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1화. 교류생 (2)
낭중마군궁의 내사 하광.
그는 송길준의 밀명을 받들어 연왕부를 천마신교의 수중에 넣기 위한 제반 작업에 착수해 있었는데.
그러던 중, 강남의 거점들에서 쏟아지는 급보를 듣게 되었다.
“…귀양의 거점이 쑥대밭이 되고 공자님께서 행방불명이 되셨다?!”
그렇게 날아든 급보 중 가장 청천벽력 같은 것은 당연 송길준이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하광은 모든 공작을 중단하고 휘하의 모든 인력과 창구를 송길준의 현 위치를 파악하는 데 썼는데.
“내사님! 공손무결이 초왕부에 다시 나타났답니다!”
“공손무결이 초왕부에 두 번째 들렀다고?”
“예!”
“흥안현의 분위기는 어떤가?”
“묘하게 고조돼 있다고 합니다.”
여러 정보를 모으고 모아.
송길준이 무림맹주의 손에 들어갔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 계시는 것 같군.”
그 판단이 끝나자마자, 하광은 송길준을 구출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
마련한 계획은 총 두 가지였다.
그중 하나는 송길준과 교환할 대상으로 언용운의 무리를 사로잡는다는 계획이었고.
다른 하나는 구출대를 편성해 직접 송길준을 되찾아온다는 계획이었다.
하나, 하광의 계획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첫 번째 계획은 초왕의 밀명을 받아 나간 것으로 사료되는 괴룡의 무리가 보고를 위해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하에 짠 것이었는데, 괴룡의 무리가 광서로 돌아오지 않으며 실패했고.
이후로 실시한 두 번째 계획은, 동시에 출발한 수십 대의 마차를 모두 노릴 수 없어서 실패.
‘애초에 번갯불에 콩을 튀기듯 계획을 성사시킬 수 없는 상대이긴 했지만….’
그렇게 두 번의 실패를 받아든 하광은 자신의 손으로 송길준을 구출한다는 계획을 접었다.
‘이 이상 공자님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감행하는 것은… 제갈혜 그 여자가 파놓은 개미지옥 속으로 교인들을 밀어 넣는 형국.’
제갈혜와 공손무결은 어쭙잖은 계획으로 상대하기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심지어 혈마의 추종자들까지 각지에서 기승을 부리는 상황.
백도무림과 혈마 양측을 적이라 생각하면, 천마신교의 전력은 한 명이라도 더 보존해야 했다.
‘구출 작전을 감행하더라도 마뇌 어르신의 도움과 광명좌사의 재가가 필요하다.’
하광은 그 시간부로 모든 공작을 중단하고 십만대산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정청(政廳)으로 사용되는 만마전의 차디찬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고했는데.
“…하여, 초왕부를 곤경에 빠뜨린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낭중마군 또한 백도 놈들의 손에 납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게 하광이 머리를 찧는 때.
각지에서 달려온 중간 간부들이 만마전의 문턱을 바쁘게 넘어와 하광 옆에 머리를 조아렸다.
“적라대에서 아룁니다. 남곤산(南昆山)의 거점을… 잃었습니다.”
“마라해풍대에서 아룁니다. 방성항의 거점은 지켰습니다. 한데, 그 과정에서 노출이 되었습니다. 중요 자료들은 임시로 옮겼습니다만, 새롭게 거점을 정해야 할듯하여 명을 구합니다.”
“매주(梅州) 거점의 동광표국이 아룁니다. 저희도 표국의 건물을 지켜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노출되어 더 이상의 운영이 어려울 듯합니다.”
끊이지 않고 계속 몰려드는 소식.
교주를 제외하면 십만대산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있는 사내.
천마신교의 광명좌사 변철영이 앞에 놓인 각탁을 부숴버리며 이를 갈았다.
쾅!!!
“…마뇌. 이게 최선이었소?”
그런 좌사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늙디늙은 노인이 긁혀 나오는 목소리로 답했다.
“…좌사. 노부가 제자를 잘못 거두어, 본교의 대계에 큰 누를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만. 길준이는 백도 놈들에게 붙들려 갔다 하더라도 머릿속에 든 정보를 토해낼 녀석이 아닙니다. 노부가 그렇게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 이야기가 아니잖소! 경천혈마 이자를 어찌할 것이오?!”
“…혈왕부가 반기를 든 일은 만마전에서도 예상하던 바 아닙니까? 시기가 이렇게 당겨진 것은 노부로서도 갑작스럽습니다만. 저쪽도 준비가 돼 있지 않을 겁니다.”
“기르던 개에게 이렇게 물어뜯기고 있는데, 어찌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단언하시오?”
“…혈마 본인도 그걸 알기에 전역에서 덤비는 것이 아니라, 강남 그것도 양광 땅을 중심으로 저리 난리를 치는 것일 겁니다. 건드리지 말라고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차분하게 답을 해오는 마뇌의 음성에.
좌사 역시 노기를 누르며 입을 열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뭐 그런 말씀이오?”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니, 물지 않는다기엔 흘린 피가 있긴 합니다만. 큰 그림을 생각하면 대처법은 있습니다.”
“계속해보시오.”
“강남 이북의 거점들은 구태여 옮길 필요가 없을 것이고. 혈마와 그 추종자들을 제거하는 일은 여러 방도가 있겠지요. 백도 놈들에게 던져 준다든지, 핵심 세력을 토벌한다든지.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 어느 쪽이든 교주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마뇌의 말에, 좌사는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지금 바로 뵈러 갈 참이었소. 교주님의 뜻을 알아 올 테니, 마뇌는 만마전을 총괄하고 있으시오.”
“그리하겠습니다.”
“낭중마군이 그리됐으니, 다시 전면에 나설 준비도 하시고.”
“…그 역시 그리하지요.”
그렇게 만마전을 나온 좌사는 십만대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 천마동으로 향했다.
천마동.
이곳은 천마신교를 창시한 초대천마 혁련금이, 추존 천마 위철진에게 전수받은 반쪽짜리 심결을 천마신공으로 거듭나게 한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현재, 당대 교주 혁련강이 천마신공을 대성하기 위해 후반부 구결의 해석에 힘쓰고 있는 곳이었다.
‘천마신공의 후반부 구결.’
그 구결은 난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하여, 천마신교내에서 기재 중의 기재 취급을 받아온 역대 교주들 중에서도 대성을 한 이가 없었다.
‘…초대와 이대를 제외한 다른 교주들은 모조리 미치거나 단명하는 결과를 맞으셨다.’
하여, 천마신교는 백 년 남짓한 짧은 역사 속에 숱하게 교주가 바뀌어 왔다.
‘하나, 당금 교주님께서는 앞선 분들과는 차원이 다르신 분.’
좌사는 당금 교주 혁련강이 초대의 광영과 이대의 숙원을 모두 이뤄줄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천마동의 초입에서,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한마디를 쏘아냈다.
“광명좌사 변철영. 교주님을 뵙고자 합니다.”
* * *
“…….”
좌사의 말에도, 천마동 안에선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나, 그는 일체의 미동 없이 머리를 조아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러길 한참.
저벅저벅-
천마동 깊숙한 곳에서부터 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싶더니.
좌사가 부복해있는 곳으로 산발을 한 사내가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안광을 늘어뜨리며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해지는 위압감에, 좌사는 전율했다.
‘…지금까지의 실패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주와 소교주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자리가 바로 광명좌사였다.
그 자리를 꿰찰 때까지, 변철영은 숱한 시산혈해를 거쳐왔다.
‘지금도 이 정도이신데, 교주님께서 천마신공을 대성하시기만 하면… 아아.’
그런 변철영의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기도라니.
‘모든 실지를 회복하고, 모든 원수를 능히 되갚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숱하게 외쳐온 기치처럼.
혁련강의 천마신공이 대성하면.
그리하여 천마가 재림하면.
백도 놈들이고 반기를 든 자들이고, 저분 앞에 모두 머리를 조아릴 터.
지금까지의 실패는 모두 만회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하며.
변철영은 다시 한번 경건히 부복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광명좌사 변철영이 신교의 태양을 뵙습니다!”
“…쓸데없는 예는 집어치워 좌사.”
“송구합니다.”
“어지간한 일은 알아서 하라 했을 텐데. 본좌를 찾은 이유가 뭐야?”
혁련강의 입에서 이어진 질문에.
변철영은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마주한 현황을 또박또박 보고했다.
“…하여, 무례를 무릅쓰고. 교주님을 뵙고자 하였습니다.”
“혈마가 반역을 했다? 그 작자는 예전부터 눈알을 굴려대지 않았나?”
“…예.”
“적당한 때에 마뇌 영감이 알아서 찍어 낼 줄 알았는데. 내가 천마동에 들어와 있는 바람에 마땅한 구실을 못 찾았나 보군.”
혈마를 떠올리며 턱을 만지는 혁련강의 모습에.
변철영은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교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대대적인 반격을 통해 혈마의 목을 베어다 바치겠습니다.”
“전면전을 하겠다는 건가?”
“무슨 수든 쓰겠습니다!”
“그래선 안 되지. 그럼 백도무림만 쾌재를 부른다. 혈마도 그걸 알고 헛짓거리를 한 것이겠지… 아무튼 좌사.”
“예. 교주님.”
“우리의 목표가 혈마인가? 아니면 이 땅을 벗어나 비옥한 중원으로 가는 건가?”
“…후자입니다.”
“그러려면 혈마와 전면전을 해선 안 돼. 아랫것들은 다시 받아 줘야지. 혈마를 비롯해서 위쪽만 날리면, 아랫것들은 자연히 귀의해 올 것이다.”
“…마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기는 했습니다.”
“그래. 영감과 이야기를 잘 해봐. 혈마가 본인의 교단을 창시하려면 자신을 우상화해야 할 텐데… 초대와 이대 그리고 검마가 계신 우리와 달리 쉽지 않을 거야. 본좌도 두려울 거고.”
“예! 당연히 두려워할 것입니다!”
“아마 강해질 방도를 찾는다고 눈이 벌게져 있을 거다. 연단부에서 연구 중인 환단 같은 것을 풀면 움직일 거야.”
* * *
정무학관에 복귀한 지 사흘.
“원철 스님.”
“옛?”
“아니 뭔 사람을 귀신 본 것처럼 보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면 안 되고. 하시겠다고 한 금강경 필사본 만드는 작업 다 끝났습니까?”
“다, 다해갑니다.”
“허. 금강경이야 머릿속에 들어 있으실 테고, 손만 빨리 움직이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나 걸립니까?”
나는 교류생 제도를 통해 정무학관에 입관한 원철스님을 한창 업무에 적응시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빨리하세요. 끝나면 제갈세가에서 객사한 무연고자 장사를 치러주고 시신을 연구실에 기증해주기로 했는데, 용길이랑 같이 가서 그것 좀 운구해오세요.”
“…용길?”
“…접니다.”
“아? 모용 소협을 말씀하시는군요. 한데 왜 용길이라고…?”
“거, 두 번 세 번 말하게 하지 맙시다. 그런 거 물을 시간에 나 같으면 한 글자 더 썼겠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사부님과 당옥기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는데.
- …원철이 이놈도 제 팔자 제가 꼰 것이지.
“…원철 스님. 불쌍해. 구도자가 쌓을 게 무위뿐이 아니다 어쩌다 했던 거 같은데. 뭔가 배우고 있긴 한 거겠지?”
녀석의 뒤를 이어 우소릉과 은하성도 말했다.
“…인생의 쓴맛은 확실히 배우실 것 같네요.”
“그냥 다른 교류생들처럼 특별대우 받으면 편안할 것을… 뭐 한다고 용운 형님한테 와서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해서. 쯧쯧쯧.”
그런 은하성의 말에, 묵묵히 맡은 일을 하고 있던 병아리 삼인방 중 남궁영이 입을 열었다.
“그러는 하성 선배도 좋아서 붙어 있는 거 아니세요? 저는 좋은데. 그리고 방학 동안 수련만 하니까 사실 머리가 찌뿌둥했어요. 안 그래 장선? 독고철?”
“머리가 찌뿌둥한 건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이 동기 말이 맞아! 용운이 형이 최고야!”
“회장님이 없으니 뭔가 허전하긴 했지.”
녀석들끼리 하는 이야기였으나, 학생회실 안에서 하는 이야기가 내 귀를 지나칠 리 없었는데.
“다 들렸다. 은하성 우소릉.”
“!”
“!”
“그리고 당옥기 너는 연구하러 안 가? 이번에 캐온 거 다 빼앗아서 약왕당에 기증한다?”
“캭!! 간다 가!!”
내가 당옥기에게 본분을 일깨워 주고 있는 때.
학생회실의 문이 열리며, 낯익은 단발머리 여협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으니.
“얘들아. 안녕.”
다름 아닌 팽소진이었다.
“오. 누님?”
그런 팽소진을 향해 인사를 건네려는 때.
호루룩!!!
저 멀리 광서에서부터 날아온 응용이가 열린 문틈으로 쌩하고 날아와 내 머리 위에 앉았다.
녀석이 내게 투정을 부릴 때 하는 행동이었는데.
초왕부에 데려간 뒤로 내내 부려 먹었던 만큼, 가벼운 투정은 받아 주기로 했다.
“심통 내는 건 이해해 줄 테니까. 서신은 내놔.”
내 말에, 응용이는 서통이 달린 다리를 내밀었다.
통을 열어보니, 얇게 말린 종이가 세 장이나 들어 있었다.
“예해수 선배도 출발한다는군.”
그중 하나는 예해수 선배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초왕전하께서 보낸 것이었으며.
『괴룡과 정무학관 생도들의 공이 사해를 덮을 듯 큰데, 석별의 정도 나누지 못하고 이별하여 애석하다.
고가 좋은 술을 구해, 좋은 날 좋은 곳에서 다시 한번 만나자 청하도록 하마.』
마지막 한 장은 꼬마왕자가 고사리손으로 그린 듯.
삐뚤빼뚤한 그림체로 나와 다른 언동생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잠깐 휴식. 다들 붓 내려놓고 와서 이거 보고 가.”
내 말에, 모여든 언동생들은 하나둘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하하. 이거 그림이 걸작이네요. 언 공자는 제일 열심히 그렸는데, 하성이는 종이가 좁아서 그리다 말고는 이름을 써놨네.”
“푸하하.”
“원시천존. 그래도 최선을 다하신 것 같습니다.”
“남궁영. 이 오라비까지는 열심히 그린 흔적이 보이지 않나? 내가 이 정도다.”
“늬에. 늬에. 그나저나 하성 선배는 정말 웃기긴 하네요. 종이가 컸다면 다 그려 주셨을 거 같긴한데.”
“우하하.”
“…거, 다들 웃지 맙시다. 특히 소천이 형. 형은 부진아라 따라오지도 못했으면서 웃음이 나와요?!”
“흥. 용운이가 우리가 부족해서 남긴 것은 아니라고 엊그제 다 말해줬다!”
팽소진이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연 건 이때였다.
“…나는 너희 고생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아예 모르는 이야기라 좀 뻘쭘하네. 이따가 다시 올까?”
그런 팽소진을 향해 나는 입을 열었다.
“잡다한 이야기야 차근차근 나누면 되죠. 그래서 누님은 복학 준비 완벽하십니까?”
“용운이 네가 완벽하냐고 물으니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무섭긴 한데… 내 기준으론 완벽하다고 봐도 될 거 같은데?”
“오호. 그럼 본인 공부나 강의 준비 할 시간이 필요 없으시다는 거네요?”
“…응?”
“저기 제갈 소저 옆에 빈자리 보이죠? 누님 자리입니다. 거기 가서 붓 드세요.”
그런 나를 향해 사부님께서 혀를 차 오시는 때.
- …교류생으로 온 원철이도 그렇고.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이렇게 멍에를 쓰는구나.
나는 제갈설지를 향해 물었다.
“제갈 소저, 말이 나와서 말인데, 교류생들은 어찌됐소?”
“용운님 명성 때문에, 교환학생으로 운영하던 시절보다 사람이 많이 와서 정신없네요.”
교류생.
본디 교환학생으로 양측의 후기지수들을 교환하여 얼마간 수학하게 하여 서로 간의 학풍과 풍습을 이해하자는 취지였으나.
이런저런 일들로 내 명성이 너무 높아진 탓에.
학관에 있는 생도들은 나가길 싫어하고 다른 곳에선 들어오고 싶어 해서, 제도가 좀 바뀌었다.
“소림은 원철스님 한 명이지만. 결연을 맺은 네 곳의 새외무림에선, 각기 열 명씩 보내왔어요.”
“학사일정에 어떻게 참여시킬지는 미리 준비를 해뒀잖소?”
“그렇긴 하지만. 각궁보랑 빙궁에서 겪어보셨잖아요? 각자 자존심이 있고 생활방식이 달라서. 여러 가지로 걱정이네요.”
“확실히 걱정거리긴 하지만, 그런 것들을 서로 이해하게 되면 새외와 중원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거름이 되겠지.”
“그렇기야 하겠죠?”
“다 도착은 했나? 객관을 잡았다는 서류를 보긴 했는데 빙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예. 북해빙궁은 아직이고. 나머지 세 곳은 도착해서 객관을 잡았죠.”
제갈설지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을 곱씹어 보았다.
‘각궁보와 빙궁은 돈독하다고 해도 좋을 사이고… 문제는 남만야수궁과 남해적룡궁인데.’
남만야수궁은 현철과 각종 영초의 산지라, 예로부터 중요한 거래 상대였던 곳이었다.
하나, 적룡궁도 간과할 순 없었다.
‘만인혈.’
사람의 원념을 뭉쳐내 만든 끔찍한 영단.
‘원작의 우소릉은 만인혈이 천마신교로 들어가는 걸 막으려다 죽는다.’
시점상으론 지금보다 한참 뒤에 일어나는 사태였지만.
원작의 이야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금.
뒤의 일이라고 섣불리 간과해선 안 됐다.
생각을 마친 나는 제갈설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남해적룡궁은 단강제일객잔에 묵고 있는 게 맞소?”
“예. 맞아요.”
“거기부터 가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