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47화 (347/444)

제347화. 그럴 새도 없을 거요 (3)

지도를 들여다보다 떠오른 송길준의 얼굴에 웃음을 짓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그렇게 웃지 좀 말거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사악한 자라 생각하겠구나.

‘다 아는 사람들인데요, 뭐… 가 아니고. 사부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하나뿐인 제자한테 사악하다뇨.’

그 말에 대꾸를 하고 있는 때.

남궁윤이 질문을 해왔다.

“공격 시점은 언제로 하는 거지? 지금 바로 들이치는 건가?”

녀석의 물음에, 은하연이 아미를 좁히며 말했다.

“흐음. 위치는 확인이 됐으니까. 당장에 들이치기보다는 혈교가 천마신교를 물어뜯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기다렸다가 들이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마인들 사이에 난리가 났을 때를 노리는 거죠.”

그녀의 말에, 은하성을 비롯해 다른 언동생들도 하나둘 입을 열었다.

“누님 생각이 좋은 것 같습니다. 병력도 빠져나가지 않겠습니까? 근데… 소릉 동생은 뭘 그러고 봐? 왜 또 아닌 거 같아?”

“아뇨. 좋은 생각 같아서, 은 형이 맞나 싶었어요. 묵린토룡의 내단 덕분에 혈이 뚫리셨나 봐요.”

“…….”

나는 녀석들의 말을 들으며, 잠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당옥기가 나를 향해 물음을 던져왔다.

“언용운 네 생각은 어때?”

“천마신교와 혈교가 찢어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들이치는 게 안전하긴 하겠지….”

“말이 더 남은 것처럼 들리는데?”

“근데 그러면 놈들이 장부 같은 증좌를 인멸할 가능성이 생긴다.”

내 말에 은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네요. 이만한 거점을 혈마가 모르진 않을 테고. 그 사실을 송길준은 인지하고 있을 테니, 천하 곳곳에 박아둔 거점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들어가면… 넘겨주느니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하겠는데요?”

“맞소. 아울러 하성이가 병력이 빠져나간다 했는데. 되레 모여들 수도 있겠지.”

그러자, 정현이 도호를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원시천존. 언 소협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긴 합니다. 하면, 남궁 소협의 말대로 지금 바로 들이치시렵니까?”

“고민이다. 바로 들이치는 거는 또 너무 위험하긴 해.”

위험도 위험이었지만, 천우신조의 기회를 좀 더 활용하고 싶었다.

“사실 아슬아슬한 시점에 들어가는 게 제일 좋은데.”

“아슬아슬한 시점이시라면?”

“혈교의 공격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놈들의 소굴에 흘러 들어갈 즈음? 딱 그때 우리가 이 거점의 중심부에 도달해 있으면 최곤데.”

이어진 말에 사부님께서 의문을 표해오셨다.

- 그 정도로 적시(適時)를 맞추는 게 가능하겠느냐?

사부님의 말씀이 맞았다.

연락 수단과 정보전달 방식이 제한적인 이 시대에, 때를 정밀하게 맞추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렵겠죠. 그래도 가능한 한 만전을 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부님께 답을 한 나는 개방의 귀주 분타주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분타주는 뭐 할 말 없으시오?”

“…끙. 어디서 저런 고지도를 구했지? 하오문이 크게 한 건을 한 건 내 인정하지. 근데 우리도 놀지는 않았소.”

“책하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여쭙는 겁니다. 공격 시기를 정하는 순간인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음. 천하를 달굴 소식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소만. 당장에 밖에서 날아온 연락 같은 것은 없었소.”

“안쪽은? 가장 최근 지도를 보니까 갑수다점(甲秀茶店)이라 돼 있는데, 풀어 놓은 거지들이 가져온 이야기 없소? 작은 거라도.”

“쓰흡. 가만있자….”

내 물음에, 귀주 분타주는 옆에 선 오결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종팔아. 갑수다점의 아들이 요즘 안 보인다지 않았냐?”

그 말에, 종팔이라는 오결개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되물음을 던졌다.

“아들?”

“외부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중점을 뒀지만. 마교의 거점이 여기 있다면, 고정적으로 드나드는 이들에 뭐가 있을 거라 생각했소. 해서, 귀주성의 장사치들이 물건 떼오는 곳과 여기서 물건을 떼가는 자들을 유심히 보고 다녔는데….”

“한데?”

“전반적으로 별거 없었소. 뭐, 별게 튀어나올 정도가 됐으면 진즉에 놈들의 거점이 들통이 났긴 했겠지. 근데 딱 갑수다점으로 한정하면, 그 집 아들 놈이 판로를 알아보러 간다고 귀주를 나가긴 했소만?”

분타주의 말을 들은 나는 잠시 혈교와 천마신교 사이에 일이 터질 시간을 가늠해 봤는데.

딱 하루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았다.

“개방은 일단 성문 쪽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해주시오,”

“알겠수.”

“하오문은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갑수다점의 아들이라는 자의 거취를 쫓아봅시다.”

“그리하겠습니다.”

“딱 내일 밤까지만 기다려봅시다.”

*    *    *

찾아온 다음 날.

종일 기다려봤지만, 갑수다점의 아들이 귀환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더 끌어선 안 되겠다.”

더는 기다릴 수 없었기에, 나는 언동생들을 모아놓고 녀석들의 임전(臨戰) 태세를 점검했다.

“길준이가 땅굴을 좋아하던 녀석인 만큼 다른 연락 수단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나같이 새카만 야행복을 갖춰 입은 언동생들은, 내 물음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어. 들이쳐야겠다. 이의 있는 사람?”

두 번째 질문엔 미동하지 않은 채, 눈빛을 빛내왔다.

“없네.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위험을 감수할 마음도 먹었다. 남은 건 하늘의 뜻이겠지.”

나는 그중 당옥기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내가 준비하라고 한 건?”

그러자, 당옥기가 품속에서 대롱 하나를 쑥 빼 보이며 답했다.

“챙겼어.”

“좋아.”

그걸 확인한 나는 천장호를 향해 말했다.

“장호는 내가 시킨 대로 거지들이랑 거점으로 통하는 주요 길목 지키고 있다가, 너희 쪽과 우리 쪽 분위기 봐가면서 유동적으로 움직여라.”

“걱정 붙들어 매십쇼.”

“그래. 신나게 몸 좀 풀고. 아침은 다 같이 먹는 거로 하자.”

그렇게 우리가 갑수다점을 향해 걸음을 떼려는 때.

개방의 분타주가 헐레벌떡 뛰어와 소식을 전해왔다.

“왔소!”

“오시는 모습 봤소… 가 아니라. 갑수다점의 아들이 돌아왔단 말이오?”

“맞소. 돌아왔소. 거지새끼 하나가 성문을 통과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연락할까 뒤를 밟을까 고민을 하는 잠깐 사이 사라졌다더군.”

기다리던 소식의 도착.

“…그자가 들고 온 소식이 우리가 기다리던 소식일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늘의 뜻이 함께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중얼거린 나는, 분타주에게 남은 말을 전했다.

“알겠소. 분타주는 장호와 함께 말씀드린 길목을 잘 지켜주시오.”

“그리하리다.”

“가자.”

그리고 천장호를 제외한 다른 언동생들을 이끌고 야음을 헤집으며 갑수다점을 향해 내달렸는데.

탓. 탓. 탓. 탓. 탓.

그 걸음 그대로 갑수다점의 담장을 달려 올라간 뒤.

은하연과 당옥기.

두 사람과 작별의 눈인사를 나눴다.

‘부탁하오.’

‘걱정 마세요.’

‘걱정 마!’

그리고 둘을 제외한 남은 언동생들을 이끌고 다점의 안쪽으로 뛰어내렸는데.

소원처럼 꾸며놓은 뜰에 발을 디디고 서자.

크고 작은 조경석과 각기 높이가 다른 벽, 그리고 나무들을 기괴하게 배치해놓은 정경이 보였다.

‘예상대로 미로의 형식으로 돼 있군.’

침입자가 길을 잃게 만들기 위해, 진법의 묘리 속에 배치된 사물들을 보고 있자니.

어디로 가야 할지, 본능적인 갑갑함이 들었다.

하지만 해볼 만했다.

‘이럴 것이라 예상해서 은하연과 당옥기를 뒤에 남겨 놓고 온 거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때.

픽!

야명주를 갈아서 바른 침이 휙하고 날아와 박혔다.

은은하게 빛나는 침은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숨바꼭질을 끝내볼까.’

*    *    *

“삼호. 방금 한 말이 사실이냐?!”

대외적으로 갑수다점의 아들 역할을 하고 있는 장욱은 마뇌부 산하의 공작대원으로, 송길준이 그를 부르는 명칭은 ‘삼호’였다.

“…예. 공자님.”

삼호가 가장 최근에 맡은 임무는 내사 하광과 함께 초왕부와 언용운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일이었는데.

“초왕부가 혈마를 찾기 시작한 게 아니라. 혈마가 움직였다고?!”

실패로 돌아간 그 일을 대면보고 하고자, 귀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되었다.

천마신교의 거점들이 경천혈마의 추종자들에게 공격당했다는 급보가 그것이었다.

“예. 삼백 리 밖에서 그 사실을 듣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온 참입니다. 경천혈마가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전하자, 낭중마군 송길준은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는데.

“…그럴 수가? 혈왕부는 아직 별개의 종파를 자처하기엔 저력이 충분치 않을 텐데? 혈마가 모험수를 좋아하는 자도 아니고? 조직부터 점조직으로 만든 자가 갑자기 왜?!”

“그, 그걸 속하한테 물으셔도….”

“네놈한테 물은 게 아니다! 생각한다고 나온 말이니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닥쳐!”

“…….”

송길준이 고함을 내지르는 그때.

내원으로 통하는 거점을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던 졸개 하나가 급히 뛰어와 입을 열었다.

“공자님! 큰일 났습니다!”

“삼호가 보고를 하고 있지 않으냐! 혈마가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으니까 정신 사납게 하지 말 거라!”

“그게 아니라 누가 쳐들어왔습니다!”

“뭐라? 이곳을 말이냐?!”

“예!”

“주변 위치한 작은 거점들이 아니라, 갑수다점 이곳을?!”

“예!”

경천혈마가 공격해 온 것만으로도 뒷목이 뻐근해지는 소식이었다.

“누가? 어디까지 뚫렸느냐?”

“송구합니다. 누군지는 급히 알린다고 온 것이라 저도 아직 파악을 못 했고. 이 선을 돌파당했다 합니다. 곧 들이닥칠 것입니다.”

한데, 이 거점이 공격당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혈마도 대략적인 위치만 알지 내부의 배치는 모를 텐데?”

그에 송길준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때.

삼호가 급히 입을 열었다.

“공자님 명령을!”

“혀, 혈마를 막아야 한다. 외곽 거점의 병력을 귀양 밖으로… 아니지, 우선 그 병력을 여기로?”

수천 가지 생각이 송길준의 머릿속을 질주하며 헤집는 순간이었다.

*    *    *

픽!

높은 위치를 점해 길목을 분석하고 우리에게 알려오는 은하연과 당옥기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거점의 안쪽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하나, 사통팔달의 요지에 차려져 있는 거점인 만큼.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는 자들의 실력이 평균 이상이었다.

하여, 내성 역할을 하는 지점을 넘어서자.

암흑동화를 꿰뚫어 우리의 기감을 눈치채는 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촤악!

촤아아악!

물론, 개인 기량이 우리 쪽이 위였기에 몇 명으로 상대가 되지는 않았지만.

피를 본 이상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안쪽으로 전해지는 것은 순식간일 터.

여기서부터는 시간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나와 함께 온갖 산전수전을 겪어오며 전황을 읽는 눈이 트인 것인지.

남궁윤과 은하성이 입을 열었다.

“너희는 안으로 가라. 이 길목은 나랑 은하성이 막겠다.”

“예. 형님. 가십쇼.”

“그래.”

할 수 있겠느냐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두 녀석 모두 각자 한몫씩은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데려온 것이었으니까.

“뒈지지 마라.”

그렇게 두 녀석을 남겨 놓은 우리는 더욱더 안쪽을 향해 파고들었는데.

그렇게 몇 개의 벽을 지나길 잠시.

채채채챙!

최소 절정은 넘어 보이는 고수들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군세가 우르르 튀어나와, 우리 앞을 막았다.

그리고 날붙이를 뽑아 들었는데.

채채챙!

그 군세가 촤르륵 열리며, 비쩍 골은 얼굴로 변모한 송길준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언용운이냐?”

이제 와 정체를 숨길 이유는 없어 보였다.

되레 밝히는 게 송길준의 속을 긁을 터.

“어. 나야.”

나는 복면을 벗어 던지며 입을 열었는데.

“눈치 빠른데? 아니 늦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내 말에, 송길준이 미친 듯이 웃었다.

“큭. 큭큭큭큭큭.”

“저게 맛탱이가 갔나. 왜 웃고 지랄이야?”

“…순간적으로 당황하긴 했는데. 최초에 이곳에 왔을 때. 만에 하나 정도는, 네 녀석이 나를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너도 내가 잡고 싶어 잠이 오지 않고 밥도 넘어가지 않는 그런 상태였을 테니까.”

“…어. 미안한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

“…….”

“그냥 얼마 전에 개 같은 일을 겪었는데, 일 벌인 꼬라지를 보니 네놈 짓인 것 같길래. 있으면 잡아볼까 하고 생각한 정도인데?”

내 말에 송길준은 이를 갈며 근처에 있는 발판 하나를 밟았다.

“…아무튼 나는 네놈이 올 수도 있다 생각했다. 하여, 주변에 사령술을 방해하는 기관과 술진을 그려뒀지. 이전과는 다를 거다.”

그러자, 사방에서 묘한 곡조를 자아내는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딸랑–

딸딸랑-

사령술사인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시체들을 인형처럼 일으키는 술법들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하나, 내 그림자에 깃들어 있는 암객은 저런 얕은수가 통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나는 씩 웃으며 회한을 고쳐잡았다.

“그래? 나도 마침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우리 길준이, 얼마나 컸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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