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7화. 수학여행 (3)
송길준을 심문해 보겠냐는 물음에 자신감을 내비치자.
대군사님은 곧바로 되물어 오셨다.
“그러면… 지금 바로 만나볼래? 녀석이 갇혀있는 뇌옥에 들여 보내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당장은 좀 그렇습니다.”
“그럼 언제? 밑져야 본전 정도인 일에 많은 시간을 써서는 안 된다는 거 알지?”
그러자, 대군사님은 재차 질문해오셨는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흠.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설령 송길준이 실토한다고 치자. 놈이 우리를 농락하기 위해 지껄인 말인지, 쓸모있는 정보인지 검증하려면 시간이 걸려. 남해안까지 가는 시간도 생각해야 한다 너?”
“그 점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말에 내가 바로바로 답을 하자, 대군사님은 고개를 갸웃하셨다.
“그럼 무언가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긴데?”
“길준이 그 자식이 저희 손에 들어오긴 했지만, 나름대로 천마신교에서 마뇌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후계수업을 받던 놈입니다.”
“그야 그렇지. 해서?”
“아무리 저라도 그런 녀석의 입을 그냥 열 수는 없습니다. 대군사님께서도 이것저것 다해보셨을 텐데요?”
“이것저것 다해보긴 했지. 회유, 겁박, 섭혼술에, 가벼운 고문도 해봤으니까. 의미가 없겠다 싶어 그만뒀지만… 그래서 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했잖아?”
“예. 그러셨죠.”
“그래. 하지만 송길준이 너에 대한 집착이 광적인 것 같아서, 혹시나 너라면 하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가만, 너 말하는 투가 조건만 맞추면 입을 열게 할 수 있다는 걸로 들리는데?”
되돌아온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러자, 대군사님의 눈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어떻게?! 무슨 수로?”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당옥기랑 제갈설지. 두 사람을 이 자리로 은밀히 불러와 주십시오.”
* * *
무창 수군진의 외곽에 위치한 동산.
이 동산은 풍류를 즐기려는 이들이 곧잘 나들이를 오는 무창 인근의 명승이었으나.
진법의 묘리를 응용해 교묘하게 배치해놓은 수풀을 넘으면, 제갈혜가 파놓은 토굴(土窟)이 나왔다.
미로처럼 파놓은 이 토굴은,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뇌옥으로 특급 죄수들을 가둬놓는 곳이었는데.
송길준이 갇혀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언용운.”
해가 뜨고 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 굴속일뿐더러, 이따금 찾아오는 제갈혜의 수하들이 바깥 사정을 알려줄 리 없었기에.
송길준이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지난 일을 곱씹는 것뿐이었는데.
“교주님께서 천마신공을 대성하시어 이 땅에 천마로서 재림하실 때. 반드시 이 수모를 돌려주고 말 것이다.”
송길준이 벌써 몇 번째 중얼거리는 말인지도 모를, 공허한 한 마디를 중얼거리던 때.
데구루루루!
그가 갇혀있는 뇌옥의 틈으로 어린애 주먹만 한 구체가 툭 하고 굴러들더니.
스멀스멀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그에 송길준은 헛웃음을 흘렸다.
“제갈혜 그 여자도 참 끈질기군. 하찮은 수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또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는가?”
송길준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제갈혜가 또 몽혼약 같은 것을 써서 섭혼술을 시도하려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백도 무림의 대군사라는 여자가 참으로 한가해 보이는구만! 할 짓이 그렇게 없나?!”
한데, 송길준의 일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반응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나타나야 할 심문관이 나타나지 않는다 싶었는데.
그런 생각이 송길준의 뇌리를 스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천으로 휘감은 두 명의 흑의인이 신형을 늘어뜨리며 뇌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휙! 휙!
그렇게 뛰어 들어온 이 인조 중 한 명은 벽에 붙어 망을 보았고.
다른 한 명은 송길준이 갇혀있는 뇌옥의 자물통을 열었다.
철컥-
그러자, 연결된 기관 진식이 요란한 종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딸랑! 딸랑! 딸랑! 딸랑!
그에 송길준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눅후냐?”
들이마신 연기 때문인지.
시야가 일렁이고 혀가 말려 제대로 말을 하기 쉽지 않았다.
그사이 자물통을 열고 들어온 흑의인은 말없이 송길준에게 씌워져 있던 수족갑을 벗겨내더니.
꾸벅 군례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자세한 설명을 드릴 시간이 없으니, 일단 무례를 무릅쓰고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송길준을 둘러업고 질주를 시작했고.
망을 보던 흑의인도 합류했다.
두 명의 흑의인은 미로처럼 생긴 토굴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옥졸(獄卒)들을 베어내며 달려 나갔는데.
촤악!
촤아악!!
곳곳에 피를 뿌리며 미로로 된 토굴 속을 내달린 지 한참.
눈에 들어오는 경치가 탁 트임과 동시에, 바깥 공기가 훅하고 송길준의 폐부에 침투에 왔다.
“…윽.”
한데, 그 바깥 공기엔 매캐한 탄내가 섞여 있었다.
“불이야!”
“적습이다! 적습!!!!”
“전 대원은 위치를 사수하고! 수비대는 동문으로! 수병들은 전선에 불이 옮겨붙기 전에 배를 강에 띄워라!”
분주하기 그지없는 광경.
약 기운 탓에 몽롱하던 송길준의 이지(理智)가 일부 돌아온 건 이때였는데.
“…불바다.”
덕분에 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정확하게 인지한 송길준은 속사를 하듯 물음을 던졌다.
“…백도 놈들의 수군진이 불타고 있어? 홍흑황청. 저 사색 무복은 정무학관의 애송이들이 입는 무복인데? 뭐냐 너희 둘은?”
그 물음에, 입을 연 건 송길준을 업고 있던 흑의인이었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그래. 뭐냐 너는?”
“공자님께서 백도 놈들에게 붙들리신 후, 마뇌 어른께서 다시금 전면에 나서게 되셨는데. 공자님의 행방을 유추해 내시곤 구출을 명하셨습니다. 백도의 더러운 위선자 놈들이 아끼던 수군진이 불타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내가 이 꼴이 났으니. 스승님께서 나설 수밖에 없으셨겠지. 공손무결과 제갈혜 그 여자가 애지중지하던 수군진을 불태우다니… 역시 스승님이시다. 한데, 정무학관의 생도들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그건.”
그때였다.
두 흑의인이 지나온 길목의 수풀이 열리며, 고함이 들려온 것은.
“작은 언 형! 저기요! 저기 있어요!”
그에 송길준은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송길준!!!”
악귀처럼 뒤틀린 얼굴의 언용운과 언동생들이 보였다.
“…언용운?”
한데, 자세히 보니 언용운이 회한이라 불리는 특유의 애병을 차고 있지 않았다.
송길준은 곧바로 고개를 털어 혼몽한 정신을 조금 더 붙들었다.
그러고 나니, 언용운으로 보였던 자의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생 놈인가?”
그렇게, 송길준이 한마디를 중얼거리는 때.
앞서서 길을 열던 흑의인이 꾸벅 포권을 취하곤 뒤편으로 달려 나갔다.
“제가 뒤를 막겠습니다. 그 틈에 빠져나가십시오.”
송길준은 빠득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언용운…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씹어먹어도 모자랄 놈.”
“…….”
“그놈도 여기 있나? 그래서 정무학관의 생도들은 왜 여기 있는 거냐?!”
흑의인은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와중, 송길준의 물음에 답했다.
“경천혈마의 공격으로 강남의 거점들이 쑥대밭이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인혈에 관한 정보가 백도 놈들에게 흘러 들어갔습니다.”
흑의인이 읊는 정보들은 무림맹의 뇌옥에서 송길준이 홀로 상정해 보았던 몇몇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했는데.
그에 송길준이 입술을 짓씹던 때, 흑의인이 계속해 말을 이었다.
“하여, 백도무림이 대군세를 일으켰고. 정무학관도 전교생이 동원됐습니다.”
“…그래? 한데 저 놈들의 분위기를 보니 언용운 그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화마가 제일 먼저 삼킨 자리가 놈이 처소로 삼고 있던 놈이었으니까요.”
어느 순간,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듯.
흑의인은 육성 대신 전음을 보내왔다.
[그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하라.]
[마뇌 어르신께서 전면에 나서며, 흑백무상 두 분 사형제가 강남과 만인혈의 일을 총괄하게 되셨는데. 아무래도 흑무군주님께서는 근시안적인 면모가 있으시고, 백상마군께서도 성정이 폭급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모로 부침이 있습니다. 하여, 마뇌 어르신께서 공자님을 구출하자마자 그쪽의 일을 맡기라 하셨습니다. 방성항(防城港)의 거점은 혈마의 공격으로 노출됐고, 우선 뇌주반도의 거점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마뇌부의 중간 간부 이상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여, 송길준은 아무런 의심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흑의인에게 전했다.
[방성항이 무너졌으면 뇌주반도도 혈마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은하군도. 은하군도의 삭월도(朔月島)로 가자.]
그때였다.
송길준을 업고 있던 흑의인이.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송길준을 내동댕이친 것은.
꽈당탕!
그에, 송길준은 한바탕 흙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당황한 송길준은 추격이 있던 것인지 전후좌우를 급하게 살폈지만, 당장에 그들을 따라붙은 이는 없었다.
그에 송길준은 버럭 소리를 질렀는데.
“매복이 나타난 것도 아닌듯한데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그러자, 흑의인은 쓰고 있던 복면과 면구를 뜯어냈다.
그렇게 드러난 얼굴은, 송길준이 가장 증오해 마지않는 얼굴이었다.
언용운은 히죽 웃으며 물었다.
“길준아. 또 속냐?”
* * *
내가 정체를 드러내자, 송길준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미 단전이 폐해진 놈이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녀석의 손발을 포박했는데.
그렇게 수족이 묶이는 와중, 송길준은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분명히 옥졸들을 죽이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백도 놈들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다시 뇌옥에 처박히면 영원히 빛을 못 볼 놈이었으니.
녀석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알려주는 쪽이 더 열이 뻗치겠지.’
나는 히죽 웃으며, 송길준에게 실상을 들려주었다.
“아, 옥졸들? 그거 사형수들을 풀어놓은 건데? 그쯤 움직이게 점혈을 해놨었지. 크, 사천당가 약이 좋긴 좋아? 살짝 어색하다 싶었는데. 정신은 붙여놓되 분간만 못 하게 해달라는 주문의 조제가 되네?”
“…수군진이 불탄 건 뭐냐?! 저렇게나 불바다가 되었는데! 그리고 언용명 그 자식의 표정은 분명 네 녀석에게 무슨 일이 난 표정이었는데?!”
송길준의 말에.
나는 지난밤에 있던 제갈혜와의 대화를 상기했다.
“…뭐라고? 송길준을 풀어주자고? 잠깐잠깐. 그래 내가 허락을 해준다고 치자, 녀석이 남해안으로 간다는 보장이 어디 있어?”
“완전히 풀어주자는 게 아닙니다. 놓치는 척을 하자는 게 맞겠네요. 제가 송길준을 구출하러 온 마인 역을 맡아서 녀석의 속마음을 실토케 해보겠습니다.”
“…아. 네가 붙겠다고? 흐음. 근데 그런다고 실토를 하겠어? 그전에 눈치채지 않을까?”
“송길준이 저한테 잡힐 무렵, 천마신교는 혈교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후로 세상과 단절돼 있었으니, 이후의 상황을 모를 테지요. 그 점을 이용하면 실토를 할 겁니다.”
의심이 많은 송길준이었지만.
바깥 사정을 전혀 모르는 상황.
게다가 혈교의 정보 덕분에 천마신교가 만인혈을 연구하기 위해 마련해둔 거점도 일부 알았으니.
이것들을 활용하면 녀석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끌어낼 수 있다고 봤다.
그런 상황에 내가 아는 마뇌부의 이름을 적당히 언급하면 금상첨화가 될 테니까.
문제는 송길준이 나를 마인이라고 철석같이 믿을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철저하게 변복하고. 대군사님께서 수군진이 마인들에게 공격당하는 분위기만 만들어 주시면. 속여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무슨 소리를 하냐며 혼을 냈겠는데… 용운이 네가 그런 말을 하니 믿고 싶어지네.”
“그럼 믿어주시겠습니까?”
대군사님은 잠시간에 고민 끝에 입을 여셨다.
“사실 용운이 네가 곳곳에서 천마신교의 계획들을 저지해준 덕분에, 무림맹은 여윳돈이 생겼다고 봐도 좋은 상황이지… 그런데 마침 동편 선착장이 좀 협소해서 마음에 안 드네?”
길준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제갈혜는 이윽고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수군진의 삼 할을 불태워 줄게. 어떻게, 그 정도면 이곳이 마뇌에게 공격당한 분위기 나겠니?”
“…음. 예! 그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겸사겸사 정무학관 생도들에게 제대로 된 실제상황을 가정한 훈련도 되겠네요.”
“아하하. 보통은 이 대목에서 그렇게나요? 하면서 놀라는 게 정상인데. 진짜 언용운 네 배포는 알아준다. 그거랑 송길준을 지키는 곳의 인원 교체 정도만 해주면 되겠어?”
머릿속을 스치는 지난밤의 기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송길준을 향해 말했다.
“그러게? 대군사님께서 길준이 네 뒤통수 좀 치고 싶다고 하니까 통 크게 질러주시던데?”
“…내가 네놈 뜻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부탁한 네놈이나 들어준 그 여자나 어지간히 미친 것들이구나!”
빠악!!
“컥!”
“길준아, 이 새끼야. 내가 저번에도 그랬잖아. 너는 너무 잰다고. 형이 뭐랬어. 인생은 실전이라고 했어? 안 했어?”
“커흑!”
“뭐, 용명이랑 애들한테는 사과를 좀 하긴 해야겠는데. 쓰흡…. 이 새끼 생각해보니, 너 아까 나한테 가죽을 벗겨서 어쩌고저쩌고했지?”
빡!
빠악!
“내가 오늘 네 가죽을 벗겨줄게.”
그렇게 송길준을 두들기고 있던 때.
또 다른 흑의인으로 분해 나를 도왔던 제갈설지가 언용명을 비롯해서 언동생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
“…….”
“…….”
“…….”
한데, 녀석들의 눈빛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사부님께서 입을 여셨고.
- …사과를 좀 하는 정도로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일단 위치는 알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