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53화 (353/444)

제353화. 교류생 (4)

남해 적룡궁의 소궁주 정원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소궁주. 방금 천마신교라고 하셨습니까?”

“저희 정보대가 파악한 바로는 그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요?”

“괴룡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듣고 있던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신 것은 이때였다.

- 일전에 네가 저 물음을 던졌을 땐, 바다엔 왜구나 해적이 있어 본디 그런 일이 잦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랬죠.’

나는 사부님께 대꾸하며, 곧바로 물었다.

“일전에는 도서지방과 해안가에는 그런 일이 잦다 하신 것 같은데요?”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그때는 제가 괴룡이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던 터라….”

“꼬투리를 잡는 게 아니라, 어떤 사례를 통해 천마신교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났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그걸 알아야 해결할 방도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 내 말에, 정원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원의 조정은 백성들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함과 동시에 해안가를 버려두는 정책을 유지해 왔음을 아시지요?”

“예. 바다를 통하는 무역은 큰돈이 되는데, 그걸 기반으로 강남에 군벌을 만든 자들이 예로부터 있어 와서 그걸 경계하는 방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정 나름의 이유야 있었겠지만, 그 바람에 해안가와 도서지역들은 무방비해졌습니다. 솔직히 말해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뻔히 벌어들일 부가 눈에 보이는데, 하지 말라 하면 국법을 어겨서라도 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렇게 흑도에 발을 들이게 되면 이후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죠.”

잠시 한탄한 정원해는 계속해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해적들이 창궐했고, 돈이 된다는 소문이 저 멀리 동영까지 닿아 왜구도 들락이게 되었습니다. 서글픈 이야기입니다만… 바다 근처에서 사람이 사라지거나 노략질이 행해지는 일은 사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렇군요.”

“하여,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들이 있습니다. 노략질이라는 것이 저들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 만큼, 뜯어갈 재물을 미리 내놓는 식으로요. 한데, 이번에 목도한 광경은 그런 것들과 큰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어떤?”

“해적들은 또 노략질할 생각으로든, 팔 생각으로든 사람은 살려둡니다. 왜구 같은 경우는 때때로 참담한 광경을 만들어 놓기는 합니다만….”

“결이 다른 무언가를 보셨군요?”

“예. 정보대의 보고서 만으론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서 직접 가보았습니다. 그리고 백골이 가득한 섬을 보았습니다.”

백골이 가득한 섬.

그 이야기에 내 머릿속엔 무언가 번뜩 스쳤다.

“혹시 주변에 안개가 끼거나 물살이 거세졌습니까? 원래는 안 그러던 곳이?”

“예.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섬에 백골이 가득할 정도로 원령이 생길 일을 벌였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 테니까요.”

“하기야. 괴룡이라는 그 별호가 처음 붙은 이유는 괴물 같다고 붙은 게 아니라, 사령술에 일가견이 있으셔서였지요.”

정원해는 내 말에 잠시 고개를 주억이더니, 남은 말을 이었다.

“오도(烏島)라는 섬인데. 바위섬이라 사람이 사는 곳은 아니었지만, 물살이 험하지는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말씀하신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하여, 조사대를 보냈다가… 그 광경을 보게 되었고. 누군가가 이곳에서 끔찍한 짓을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런 짓을 할 녀석들은 천마 신교 정도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겠군요.”

“예.”

정원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잠시 생각을 곱씹어 보았는데.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중얼거리게 되었다.

“…역시 만인혈(萬人血)인가?”

“그게 뭡니까?”

“천마신교의 연단 비법 중엔, 사람의 원념과 피를 재료 삼아 만드는 단약이 있습니다.”

“…아, 그럼 만인혈이라는 그 이름이 문자 그대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작에서 벌어졌던 만인혈 사태의 전후관계를 상기해 보았다.

만인혈 같은 끔찍한 연단술을 실제로 행하면 자연스럽게 꼬리가 길어지고, 공분을 사게 된다.

‘천마신교 놈들이 막 나가는 놈들이긴 하지만, 놈들로서도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에서 만인혈 사태가 촉발됐던 이유는.

‘천마신교의 당대 교주인 혁련강이 천마신공을 수련하다 주화입마의 초기 단계에 들어갔기 때문.’

교주가 오늘내일하는 상황이 됐기에, 놈들도 무리하게 연단 작업을 진행한 것이었다.

‘혁련강이 벌써 그 단계에 들어갔다고?’

바로 드는 생각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진즉에 죽어 나자빠졌어야 했을 나는 화경에 고수가 됐고, 언동생들도 강해졌지.’

천마신교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긴 했다.

하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혁련강에게 주화입마가 왔다는 것은 그만큼 천마신공의 대성에 가까워졌다는 이야긴데….’

아무리 원작과 궤가 틀어졌다고 해도 그러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나처럼 이곳저곳 싸돌아다니며 기연을 축적한 것도 아니고….’

원작과 똑같이 천마동에만 처박혀 있었을 위인이 갑자기 깨달음의 시기가 당겨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막아야 하는 일임은 분명했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취하신 조치나 대책이 있으십니까?”

“궁인들을 풀어 남해안의 외딴섬들을 뒤지고 있긴 합니다만, 저희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뭍으로 도망을 치면 끝이니까요.”

“…그렇긴 하겠습니다. 적룡궁이 전선을 이끌고 뭍으로 오면 흑도와 항구도시의 유지, 관병들까지 외침으로 받아들이겠지요.”

“예. 제가 적룡궁을 나오기 직전에 의심되는 자들을 발견하여 쫓은 바 있으나, 딱 그렇게 놓쳐버렸습니다.”

“흠. 이거 땅과 바다 양쪽에서 차단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정원해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예. 쉬운 일이 아니지요. 피부에 와닿는 느낌도 없으실 테고요. 이해합니다.”

생각을 해보겠다는 말이 완곡한 어투로 거절을 한다고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사실을 바로 잡았다.

“생각해보겠다는 말은 거절의 의미가 아닙니다.”

“…그럼?”

“어쭙잖은 계획으론 안될 거 같으니, 저희 간부들 그리고 교수님들과 상의를 좀 해봐야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용도야 어쨌든 만인혈이 만들어지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입니다.”

“……!”

“소궁주님은 적룡궁과 연락을 취해 놈들의 본거지와 조직체계를 파악하는 것에 힘써주세요.”

“알겠습니다!”

*    *    *

정원해와 이야기를 마친 나는 곧바로 우소릉과 은하성의 생활관으로 향했다.

“은하성, 우소릉. 언동생들 총학생회실로 다 나오라고 해.”

“지금 말씀입니까?”

“어.”

“알겠어요 언 형!”

그렇게 소집령을 내리고, 먼저 총학생회실에 가 앉아 있기를 잠시.

언동생들이 하나둘 뛰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먼저 모인 녀석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당옥기와 은하연이었다.

“하암. 물에서 움직였더니, 진짜 평소보다 두 배는 피곤한 것 같은데. 오늘은 고생했다고 저녁에는 좀 쉬자더니. 왜 불렀지?”

“언 공자가 쉬자고 해놓고 일 벌이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점호까지 하고 누워 있는데 부른 건 처음이긴 하네.”

“아미타불. 혹시 제가 진행할 교류 수업내용을 확인하려고 부르신 것은 아닐까요?”

“엥? 스님 수업내용을요?”

그런 두 사람의 말에, 원철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는데.

“적룡궁의 교류생들이 준비한 수업내용이 원체 좋아서… 제가 나름대로 학생회에 들어와 있는데, 괴룡의 성정에 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실 듯한데, 제가 원체 못미더운 모습을 많이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천장호는 그런 원철을 향해 물었다.

“근데 무슨 수업을 준비하셨습니까?”

“명상의 중요성을 준비했습니다.”

“아니,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시네… 가만 보면 용운 형한테 쪼이는 이유가 있어. 용명이. 소천 형 내 말이 틀리우?”

“명상의 중요성은 좀….”

“원철. 우리 아버지가 날로 먹는 거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고 하셨… 이미 대머리긴 하군.”

“아, 아미타불. 하지만 스승님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신 부분인지라 그리 준비한 것입니다. 그리고 팽소협. 저는 대머리가 아니라 민머리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동안, 다른 언동생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는데.

가장 마지막은 소집령을 전하려 돌아다녔던 우소릉과 은하성.

그리고 향란관의 남궁윤과 모용길이었다.

“하성이랑 소릉이는 고생했다. 궁윤이랑 용길이가 꼴찌네?”

“향란관은 외출할 때 거쳐야 할 절차가 있어서 그렇다.”

“당옥기는 제일 먼저 왔던데?”

“…남궁윤과 나는 절차를 준수했고, 당옥기 쟤는 순 무늬만 향란관 생도 아니냐? 왜 전관을 안 하는 건지 원.”

내 말에, 남궁윤과 모용길이 발끈하던 때.

당옥기가 빽하고 입을 열었다.

“웃기시네? 미리미리 써놓으면 되지. 나는 한 삼백 장 정도 미리 써놨어. 날짜만 쓰면 되게. 지들이 미련한 거면서? 그리고 창량 교수님 앞에서 전관하고 싶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냐고. 네가 먼저 해보든가?!”

“애초에 우리는 향란관에서 전과할 생각이 없다!”

“선착순으로 뭐 하려고 부른 거 아니니까. 그쯤들 해.”

나는 녀석들을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갑작스레 소집한 건, 조금 전에 적룡궁의 소궁주가 나를 찾아와서 하고 간 이야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원해와 나눈 이야기를 쭉 말했다.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온 참이야. 아무래도 바다와 육지 양면에서 진행되는 양동작전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전후 사정을 모두 들은 언동생들은 심각한 얼굴들이 됐는데.

그중 은하연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언 공자, 근데 이건 저희 몇명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 같은데요? 남해안의 해안선이 얼마나 긴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언동생들이 모이는 동안 나름대로 떠올려본 생각을 입에 올렸다.

“하나, 무림맹에 떠넘겨서는 처리가 되지 않을 테지.”

“…그건 그렇겠죠. 이런 일은 백본회가 움직여야 하는데, 혐의 정도로는 허락을 해주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의미에서, 정무학관의 전교생이 동원되면 어떻겠소?”

그런 내 말에, 가상의 주판을 굴려본 은하연이 재차 입을 열었고.

“전교생이 동원된다면… 어느 정도 위치가 특정된다는 가정이 붙으면 가능은 하겠네요.”

이어서 제갈설지도 말했다.

“처음부터 백본회를 통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쪽이 여차할 때 무림맹을 움직이기도 좋겠죠. 후기지수들이 싸우고 있는데 어른들이 가만히 계시지는 못하실 테니까요?”

“그렇겠지.”

“초왕부와의 인연이 있으니, 관의 허락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고… 대외적으론 수학여행으로 포장하면 적들도 긴가민가하겠네요. 한데….”

“남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해보시오.”

“다른 생도들이랑 교수님들께는 사건의 전말을 알리실 건가요? 아니면 하시던 대로 선조치 후보고 느낌으로 수학여행으로 꾸미고 진행하나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데, 속여서는 안 되겠지. 괜한 혼선이 생길 수도 있고. 생도들한테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지원자를 받을 참이고, 교수님께도 말씀드려야 하겠지.”

“…확실히 그게 좋겠네요. 언공자 밑에서 나름대로 굴러온 세월들도 있고, 성질도 아니까 보안의 중요성이야 다른 생도들도 알 테고.”

“…성질 이야기는 갑자기 왜?”

“하면, 일반 생도들도 소집을 걸까요?”

“그래야 하는데, 은 소저랑 제갈 소저는 예산이랑 경로 좀 짜보고 있으시오. 소진 누님, 용명이, 궁윤이, 정현. 너희 넷이 각자 자치회장님 만나 뵙고 지금 바로 소집 좀 걸어. 대강당으로 다들 좀 모이라고 해.”

그렇게, 생도들에게 모두 모이라는 명을 내리길 잠시.

사대기숙사의 자치회장들을 필두로 사색무복을 입은 생도들이 늘어선 가운데.

회장들이 인원 보고를 해왔다.

“운매관. 총학생회 간부외 열외없음. 보고 끝.”

“향란관. 총학생회 간부외 열외없음. 보고 끝.”

“윤국관 총학생회 간부외 열외없음. 보고 끝.”

“청죽관 총학생회 간부와 자치부회장 은하연 외 열외 없음. 보고 끝.”

“늦은 시각에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선후배 생도들을 불러 모은 이유는, 천마신교의 움직임이 포착됐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인 생도들 앞에서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인혈이라는 연단법이 있습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감이 오겠지만, 사람을 재료로 삼는 연단법입니다. 그 연단법이, 남해안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정황을 적룡궁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

“새외의 일이 먼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나, 그렇게 하나 둘 함께 싸울 친구를 잃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홀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

“저는 적룡궁을 도우러 갈 겁니다. 위험한 일이 될 것입니다. 아니,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이 이상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며칠 내로 붙을 수학여행 공고를 확인하고 참석 의사를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내가 말을 마치자.

대강당엔 잠시 정적이 흘렀는데.

그 정적을 헤집으며 경룡이 형이 입을 열었다.

“…내 고향 광서가 난리를 겪었는데, 하필 학관에 잔류하기로 한 때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지. 나는 따라가겠네. 청죽의 검이 시퍼렇게 벼려져 있음을 한 몸 바쳐 증명할 것이야.”

향란관의 당준기 선배와 소선창 자치회장도 뒤를 이었다.

“당문의 사람은 은혜와 원수를 잊지 않지. 은혜를 입은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겠다는데 그 자리에 원수가 있다? 어찌 빠지겠나?”

“당 부회장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예전에 준비가 돼 있었네. 한데 일언반구도 없이 혼자만 천하를 누비고 다니길래. 아직 우리를 믿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기회는 도리어 반갑네.”

이어서 윤국관의 곽우명 자치회장과 운매관의 계운열 자치회장도 한마디를 더했다.

“회장님께서 가자고 하면 가는 건데 무슨 말씀을 그렇게 어렵게 하십니까. 윤국의 생도들 중에서도 빠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 운매의 생도들은 이미 피가 끓은 지 오래야!”

그렇게 하나둘 표해오는 참석 의사에, 나는 픽 웃었다.

“…거, 공고 나면 이야기하시라니까.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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