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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348화 (348/444)

제348화. 큰일이 난 사람은 누구지? (1)

기분 나쁘게 울려대기 시작한 방울 소리와 함께 송길준의 졸개들이 우리를 향해 검을 뻗어왔다.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놈들의 경지는 한 수에서 두 수 아래인 듯했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다.’

폭발적인 내력 분출을 특기로 하는 놈들이, 천마신교 특유의 독랄한 합공을 펼쳐오니.

쌔애액!

쌔애애애액!!!!

대기를 찢어발기며 쇄도하는 날붙이들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정현과 우소릉은 청죽관 시절부터 나와 부대낀 녀석들로, 자다가도 합을 맞추자고 하면 벌떡 일어나 대형을 꾸릴 녀석들이었다.

“정현!”

“예.”

이래라저래라 세세한 작전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쌔액! 쌔액!

쌔애애액!!!!

정현은 호명하는 즉시 내가 바라는 자리에 태극을 펼쳐냈고.

촤악!

촤아악!!!

그 태극을 방벽 삼은 내가 회한을 휘둘러 마인들을 베어내는 사이.

팟! 팟!

푹!

우소릉은 번개같이 움직여 협공에 가세하거나, 수세를 펼쳐 엄호를 해주었다.

채채채챙!!!

그렇게 두 녀석이 내 손과 발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여준 덕분에, 내겐 찰나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 시간을 쪼개, 상단전으로 내력을 밀어 올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술식 하나를 짜낸 뒤, 곧바로 시체를 일으키는 언령을 발했다.

“일어나라!”

그에 왼손에서 뻗어나간 기운들이,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통제하고자 뻗어나갔는데.

딸랑–

딸딸랑-

본디 시신을 인형처럼 옭아매 일으키던 기운이, 시체에 닿는 순간 흩어져 버렸다.

‘오호. 일차원적으로 시체를 일으키는 술법은 안 통하겠는데?’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빠르게 이 전장에 펼쳐져 있는 술진을 가늠해보았다.

‘…방울들이 내는 곡조로 시체를 옭아매는 기운의 위력을 약화하고, 바닥에 새겨놓은 술진들이 사혼들을 지박령처럼 잡아두는 식이군.’

그리고 속으로 작은 감탄사를 토해냈다.

‘연구 열심히 했네.’

암객을 손에 넣을 때 응용한 호식총의 술에서 확인했지만.

이 시대의 술법도 재래식이라고 마냥 무시할 것은 아니었다.

뽑아 쓸만한 구석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교 놈들이 중원에선 방술 쪽으로는 나 다음가는 놈들이긴 하구나.’

시체를 다루던 진주언가 같은 곳이나 방술을 특기로 한 도사들을 은연중에 얕잡아 보는 풍조가 있던 백도무림과 달리.

역천괴마 구천서가 만마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천마신교는 이 시대의 방술에 있어서는 가장 선두에 있는 주자라 할 수 있었다.

‘학관에 가면 모산파 선배님들 시켜서 한번 연구를 해봐야겠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때.

사부님께서 내게 말을 걸어 오셨다.

- 정신 사나울까 싶어 어지간하면 말을 걸지 않으려 했건만… 네 술법이 통하지 않는 상황인데, 이상하게 여유가 있어 보이는구나?

‘제 술법이 통하지 않는다뇨.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 ……? 시체들이 네 명을 듣고도 꼼짝하지 않던데? 파훼를 당한 것 아니더냐?

‘정말로 제 술법이 파훼 당했으면 사부님과 제가 이렇게 대화도 못 하겠죠.’

- …듣고 보니 그렇구나?

‘저런 얄팍한 술수로는 제가 이 자리에서 시체를 징발하는 것 정도만 막을 뿐입니다. 술진 자체에도 허점이 있어서 제 쪽에서 파훼할 수 있거니와, 사령기사는 저딴 거에 영향을 안 받죠.’

나는 사부님께 생각을 전하며, 그림자 속에서 묵묵히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암객을 향해 말했다.

‘안 그러냐. 암객?’

- 속하는 주군의 명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에, 암객이 한마디를 전해오던 때.

사부님께서 다른 물음을 던져오셨다.

- 하면, 녀석을 끌어내 빠르게 이 상황을 정리하지 않고 왜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이냐? 암객 정도면 제법 도움이 될 텐데?

챙! 챙!!

채채채챙!!!!

나는 눈앞에서 번쩍이는 마인들의 검을 쳐내며, 사부님께 답을 드렸다.

‘사실 저는 길준이 놈이 여기 붙어있을 확률을 높아야 삼 할 정도로 봤는데… 있는 이상 어지간하면 사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 어쩔 수 없으면 죽여야겠지만, 생포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길준이는 마교의 책사이니까요.’

송길준쯤 되는 놈이 자신이 아는 정보를 나불나불 불리는 없겠지만.

단순히 놈을 사로잡았다는 소식만 십만대산에 흘려 넣더라도, 여러 오판을 일으키게 유도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선은 놈의 뜻대로 일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게 놀아줄 생각입니다.’

섣불리 이쪽의 실력을 다 드러내면 당장에 송길준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놈이 준비해놓은 사령막이 진식을 보면, 일 순간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게 하는 다른 기관도 있을 수 있었고.

송길준이 자결한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겸사겸사 증좌를 찾을 틈도 만들어야 하고요’

그러려면 우선 증좌를 찾으러 갈 녀석들부터 보내야 했는데.

덤벼드는 마인들의 수를 헤아려보니.

‘정현이랑 소릉이 덕분에 좀 줄었군.’

홀로 상대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우소릉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소릉아. 너는 속으로 스물을 센 다음 틈을 봐서 좌측으로 빠져나가. 나가서 이 근방에 있는 건물들 싹 뒤져.]

[예? 그치만….]

[쓰흡. 하성이가 요즘 네가 말대답을 한다더니 진짜였네?]

[…그런 게 아니라요.]

[시간 없어. 가서 증좌가 될 만한 거 찾아와. 스물. 열아홉….]

[…예. 언형.]

우소릉의 답을 들은 나는 곧바로 정현에게도 전음을 보냈다.

[소릉이한테 스물을 세고 좌측으로 튀어 나가라고 했다. 증좌 찾으라고 보내는 거니까. 정현 너도 따라가서 엄호 좀 해줘.]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이 녀석들이 하나같이 이러네. 여기 증좌 확보하겠다고 들어온 것 아니냐.]

[하지만, 사령술도 통하지 않는 상대인 것 같은데, 언 소협 혼자 괜찮겠습니까?]

녀석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졌지만.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야 하는 법.

송길준을 속이려면 우소릉과 정현의 걱정마저 이용해야 했다.

[증좌가 먼저다. 이제 소릉이가 헤아리고 있던 숫자가 아홉 정도 남았겠네. 준비해라 정현.]

하여, 심중의 복안을 숨기고 담백하게 명령만 내리니.

정현이 무거운 표정으로 답을 내놓았다.

[…예.]

그런지 잠시.

우소릉과 정현은 내 명대로 휙 하고 몸을 빼, 주변의 건물을 향해 달려 나갔는데.

“잘 찾아봐라! 훼손치 않고 그대로 두었다!”

송길준은 녀석들을 향해 한마디 하더니.

“큭큭큭. 너는 저 두 놈을 전략적으로 빼냈다 생각하겠지만. 너만 잡을 수 있다면 연왕부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 신교의 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은 언용운 너니까.”

나를 보며 이죽거렸다.

“자, 이제 혼자가 되었는데 어쩔 테냐?”

“그러게? 이거 참 큰일이 났다 싶네.”

*    *    *

언용운을 남겨 놓고,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온 우소릉과 정현은 미친 듯이 전각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딸랑–

딸딸랑-

계속해 귀를 간질여오는 기분 나쁜 방울 소리에.

“…저, 정현 도장. 그냥 언 형을 돕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저 방울 소리 때문에 언 형이 술법도 쓰시지 못하고 계시잖아요.”

우소릉이 자물쇠를 건드리던 손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우 소협.”

“자물쇠를 열어야 하는데, 제가 실수해서 언 형이 위험해지실까 봐 무서워서 손이 떨려요. 이럴 바엔 나가서 돕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우소릉의 말에 정현은 담담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저희를 여기로 보내신 것은 이 길이 활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서워도 하셔야 합니다. 말씀대로 언 소협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알겠어요.”

우소릉이 워낙 떠는지라, 담담히 말한 정현이었지만.

기실 속이 타는 것은 정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빈도가 조금 더 강했다면. 단숨에 마인들을 쓸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정현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곱씹으며, 송문검을 움켜쥐었다.

한편, 그들이 있는 내원(內苑)에서 백 보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길목을 지키고 있던 남궁윤과 은하성은.

안쪽에서 울려 퍼지는 방울 소리에 몰려들기 시작한 마인들을 베어내다 궁지에 몰리게 되었으나.

적시에 나타난 당옥기와 은하연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넘긴 터였다.

“허억. 허억. 용운 형님이랑 두 사람은 괜찮으실까요? 이 새끼들 보통이 아닌 거 같은데?”

“…그러게 말이다.”

본인들의 목숨이 위험한 순간이 방금이었음에도, 들여보낸 이들을 걱정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당옥기와 은하연이 입을 열었다.

“너희 호흡이나 좀 골라. 걱정할 사람을 걱정하고.”

“그러는 옥기 너도 오는 내내 애들 괜찮을까 소리를 했잖아.”

“그야 우리가 제일 먼저 떨어져 나왔으니까. 애들 무사한지 어떤지 몰라서 그랬던 거지.”

“사실 나도 꺼림칙하긴 해.”

딸랑–

딸딸랑-

“아무래도 저 기분 나쁜 방울 소리 때문인 것 같은… 또 온다. 다들 준비해.”

그렇게 갑수다점의 내원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선 네 명의 언동생들은 다시금 검을 고쳐 쥐었다.

당옥기는 자신이 제일 먼저 떨어져 나왔다 하였으나.

그 말은 사실 틀린 말이었다.

“종팔이 형! 뚫립니다! 이 새끼야!!”

갑수다점 밖의 골목에는 다른 거지들과 그곳을 지키고 있는 천장호가 있었고.

더 멀리, 산을 넘고 물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광서땅 초왕부에는.

후드득-

후드드드득-

미친 듯이 몰려들기 시작한 전서구들을 훑고 있는 예해수도 있었다.

“강남 곳곳에서 때아닌 무림인들의 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작된 것 같은데. 후배님들 괜찮으신 건가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야 닿을 수 있는 하남 땅 숭산.

이곳에는 방학을 시작할 즈음부터 수련을 하고 있던 언동생들이 있었다.

제갈설지, 팽소천, 언용명 이렇게 세 사람과 그들의 수련을 돕던 원철이었는데.

이들 역시 강남에서 날아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초왕부가 변을 당한 와중에, 강남 여기저기에서 마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격돌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제갈설지가 날아든 서간을 읽자, 언용명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밖으로 튀어 나가려 했다.

“!”

그걸 붙잡은 사람은 팽소천이었다.

“어디 가냐.”

“강남에 난리가 났다지 않습니까?! 초왕부가 저 지경이 되고, 마인들이 출몰하고 있다면, 형님과 다른 동기들도 위험한 상황일 겁니다!”

그런 언용명의 말에, 제갈설지는 냉정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렇겠죠. 초왕부의 변에 아무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천마신교와 혈교가 찢어지기 시작한 상황 같은데, 이건 무조건 용운 님의 심계가 개입했을 수밖에 없죠. 지금쯤 이 태풍 속 어딘가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고 계실 것 같네요.”

“그러니까요. 가봐야 합니다. 이러고 있을 새가 없습니다.”

“근데, 지금 저희가 가서 뭘 할 수 있나요? 황족이 엮인 일이라 정보도 제한적일 텐데, 어디 계시는지 정확히 알 길도 없는데요?”

“…그건.”

“안다고 쳐도 문제죠. 여기서 광서까지 하루 이틀 걸리는 거리도 아니잖아요? 길을 가는 와중에 모든 일이 끝나 있을 거예요.”

팽소천이 입을 연 건 이때였는데.

“왜 싸우고 그러냐. 싸우지 마라.”

그런 팽소천의 말에.

원철이 반장을 하며 입을 열었고.

“두 분이 다투는 게 아니라, 각자 본인에게 화를 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고정들 하시지요. 천하의 괴룡 시주 아니십니까. 스승님께서도 결코 쉬이 꺾이거나 뽑힐 재목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이어서 제갈설지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원철 스님 말씀이 맞아요. 용운 님을 믿어봐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앞으론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런 기분을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거예요.”

“…….”

그에, 전각 내에 침묵이 내려앉기를 잠시.

묵묵부답으로 있던 언용명이 재차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에 팽소천이 다시 한번 언용명의 팔을 붙들었다.

“가지 말라잖냐. 나도 생각해봤는데.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여기서 수련하고 있기로 한 게 우리가 용운이랑 한 약속이잖아?”

“…그래서 수련하러 갑니다.”

*    *    *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쌔액! 쌔액!

쌔애애애액!

정현과 우소릉이 빠지자, 확실히, 내 손과 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챙! 챙!

채챙!! 채챙챙!!!

나는 가로로 빗발치는 검들을 숱하게 쳐냈고, 그 검을 뻗어내는 마인들을 베고 또 베어냈는데.

촤악! 촤악!

촤아아악!!!!

궁지에 몰린 자의 걸음을 흉내 내며, 마인들과 셀 수도 없이 많은 합을 교환한 때.

‘다 왔다.’

비영파천보로 딱 한 걸음을 크게 박차면, 송길준에게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접어들었는데.

문제는 이쪽을 둘러싼 마인들이 나를 고슴도치로 만들고자, 사방팔방에서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쌕! 쌔액!

쌔액! 쌔애액!

하지만 해볼 만했다.

이 순간 자체가 내가 기다리던 순간이었으니까.

쌔- 애애애액!

나는 극도로 끌어올린 집중력 덕에 엿가락처럼 늘어나기 시작한 시간을 쪼개, 허리춤의 검집을 좌수로 뽑아 든 뒤.

채앵!!!!

회한은 머리 위로, 검집은 몸 앞에 두고 내리쳐 오는 검과 찔러 드는 검을 막아냈다.

채채채챙!!

그에 나를 중심으로 마인들이 해바라기처럼 검을 맞대게 된 상황이 되었는데.

“크으.”

나는 이를 악물며 내 검을 누르고 있던 마인들의 검을 떨쳐 올렸다.

카아아앙!

덕분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마인들이 일순 만세를 하는 것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며 복부가 드러난 이때.

‘암객.’

나는 아끼고 있던 패를 뽑아 들었다.

‘지금이다.’

- 예. 주군.

그러자, 내력이 뭉텅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암객이 그림자에서 팟! 하고 튀어나오더니.

마인들에게 쇄도하며 번개같이 검을 뽑았다.

촤아아아악!!!!!!!

그에 시커먼 반월이 그려지며,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마인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나는 곧바로 송길준을 향해 땅을 박차며 한마디를 전했다.

“자, 이제 큰일이 난 사람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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