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2화. 동도회 (3)
내가 제갈가의 초대에 응하겠다는 답을 하는 때.
은하연은 제갈설지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천기묘산 어르신께서 동도회주 직을 맡기로 해주신 건가요? 그래 주시기만 한다면 최곤데.”
“확정은 아니에요. 열심히 설득해봤는데… 확답은 안 주시고 용운 님부터 먼저 뵙고 싶다고 하시네요.”
듣고 있던 당옥기가 양손을 뱀처럼 흐느적거리며 입을 연 건 이때였다.
“확정이나 마찬가지지. 언용운의 뱀 같은 혀에 걸리면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못 당할걸?!”
그런 녀석을 향해 나는 눈을 흘겼다.
“너는 왜 아직도 여깄냐? 연구실 안가?”
“가려는데 설지가 왔잖아!”
“인사 끝났으면 연구실로 빠릿빠릿하게 가야지. 독공 수료 과정 준비해야 한다고 했을 텐데? 혹시 시간이 남들보다 하루에 한두 시진 정도 더 많은 거냐? 그런 거야?”
“캭! 간다 가!!!”
그렇게 당옥기를 쫓아 보낸 나는, 제갈설지를 향해 궁금한 것을 물었다.
“해서, 나만 가면 되는 건가? 내 시간만 빼두면 되는 거요?”
“예. 말씀으론 바둑이나 한판 두자고 하시긴 하셨어요.”
“음. 선물이라도 하나 챙겨 가야 할 것 같은데. 어르신이 좋아하시는 게 뭐요?”
“바둑 두는 거 좋아하시고, 요즘은 주로 서예로 시간을 보내세요.”
“…음. 탁가철방에 가서 벼루도 깎아 줄 수 있냐고 물어봐야겠군.”
그렇게 내 물음에 답해주길 잠시.
제갈설지는 내 어깨 위에 앉아있는 응용이를 가리키며 질문을 해왔다.
“한데, 응용이가 돌아왔네요? 그러면 들고 계신 그 쪽지는 무창에서 온 건가요?”
“맞소.”
“…혹시 남궁세가의 소식이?”
어차피 수일 내로 다 퍼질 이야기였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려면 언동생들과 공유해야 하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것도 맞소. 궁윤이랑 영이가 검황 어르신을 어떻게 설득해냈는지, 동도회에 참석을 하신다고 하는군.”
“…….”
그에, 제갈설지가 입을 앙다무는 때.
팽소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직 천기묘산 어르신이 확답해주신 건 아니라지만, 옥기 말대로 용운이 네가 잘 보였다 치고… 검황 어르신까지 두 분 모두 동도회에 참석을 해주신다고 가정하면, 회주님은 누가 되는 거지?”
팽소천은 뭐 그런 것을 걱정하냐는 듯 입을 열었으나.
“누님은 항상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누군가는 하시겠지.”
“돼지 네가 생각이 없는 거겠지. 은퇴를 천명하신 분들이 다시 나오시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야.”
팽소진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했다.
그에, 여러 언동생이 저마다 미간을 좁혔고.
언용명과 천장호가 연이어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참석하신다면… 한 분은 맹주로 다른 한 분은 대군사로 함께 백도무림을 이끄셨던 만큼, 두 분이 슬기롭게 정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치기엔… 맹에 계실 때 하루가 멀다고 다투셨다는 이야기를 방주님께 들은 것 같은데.”
짝.
“모두 집중. 일단 지금 할 고민은 아닌 것 같다. 회주가 누가 되든 두 분 모두 동도회에 발을 들이시게 해야 해.”
나는 손뼉을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천기묘산 어르신 뵈러 갈 때 들고 갈 선물 알아보러 잠시 다녀올 테니. 다른 사람들은 손님 맞을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도록 해.”
* * *
다가온 주말.
“용운 님. 저희 본가에 가기로 한 날. 내일이에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
나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챙겨 들고 제갈설지와 함께 정무학관을 나섰는데.
- 제갈가의 늙은이가 정말로 바둑이나 두자고 너를 부르는 것은 아닐 테고. 왜 보자고 하는 것일까?
‘바둑을 두자는 말씀 자체는 의외로 진심일 수도 있습니다.’
- 하기야. 대군사라는 아해나 설지와도 곧잘 바둑을 두었다 하니, 둘을 모두 이겨 먹은 네 녀석이 궁금하긴 하겠구나.
‘사파고 덕분이긴 하지만요.’
- …사파고?
‘사부님이라고 했는데요?’
- …아닌데?
‘그건 그렇고. 바둑을 두고자 하는 생각도 있으실 테지만, 제가 뭐 하는 녀석인가 궁금하시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 어르신이라면 동도회를 발족시키는 일에 제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꿰뚫어 보셨을 테니까요.’
사부님과 몇 마디를 나누다 보니, 문득 접대바둑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제갈설지에게 물었다.
“제갈 소저. 뭐 하나만 물읍시다.”
“네. 물어보세요.”
“내가 천기묘산 어르신을 얕잡아 보는 건 절대 아니오만.”
“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런 말씀을?”
“별건 아니고 바둑 이야기요. 내가 어르신이랑 바둑을 두다가, 만약에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이걸 져드려야 하나?”
“그런 거 싫어하세요.”
“하기야. 소저의 성정을 생각하면 그렇긴 하겠군….”
“제 성정이요?”
“그런 게 있소. 서두릅시다.”
학관이 있는 단강구에서 제갈세가가 있는 융중산까지는 고수의 걸음으로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도착한 제갈세가의 문전엔, 중년 내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여러 행사에서 면을 트게 된 제갈설지의 아버지 제갈규였다.
‘…학관이 습격을 당했을 때 직접 달려와 주시기도 했지.’
그렇다면 곁에 서 계신 고아한 부인은 제갈설지의 어머니 되시는 분이라는 결론.
나는 깍듯이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가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소식지로 자네 이야기야 듣고 있긴 했지만, 직접 보는 건 간만이구만. 아, 이쪽은 설지 어미 되는 사람일세.”
“소식지가 날아오면 나도 함께 보는지라, 초상으론 많이 봤는데 그림이 인물을 못 담네. 반가워요. 설지가 신세를 지고 있어요.”
“부인이야말로 무릉도원을 그린 화폭에서 튀어나오신 것 같습니다.”
“어머나. 그거 선녀 같다는 이야긴가요? 호호호.”
그런 나를 보며 사부님께서는 혀를 내둘러오셨다.
- 네 녀석의 혀엔 피 대신 기름이 흐르는 게 분명해. 옥기 그것이 아주 제대로 봤지.
나는 그 말씀을 못 들은 척하며, 초대에 대한 답례로 드릴 선물을 내밀었는데.
“이건 초대해주신 답례입니다. 별건 아니고 천기묘산 어르신과 가주님께 드릴 문방사우랑 부인께 드릴 금잠(金簪)입니다.”
“어머나. 그냥 와도 되는데.”
대신 물건을 받아주는 사람 없이 부인이 손수 손을 내밀어 오신다 싶어, 주위를 살펴보니 가복들이 보이지 않았고.
‘가주 내외가 나와 있는데 아무도 따라 나오지 않은 건 좀 이상한데?’
장원 안쪽에선 이상한 소리도 났다.
쿠궁- 쿠궁-
무언가 기계장치 같은 것이 돌아가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빼 들어 장원 안쪽을 살펴보았다.
‘기관진식이 돌아가고 있나?’
아니나 다를까.
장원 안쪽엔, 팔 대신 기다란 장창이 달린 허수아비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보였다.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에, 나는 제갈설지를 향해 질문을 했다.
“과연 기관진식의 명가답소만, 저렇게 진식이 가동되고 있으면 평소에 집안사람들이 일은 어찌하는 것이오?”
그런 내 말에.
장원을 확인한 제갈설지가 당황한 듯 입을 열더니.
“기, 기본적으로 본가의 전각들은 진법의 묘리 속에 배치되어 있고. 각종 기관들이 숨겨져 있긴 해요. 그런데 저렇게 상시로 가동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갈규를 향해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아버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버님이 명하셔서 말이다.”
“이상한 명이면 아버님이 반대하셨어야죠.”
“아니 나도 아닌 것 같다고 하긴 했는데. 원체 완고….”
“지금 남궁세가에선 검황 어르신이 오고 계신다는데. 용운 님을 불러 놓고 기관진식을 가동하다뇨?”
“끄, 끌까?”
“당장요!”
부녀간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를 잠시.
“그러실 것 없습니다. 제갈 소저도 고정하시오. 애초에 천기묘산 어르신께서 제가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하고 계시다는 걸 알고 온 걸음입니다.”
나는 손바닥을 보여 두 사람의 대화를 멈춘 뒤.
“어르신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기쁘게 응하겠습니다.”
가져온 선물들을 제갈설지에게 인계하고 대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작동되고 있는 기관들은 상당히 정교했다.
부웅- 부웅-
비록 허수아비들이었으나, 여러 개를 절묘하게 배치해 모든 방위를 점하는 공격이 이루어지도록 설계가 돼 있었기에.
집중하며 돌파해야 했고.
챙!
채채챙!!
신체 능력을 믿고 건드리기 저어되는 기관들도 있었다.
‘저기서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하여, 해제를 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간도 있었는데.
나는 그간의 경험과 학관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장원의 기관들을 작동시키는 가장 큰 원칙을 발견해냈다.
‘대략 호흡을 다섯 번 내쉴 때마다 기관을 움직이는 묘리가 변한다.’
그 덕에 빠르게 기관들을 돌파해내길 잠시.
앞의 기관들을 풀어낸 공식들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기관이 하나 나왔다.
‘지금은 십이지(十二支)에 지(地)의 묘리가 돌아가는 시간이니까 땅에 사는 동물이 그려진 발판 하나가 남아야 하는데… 왜 반대로 새가 그려진 발판이 하나지?’
빠르게 검산을 해봤지만, 머릿속을 스치는 답은 같았다.
나는 온몸에 기운을 휘감은 뒤.
대원칙을 무시하고, 도출된 답이라 생각되는 발판을 건드려보았다.
덜컥-
그러자, 내가 선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들에 목봉들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내 쪽엔 문구가 적힌 푯말 하나가 튀어나왔다.
『돌로 된 다리도 두들겨봐라』
본디 창날이 달려있어야 할 봉에서 날을 제거한 것도 그렇고.
적힌 글귀도 그렇고, 어르신께서 교훈을 주고 싶었던 모양.
피식 웃어 보인 나는 다시금 땅을 박찼다.
팟-
푯말이 튀어나온 기관 이후로는 사람의 이지를 흐리게 만드는 정신력에 관여하는 진법들이 배치돼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뒤에 배치된 진식들에 곱절은 애를 먹었겠으나, 정신 면역이 있는 나로서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는데.
그렇게 온갖 기관 진식이 가득한 미로를 빠져나오자.
‘후.’
주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검박한 전각과 함께.
호호백발의 노인장이 놀란 눈으로 나를 맞았다.
“…벌써. 우리 가문의 기관진식을 다 통과했느냐? 허. 신통방통한 녀석이라 듣긴 했다만, 명불허전이로고?”
제갈세가를 빙 둘러 설치해 놓은 기관진식의 핵에 해당하는 자리에, 다른 노인장이 있을 리 없을 터.
나는 꾸벅 소매를 붙여 들며 입을 열었다.
“무림말학 언용운이 천기묘산 어르신을 뵙습니다.”
“제갈척이다. 하도 언용운이라는 이름이 들려와서 얼마나 잘난 녀석인가 싶어 시험해봤는데, 불쾌했느냐?”
“아닙니다. 교훈도 얻을 수 있었고. 공부도 되었습니다. 왜 제갈세가의 진법을 천하일절로 치는지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일각 만에 예까지 와놓고 달콤한 소리를 잘도 하는구나.”
“일각이면 제갈세가쯤 되는 곳의 전력이 대처를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지요.”
내 말에 피식 웃어 보인 제갈척은 본인 앞에 놓인 바둑판을 두드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됐고. 혜아랑 설지를 이겼다는 돌 놓는 솜씨나 좀 보자.”
그에, 나는 사부님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사부님 차례십니다.’
- 오냐. 감히 내 제자를 시험해? 오늘 임자 만났느니라 이놈의 영감탱이.
* * *
제갈척과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돌을 주고받기를 한참.
- 거,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어느새 하얀 돌과 검은 돌이 빽빽이 들어찬 바둑판을 앞에 두고 한참을 고심하던 제갈척이.
땀을 삐질 흘리며 입을 열었다.
“…한 수만 물러줘.”
“싫습니다.”
“뭣이? 네 녀석 나를 동도회에 나오게 하고 싶어 걸음한 것 아니더냐?”
“그렇긴 했습니다. 사실 오는 길에 만에 하나 제가 어르신을 이길 기회를 잡으면 어찌해야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설지 그 녀석이 내가 그런 거 안 좋아한다고 귀띔을 해줬구먼?”
“예. 그랬습니다. 그런데 조언과는 별개로 은근슬쩍 져드릴까 생각도 잠시 했거든요?”
“한데? 왜 안 물러줘?!”
“이기고 싶어졌습니다.”
“뭐라?”
맹랑한 놈을 다 본다는 표정을 하는 제갈척을 앞에 두고, 나는 계속해 입을 열었다.
“물러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이렇게 하시죠.”
“어떻게?”
“많은 사람이 바둑으로 천하를 논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제가 보기엔 조금은 다릅니다. 줄과 바둑판이라는 틀이 있으니까요. 하나 천하에는 그런 게 없죠. 그런 의미에서 줄이 옆과 밑에도 그어졌다 생각하고 계속 둬보시면 어떨까요?”
“…좋다. 그럼 나는 바로 이어서 붙이겠다.”
“저는 한 칸 벌리겠습니다.”
그렇게 다시금 바둑을 이어 두기를 한참.
제갈척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내게 물어볼 것이 없느냐? 동도회에 참여할지 어떨지, 따로 천마신교에 관해 아는 것은 없는지 묻고 싶은 것이 많을 텐데?”
“어르신께서 동도회에 참여하시겠다 결정을 하시면 여쭙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제갈척은 헛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얼씨구. 지금 그게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조건이라기보다는. 어르신께서 은퇴를 천명하신 데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나를 동도회에 앉히기 위해 왔다더니?”
“그러기 위해 왔습니다만, 어르신이 기관진식에 써놓으신 문구를 보고 억지로 떼를 써서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구구절절 저희 이야기를 해서 어르신을 모시면, 은퇴하실 때 품으셨던 생각을 퇴색하게 만들게 되겠지요.”
“…….”
“혹여 어르신께서 본인의 의지로 함께해주시기로 하신다면. 그때나 귀찮게 굴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바둑이나 두다 가겠습니다.”
그런 내 말에, 전각에 정적이 흐르길 잠시.
제갈척이 손바닥으로 바둑판을 세차게 두드리며 너털웃음을 지었는데.
“허허허. 실로 보기 드문 재목이야. 이거 우공이산이라는 말도 틀렸구만. 산을 옮기는 인물됨이 아니라. 산이 움직이게 하는 인물이로고.”
“…예? 우공이산이요?”
“그런 게 있다. 아무튼 걸물이로구만. 왜 천하가 괴룡이야기로 떠들썩하고, 설지가 할아비에게 떼를 쓰는지 알겠어.”
“…….”
“영리하고, 주눅 들지 않는 배포와 물러서지 않는 단호함도 갖췄고.”
한참을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더니.
“뭐, 될성부른 떡잎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은 남다른 즐거움이겠지.”
“…그 말씀은?”
“동도회에 이 늙은이도 참석하기로 하마.”
확답을 해주셨다.
한데, 어째선지 사부님께서 못마땅하다는 음성을 내셨다.
- 에이잉.
‘…일이 잘 풀렸는데, 왜 그런 음성을 내십니까?’
- 바둑판을 보거라. 이 영감탱이 네 칭찬을 하면서 은근슬쩍 바둑판을 엎었다.
* * *
제갈척에게 동도회에 참석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나는 학관의 식구들과 선배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동도회를 추진하는 주체는 맹주님과 아버지이셨지만.
‘동도’라는 집합이 기실 천하의 모든 사람을 포괄할 수 있는 만큼, 백도무림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었다.
하여, 책잡힐 일이 없게 하려고 동도회 발족식 준비를 철저히 하다 보니 그야말로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는데.
“언 형. 남궁세가의 손님들이랑 맹주님께서 단강구에 다다랐대요!”
“용운 형님! 제갈세가의 손님들도 다 와 간답니다.”
동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무림명숙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한 무렵.
약속이라도 한 듯 딱 맞춰 도착한 백도무림의 두 거인이 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천기묘산. 못 본 사이 얼굴이 좋아졌구만?”
“좋아졌구만?”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왜 오만상은 쓰고 그러나?”
“이보게 남궁가주. 맹에 매여있을 때와는 달리 이젠 내가 더 급이 높은데 존댓말을 해야지. 나는 ‘태가주’고, 그쪽은 고작 ‘가주’ 나부랭이 아닌가?”
“나부랭… 태가주 나부랭이야 말로 기실 명예직 아닌가? 아들한테 다 물려준 거 아니야?”
“다물려 주는 게 맞지! 기껏 은퇴하겠다고 해놓고 가주직은 왜 붙들고 있나 붙들고 있기를? 그러다가 미련을 못 버려서 감투 하나 생겼다고 기어 나온 거 봐라. 에이잉.”
“문자 그대로 사돈 남 말 하고 있구만.”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천장호가 나를 향해 귓속말을 해오는 때.
“…전혀 슬기롭게 정해지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남궁원과 제갈척 사이에서 튀던 불똥이 나에게로 옮겨왔다.
“아무튼 먼 걸음을 한 것 같은데, 이거 헛걸음 했구만. 회주직은 내가 맡을 것이니. 안 그런가 괴룡?”
“자네가 괴룡이구먼. 초면이긴 하나, 저 부채나 펄럭이는 늙다리보단 딱 보기에도 내가 낫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후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난제에, 나는 말을 돌렸다.
“일단 안쪽으로 드시죠. 말학들이 대선배님들을 뵙고자 준비한 게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