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52화 (352/444)

제352화. 교류생 (3)

제갈설지와 대화하고 있기를 잠시.

은하연이 나를 향해 물었다.

“새외에서 온 교류생들을 만나러 가시려고요? 정식으로 입관하는 때는 이학기 수업이 개강하면서잖아요?”

“그렇긴 한데, 만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기야 입관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이랑은 궤가 다르니까 문제는 없겠네요.”

“원철 스님을 제외하면 다들 멀리서 온 사람들이고, 마인들 때문에 어지러운 시국이기도 하니까. 개강하기 전에 한 번씩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소. 그쪽 지방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을 테고.”

“음. 그런 목적이시면… 여기 있는 간부 중에 기숙사 대표로 한 명씩 뽑아서 가시죠? 과례니 뭐니 해도, 사실 예의 차리는 거 싫어하는 사람 없잖아요?”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는데.

말을 꺼낸 은하연 본인이 흠칫 놀라며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뭐요 그 반응은?”

“…저보고 가자고 하실 것 같아서, 아차 했네요.”

“은 소저가 가주면 좋긴 한데… 새외에 소식지 창구를 만드는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많이 바쁜가?”

“그럼 안 바쁠까요!? 교류 수업 예산 지원이랑 청죽관 독립 사업도 다 챙겨야 하는데. 제 책상에 서류 쌓인 것 좀 보세… 아니, 애초에 난 청죽관의 자치부회장이지 총학생회 간부는 아닌데. 여기 내 책상이 왜 있는 거람?!”

“없으면 섭섭해할까 봐.”

“하나도 안 섭섭할 것 같네요! 아, 근데 소식지 이야기는 빙궁이나 각궁보면 몰라도 야수궁이나 적룡궁 쪽이랑은 하지 마세요?”

“그랬다간 이유를 불문하고 속물이라고 여길 테지. 알겠소.”

“그 이유를 빼면, 사실상 사대기숙사와 총학생회장이라는 구색을 갖춘다는 의미로 가는 거니까. 바쁘지만 않으면 누구든 상관없지 않나요?”

“그도 그렇군.”

“예. 비교적 덜 바쁜 사람으로 데려가세요.”

“…제갈 소저도 은 소저랑 같은 이유로 바쁠 거고, 옥기도 연구해야 하니 여유는 없고.”

그렇게 은하연과 이야기를 마친 나는 다른 언동생들의 책상과 면면을 훑어보았는데.

“해수 선배가 안 계셔서 공보국의 하성이랑 소릉이도 바쁘고. 소천이 형은 그냥 안 되고. 장호 저것도 그렇고.”

그런 내 말에 천장호가 억울해하는 때.

“저것도 그렇고라뇨? 아니 용운 형. 무슨 사람을 거적때기 취급을 하십니까?”

“크하하.”

“소천 형은 왜 웃어! 내가 저것도 그렇고면 형은 그냥 안 되곤데!”

“거적때기라는 네 말이 웃겨서 웃은 거다.”

나는 사대기숙사 대표로 내세울 명단을 머릿속에서 맞춰냈다.

“윤국관은 소진 누님이 갑시다.”

“나?”

“예. 어차피 당장에 일도 어색하고, 이래저래 뻘쭘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

“며칠은 저랑 바람 좀 쐬면서 적응 좀 하시죠. 누님은 맹주님의 제자이기도 하니까 새외 친구들 앞에서 면이 좀 설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지 뭐.”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용명이를 향해 말한 뒤.

“용명이는 맡은 일 다 해가냐?”

“예. 형님. 안 그래도 다 끝나서 품의를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럼 운매는 네가 간다.”

“예. 형님.”

남궁세가의 남매를 응시하며 말을 맺었다.

“향란은 궁윤이. 청죽은 영이가 가면 되겠다.”

남궁세가 하면 새외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가였다.

‘거기다 남궁영은 원체 싹싹한 녀석이니까.’

복학해서 일학년 수업을 들어야 하는 팽소진을 좀 도와주면 좋겠다 싶어 그렇게 정한 것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거절하지 않았다.

“알겠다.”

“알겠어요 용운 선배! 철아. 내 책상에 있는 서류 네가 마무리 좀 해주라!”

예상대로 총학생회실을 나서자마자, 남궁영은 특유의 곰살맞음을 앞세워 팽소진과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선배님. 말 편하게 해도 되죠?”

“어? 응. 저번에 무림맹에서 봤을 때 그러기로 했잖아.”

“언니라고 그러기엔 너무 빠를까요?”

“그건 좀 그렇긴 하네. 너 보니까 용운이한테도 선배라고 하던데?”

“뭔가 다른 선배들은 겹치는 수업이 없는데, 소진 선배랑은 앞으로 수업 시간에도 뵙고 그럴 생각을 하니까 내적 친밀감이 든달까요?”

“챙겨주려는 마음은 고마운데, 조금만 천천히 하자.”

“헤헤. 알겠어요.”

그렇게 나선 걸음으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남해적룡궁의 교류생들이 묵고 있다는 단강제일객잔이었는데.

“주인장 계시오?”

“아이고. 공자님 오셨습니까!”

이래저래 연이 많은 주인장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 흠. 적룡궁의 교류생들이 보이지 않는구나? 혈기방장한 후기지수들이 방에만 틀어박혀 있을 리 없을 텐데?

한데, 사부님의 말마따나, 남해적룡궁의 교류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요? 평범한 후기지수들도 그럴 텐데, 심지어 적룡궁 녀석들은 남해바다 아래에 있는 섬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녀석들인데요?’

뭍에서 오래 지내는 것 자체가 몸이 근질근질한 게 정상일 터.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주인장. 앞마당과 뒷마당이 모두 조용합니다? 여기에 묵기로 한 손님들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그런 내 말에, 단강제일객잔의 주인장이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그런 것은 아니고. 묵고 계신 손님들이 원래는 바다에서 살던 분이시라던데요?”

“맞소.”

“이 시간이면 학관 북편에 있는 호수로 멱감으러 가십니다요. 가신 김에 고기를 잡아 나눠주기도 하셔서, 지난 며칠은 저희 객잔의 찬거리로 생선이 올라왔습죠.”

“아하. 뭐, 시비가 걸린다든지 그런 일은 없었고?”

“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요. 제가 얼른 가서 불러올까요?”

예를 차리러 온 걸음인데,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뛰쳐나가려는 주인장의 걸음을 말리며 말했다.

“됐소. 좀 기다리지 뭐. 차나 한잔 내주시겠소?”

“그러시겠습니까? 하면, 안으로 드시지요. 금세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    *    *

그렇게 우리는 주인장에게 차를 부탁하고 객잔 안으로 들어섰는데.

어째선지 남궁윤이 앉으라는 자리에는 앉지 않고, 이 객잔의 명물인 수결이 내걸린 벽 근처에 가서 괜히 헛기침을 했다.

“큼. 크흠.”

그런 녀석의 모습에.

나와 남궁영의 입이 거의 동시에 열렸다.

“뭐 하냐?”

“거기서 뭐 하세요, 오라버니?”

그러자 남궁윤이 어색한 투로 답했다.

“이곳 주인장이 수결을 해달라고 할 때는 별생각 없이 해주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새삼 기라성 같은 분들의 수결이 많기도 하군.”

녀석의 행동에서 나는 곧바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런 수결 사이에 자기 것도 끼어있다고 동생 앞에서 말하고 싶은 건가?’

녀석이 그러고 있기를 잠시.

주인장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찻잔을 우리 앞에 내려놓더니.

남궁영을 향해 종이와 붓을 내밀며 말했다.

“남궁영 여협 되시지요?”

“…여협까지는 아니고요. 협행이라고 할 만한 일을 한 적도 없는걸요. 아무튼 제가 남궁영은 맞습니다.”

“입관하시며 당금수석 자리도 꿰차시고. 훌륭하신 우리 괴룡 언용운 공자님 곁에 딱 붙어서 그렇게 배우시다 보면,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도 생각해 주시는 협객으로 거듭나시겠지요.”

“아이고. 너무 금칠을 해주시는데… 예.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결 한 장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에, 남궁영이 이름자를 써서 주자.

그걸 받아든 주인장은 잠시 남궁윤의 눈치를 보는 듯싶더니.

녀석의 것보다 남궁영의 수결을 살짝 높은 위치에 걸었다.

“…….”

나는 침통해 하는 남궁윤을 불러다 함께 차를 나눴다.

“주접 그만 떨고 이리와 앉아 남궁윤.”

그렇게 주인장이 내어준 차를 홀짝이고 있기를 한참.

김이 나던 주전자가 차게 식어질 무렵.

멀찍이서 들려오는 이야기 소리가 내 귀에 잡혔다.

“오늘 내기는 제가 이겼습니다. 소궁주님?”

“그래 내가 졌다. 하루종일 한 마리도 못 낚길래 어디 가서 적룡궁 사람이라고 하지 말라고 하려 했는데. 마지막에 그만한 대어를 낚을 줄이야.”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언동생들에게 자세를 바로 하라는 손짓을 보냈는데.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적룡궁의 교류생들이 객잔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렇게 들어선 교류생들 중 절반 이상은 지난 정진대회에 참석했던 이들이었기에 낯이 익었는데.

저쪽에서도 나를 향해 알은체를 해왔다.

“어? 괴룡이 아니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오 소협.”

하나, 처음 보는 얼굴도 있었는데.

지난 정진 대회 때, 남해적룡궁의 기수 역할을 담당했던 오윤성이 그를 소개해주었다.

“괴룡. 이쪽은 저희 적룡궁의 소궁주님이십니다. 소궁주님, 이쪽은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던 정무학관의 총학생회장이자 천하제일 후기지수 언용운 공자입니다.”

그런 오윤성의 말에, 나는 언동생들과 함께 포권을 취했다.

“언용운입니다. 여기 함께 온 생도들은 입고 있는 무복 색을 보면 아시겠지만 사대기숙사를 대표해서 왔습니다.”

“정원해라 합니다.”

적룡궁의 소궁주 정원해는 그런 우리를 향해 마주 포권을 취해왔는데.

그러면서 우리가 앉아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차가 식을 때까지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사람을 보내시지 않고요.”

“미리 약속을 잡고 온 것도 아닌데, 어찌 귀한 손님을 오라 가라 하겠습니까.”

“허. 괴룡의 이름이 천하를 호령하여 바다 넘어까지 전해지는데, 이리 겸손하시다니. 듣던 대로 대인의 풍모를 지니고 계시는군요.”

“소궁주님이야 말로 대단하십니다. 새외의 궁들은 작은 왕국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이 직접 저희 학관에 배움을 청하시다니. 명단에서 소궁주님의 이름을 확인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렇게 오고 가는 금칠 속에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천하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틈타 넌지시 적룡궁의 사정에 관해 물어보았다.

“말씀드린 대로 강남 일대에서 마인들이 기승을 부리는 터라 실로 어지럽습니다. 적룡궁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적룡궁에 필요한 물자 중 일부는 중원의 해안가에서 건너오는데, 아무래도 이런 시기에는 녹록지 않지요.”

“사람이 실종되거나 하는 일이 있거나 하지는 않는가요?”

“해안가와 도서(島嶼)지역은 본디 너무도 그런 일이 빈번합니다. 왜구도 있고, 해적도 있고. 염적들도 있어 그렇지요.”

한데, 정원해의 말은 어쩐지 두루뭉술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걸어온 길들과 명성들도, 바나 건너 있는 저들에겐 다른 세상 이야기로 느껴질 게 분명했으니까.

‘도서지방엔 섬사람이 뭍에 나오면 코를 베어 간다는 말도 있고… 나를 무작정 신뢰하지는 못하겠지.’

뭐,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었고.

정원해가 교류생으로 학관에 온 이상 신뢰를 끌어낼 시간은 충분할 터.

나는 씩 웃으며 정원해와의 첫 단추를 끼워냈다.

“함께 노력할 부분을 찾아봅시다.”

*    *    *

남해적룡궁을 시작으로, 나는 다른 새외무림의 교류생들과 차례차례 만남을 가졌는데.

남만야수궁, 각궁보, 북해빙궁.

세 곳은 각자의 사정으로 소궁주급 인사가 오지는 않았기에.

야수궁과는 인사를, 각궁보 그리고 북해빙궁 과는 지난 아성 공략을 상기하며 회포를 나누는 것으로 의전 일정을 끝마쳤다.

그러고 나니, 이학기 개강일이 훌쩍 다가오게 되었다.

“정무학관의 총장 경혜입니다. 방학은 잘들 보냈습니까?”

“예!”

“이렇게 또 한 번의 학기가 시작됩니다. 정무학관의 모든 생도의 무위와 공부에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여, 이번 학기의 개강은 교류생들의 입관식이 함께하게 되었는데.

“특히나 이번 학기에는 교류생 제도를 통해, 총 마흔한 명의 새외무림의 후기지수들이 정무학관에 입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관의 총장으로서 교류생들의 걸음을 환영하는 바이며. 중원과 새외의 후기지수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총장님이 말씀하신 이해와 화합의 장은 그저 말뿐이 아니었다.

이번 학기의 필수 수강 과목에는 ‘특별 교류 수업’이라는 과목이 들어오게 되었으니까.

특별 교류 수업.

이 수업은 새외와 중원의 환경과 습속이 다름을 배우기 위한 장으로.

세상을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풍찬검객 정극경 교수님의 보조 아래, 교류생으로 온 생도들이 본인들이 살아가는 땅에 대해 가르쳐주는 수업이었는데.

“정극경입니다. 근래, 강남에서 난리가 났음을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강남은 위로는 장강을 아래로는 남해를 접하고 있죠. 하여, 중원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서 적을 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먼저 수업을 진행하게 된 이들은 남해적룡궁의 교류생들이었다.

“오늘은 남해적룡궁의 교류생들과 함께 그런 환경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원해 생도는 앞으로 나와주시겠습니까?”

“정원해입니다. 교수님의 말씀대로 저희가 적들을 접하는 환경은 뭍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물과 뻘 그리고 모래 위에서 싸우는 일이 잦습니다.”

한데, 정원해 휘하의 교류생들이 준비해온 첫 수업 내용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었다.

“학관에 문의를 해보니. 생도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싸우는 수업을 해보긴 했다 하였으나, 그 내용을 뜯어보니 미흡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오늘은 그 점에 대해 알려드릴까 합니다.”

학관과 접하고 있는 단강구의 호수에 거선 한 척과 작은 배 여러 척을 띄워놓고 하는 수업이었다.

“어떤 부분이 미흡했는지 보여드리고 싶은데, 혹시 지원자 있으십니까?”

적룡궁의 교류생들이 뭘 할지 모르는 탓에 모두가 잠잠하던 때.

내가 손을 들고 나섰다.

“제가 지원 하겠습니다.”

“…아, 괴룡이요?”

“예.”

“…그럼 저와 함께 작은 배로 건너가시지요.”

정원해는 그런 나를 인도해, 작은 배를 향해 걸어갔는데.

“거선은 방어하기는 좋으나 아무래도 느립니다. 그리고 좁은 곳을 통과할 수가 없지요. 하여, 적의 배 위로 올라타려면 이렇게 작은 배를 타야….”

내가 작은 배에 발을 내딛으려는 때.

물 아래에서 헤엄을 치고 있던 적룡궁의 다른 후기지수들이 배를 뒤집으려는 것이 보였다.

‘음?’

화경에 이른 나였기에, 그 의도를 미리 느낄 수 있었지만.

이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자 하는지 알 것 같았기에.

풍덩!!

나는 적룡궁의 후기지수들의 뜻대로 물에 빠져 주었는데.

“푸후!”

“…….”

정원해는 물에 빠진 나를 놀란 듯 쳐다보더니.

“수업 안 하십니까?”

“…아. 예.”

이어진 내 말에, 계속해 수업을 이어나갔다.

“배 위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뱃사람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물아래 있던 적들이 배를 뒤집는다든지. 작살을 내질러온다든지 하는 식으로 공격을 해오기도 합니다.”

“이곳처럼 물이 잠잠한 곳은 덜한데, 장강의 지류 중 물살이 거친 곳이나 바다 같은 곳은 파도가 더해지겠군요?”

나는 그런 정원해를 향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수업에 참여했고.

“그렇습니다. 하여, 특수한 보법이 요구되고, 아울러 순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물을 파악하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하죠.”

“예?”

“파도. 제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대자연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다른 생도들이 물에서 싸우는 경험을 제대로 느껴보게 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건의 사항과 함께, 도우미 역할도 자처했는데.

그렇게 모든 생도가 한 번씩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는 경험을 하며, 적룡궁의 수업이 끝난 날 밤.

똑똑-

“누구십니까?”

“괴룡. 접니다.”

“문 열려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내 생활관으로 정원해가 찾아와 입을 열었다.

“오늘 수업은 감사했습니다.”

“유익한 수업이라 열심히 참여했을 뿐인데, 감사는요.”

“감사한 일이지요. 파도를 만들어 주신 것도 그렇고….”

“그거야 다른 생도들이 조금이라도 더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회장인 제 역할이니. 감사하실 일이 아닙니다.”

“음. 이야기를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군요. 사실 저는 뭍의 사람들에게 편견을 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정무학관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아. 예. 정진대회 때는 오시지 않으셨지만, 과거에 한 번 견학하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그때 만났던 중원의 후기지수들의 기억이 강렬해서, 정진대회 때도 참석을 하지 않았지요.”

“어땠길래요?”

“…고압적이었고 자존심들이 강했습니다. 본인들을 내세우는 것에만 열중했지, 저희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

“하여, 지원자를 찾을 때 괴룡이 자처한 것을 보고 이번에도 망신을 주려는구나 했습니다. 한데 다르더군요. 괴룡이 일으켜준 파도… 그 정도 무위라면 배를 뒤집으려던 의도를 모르지 않으셨을 겁니다.”

“…예. 뭐, 알긴 했지만 수업에 필요한 거 같아서 어울려 드렸습니다.”

“괴룡께서 그렇게 앞장서서 물에 빠져 주신 덕분에 다른 생도들도 묵묵히 저희의 수업을 들었을 겁니다.”

“에이. 저희 애들 다 열심히 합니다. 선배들 때랑은 이래저래 많이 바뀌었어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요.”

“아무튼 저는 처음 봤습니다. 정말로 우리의 삶과 무공을 궁금해하고 진심으로 바다에서 싸우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중원인은요.”

내 말에, 정원해는 픽 웃으며 계속해 말을 이었다.

“오윤성이 칭찬하고, 강남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괴룡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는데. 풍문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에 한 치의 과장도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큼. 과장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바다에서 싸우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는 것은 적룡궁이 위험에 처했을 때. 정말로 바다를 건너올 의지가 있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이야기 말고 다른 할 말이 있으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며칠 전에 단강제일객잔에서 만났을 때.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해안가에서 실종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희 쪽에서 천마신교의 소행으로 추측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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