상이 될 혼령의 격은 충족한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사혼이 복종의 계약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내게 충성심이 있는 존재라면 일이 쉽겠지만.’
조범과 나 사이에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여, 나는 제약 중 몇 개를 덜어내기 위해.
회한을 붓 삼아, 조범의 시신을 중심으로 술식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서걱-
서거걱-
그런 내 모습에.
사부님은 한 말씀 해오셨다.
- 술진들을 복잡하게 겹쳐나가는구나? 그 사령기사라는 물건은 다른 시체들처럼 네가 부르면 곧장 몸을 일으키는 녀석이 아닌가 보지?
‘예. 만약에 성공한다면 아시게 될 겁니다.’
- 만약이라니? 용운이 네가 성공을 장담치 못한단 말이냐?
‘예. 그래서 제가 학관에서 틈틈이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부님께 말씀드린 대로,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해볼 만은 해.’
내가 학관에서 연구한 이 시대의 술법 중엔 ‘호식총(虎食塚)의 술.’이라는 것이 있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이들은 창귀(倀鬼)라는 것이 되는데.
이 창귀라는 녀석은 다른 희생자를 호랑이에게 바쳐야 풀려날 수가 있다.
하여, 호랑이에게 붙어 다니며 다른 사람을 희생자로 만들기 위해 길 안내를 한다.
그걸 막기 위해 창귀가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돌무덤을 쌓고 검을 꽂아 봉인하는 방식이 바로 호식총의 술이었다.
‘적은 품으로 창귀를 영원히 잡아 두는 게 호식총 구조의 핵심이다.’
그걸 이용하면, 따로 사출계 흑마법을 동원하여 사혼을 잡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들어가는 내력이 크게 줄겠지.’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술진을 그려나가길 한참.
거대한 원을 중심으로, 도합 칠십이 개의 크고 작은 원이 겹쳐진 ‘사령기사 소환진’이 마련되었다.
‘…틀리게 적은 것은 없군.’
마지막으로 틀린 곳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한 나는 상단전을 통해 뽑아낸 내력을 진식에 밀어 넣었다.
우웅-
그러자 내력이 뭉텅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술식 전체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고.
조금 진한 빛깔의 빛덩이가 중심이 되는 큰 원을 빙빙 돌아 원뿔의 형태를 그리기 시작했다.
부웅-
부우웅-
내 방식으로 구현한 호식총의 술.
술진이 완벽하게 구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내 내력이 동나지 않는 한, 사혼이 빠져나가지 못하겠군.’
이제 남은 것은 조범의 사체에 사혼의 정수를 끌어내 나와 계약을 맺게 하는 것뿐.
나는 술진 안으로 걸어 들어간 뒤.
한복판에 누워있는 조범의 시체에 회한을 꽂아 넣으며 언령을 내렸다.
“망령된 자여. 구천에 고립되어 사멸하고 싶지 않거든. 주인을 알아보고 신하 됨을 자처하라.”
* * *
우우웅-
내가 회한을 복판에 꽂아 넣자.
술식 전체가 울 듯이 진동하는가 싶더니.
화악-
조범의 몸에서 새파란 도깨비불이 빠져나왔다.
진식에서 무수히 뻗어 나온 붉은 손아귀들이 파란 사혼을 휘어 감은 것은 이때였다.
그렇게 진식에 사로잡힌 사혼은 시커먼 그림자를 토해냈는데.
꿀럭꿀럭-
그렇게 토해져 나온 그림자가 사람의 형상처럼 뭉쳐지기 시작한 지 얼마쯤 지났을 때.
제대로 된 형상을 갖추지 못한 그림자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실패.’
하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생의 나도 단번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술진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아직 내력도 충분했다.
나는 다시금 술진을 향해 명을 내렸고.
“다시.”
뻗어 나온 손아귀들이 다시금 사혼을 뭉쳐냈을 때.
사혼을 향해 재차 언령을 내렸다.
“신하 됨을 자처하라.”
그에, 또 한 번 내력이 뭉텅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커먼 그림자가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얼마 못 가 무너져 내렸다.
앞서 이어진 혈투에, 두 번의 실패.
‘…….’
적지 않은 내력 소모로 피로감이 몰려들었으나.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이건 사혼과의 기 싸움이었다.
‘…아직 한 방 남았다.’
딱 한 번 정도는 더 시도할 여유가 있었다.
“…적당히 해. 뒈지기 싫으면.”
이를 갈며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재차 입을 열어 다시 한번 언령을 내렸는데.
“망령된 자여. 구천에 고립되어 사멸하고 싶지 않거든. 주인을 알아보고 신하 됨을 자처하라!”
뭉텅 빠져나가는 내력과 함께, 묘한 기시감이 뇌리에 스친다 싶더니.
앞선 두 번과 달리, 진하게 엉긴 그림자들이 마침내 사람의 형상을 갖춰내는 데 성공했다.
화악-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모습을 한 채, 새파란 눈동자를 형형이 빛내고 있는 존재.
전생의 모든 업과 연을 잊고 내 종으로 다시 태어난 사령기사가 나를 향해 무릎을 굽혔다.
“주군께 이름을 내려주실 것을 청합니다.”
이름을 내려줄 것을 청하는 사령기사의 모습은, 익히 보아온 데스나이트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날렵한 게 기사라기보다는 무림인. 그중에서도 살수 같군.’
사혼을 제공한 주인의 영향인지, 사령기사를 소환하는 과정에서 내 머릿속에 스쳤던 생각들이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어울리는 이름은 금세 떠올랐다.
“암객(暗客)으로 하자.”
* * *
“이름 받았으면 들어가.”
“예. 주군.”
암객은 명에 따라 내 그림자 속에 스며들었다.
사학-
그 모습을 보며 사부님은 질문을 해오셨는데.
- 꽃이니 어쩌니 하더니만 과연 기도가 평범치 않아 보이긴 하는구나. 저 암객이라는 녀석은 그럼 네 그림자에 붙어 지내는 것이냐?
‘예. 필요하다 싶을 때 불러다 쓰는 거죠.’
그 물음에 답을 드리고 있으니, 언동생들이 달려와 입을 열었다.
그중 가장 먼저 말한 건 천장호였다.
“용운 형! 방금 그거 뭡니까?! 주변 공기가 싹 바뀌면서. 시커먼 게, 어? 사람처럼 뭉쳐졌다 녹듯이 사라지던데?”
녀석의 호들갑에 이어, 은하성과 우소릉도 입을 열었다.
“예! 뭡니까 그거? 용운 형님의 술법을 자주 보긴 했지만, 이렇게 머리털이 쭈뼛 서는 느낌은 처음인데요?”
“은 형은 그러시군요? 저는 무저갱에서도 봤는데.”
“…….”
은하연과 당옥기도 눈을 키우며 말했다.
“술식을 그리고 있으시길래, 뭔가 하시는구나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강시나 구울? 그런 거랑은 느낌이 좀 다르던데요?”
“몸은 괜찮아? 기염곡의 늙은이랑 사투를 벌인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는 시체랑 씨름을 해?!”
나는 손바닥을 내보여 녀석들을 진정시켰다.
“몸은 괜찮다. 난리 통인데 내가 생각 없이 무리했겠냐?”
“캭! 너 그런 놈 맞잖아!”
“…아무튼. 그냥 격이 좀 높은 사혼 하나를 거둔 것일 뿐이야. 강호에선 힘을 숨기라는 말도 있고 해서 일단은 비밀로 할 거니까 호들갑들 그만 떨어. 차차 알려줄 테니까.”
그렇게 답을 한 나는 아까부터 투닥이고 있던 두 녀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하성이랑 소릉이는 아까 보니 실랑이하는 것 같던데, 뭐야?”
“아니, 그 와중에 저희를 보셨습니까?”
“그래. 뭔데?”
“소릉이가 자꾸 저한테 뭘 가르치려고 합니다. 방금도 자기는 무저갱에서 봤다 그러고. 부쩍 저를 부진아 취급을 하는 것 같은데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에요. 뭐랄까… 무저갱에 다녀오고 나니까 세상이 달리 보여서 이것저것 말해드린 것뿐인데요?”
“이것 보십쇼. 얘가 이런다니까요? 이거 제가 뛰어내릴 때 자업자득이라고 했다고 골 부리는 거 맞죠? 정현 도장, 용운 형님 이거 기분 탓 아니죠?”
“원시천존. 다 떠나서 우 소협이 이래저래 하신 말씀 중에는 공부가 될 만한 것들도 제법 있었지 않습니까? 선현께서도 불치하문이라 하여,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했습니다.”
“…정현 도장한테 물은 내가 잘못이지.”
듣고 보니 참 별것도 아닌 거로 투닥거린다 싶다가도, 그게 또 이 녀석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아서 나는 픽 웃었다.
“소릉이가 뭔가 트인 느낌이긴 하더라. 그냥 이제 소릉이가 형하고 하성이가 동생하면 되겠네.”
그런 내 말에 은하성이 입을 쩍 벌리고, 우소릉이 으스대기를 잠시.
“…예?”
“후훗.”
종묘의 문밖에서 갑주들이 쩔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양진무가 근왕병을 이끌고 달려오는 게 보였다.
“괴룡!”
우리는 양진무와 그가 이끌고 온 장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왕자를 데리고, 초왕 전하가 몸을 피해계신다는 안가로 이동했다.
왕부의 병졸들이 기염곡의 남은 살수들을 토벌한 것인지.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전하! 왕자마마와 정무학관의 생도들이 도착했사옵니다!”
“들라 하게!”
그렇게 우리는 초왕 전하를 알현하게 되었고.
“아바마마!”
“왕자!”
부자는 그렇게 애틋한 상봉을 할 수 있었다.
따뜻한 얼굴로 왕자를 보듬어 준 초왕 전하는, 우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고맙다.”
그에 우리가 황급히 무릎을 굽히는 때.
초왕 전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고도 아비다. 의연한 척하였으나, 실로 노심초사하였는데, 그대들이 왕자를 구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것이야.”
그리고 깍듯이 포권을 해왔다.
초왕부의 문무백관이 동시에 우릴 향해 소매를 붙여 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