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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언가 망나니-367화 (367/444)

제367화. 숨이 붙어 있는 한 (5)

대저 진이라는 것은 그 핵이 되는 지점을 분쇄하면 힘을 잃는다.

마인들이 이루고 있던 검진의 핵심은 채규였다.

하여, 정현이 그려내는 태극에 휘말려 채규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

수하들이 이루고 있던 검진 또한 힘을 잃었다.

팽소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지금!”

다른 언동생들은 그 말에 따라, 각자의 절초들을 쏟아냈다.

당옥기의 소매에서 암기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고.

슉! 슉! 슉! 슉! 슉!

그 공격을 막기 위해 마인들의 손이 바삐 움직이는 때.

팅! 팅! 팅! 팅! 팅!

측면으로 쇄도한 팽소천의 도가 큼지막한 반월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촤아아아악!!!

그 반월에 휘말린 자들이 일도양단이 되는 순간이었는데.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팽소천의 새카만 도를 피해낸 자들에겐.

퍼퍼퍼퍽!!

언용명의 주먹과 천장호의 장력이 쏟아졌다.

꽈르릉!!

쾅!!!

그렇게 대적하던 양자 중 한쪽이 모조리 쓰러지자.

공동 안에 가득하던 살기 또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에,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태극을 그려내던 정현의 검이 비로소 멈췄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정현을 향해 언용명이 입을 연 건 이때였다.

“…정현 도장? 방금 그 움직임은?! 벽을 넘으신 겁니까?”

“무아지경의 순간이 잠시 왔는데… 진전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하면, 조화경의 경지에?”

“원시천존. 화경이라 부르는 경지에 오른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빈도도 이런 경험은 처음인지라… 그저 몸이 오롯이 뜻대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담담히 감상을 전한 정현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천장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천 소협은 괜찮으십니까?”

그 질문에 답한 건 당옥기였다.

“치료가 필요하긴 해, 방금도 격렬하게 움직이기까지 했고. 아무튼, 장호 얘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너희는 언용운한테 가봐. 소진 언니, 그게 맞잖아요?”

“그래. 여기 있는 마인들 말고는 모두 흑무군주 쪽을 쫓아갔고. 이리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모산파의 제자들이랑 다른 제대원들이 있으니… 둘만 남겨둬도 괜찮겠지. 우리는 용운이를 도우러 가 보자.”

그렇게 당옥기가 천장호의 상처를 본격적으로 살피기 시작한 때.

다른 언동생들은 언용운과 채향이 사라졌던 공동의 뒤편으로 내려갔는데.

얼마 되지 않아, 미끄럼틀이라도 봐도 좋을 경사가 튀어나왔다.

“형님과 채향은 이걸 타고 내려간 듯합니다.”

“예. 빈도도 혹시나 싶어 근처의 벽을 두드려 보았는데. 외길입니다.”

“그럼 가자!”

“덩치가 제일 큰 돼지 너부터 내려가.”

짧은 상의를 마친 언동생들은 줄줄이 경사에 몸을 올렸다.

슈우우우욱!!!

그렇게,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길 잠시.

풍덩! 풍덩! 풍덩! 풍덩!

삭월도의 한쪽 편에 뚫린 구멍으로 줄줄이 쏘아져 나온 언동생들은 수십 척의 배를 놓아도 될법한, 비밀스러운 선착장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저쪽으로!”

언용명의 말에 따라 선착장과 연결된 바다로 헤엄쳐 나오니.

비단 돛을 내건 사겸의 선단과 붉은 용이 그려진 돛을 내건 적룡궁의 선단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촤아아아-

쾌선 한 척이 언동생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 것은 이때였다.

“누님. 배 한 척이 다가오는데요?”

“붉은 용이 그려져 있는 깃발을 걸고 있잖아. 적룡궁의 배니까 경계할 것 없어. 그보다 저 잔해만 남은 선단은….”

그들의 눈에 박살이 나 있는 선단의 흔적이 들어왔다.

팽소진은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은밀히 숨겨둔 선착장에서 빠져나간 천마신교의 선단이 저기서 박살이 났나 본데? 시커먼 연기가 나는 걸 보면… 화포를 쓴 건가?”

그렇게 팽소진이 떠올린 생각을 중얼거리고 있던 때.

쾌선에서 내린 적룡궁의 소궁주 정원해가 입을 열었다.

“다들 무사하셨군요! 한데, 괴룡이 안 보입니다?”

그런 정원해의 말에.

언용명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먼저 내려가신 길을 따라오다 보니 이 선착장에 이르렀는데, 형님을 못 보신 겁니까 소궁주?”

“이 방면에서 튀어나온 천마신교의 선단이 해역을 빠져나가는 것은 저지했습니다만, 괴룡을 보지는 못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서, 설마. 용운이가 잔해가 된 저 선단에 타고 있었던 건가?”

일제히 흙빛을 띄는 언동생들의 표정에, 정원해는 재빨리 줄을 내렸다.

“이, 일단 타십시오! 천마신교의 선단이 있던 자리로 가봅시다!”

*    *    *

몸을 움직일 때마다 만인혈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일까?

채향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초식들은 가면 갈수록 매서워져 갔다.

슉! 슉! 슈슈슉!

쓔애애액!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채향의 공격에 대처하기 위해,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 회한을 쥔 손을 휘저었는데.

캉! 캉!

카카카캉!!!

그러고도 채향의 공세를 오롯이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전신에 늘어갔다.

픽! 픽!

그렇게 속절없이 밀려나는 와중이었지만, 마냥 당하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세는 것을 포기할 정도로 많은 합을 받아낸 끝에 간신히 생겨난 틈.

‘지금이다.’

나는 뒤를 향해 몸을 던지며, 회한을 아래에서 위로 그어 올렸다.

쐐애애애애액!!!

지근거리에서 질러낸 회심의 일격.

내게 달려드는 채향의 움직임까지 계산에 넣어 휘둘러낸 초식이었던 만큼.

내심 이번 공격으로 채향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하나, 채향은 내 예상을 뒤엎고 기괴하게 무릎을 틀었다.

끼기기긱.

그리고 발작하듯 목을 당겼는데.

그 바람에, 내 일격은 그저 채향이 쓰고 있던 가면을 갈라버리는 것에 그쳤다.

따각!

그렇게 드러난 채향의 얼굴은 본판이 어땠었는지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 마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시뻘건 눈. 핏대가 완연한 시퍼런 피부. 삐죽빼죽한 상어 이빨.’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까스로 사지를 벗어난 채향은 히죽 웃었다.

“…와.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아깝겠네 언용운?”

그리고 다시금 공세를 이어내기 시작했다.

카카캉!

캉! 캉! 카아아앙!!!!

그 공세를 받아내며 걸음을 물리길 잠시.

계속된 후퇴 끝에, 나는 어느덧 이 비동에 진입할 때 사용한 물웅덩이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에, 채향이 빙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으흥. 궁지에 몰렸네? 행여나 물속으로 뛰어들지는 마. 거기선 정말로 나한테 안 된다?”

채향의 말대로 물속에서의 전투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듯했다.

인간이라면 물속에서 느낄 제약을, 그녀는 크게 느끼지 않을 테니 말이다.

‘…채향은 이미 사람이 아닌 무언가의 단계에 들어섰다.’

이는 방금 내 일격을 기괴하게 몸을 꺾어 피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는데.

채향은 본인이 완전히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천천히 걸어오며 이죽거렸다.

저벅저벅.

“아니지, 등 뒤에 물을 두고 있으니 문자 그대로 배수의 진이네? 뭔가 더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으….”

한데,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어딘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채향의 시선이 향한 곳을 살펴보니, 근처에 있던 작은 물웅덩이였다.

‘…자신이 비친 모습을 보는 건가?’

마귀처럼 변모한 스스로의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

어쨌거나 나로서는 다시 한번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다.

팟!

나는 회한을 고쳐잡고 땅을 박찼다.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본 거냐?”

“……!”

채향은 몸을 틀어 내가 지른 검초를 피해냈다.

그 움직임이 재빨랐기에.

픽!

회한은 아주 얕은 상처를 채향의 팔뚝에 새겼을 뿐이었지만.

그러면서 나와 채향이 서 있던 자리가 바뀌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이차전을 시작해 볼까?”

다시금 넉넉해진 퇴로에,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 어울리는 데 왜. 사람 가지고 끔찍한 짓거리를 한 마녀한테 딱 어울리는 몰골아냐?”

그런 내 말에.

채향은 발광하듯 노기를 터트렸다.

“죽어어어!!!!!!!!!!”

그건 악수 중의 악수였다.

분노라는 것은, 본디 멀쩡한 사람의 정신도 갉아먹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만인혈의 귀기에 잠식당하고 있는 녀석에게는 더욱 심하게 적용될 테지.’

아니나 다를까.

채향의 몸에서 귀기가 빠르게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도자기에 금이 가듯 피부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저적-

동시에, 녀석이 뻗어내는 공세도 둔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그 시점에서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로소 승부수를 던질 때가 됐다는 것을.

나는 곧바로 암객에게 명을 내렸다.

‘암객.’

- 예. 주군.

내 명을 받은 암객은 그림자에서 쏘아져나와 나와 함께 채향을 몰아붙였다.

캉! 카캉!

“흥! 왜 이제야 이 패를 꺼내 드는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이 시커먼 거 없애버리면 언용운 너한테 부담이 가는 거지?!”

카강! 카캉카앙!!!

이성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채향의 판단은 날카로웠다.

암객의 맹점을 알아채고, 강기를 실어 그를 갈라버린 것이었다.

샤하하학-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내력에, 오장육부가 자리를 바꾸는 듯한 울컥거림이 솟구쳤지만.

기실 이 순간 자체가 내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기다렸다.’

나는 들끓는 속을 이를 악물고 내리눌렀다.

까득.

그리고 암객 쪽으로 채향의 시선이 흩어진 틈을 타.

파천맹진의 초식을 질러냈다.

쓔애애애애액!!!

수천수만 번을 휘둘러 뼈에 새겨낸 초식은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이 쏘아져 나가, 채향의 심부에 틀어박혔다.

푸우욱!!!

그에, 채향은 단말마도 남기지 못하고 절명했고.

채향의 몸은 일순간에 도자기가 깨지듯 부서져 내렸다.

끼에에에에엑!!!

하나, 채향의 숨이 끊어졌음에도 비동을 울리는 귀곡성은 멈추지 않았다.

녀석의 심부에 뭉쳐져 있던 귀기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그것은 도리어 회한을 타고 거슬러 오르려 했다.

‘……!’

저 귀기를 다스려 낼 수 있다면, 하나의 기연이 될 듯도 하였으나.

당장엔 시간이 없었다.

‘…언동생들!’

채규와 싸우고 있는 언동생들이 있었고.

독고철을 남겨 놓고 오긴 했지만, 적룡궁과 사겸도 안심할 수 없었다.

-가보거라.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누구인데 당연한 소릴 하는구나.’

‘…예. 그럼 사부님께서 귀기들을 좀 눌러주고 계십시오.’

그렇게 사부님께 뒤를 맡긴 나는,

언동생들이 있을 자리로 바쁘게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당옥기와 천장호를 마주칠 수 있었다.

“왜 혼자 와? 다른 애들은?”

“내가 할 말인데? 왜 너희만 있어? 그리고 장호 저건 왜 저래?”

“살짝 긁혔습죠. 다른 사람들은 형님 돕는다고 갔는뎁쇼?”

“…살짝?”

“…….”

“너는 집에 가서 보자.”

“…….”

상황을 파악한 나는 해안가로 달려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사겸이 내 휘하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극소수만 안다.’

자칫 잘못하면 다 이겨놓고 우리끼리 싸움이 터질 수가 있었다.

그런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    *    *

본디 남해적룡궁의 궁인들과 해적은 서로를 원수로 알았다.

하나, 독고철이 지휘하는 배가 적룡궁의 배들 사이사이를 오가며 언용운이 말했던 ‘우리의 목표는 천마신교의 방벌.’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 덕에.

묘한 오월동주가 이어지고 있었다.

“회, 회장님이 천마신교의 선단 중 한 곳에 타 계셨던 것 같다고요?”

다만 그 같은 임시방편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정원해와 돌아온 언동생들이 언용운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을 전하자.

해역에는 살벌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돌파 대형을 갖춰라!”

“소궁주님의 명이다! 돌파 대형을 갖춰라!”

“버러지 같은 해적 놈들! 괴룡의 안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참았으나 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오늘 저놈들을 은하군도에서 쓸어낼 것이다!!”

그렇게 적룡궁의 배들이 거함을 앞세우고 중소형 선박을 안에 숨기는 대형을 갖추자.

사겸의 기함에도 초록색 깃발이 내걸렸다.

끼거거거걱!!

화포를 갖춘 해적선들이 옆면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는데.

‘큰일이다.’

최악으로 치달아가는 상황에 독고철이 입술을 깨무는 때.

‘회장님?!’

삭월도에서부터 한 척의 쪽배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하마터면 회장님 소리를 입 밖에 낼 뻔한 독고철은.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누, 누가 옵니다!”

그에, 모두의 시선이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돌아간 때.

유유히 바다를 넘어온 귀면옹이 입을 열었다.

“도경에는 그런 말이 있소. 만족할 줄을 알면 욕을 보지 않고, 그만둘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천마신교의 계획은 분쇄되었고 만인혈은 소멸하였소.”

귀면옹의 모습을 한 언용운의 등장.

“남해의 적룡과 밤바다의 제왕이 싸우면 다시금 천마신교가 힘을 얻을 기회만 주는 꼴이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시다.”

그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모르는 사람 중, 혈교에 적을 둔 사람들은 그 말을 명령으로 받아들였다.

“노인장은 누구신데 적룡궁의 행사를 방해하려 드는 것이오? 이 바다에서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궁주님과 괴룡 뿐이오.”

하나, 사정을 모르는 적룡궁의 소궁주 정원해에게는 그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번 참변도 따지고 보면 이 바다에 뿌리내린 해적들이 끼친 해악이 근본적인 원인이오! 정도를 좇는 은거 기인이시라면 우리 선단 쪽으로 다가오시고, 해적들과 뜻을 같이하는 자라면 썩 물러나시오!”

단지 사정을 모른 탓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적룡궁의 노기가 하루 이틀 축적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해적들로 인해 숱한 피해를 입어야 했던 적룡궁의 원한은 깊을 수밖에 없었다.

“적룡궁의 궁인들은 들으라! 금범단이라 이름 붙은 무리들을 박살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삭초제근을 할 것이니! 모두 전투 내세를 갖춰라!”

물론, 원한의 고리라는 것이 한쪽의 감정으로 생겨나지는 않는 법.

해안의 백성으로 태어나, 숱한 절망 끝에 혈교가 내민 손을 잡은 사겸 또한 정원해 못지 않은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해악이니 어쩌니 벌레 취급하는데, 바다의 왕 소리를 들어가며 호의호식한 작자들이 이제 와 해악이니 어쩌니 하는 꼴이 우습기 그지없군! 어디 한번 덤벼 봐라!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주마!”

그에, 일촉즉발의 전운이 해역에 무겁게 내리깔리는 이때.

귀면옹의 복장을 한 언용운이 사자후를 내질렀다.

“멈춰라!”

짙은 내력이 실린 그 음성에, 모두가 흠칫하는 때.

언용운은 손을 뻗어 삭월도의 본섬을 가리켰다.

웅- 우웅-

우우웅-

그곳에선 희끄무레한 영체들이 하나둘 하늘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귀천(歸天).

한을 품었던 영혼이, 그것을 해소하고 하늘로 돌아가는 행위였다.

“…….”

그렇게 풍등처럼 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영체들의 모습은, 마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것 같았기에.

이 해역에 몸을 올리고 있는 모든 이들은 말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

“…….”

각자 선택한 도(道)는 달랐으되,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같았으니까.

그에, 전운이 감돌던 바다에 침묵이 내려앉기를 잠시.

귀면옹으로 분한 언용운이 재차 입을 열었다.

“…이쯤 하십시다.”

그에, 사겸의 선단이 녹색기를 내리고 해역을 떠나기 시작했고.

딱 붙어 있던 정원해의 입술도 열렸다.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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