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45화 (345/444)

제345화. 그럴 새도 없을 거요 (1)

은하성 덕분에 우리는 귀주성의 성도 귀양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지도상으론 우리가 있는 초왕부와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잘 닦인 관도와 특유의 잠잠한 물길로 연결된 수로를 고려하면 충분히 반경 안에 들어온다.’

나는 은하연과 함께 귀양의 정보를 세밀하게 훑어 나갔다.

“은 소저. 여기 개방에서 넘겨준 자료들을 보면 말이오.”

“예. 언 공자.”

“귀양은 성도(省都)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인구가 지나치게 많아 보이는데?”

“서로 다른 네 개 성(省)이 동서남북으로 접해있는 교통의 요지니까요.”

“상단이나 표행단 같이 드나드는 인구가 많다 이건가?”

“예. 거기다 사시사철 봄날 같은 기온이 유지되는 곳이라 애초에 거주민 자체가 많아요.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은 곳이죠. 또 귀주의 백주(白酒)라 하면 천하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 만큼, 일감도 많고요.”

“흠. 무언가를 숨길 때는 완전히 한갓진 곳을 택하거나, 거꾸로 왁자한 곳을 택하는 게 철칙인데….”

“귀양은 왁자지껄한 대도시니, 후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먼저 살핀 광동 쪽은 전자라고 할 수 있겠고요.”

나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길준이 놈은 태생적으로 음습한 놈이라, 꼭 귀양처럼 밝은 등잔 아래에 제 거소를 숨기려 한단 말이지….”

“어렵네요. 저는 광동 쪽에서 추린 곳들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려울 게 뭐 있소. 양쪽 다 가보는 걸로 하면 되지.”

“아? 그럼 인원을 어떻게?”

“송길준의 일처리 방식도 그렇고, 내 감도 그렇고. 천마신교의 중심 거점은 귀양에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있으니. 거기는 우리가 가고. 광동 쪽은 양진무에게 맡깁시다.”

내 말에, 은하연은 아미를 좁히며 답했다.

“…양 총기. 사람은 믿을 수 있는데, 상대가 마교인데 괜찮을까요?”

“종묘에서 흥분하여 일을 그르칠뻔한 걸 내내 반성하고 있더군. 괜찮을 것 같소. 지금 내 감은 구할 이상 귀양에 핵심 거점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데, 혹시나 해서 배치하는 거니까. 마인들의 습성을 일러주고 응용이가 돌아오면 그쪽에 붙이면 될듯하군.”

“음. 그렇다면야 괜찮겠네요.”

“근데, 귀양 말고 이런 가정이 가능한 입지는 더 없나?”

“광동은 추렸으니 빼고, 운남은 멀고, 호남은 길목이 제한적이라 걸렸어야 하고… 귀주성의 다른 도시는 너무 작으니. 없다고 봐도 되겠네요.”

“혹시 모르니 한 번 더 살펴봅시다.”

내가 말을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하연의 되물음이 이어졌다.

“어디 가시게요?”

“하성이랑 이야기 좀 나누고 오려고. 내 주장은 감에 치우친 면이 있으니, 다른 애들이랑 한 번 더 면밀히 살펴서 정리 좀 해놔 주시오.”

나는 그 물음에 답하며 은하성을 응시했다.

“하성이는 잠깐 나 좀 보자.”

*    *    *

쭐레쭐레 따라 나온 은하성과 함께 객관의 후원을 걷길 잠시.

사부님께서 질문을 해오셨다.

-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 갑자기? 오늘은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지 않았느냐?

하여, 그 질문에 답을 해드리려는데.

‘단순히 오늘 일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걸음만 이어지던 상황이 답답했던 모양인지, 은하성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 용운 형님? 그새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아무 짓도 안 한 거 같은데.”

어차피 이 문제는 나 혼자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사자인 은하성의 생각을 들어봐야 하는 문제였다.

나는 사부님께 대답하는 대신, 은하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성이 너는 왜 그렇게 나를 쫓아다니냐?”

“…예? 형님 쫓아다니는 사람이 한둘입니까? 그리고 왕성 밖에 나가서 ‘언용운 만나고 싶은 사람.’하고 외치면 만 명은 우습게 모일 텐데. 가장 오래 형님을 모신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신다고요?”

“그래, 네가 나를 제일 오래 따라다니긴 했지… 말 잘했네. 맨 처음을 떠올려보자고. 너 원래 이런 놈 아니었잖아?”

“……?”

“나 못지않은 망나니 아니었냐? 돈이면 다인 줄 알고, 흥청망청. 휘주 제일의 한량에다, 누이인 은 소저도 우습게 알던….”

“아이. 왜 또 갑자기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시고 그러십니까? 뭔가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뻐하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는 사고를 제가 쳤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형님.”

당혹스러워하는 은하성을 향해 나는 계속해 말을 이었다.

“특별히 사고 친 건 없어.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래. 순수하게.”

“순수하게요?”

“어. 처음 정무학관에 입관하겠다던 결심도 네 뜻이라기보다는 부모님 뜻 아니었냐?”

“…그렇긴 하죠?”

“그러니까. 무사히 입학했고. 은휘상단을 통째로 꿀꺽하는 일은 은 소저가 있으니 무리겠지만. 적당히 졸업만 하면 휘주에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 녀석이 왜 이렇게 나를 쫓아다녀?”

“…….”

“하성아.”

“…예?”

“우리가 앞으로 헤쳐나갈 싸움. 절대 쉽지 않아.”

“지금까지도 쉬운 적 없지 않았습니까?”

되물어 오는 하성이 녀석의 음성에, 나는 귀양 그리고 십만대산이 있을 북서쪽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더더욱 그렇다는 이야기야. 철이가 우리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혈교를 손에 넣는 게 쉽겠냐?”

“…어렵겠죠.”

“천마신교는 쉬울까? 놈들의 계획을 여럿 좌절시켰지만, 그만큼 독이 올랐을 거다. 십만대산에 쌓인 저력은 여전히 만만치 않아. 천마신교 놈들이 한뜻으로 움직이면 천하의 삼분지 일은 그냥 잿더미가 된다.”

“…그것도 그렇겠죠.”

“정말로 알고 대답하는 거 맞아? 이번에 광서행에 같이 온 인원이 너나 합쳐서 아홉이지? 그중에 세 명은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실력순으로 끊는다면 그 셋에 은하성은 반드시 들어간다.

나는 말을 하며, 원작의 주인공 세대를 잠시 떠올려보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은 원래가 다들 목숨을 내놓고 천마신교에 대항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원작의 우소릉은 정현의 친우라고는 할 수 없는 녀석이었지만. 가슴속에 품고 있던 협이 있었다.

하여, 자신의 장기로 마교에 대항하다 죽는다.

다른 녀석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나, 하성이 이 녀석만큼은 내가 이 판으로 끌어들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녀석이었다.

‘정무학관의 입관 시험장에서 떨어지게 내버려 뒀으면. 이럴 일 없었을 테니까.’

큰 고민을 하지 않았고 행한 선택이 여기까지 온 터였는데.

대뜸 하성이 녀석이 씩 웃었다.

“흠흠.”

“뭐야. 왜 웃어?”

“아니, 그러니까 천하의 용운 형님이 지금 제 걱정을 해주시고 계신 거 아닙니까?”

하성이 녀석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그런 이야기이긴 했는데.

“흐흫흠.”

“…….”

실실거리는 녀석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퉁명스러운 말이 나왔다.

“…너 뒈지는 건 상관없는데, 학생회 간부 자리에 갑자기 공석이 생길까 봐 그런 거야.”

“흐흫. 알겠습니다. 예. 그러시겠죠.”

“…그냥 지금 뒈지게 만들어줄게.”

은하성이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 것은 이때였다.

“…후안무치하던 시절이 있었죠. 부끄럽다는 말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가 휘주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형님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생각?”

“본인은 아주 호적에서 파인 망나니면서 나한테만 되게 뭐라 그런다는 생각이요.”

“근데?”

“그런데 형님을 뵈면 뵐수록 제 모든 게 부끄러워졌습니다. 어떻게 살면 그 부끄러움이 사라질까 생각을 해봤는데. 뭐 떠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생각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자랑이다.”

“용운 형님 탓입니다.”

“네가 뇌 빼고 다니는 게 왜 내 탓이야?”

“그냥. 형님을 따라다니다 보면 그렇게 살지는 않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포기한 거니까요. 그러니까 형님이 저 책임져주셔야 합니다?”

“…지랄.”

“형님은 늘 앞서 달리고 계실 테니까. 나란히 달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조바심도 내지 않을 겁니다. 다만, 뒤에서 부지런히 따라다니면… 앞서 말씀하신 고단한 싸움에서 저도 뭔가 보탬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처럼요.”

담담히 전해오는 녀석의 말에, 은하성이 마냥 다른 녀석들이 부러워 조바심을 내는 것은 아닌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나는 객관 쪽으로 걸으며 입을 열었다.

“뭐, 알겠다. 요즘 초조해 보이길래 이야기 좀 하려고 불렀는데. 마음가짐은 나쁘지 않아 보이네. 너도 묵린토룡의 내단 흡수해도 되겠다.”

“헉! 귀주성 떠올린 걸 공으로 쳐서 주시기로 한 겁니까?!”

“애초에 네 몫도 있다고 했잖아. 마음가짐을 본 거지.”

“아까워서 떠보신 건 아니죠? 안 그래도 쫓아다니기 힘들더라 뭐 그런 소리 하면 형님이 그냥 꿀꺽 하시려곸….”

빠악!

“악!”

“꼭 한마디를 더해서!”

“아악!”

“매를!”

“아악!!!”

“벌어요! 침소에 들어가서 웃통이나 까고 가부좌 틀고 있어. 당옥기한테 이야기해서 내단 받아 올 테니까.”

*    *    *

응용이는 열심히 날아, 언용운이 적은 소식을 독고철에게 전했고.

“!”

독고철은 급히 상부를 향해 보고를 올렸다.

최근 혈교 내에서 제법 특별한 지위를 가지게 된 독고철이었다.

하여, 그의 보고는 숱한 점조직을 거치는 과정을 밟지 않고, 몇 단계 만에 혈마의 최측근인 자왕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혈마의 귀에 닿았다.

“자왕. 확실한 건가? 낭중마군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감히 본좌를 찍어내려 한다는 게?”

“…예. 언용운이 학관 측에 보낸 보고를 독고철이 입수한 것이랍니다.”

“송길준이 그놈. 근신하고 있다고 하여 아예 안중 밖이었는데, 마뇌 그 영감탱이가 이런 꿍꿍이가 있었구만? 제자의 징계를 순순히 받아들일 때 알아봤어야 했거늘….”

그렇게 마뇌를 향해 이를 갈던 혈마는, 문득 이 소식을 전해온 독고철 생각에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독고철 그 녀석 물건이구만. 처음에는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말이야?”

“예. 천마신교의 교단 쪽 끄나풀들이 설쳐준 덕분에 반사이익으로 언용운의 옆에 붙게 되어,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정말 큰 역할을 했어.”

“이런 보고를 즉각 올리는 것을 보면, 백도 후기지수들의 심부에 있음에도 현혹되지 않고 본교를 향한 충심을 지켜내는 것 같습니다. 실로 본교의 복이옵니다.”

“조금 더 지켜보다가 우리가 천하에 본격적으로 창시를 선언할 즈음, 조금 더 중한 역할을 맡겨도 되겠어.”

“예. 하온데, 송길준 쪽은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하나?”

“속하가 우둔하여….”

명을 내려달라 고개를 숙여오는 자왕에.

혈마는 다시금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본때를 보여줘야지. 괜히 우리를 건드려봤자 좋을 것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얕잡아 보이면… 우리가 독립했을 때 천마신교와 흑도 백도 모두가 덤벼드는 결과가 생길 수 있어.”

“예.”

“예정보다 이르긴 하지만, 갈라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겠다.”

“그럼 천하에 깔려 있는 천마신교의 모든 거소에 공작과 공격을 감행하면 되겠습니까?”

“그랬다간 좌사와 우사뿐 아니라 수련동에 들어가 있는 교주까지 튀어나올걸? 다 내던지고 본좌에게 싸움을 걸어 올 텐데 그래선 안 되지.”

“하면?”

“초왕부에 난리가 난 걸 보면 분명히 천마신교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다. 강남. 그중에서도 광동과 광서. 양광을 중심으로 확인된 거점은 다 털어버려.”

“존 명.”

*    *    *

마교의 거점에 대한 분석을 완전히 끝낸 우리는 인원을 셋으로 나눴다.

“양 총기. 잘 부탁하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개방의 협의지사들과 협조하여 부화뇌동하지 않고 동향 파악에 집중하겠습니다.”

“좋소. 응용이 너도 잘 붙어있어 심술내지 말고.”

호룩!

양진무의 조와 응용이는 광동으로 보냈고.

“선배도 잘 부탁드립니다. 작은 역할 아닙니다 이거.”

“예. 결코 작거나 가벼운 역할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걱정 마세요 후배님.”

예해수 선배는 초왕부에 남아 연락 기점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언동생들과 나는 변복과 역용을 한 뒤.

귀주성 귀양 땅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 넘고 물을 건너 귀주성을 향해 북상하기를 한참.

관도와 직통으로 연결된 대문이 다섯 개나 달린, 독특한 성곽을 가진 귀주성에 도착했는데.

“다들 잠시만 비켜서 주십시오! 짐마차가 나옵니다!”

“출출하신 분들은 귀진주가를 찾아주십시오!”

끊임없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도시 안으로 걸음을 내딛는 때.

천장호가 군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까 문이 다섯 갈래로 난 거 보셨겠지만. 이 귀양 땅이 다섯 지방의 문화가 섞이는 곳이라, 식문화가 진짜 오묘한 곳인데… 츄릅.”

그에 남궁윤이 와락 인상을 쓰며 타박을 했다.

“정신이 있는 거냐? 지금 밥 생각을 하다니.”

“아, 나도 아닌 거 같아서 말하다 말았잖수.”

그에 천장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툴툴댔지만.

‘송길준 나와! 하고 사자후를 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넓은 도시에서 마교의 거점을 찾아내려면 하오문과 개방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오문이 우선이다.’

개방이야. 가서 정체만 밝히면 되는 것일 테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냐.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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