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58화 (358/444)

제358화. 수학여행 (4)

운남성의 남단.

이곳엔 설산이 병풍처럼 둘린 십만대산과는 반대로, 녹음이 시퍼렇게 우거진 산들이 겹겹이 겹쳐진 우림이 있었다.

광서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 산맥을 두고 세인들은 만겹산이라 했다.

만겹산이라 불리는 우림의 틈바구니엔, 요새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이교의 사원이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혈교가 본단으로 삼은, 이른바 ‘혈천수라궁’이었다.

혈천수라궁의 한가운데엔, 석재를 웅장하게 쌓아 만든 석조대전(石造大殿)이 있었다.

기둥마다 온갖 마귀의 형상을 깎아놓고, 천장에는 그런 마귀들이 뒤엉켜 부복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는 이 대전에.

한 사내가 피처럼 붉은 장포를 휘날리며 걸어들어왔으니.

저벅저벅-

천마신교에서 받은 경천혈마라는 이름에서, 앞의 두 글자를 떼어내고 독립을 천명한 혈마.

혈마 진괴량이었다.

진괴량의 등장에, 좌우로 늘어서 있던 혈교의 마인들이 파도치듯 무릎을 굽혔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하나, 진괴량은 예를 표해오는 수하들을 무심히 지나쳤다.

그리고 몇 계단 높여 놓은 상석에 위치한 태사의를 쓸어 보며 한마디 읊조렸다.

“만마전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구만.”

그런 진괴량의 말에.

태사의 아래 좌우로 늘어서 있던 마인들이 부복하며 입을 모았는데.

“송구합니다.”

그중 가장 앞 열에 서 있던 혈교의 호교법왕 중, 자왕(子王)이 입을 열었다.

“만마전은 진법적으로 적을 막아내기에 수월한 구조로 돼 있습니다. 게다가 그 웅장함은 교인들에게 장엄함을 줄 것이고 이 지방의 토인들에게도 경외감을 들게 할 것이 분명하기에. 속하들이 본을 뜬 부분이 더러 있습니다.”

“책하는 게 아니다. 자왕.”

“…하면?”

자왕의 물음에.

진괴량은 십만대산이 있는 북편을 응시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자리에 서니. 만마전의 가장 윗자리. 그 자리에서 나를 같잖다는 듯 내려다보던 혁련강 그 녀석의 표정이 생각나서 말이야.”

“…떠올리시는 시절이 과거가 되었듯, 천마신교 역시 조만간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설 것입니다. 혁련강을 비롯한 만마와 천하 강호의 모든 이들이 이곳 혈마전에 부복할 날이 도래하고야 말 것입니다.”

자왕의 말은 마냥 사탕발림으로 여길 말은 아니었다.

혈교가 가고자 하는 혈염천하에 도달하려면 응당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으니까.

하나, 그렇다고 진괴량이 마냥 낙관주의에 젖어있는 위인은 아니었다.

진괴량은 다시금 쓴웃음을 지으며 태사의에 앉았다.

“혁련강. 그놈은 괴물이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지만 내 형님은 나 못지않은 무재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진가는 만마전을 쥐락펴락하는 귀성팔족의 일원이었다.”

“…실로 그러하였었지요.”

“반면 혁련 가는 어떠했나?”

“초대 천마의 직계이긴 했습니다만… 교주 위에 오른 자들이 계속해 천마신공을 대성치 못하고 백치가 되는 바람에, 가문의 위세는 땅에 떨어지고. 귀성팔족도 등을 돌렸더랬습니다.”

“그래. 그런 상황에서 치러진 소교주 선발전에서 혁련강이 어찌했지?”

“…….”

“본좌의 형님 이야기라고 말을 아끼는구만.”

“송구합니다.”

“내가 직접 상기시켜주지. 혁련강은 우리 형님을 비롯해 팔족의 자제들을 모두 잡아 죽이고, 소교주가 되었다. 이후로 계속된 귀성팔족의 암살 기도와 갖은 공작들을 비웃듯 짓밟고. 숙청해 기어이 교주 위에 올랐다.”

“…….”

“혁련강. 만마전에서 본좌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유일한 자다.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니야.”

“…명심하겠습니다.”

혁련강을 경계하는 진괴량이었지만, 그렇다고 두려워만 하지는 않았다.

“뭐, 천마신공은 애초부터 잘못 꿰인 단추다. 혁련강 그놈도 전대 교주들과 마찬가지로 천마동에서 제자리걸음만 하다 미쳐갈 것이야.”

애초에 진괴량이 천마신교에서 독립을 하겠다 생각한 것 자체가 승산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놈이 그렇게 허송세월하는 동안, 내 혈우신공이 대성에 이르게 된다면. 좌사와 우사를 비롯해 혁련강 아래 붙어 있는 녀석들은 십초지적이 될 테지.”

그렇게, 진괴량이 자신감을 내비치자.

단상 아래 부복하고 있던 마인들이 입을 모아 혈교의 기치를 외쳤다.

“혐열천하! 만마앙복!”

그런 마인들을 향해 손을 휘저어 보인 진괴량은, 다시금 자왕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만인혈은 어찌 되었나?”

“천마신교 놈들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확실한 이야기야?”

“예. 여러 경로로 검증했습니다. 한데, 최초에 정보가 돈 것이 흑시의 밑바닥에서 출발했다는 것과, 본교와 전쟁을 치렀으면서 딱히 거점들을 옮기지 않은 것을 보면….”

“유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 본교의 핵심전력을 끌어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생각됩니다.”

“노골적이긴 하구만. 대놓고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실로 그러합니다.”

“참 묘수다 싶긴 하구만. 혁련강이 천마동에 처박혀있는 틈에. 본좌가 만마전을 거꾸러뜨릴 힘을 얻으려면, 만인혈 만한 게 없긴 하니까. 하여간에 교활한 늙은이 같으니… 그래서 아랫것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어?”

“남해대주교 사겸의 보고에 의하면, 오도(烏島)가 세간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서 연단은 삭월도에서 행해진다 하였습니다.”

“삭월도?”

“예. 사겸에겐 계속 주시하라 하였고. 백도무림 놈들에겐, 독고세가를 통해 다른 해안선의 거점은 흘려뒀습니다.”

“그래. 그 수학여행이라는 것이 사실은 만인혈을 연구하는 시설들을 없애러 오는 것이라지?”

“맞습니다. 남해안 전역에 시설에 물자를 대는 거점이 있는 만큼. 정무학관의 전교생이 나뉘어 움직이는데, 독고철이 속한 대는 일단 뇌주반도 쪽으로 온다고 합니다.”

자왕의 말에, 혈마는 히죽 웃었다.

“흥. 마뇌 그 썩을 영감탱이. 아마 백도 무림을 통해 손 안 대고 코 풀듯 우리를 쳐낼 생각이었겠지만. 백도무림의 요람 속에 본교의 밀정이 떡 하니 박혀있음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럴 것입니다.”

“독고철이 뇌주반도 쪽에 오거들랑, 대주교더러 접촉하라고 해. 백도 놈들이 정확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도록.”

“존명.”

진괴량은 예를 표해오는 마인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다시금 십만대산 방향을 응시하며 히죽 웃었다.

“만마전을 나와버리는 바람에. 혁련강과 마뇌 영감탱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구경 못 하게 된 게 아쉽구만.”

*    *    *

대군사님은 빠르게 상황정리에 들어갔다.

송길준을 다시금 뇌옥에 쳐박았고.

“동편 선착장의 화재 사태는 실화(失火)에 의한 소실(燒失)사태였으나. 천하가 어지러운 때인 만큼,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방편으로 긴급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간밤에 일어난 사태를 무마하는 말을 공표했다.

그에, 모두가 한숨을 돌리는 때.

노삼 교수님은 내 옆구리를 툭 치더니 귓속말을 건네 왔다.

“너는 미리 알고 있었지?”

“예?”

“불이 난 것 말이다.”

“아. 예.”

“흠. 창량이 그놈 그거 또 미리 안 알려줬다고 염병을 떠는 거 아닌가 몰라.”

창량 교수님이 불쑥 다가와 입을 연 건 이때였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엄마 깜짝아. 뭔 놈의 도사가 기척도 없이 이따구로 들이대냐.”

그에 노삼 교수님은 기겁했고.

창량 교수님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남의 험담이나 하고 계시니까 기척을 못 듣지요. 여기 제갈교수님이랑 팽교수님도 같이 왔는데, 들이대다뇨 무슨 소리십니까.”

“…크흠. 거, 아무튼! 험담을 한 건 아니야. 그냥 네가 또 용운이한테 잔소리할 거 같다 그런 이야기였으니까.”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저는 무조건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종류의 훈련은 필요하긴 하지요.”

노삼 교수님을 향해 한 마디를 쏘아붙인 창량 교수님은 내 쪽을 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생도들이 너무 긴장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번 훈련으로 해결됐는지, 분위기가 좀 나아진 듯하구나. 더할 나위 없는 훈련이었다. 나쁘지 않았어.”

그런 창량 교수님의 말에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는데.

- 더할 나위 없는데 나쁘지 않다고? 저게 말이 맞느냐?

‘…창량 교수님 나름의 칭찬인 모양입니다.’

- 확실히 안 하던 짓이긴 한 모양이로구나. 어색하기 짝이 없구만.

그런 창량 교수님과 함께 다가온 제갈민 교수님과 재혁 숙부가 입을 연 건 이때였다.

“흐음. 단순히 훈련하자고 저만큼을 날려 먹었을 것 같지는 않고. 뭔가 전말이 더 있는 듯한데.”

“…….”

“뭐, 대군사님의 일에 정무학관의 교수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노릇. 혜아가 알아서 하겠지. 그나저나… 언 회장. 우리 생도들을 한번 모아서 다잡는 게 좋지 않겠나?”

“그래. 창량 교수님 말대로 훈련 덕분에 좀 차분해진 것 같긴 한데. 이럴 때는 한번 다잡는 게 필요하다.”

사실 두 분 교수님의 요청은, 내가 하고 있던 생각과 일치했다.

“예. 안 그래도 저도 생도들만 따로 모으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빠르게 전교생을 불러 모았다.

“총학생회장 언용운입니다. 급작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우리 생도들의 침착한 대응은 빛이 났습니다. 학관에서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하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마인들이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는 자들이니까요.”

그렇게 생도들을 치하함과 동시에 다잡고 단상에서 내려오니.

여전히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언동생들이 보였다.

“…….”

“…….”

“…….”

“…….”

“…….”

그에, 녀석들과 나 사이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길 잠시.

사부님께서 나를 채근하셨다.

- 사과를 하겠다더니. 입술이 붙었느냐?

‘…….’

- 용운이 이 녀석이 가만 보면 은근히 사교성이 없어. 딴엔, 저 녀석들을 위한다고 한 일 아니냐? 그걸 말을 안 해주니 저러는 게지. 에이잉.

‘…사부님께서 저한테 인간관계 조언을 해주신다고요?’

- ?

‘?’

- ???

이유야 어쨌든 녀석들에게 일언반구도 해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길준이 놈이 털어놓은 정보의 교차검증만 끝나면, 우리는 몇 갈래로 나뉘어서 뿔뿔이 떠나게 된다. 계속 심통이나 내다 갈 거야?”

“…….”

“솔직히 너희들까지 속이며 진행한 일이 몇 번 있긴 했어. 그건 인정해.”

그런 내 말에.

나를 둘러싼 이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줄줄이 입을 열었다.

“원시천존. 몇 번이 아니라 매번이라고 하셔야 맞을 듯합니다.”

- 그래. 고작 몇 번이 아니긴 하지. 이 와중에 은근히 작아 보이는 표현을 고른 것 봐라… 저저 요사스러운 혓바닥.

“정현 도장 말이 맞습니다. 이 은하성이 새는 바가지면. 용운 형님은 입만 벌리면 구라. 입벌구입니다!”

“맞아요!”

몰아치는 저항에.

나는 표현을 정정했다.

“…그래. 여러 번 그러긴 했다. 됐냐? 하지만 좀 특수한 상황이었잖아. 그 정도는 해야 송길준 같은 놈을 속일 수 있는 거야.”

그런 내 말에, 은하연과 언용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그래요. 언 공자를 이해해요. 하지만 언 공자도 저희를 이해해 주셔야 해요. 이건 그냥 심통을 부리는 게 아니에요. 얼마나 놀랐다고요.”

“은 소저의 말이 맞습니다. 난리는 났는데, 형님이 쓰시기로 한 처소는 활활 타고 있지… 송길준이 탈출을 했다고 하지. 다들 걱정하는 마음에 이런 겁니다.”

그렇게 녀석들의 말이 끝났을 때.

나도 입을 열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이래저래 정보가 모였고. 밑 준비도 단단히 해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갈라져서 마교 놈들과 싸우는 건 처음이잖냐.”

“…….”

“나도 니들 걱정한다고 그런 거야. 더 정확한 위치를 알아 놓고 싶었고, 더 유리한 고지를 잡아놓고 싶었다. 같이 땀 흘리며 수학하고 동고동락한 녀석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소식은 아무리 나라도 되도록 듣고 싶지 않으니까.”

“…….”

“그중에 제일 부대낀 녀석들이 너희고 말이야.”

“…….”

내 말이 끝나자, 다시금 정적이 흘렀는데.

그 정적을 헤집으며 은하연이 전보다 긴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언 공자는요. 진짜 못된 사람이에요. 어떻게 사람이 짜증도 못 내게 해요?”

그런 은하연의 옆에서, 당옥기도 쫑알거렸는데.

“그게 언용운 쟤가 더 악질인 이유지.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저 입을 꿰매야 한다니깐?”

그러자마자 은하성이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옥기 누님은 이번 일의 전후사정을 다 알았잖아요! 뭘 은근히 끼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마디를 보탭니까 보태기를!”

“캭!!!!! 이번에 한 번 끼었다 한번! 심지어 다 알지도 못했어! 그냥 약탄만 만들어 줬다고! 설지 쟤가 알았으면 다 알았지!”

그렇게 은하성과 당옥기가 투닥이던 때.

남궁윤이 조용히 한마디를 해왔다.

“해서, 연구가 직접적으로 자행되는 곳은 특정이 된 거냐?”

“약간의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내 느낌엔 길준이가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네?”

*    *    *

나는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도들과 함께 수련에 매진했고, 틈틈이 불에 탄 선창을 재건하는 일을 도왔다.

그러는 사이, 송길준이 토해낸 정보의 검증이 끝났다.

“오도와 주변의 군도들이 적룡궁의 시선을 끌었지만. 기실 미끼 역할을 하는 형국이고. 이 삭월도는….”

“동떨어진 곳에 있군요?”

“그래. 그런데 지도상으로 멀어 보여도 해류에 정통한 적룡궁 친구들 말에 의하면… 여기. 이 주변의 거친 해협만 통과하면, 물길이 뭍의 거점들과 연결이 된다네?”

그렇게 출정의 날이 밝았다.

정무학관의 생도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기 위해 무창의 선착장에 나뉘어 섰다.

“은하연, 은하성, 제갈설지, 우소릉, 남궁윤, 남궁영.”

나는 언동생들 중에 장강의 물길을 타고 내려갈 녀석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한 뒤.

대표 격인 은하연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각자 맡은 곳 깔끔하게 처리하고 다시 모이자. 그땐 소면 말고 다른 거 사주마.”

“진짜 진짜 비싼 거만 시킬 거에요.”

“조심해 다녀오시오.”

“언 공자도요.”

그렇게 절강과 복건으로 떠나갈 녀석들을 먼저 떠나보낸 우리는 동정호의 물길을 타고 남하를 시작했는데.

광서와 광동으로 길이 갈리는 곳에서, 예해수 선배와 경룡이 형도 떠나보냈다.

“양 총기가 마중 나오기로 했고, 예 선배는 안면이 있으니 걱정할 건 없겠지. 초왕부 덕에 마음이 좀 놓이는 광서이지만 조심하십시오. 특히 경룡이 형. 고향이라고 너무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마시고요.”

“나는 그다지 감정적인 사람이 아닐세.”

“제가 본 눈물만 모아도 한 말은 될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광서 담당을 바꿔야 하나….”

“…그거야 때때로 복받칠 때가 있긴 하지만. 일 처리는 그렇게 안 하지 않는가?!”

“믿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 남하하여, 바다를 향해 비수처럼 삐쭉 튀어나온 뇌주반도에 이르렀는데.

정무학관의 생도들이 정말로 수학여행을 왔다고 생각하여, 마중을 나온 해남의 제자들이 우리를 향해 포권을 해왔다.

“고생들 많았습니다. 학관에 계신 극경 사숙이나 선이에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해남이 유람하기엔 참 좋습니다.”

“언용운입니다.”

이래저래 여독도 있었고, 해남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수학여행을 왔다는 대외적인 포장을 신경 써야 했기에.

우리는 해남파의 제자들의 환대 속에, 뇌주 곳곳을 구경하고 다녔는데.

그렇게 돌아다닌 지 얼마쯤 지나자.

독고철이 내게 전음을 보내왔다.

[회장님. 윗선에서 접촉을 원한다는 표식을 남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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