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9화. 큰일이 난 사람은 누구지? (2)
내가 쇄도하자, 송길준은 좌수로는 철선(鐵扇)을 우수로는 검을 뽑아 들고 회한에 대응해왔는데.
챙! 채채채챙!
“…괴왕부가 고안한 사령막이 술진이 안 통한다고?”
그러면서 입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지?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는데… 사혼인가? 한데, 현혹용 환술도 아니고 실체가 있다고? 진주언가의 비전을 읽고 또 읽었지만 저런 술법은 없었는데?”
“…질문을 하고 앉아있네. 혹시 정무학관 생도세요? 아, 내년도 응시 준비하시는 분인가?”
그런 녀석의 중얼거림을 맞받아치며, 합을 섞어내고 나니.
녀석의 수준이 또렷하게 보였다.
채앵! 채채챙!
채챙!!!
‘마공을 익힌 덕분에, 날붙이에 휘감긴 강기 자체는 서슬이 퍼렇지만. 기실 검에 몸이 휘둘리는 모양새인데… 심지어 몸과 마음의 균형까지 어긋나 있군.’
애초에 송길준의 성정이 그렇긴 했다.
놈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꼭 짚어보고 넘어가야 속이 풀리는 족속이었으니까.
하나, 이 와중에 암객이란 존재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은, 속된 말로 맛이 살짝 가 있는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길준이 놈. 저보다 한 수 아래인 걸 넘어서 심마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마공을 익힌 녀석이라 엄청나게 강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먹고 못 잤다는 게 영향이 있는 걸까요?’
- 퀭해 보이는 것이 심마에 들어 있긴 한 것 같구나?
사부님은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경고를 해오셨다.
- 하나, 생포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를 죽이려는 적을 살려서 사로잡는 것은, 그냥 죽이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운 일이니라.
‘그렇긴 하겠죠.’
사부님의 말이 맞았다.
본디 나를 해하려 하는 적을 생포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에 속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막다른 상황에 놓이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었고.
‘나를 해하는 것 외에도, 스스로를 해하는 선택지도 있다.’
혀를 깨무는 건 찰나면 충분하리라.
‘공을 좀 들여야 한다.’
이미 송길준의 코앞까지 다가서서 합을 나누고 있었지만, 녀석에게 남아 있는 찰나의 시간마저 빼앗아야 했다.
‘암객.’
- 예. 주군.
‘지금부터 정신없이 몰아친다. 단, 죽이고 살리는 것은 내가 결정해.’
- 존명.
하여, 나는 본 실력을 뽐내는 대신, 암객과 함께 녀석의 정신을 빼놓는 것에 집중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려울 것은 없었다.
언동생들이 내 수족처럼 움직여주는 녀석들이라면.
암객은 정말로 내 머리에서 나가는 명령을 곧바로 받아 움직이는 녀석이었으니까.
쌔액! 쌔액!!!
쌔애애액!!!!
그에, 암객이 휘두르는 검은 내가 바라는 위치, 바라던 때에 시커먼 반월을 그어냈고.
나 역시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회한을 휘둘러 냈다.
‘암객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나를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송길준의 마음속에 깔리도록 해야 한다.’
챙! 챙!
채채채챙!!
그렇게 세 자루의 검과 철선 하나가 복잡하게 얽혔다 떨어지며, 사방으로 강기의 파편을 뿌려댄 지 한참.
바쁘게 움직이는 손과 걸음 속에서, 송길준의 사고는 더욱더 정상의 범주에서 멀어져갔는데.
“…신선의 비기라도 훔친 것인가? 활강시도 아니고 살아 있지도 않은 것이,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고?!”
녀석이 그렇게 완전히 정신을 팔게 된 때.
나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위도 무위지만. 이런 것도 가능해.”
채앵!!!!!!!!
그리고 송길준과 검을 맞대고 있던 암객을 그림자 속으로 불러들였다.
‘돌아와라 암객.’
- 예. 주군.
슈욱!
암객은 내 명에 따라 그림자 속으로 복귀했는데.
“!”
검을 맞대고 있던 암객이 녹아 없어지듯 흩어진 탓으로, 상대를 잃은 송길준의 몸이 일순 휘청였다.
내가 앗고자 했던 송길준의 찰나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팟!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득달같이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유효공격 거리가 짧은 철선을 쥔 왼손부터 잘라낸 뒤.
서겅!!
파천권법을 응용한 지법으로, 오른 어깨부터 시작해 놈의 혈 자리를 번개같이 때려 눌렀다.
퍽! 퍽!
퍼퍼퍼퍽!!
그에, 아혈을 비롯하여 온갖 혈이 점해진 송길준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넘어갔다.
“……!”
나는 녀석의 등을 밟아 누르며 말했다.
“이상하지? 그림자를 통해 들락날락하는 무사도 이상하고, 마공을 익힌 사람들은 혈 자리가 다른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점혈을 하는가 싶고. 대관절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지?”
“…으으으!”
나는 녀석에게 말을 걸며 미리 준비해온 천잠사로 놈의 손과 다리까지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한쪽 소매춤을 찢어 재갈까지 야무지게 물렸다.
“길준아. 이미 네 인생은 막장까지 와버렸지만. 그래도 형이 큰 가르침 하나 줄게. 너는 뭐든지 너무 재는 경향이 있어. 인생은 실전이야. 이 새끼야.”
그러고 있기를 잠시.
내원의 한쪽 벽에서 굉음이 들린다 싶더니.
쿵!
쿠우우웅!
그쪽 벽이 와르르 무너지며.
마교의 졸개 놈들이 등장했다.
“저기다!”
나는 그렇게 나타난 놈들을 잠시 파악해 보았는데.
“…어차피 거점의 위치가 들통 난 듯하고. 우리 애들이 지키고 있는 길목은 안 뚫리니까 저런 방법을 쓴 건가?”
그쪽을 향해 송길준이 무언의 아우성을 질렀다.
“으! 으으으!”
아혈이 집힌 상태였기에, 말은 나오지 않고 침만 줄줄 흘러내리는 상황이었지만.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으니 나를 없애라고 전하는 듯 보였다.
그 의지를 전해 받은 것인지, 저쪽에서 송길준을 버리겠다고 판단한 것인지 몰라도.
튀어나온 놈들의 틈바구니에서, 쇠뇌를 든 자들이 튀어나오더니.
이쪽을 향해 화살비를 퍼 부었다.
슉! 슉! 슉! 슉! 슉!
안 그래도 까만 밤하늘을 빽빽이 매우며 날아드는 화살들.
그걸 확인 한 나는, 재빨리 송길준을 들쳐멘 뒤.
“저 화살촉에는 독이 발려있겠지? 진짜 정 없다. 길준이 네가 해준 게 얼만데… 쓰흡. 생각해보니 개뿔도 없긴 한가?”
“……?”
“그러고 보니 너 왜 아직도 목이 붙어 있냐? 너희 실패에 얄짤없잖아?”
“으!”
“아무튼 내가 요즘 신진제일협이라고 불리는 와중이니 큰맘 먹고 구해주마.”
“으으으으! 으!!”
“지랄하지 말라고? 맞아. 사실 그냥 네놈을 어떻게 한 번 써먹어 볼까 싶어서 살려보려고.”
회한을 휘저어 화살들을 쳐내며, 남은 말을 이었다.
팅! 팅!
티티티티팅!
“근데 너무 믿지는 마라. 야아, 이거 화살이 좀 많네.”
* * *
마교의 졸개들은 제법 짜임새 있는 움직임을 보였다.
쇠뇌조가 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이쪽으로 날아오는 사이.
검수들이 그 밑을 내달려 이쪽으로 접근해 온 것이다.
챙! 챙!
채채채채챙!
그에, 나는 다시금 암객을 불러낸 뒤.
“암객!”
- 예! 주군!
녀석과 등을 맞대고 달려드는 적들의 공세에 응수했는데.
그렇게 달려드는 놈들이 족히 일백은 되는 데다가, 길준이 놈을 들쳐메고 싸우다 보니.
모든 방위를 완벽하게 대처해내기가 조금 힘들었다.
하여, 잠깐 위험하다 싶은 순간이 왔을 때.
길준이 놈을 방패로 삼았다.
‘…이 새끼 살리자고 내가 뒈질 수는 없으니까!’
물론, 기껏 공을 들여 사로잡은 놈을 맥없이 죽게 할 수는 없었기에.
푸욱!!
살짝 신경을 써서, 주요장기는 피하도록 했지만.
날붙이가 박히자, 녀석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찔하는 반응을 내왔다.
“……!”
“아. 미안”
그에 본능적으로 나온 사과에, 사부님께서 질문을 해오셨다.
- 네가 왜 길준이 놈 한테 사과를 하고 있느냐?
‘어, 그렇네요?’
나는 바쁘게 회한을 휘두르는 와중에, 송길준을 향해 일갈했다.
촤악!
촤아악!!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도 안 미안해. 엄살 피지 말고 버텨, 이 새끼야!”
물론, 너무 오래 이러고 있으면 과다출혈로 죽겠지.
그걸 막으려면 이 지옥을 빠져나가야 했는데.
딱 이때.
정현과 우소릉이 옆쪽의 전각 중 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언 소협!”
“언 형!”
그리고 뒤편에선 다른 언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봐, 내가 뭐랬어. 몰려드는 인원이 살짝 느슨해진 게 빼돌린 것 같다고 했지?”
“그렇네. 하연이 네 말이 맞았어. 이것들 진짜 여기로 왔네. 야! 언용운! 거기 있어!?”
“나 참. 있으니까 저렇게 놈들이 모여 있겠죠. 옥기 누님.”
“닥쳐라아? 은하성 이게 구해줬더니 까부네.”
“다들 시끄럽다! 언용운! 가세하겠다!”
“궁윤 형 말이 맞수. 갑시다! 거지새끼들아! 너희는 우측을 맡아라!”
언동생들과 개방의 거지들이 도착한 모양이었는데.
녀석들이 동시에 가세하자, 나를 둘러싸고 있던 마인들의 진형이 원형에서 반원으로 변해갔다.
덕분에 상봉하게 된 언동생들이 나를 향해 여러 질문을 던져왔다.
“원시천존. 완전히 혼자 계신 것은 아니셨군요.”
“그러게요. 저번에 그 시커먼 그거네요?!”
“어디 다친 곳은 없어? ”
“그보다 들쳐멘 그거. 혹시 송길준입니까 형님?”
나는 회한을 들고 있는 손을 휘저으며 입을 열었다.
“우소릉. 정현. 장부는 찾았냐?”
“네! 언 형!”
“저 안쪽에 자잘한 것들이 숱하게 더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장부는 우 소협의 품에 있습니다.”
“그럼 됐다. 다른 잡소리는 나중에 하고. 옥기 너는 이 새끼 좀 살려봐.”
“엑. 송길준을 왜 살려?! 그냥 죽으라고 해!”
“…내가 이 새끼를 이뻐서 살리겠냐? 써먹어야 할 거 아냐.”
“아? 그렇긴 하네. 옆구리 쪽이 뚫렸네? 중요한 장기는 크게 안 다친 것 같은데. 언용운 니가 이래 놓은 거야?”
“나랑 싸우다 그런 건 아니고. 조금 전에 살짝 위험하길래 방패로 썼어.”
“…갑자기 살짝 측은해지는데.”
“방금은 죽게 내버려 두라더니. 아무튼 좀 살려봐. 은소저랑 하성이 소릉이 이렇게 셋은 호법 좀 서고.”
그렇게 송길준을 맡긴 나는 다시금 마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나머지 셋은 가자.”
그리고 개방의 거지들과 본격적으로 마인들을 베어내는 한편.
딸랑-
딸딸랑-
여즉 발동되고 있는 사령막이 진식의 핵을 찾아내, 부숴버렸다.
콰지직!!!
그에, 기분 나쁘게 울려대던 방울 소리가 우뚝 멈춘 이때.
나는 상단전의 내력을 뽑아내 만든 술식을 전장 위에 펼치며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안 그래도 속절없이 밀려나고 있던 마인들은.
크아!
크아아아아!!
내 명을 받들어 몸을 일으킨 시체병단에 의해 말 그대로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언제고 다시 우리에게 검을 겨누거나 술수를 부려올 놈들이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
나는 녀석들과 함께 마인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촤악!
촤악!!
그렇게 적들을 베어내고 또 베어내길 한참.
촤아악!!!
어느덧 동이 터 오를 시각이 되며, 칠흑 같던 어둠이 물러가게 되었다.
그에, 시체군단의 병사들이 하나둘 다시 널브러지기 시작한 때.
‘…언동생들이랑 거지들.’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 편뿐임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당옥기에게 다가가 맡겨 놓은 송길준에 관해 물으니.
“살렸냐?”
“응. 좀 깨끗한 곳에 가서 다시 조치를 취하긴 해야겠지만 당장에 죽지는 않을 거야.”
다른 언동생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녀석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피며 입을 열었다.
“뒈진 녀석 있으면 손들어 봐.”
그런 내 말에, 은하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답했고.
“무슨 질문이 그렇습니까? 뒈졌는데 어떻게 손을 들어요.”
정현은 자신과 우소릉이 떠난 뒤의 상황에 관해 물었다.
“그나저나 이후론 어떻게 된 것입니까?”
“저번에 초왕부에서 보여준 거 있잖아. 암객이라고… 아니다 보여주는 게 낫겠다. 암객. 잠깐 나와봐.”
설명을 하느니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어, 암객에게 나오라는 말을 전했는데.
“예. 주군.”
그림자에서 튀어나와 무릎을 굽히는 녀석의 모습에.
은하연은 눈을 키우며 입을 열었다.
“다른 것들은 해가 뜨니 쓰러지는데, 얘는 낮에도 움직일 수 있나 봐요?”
“좀 약해지긴 하지만.”
나는 손짓으로 암객에게 다시 들어가라는 명을 내린 뒤, 정현에게 말했다.
“이 녀석이랑 같이 싸워서 상황도 타개하고. 또 이렇게 드나들 수 있는 걸 이용해서 길준이도 잡았지.”
그런 내 말에.
정현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한데 왜 그걸 저희에게는 말씀해주시지 않은 겁니까?”
“크흠. 그건….”
그에 내가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때.
당옥기가 빽! 하고 입을 열었고.
“뻔하지 뭐. 또 그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어쩌고저쩌고. 그 짓거리 했겠지.”
우소릉은 목놓아 성토했다.
“너무해요! 진심! 정말로 너무하세요!”
“…어쩔 수 없었다. 그 정도는 돼야 길준이 이 새끼가 너희 표정 보고 속지. 뭐, 어찌 됐든 결과가 좋으니까 된 거 아니냐?”
그런 내 말에, 언동생들 사이에서 온갖 비난이 쏟아졌는데.
“언용운 쟤는 진짜 인간이 왜 저럴까?”
“원시천존. 도가 아닙니다. 도가 아니에요.”
“너무해요!”
“어릴 때 반찬으로 곰 쓸개같이 쓴 것만 잔뜩 먹은 거 아닐까? 쓴맛만 봐서 저렇게 돼버린 거지. 나중에 이화부인 뵙게 되면 꼭 물어봐야지.”
그러는 와중 천장호의 배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르르륵-
그에 우리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향했는데.
“아니 왜 그런 눈으로 보쇼? 이거는 그 뭐냐. 평소랑은 다른 배꼽시계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싸웠다는 증거고. 또 애초에 용운 형이 끝나면 밥 먹자고 했잖수!”
천장호의 변에, 은하성과 은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을 다 뺐더니 배고프긴 하네. 원래 죽을 뻔하고 나면 떡을 먹어야 오래 산다던데. 저랑 궁윤 형은 떡도 좀 먹어야겠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귀진주가 음식 모양만 예쁘지, 맛은 별로였어. 언공자. 다른 곳으로 가요.”
녀석들이 하도 성화라, 말은 결과가 좋으니 된 것이라 했지만.
무사한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쪽에 묘한 안도감이 차올랐다.
‘…별 간지러운 마음이 다 드네.’
나쁘지만은 않은 그 감정을 가만히 곱씹어본 나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밥 먹자. 내가 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