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6화. 그럴 새도 없을 거요 (2)
나와 언동생들은 양가의 규수를 호송하는 호위무사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내가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자, 천장호는 입꼬리를 히죽 귀에 걸며 남궁윤을 타박했다.
“거, 용구 형도 가자고 하지 않소? 남 형은 하여간에 사람이 풍류를 몰라 풍류를. 오악도 식후경이라는 말 모릅니까?”
“…….”
그사이 사부님께서는 질문을 해오셨다.
- 용운이 네가 오악도 식후경이라는 말 때문에 밥을 먹자 한 것은 아닐 텐데… 마교 놈들이 있을 현장에서 밥 생각을 하다니 별일이로구나?
‘교토삼굴(狡免三窟)이라지 않습니까.’
- 꾀 많은 토끼는 굴을 세 개를 파놓는다…. 마교 놈들이 빠져나갈 것을 염려하는 것이로구나.
‘예. 애초에 안가를 그런 식으로 만들어 두었을 겁니다. 정말로 중심이 되는 곳이 있고, 망루의 역할을 하는 곳이 있겠죠.’
처음부터 중심이 되는 곳을 찌르고 들어가면, 망루 역할을 하는 곳은 자연히 허물어질 것이다.
하나, 그 반대가 되면 일이 완전히 어그러지게 될 터였다.
‘뭐, 시간적 여유는 있습니다.’
응용이가 돌아왔으니, 혈교 쪽에서 분명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놈들의 체계를 감안하면, 아직 이삼일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그 시간을 활용해서 좀 더 그물을 촘촘하게 짜서 들이칠 생각입니다.’
길준이 놈을 낚을 수 있으면 최고겠지만, 적어도 초왕부의 습격에 연왕부가 가담했다는 증거만큼은 반드시 찾아야 하는 상황.
‘저희가 쥐고 있는 분석 결과에, 현지의 정보와 의견들이 더해지면 그 그물이 완성되겠죠.’
생각 정리를 끝낸 나는, 호위하고 있던 마차의 창을 두드렸다.
똑똑-
그에 차장이 살짝 열리며, 각각 양가의 규수와 시녀로 변장한 은하연과 당옥기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아가씨. 오는 중에 마차 안으론 식사를 올렸는데, 저희는 시간이 애매해서 점심을 건너뛰었습니다. 객관에 모셔다 드린 뒤에 순번을 정해서 요릿집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위장한 역할에 충실하며 녀석들에게 용건을 전하자.
오는 내내 나를 놀려먹는 재미에 빠져있던, 당옥기가 입을 열었다.
“용 총관. 아가씨가 오냐오냐해주니까 기고만장하기가 이를 데 없군요.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되지, 요릿집은 뭔 놈의 요릿집인가요?”
“…단단아. 낄 때 끼고 빠질 때는 빠져라.”
그렇게 당옥기와 실랑이를 하고 있기를 잠시.
내 뜻을 알아챈 은하연이 나를 향해 전음을 보내왔는데.
[하오문을 만나시려는 거죠?]
내가 씩 웃어 보이는 것으로 물음을 긍정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단단이 너는 고생하시는 호위무사님들께 왜 그러니?”
“…아, 아가씨.”
“저랑 함께 가는 거로 하세요. 그러면 번거롭게 번을 나누고 그럴 필요 없겠지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귀진주가로 가요. 가게가 정갈하고 음식이 깔끔하다 정평이 난 곳이라,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분부 받들겠습니다.”
* * *
우리는 하오문의 대행수 중 한 명인 추엽(秋葉)이 운영한다 여겨지는 요릿집으로 향했다.
“어서 옵쇼! 귀주 제일 요릿집 귀진주가입니다! 몇 분이십니까요?”
“여덟. 조용한 자리가 있나?”
“보시다시피 손님들이 원체 많아서 어디든 소음은 있는데. 벽을 쳐놓아 한적한 자리는 있습니다. 대신 요리를 좀 넉넉하게 시켜주셔야 하는….”
“거기로 하지.”
“예이. 그럼 저를 따르십시오.”
그리고 점소이의 안내에 따라 방실에 들어섰다.
점소이는 싹싹한 어투로 물 흐르듯 접객을 해왔다.
“자자, 차부터 한 잔씩들 받아주십시오. 운남에서 생산되는 최상등품의 흑차입니다. 자 그럼 요리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자신 있는 거로 다 내와 봐.”
“가격은 상관 없으십니까요?”
“가격은 상관없는데… 잠깐 이리로 와봐.”
나는 손가락을 까딱여 녀석을 가까이 오게 한 뒤.
“옙!”
앞서 건넨 찻물을 먹 삼아 식탁 위에 글자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슥슥-
처음은 하오문의 일로 왔다는 뜻으로 더러울 오(汚)자를 썼고. 뒤이어 나무 목(木)자와 봄춘(春) 그리고 겨울 동(冬) 썼다.
그러자 낯을 바꾼 점소이가 되물어왔다.
“…이렇게만 전하면 되겠습니까?”
“어.”
“옙. 알겠습니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녀석은 꾸벅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질문을 해오셨다.
- 더러울 오자는 그렇다 치고. 목춘동? 뭔 뜻이냐?
‘목은 문주인 목극염의 성입니다. 하오문과 함께 언급할 때는 제일 높은 사람 불러오라는 뜻으로 쓰죠.’
- 하면 춘자와 동자는 네 녀석이 만난 다른 대행수들의 별호로구나.
‘예. 춘앵과 동매를 콕 짚었으니. 하오문의 간부라면 누가 왔는지 알아볼 것입니다.’
그 물음에 답을 하고 있으니.
천장호가 볼멘소리를 내왔다.
“귀진주가 소리가 나올 때, 혹시나 했지만. 그래도 밥은 먹여주실 줄 알았는데… 그러면 그렇지. 용운 형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진심으로 실망한 것으로 보이는 녀석의 말투에, 나는 입을 열었다.
“밥은 먹을 거야. 이 집이 자신하는 거로 다 내오라고 한 거 못 들었냐?”
“하오문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뜻도 전하셨잖아요. 그럼 밥이고 뭐고 없는 것 아닙니까?”
“이야기는 내가 하는 거고. 이쪽이 누구인지 밝혔으니 되레 더 푸짐하게 나오지 않겠냐? 너희끼리 먹고 있으면 되지 뭐.”
“…역시 용운 형이시다. 그런 깊은 뜻이.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오해를 했지 뭡니까? 흐헤헤!”
곧바로 태세전환을 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와 언동생들 사이에서 헛웃음이 퍼졌는데.
그러면서 차를 홀짝이고 있기를 잠시.
탁.
탁.
방을 나갔던 점소이가, 쓰개가 덮인 큼지막한 쟁반을 양손에 한 개씩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나와 언동생들이 둘러앉은 식탁 가운데 그걸 놓더니, 쓰개를 벗기고 나갔다.
“뭐니 뭐니해도 요릿집의 기본은 청초육사입죠! 이것부터 들어 주십시오!”
청초육사는 달리 말하면 고추잡채였는데.
녀석이 놓고 간 쟁반에는 빨간 고추와 파란 고추를 사용한 글귀가 적혀있었다.
‘일 다경 뒤에 사층으로.’
글귀를 확인한 나는 젓가락으로 청초육사를 섞으며 언동생들에게 권했다.
“다들 먹어.”
그에 당옥기가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확인해 보고 있는 때.
정현이 입을 열었다.
“아까 저희끼리 먹고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던데, 하면 그 추엽이라는 대행수는 혼자 뵈러가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장호 녀석이 너무 슬퍼해서 나온 말이고. 글쎄… 고민 중이다.”
그런 내 말에 은하연이 아미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하오문의 춘하추동 중 추를 담당하고 있는 추엽은 언 공자와 꼭 닮은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다 알려져 있어요.”
“…나처럼이라니? 심지어 성격도 성정도 아니고 성질머리라니? 은 소저. 그 말투가 상당히 부정적으로 들리오만?”
“기분 탓이세요.”
그런 내 질문에, 은하연은 잠시 딴청을 피우고는 입을 열었다.
“추엽 대행수는 의심이 많아요. 차이야 있긴 하죠. 언 공자는 적극적으로 그 의심을 해소하려 하시지만, 추엽은 그 의심이 해소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요.”
“…나도 알고는 있는 이야기요.”
“예. 목 문주님이 언 공자와의 인연을 중하다 여기는 상황에서 저쪽에서 무슨 일을 해올 가능성은 작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몇 명 데려가겠소. 그러는 게 유사시를 대비하기도 좋겠지.”
“예.”
“그럼 하성이랑 소릉이는 나와 같이 가는 걸로 하자.”
“옙!”
“네!”
* * *
약속한 일다경이 흘렀을 때.
나는 은하성과 우소릉을 데리고 사층을 향해 계단을 올랐는데.
“저를 따르십시오.”
그렇게 귀진주가의 최상층에 도달해, 사층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내실에 이르자.
똑똑-
훤칠하게 생긴 미공자가 제법 출중한 기도를 뽐내는 호위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포권을 해왔다.
“소생은 추엽이라 합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모습을 노출치 않는지라 여기서 귀인을 모시는 점, 이해해주십시오.”
“이해하겠소. 뭐, 알고 있겠지만. 언용운이오. 이 얼굴은 역용 중이고.”
“하오문의 은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데, 천하에 위명이 자자한 괴룡이신지라 홀로 올라오실 줄 알았는데… 다른 동기분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내가 의심이 많아서. 그러는 대행수도 입으로는 은인이라고 말을 합니다만, 호위들의 기도가 살벌해 보이는데? 이 방도 기관진식이 설치돼 있는 것 같고.”
“하하하. 소생도 의심이 좀 많아서 그렇습니다.”
“하하하.”
그런 우리를 보며, 은하성은 우소릉을 향해 나직이 속삭였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라더니, 정말 비슷하네.”
“그렇게 쓰는 표현이 맞나요?”
우소릉이 은하성을 향해 대꾸를 하는 때.
추엽은 왜 자신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말해왔다.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광서에 계신 줄만 알았던 분이 갑자기 귀양에 나타나 저를 찾으셨으니까요. 무슨 일이십니까?”
한데, 조심스런 태도와 뛰어난 언변에 가려져서 그렇지.
기실 정보를 먼저 얻으려 하는 투였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오문도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움직였으면, 그냥 말할 정보는 아님을 알 텐데? 일부러 떠보는 거요?”
“…송구합니다. 평생을 정보를 다루며 살아오다 보니 본래 어투가 이렇습니다. 하나, 괴룡이 제게서 얻고자 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도와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설령 하오문이 협조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게 들은 정보를 함부로 누설할 리는 없을 터.
나는 곧바로 본론을 전했다.
“이곳 귀양 땅에 천마신교의 핵심 거점 중 하나가 들어앉아 있소. 귀주 지부의 전력을 동원해서, 그곳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 주시오. 물론 저쪽에 정보가 새선 안 되고.”
그런 내 말에, 추엽은 잠시 골똘한 표정을 짓더니.
곤란하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태호에서 퇴기들을 도와준 일엔 소생도 감격을 했습니다. 사천에서 마교의 준동을 막아내며 그쪽 형제들을 지켜주신 것도 감사할 일이지요.”
“…….”
“그 일로 어머님께서 괴룡을 은인으로 여기라 하셨으나, 이는 권고일뿐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본디 하오문은 지부의 문도들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이니까요.”
“…거절하겠다는 것이오?”
“예. 저희가 괴룡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 올리면… 필시 천마신교에게 보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괴룡이 여기 상주하며 저희를 지켜주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희 문도들은 대부분이 평범한 사람들이라 마인들의 보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못 들은 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그런 추엽의 말에.
나는 몇 가지 정보를 더 내어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혈교가 천마신교를 물어뜯을 거라는 것.’
어차피, 수삼일 내로 천하가 알게 될 사실을 꽁꽁 싸매둘 필요는 없었다.
“그럴 새도 없을 거요.”
“…어찌 그렇게 단언하십니까?”
“천마신교의 대마두 중엔 경천혈마라는 자가 있소. 그를 필두로 한 세력이 천마신교에서 떨어져 나올 거요.”
“예?!”
“말한 그대로요. 천마신교 내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날 것이오. 귀양 지부는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의 진통을 겪을 테지.”
“그 시점이 임박했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소생이 제대로 이해한 게 맞습니까?”
“임박 정도가 아니라 짧으면 이틀, 길어도 닷새 안에 닥칠 일이오.”
“!”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당금 천하에 몇 없소. 말 그대로 엄청난 정보지.”
“…그런 것 같습니다.”
“귀주 지부가 우리에게 협조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천마신교가 관리하던 이곳의 점포들은 귀주 지부로 넘겨 드리겠소.”
“……!”
“좀 전에 못 들은 것으로 하고싶다 했는데. 그 거절을 못 들은 것으로 해주겠소. 다시 대답해보시오. 어떻게, 나와 일 하나 하시겠소?”
* * *
추엽은 장고 끝에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개방은 예상대로 순순히 협조해주었다.
“방주님이나 노삼 장로님한테 처맞기 싫으면 까라면 까야지. 뭐부터 하면 됩니까?”
개방에는 외부 소식과 드나드는 사람들의 동향 파악을 맡겼고.
하오문에는 거점을 특정할 만한 자료를 찾아오게 했는데.
그렇게 온갖 자료들이 모여 망루 역할을 하는 거점으로 보이는 점포들이 하나 둘 확인되고 있는 때.
추엽이 지도 세 장을 들고 와 펼쳤다.
“어렵게 구한 것입니다. 이 세 장의 지도는 모두 귀양성의 지도인데, 제일 왼쪽의 것은 백 년도 더 된 것이고. 가운데 것은 육십 년쯤 된 녀석. 이건 최근의 지도입니다.”
“계속해 보시오.”
“예. 이 세 지도를 통해 구획을 파악해 보면. 여기 이쪽의 토지가 어쩐지 도심 속의 숨은 요새처럼 들어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추엽의 말에.
정현이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육십 년 전쯤이면 마교가 정마대전에서 패배한 직후일 터인데, 그럼 놈들은 그 와중에 이걸 진행했다는 겁니까?”
“내가 누누이 말했잖냐. 예나 지금이나 놈들은 중원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지독한 놈들이다. 백도 무림은 승전한 직후라 더더욱 간과를 했겠지. 뭐, 그럼 중심 거점의 위치가 대략 특정이 되는구만.”
나는 지도상에 동그라미 쳐진 구역들중 가장 가운데 있는 곳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여기를 들이쳐서 장악하면 망루 역할을 하는 곳들은 자연히 외로운 신세가 되겠지.”
그리고 뇌리를 스치는 송길준의 얼굴에 씩 웃었다.
“딱 걸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