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74화 (374/444)

제374화. 동도회 (5)

검황 남궁원과 천기묘산 제갈척.

한 명은 북문으로 다른 한 명은 정문 쪽으로 흩어진 두 거인이었으나.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만날 수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정무학관의 동기생 시절부터 출발한다.

그러한 인연인 만큼 둘만의 장소가 학관에 분명히 있을 터였다.

‘사대기숙사가 불타긴 했으나, 학관의 구조 자체는 같으니….’

어떠한 복안이 있어 회의장에서 일부러 다툼을 벌이신 거라면.

북문과 남문은 혹시나를 대비한 위장이고, 진법이 설치돼 있는 동문의 대나무숲에서 만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는데.

애초에 따라오지 말라 한 것을 뒤따른 상황에서, 걸음까지 죽이고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터라.

나는 일부러 기도를 드러내며 대숲 안으로 들어갔다.

한데, 갑작스러운 사부님의 말씀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 온다.

내 기감에도 어마무시한 기도가 잡혔다.

쐐애애애애애애액!!

강기 덩어리가 반월을 그리며 일대의 대나무 숲을 잘라낸 건 이때였다.

써거거겅!!!!

나는 번개같이 회한을 뽑아, 검신에 강기를 감은 뒤.

휘리릭- 검병을 돌려 거꾸로 세운 회한으로 쏘아져 나오는 강기 덩어리를 막아냈다.

퍼어엉!!

덕분에 일대의 흙먼지가 뿌옇게 비산하는 순간.

‘!’

그걸 가르며 신형 하나가 쏜살처럼 쇄도해왔다.

파파파팟!

뿌연 시야 속.

나는 상대가 누군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걸음을 물리며 회한을 휘저었는데.

카앙!!

공격을 해온 이의 검과 회한이 맞물리며.

강렬한 풍압이 얼굴 가죽을 때리는 때.

화아아아아악!

비로소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검황 어르신?”

내가 알은체하자, 남궁원도 입을 열었다.

“이런. 괴룡이었구먼. 아무도 따르지 말라 했는데, 누가 따라붙기에. 나는 또 밀정이나 살수인 줄 알았지?”

한데,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어쩐지 궁색했다.

- …살수에 대처하는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용운이 너와 검을 섞을 명분을 대는 느낌인데?

나 역시 사부님과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궁원은 휘둘러오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카카카캉!

그에, 회한과 남궁원의 검이 불꽃을 튀기 시작하는 때.

채채챙!!!

나는 남궁원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살수가 아님을 아셨는데 왜 검을 거두지 않으시는지요?”

“착각으로 검을 뽑았네만, 자네가 곧잘 받아내는 모습에… 호기심이 동해서라고 해두세.”

그런 남궁원의 태도에.

얼마 전 제갈척에게 들었던 한마디가 스쳐 지나갔다.

‘될성부른 떡잎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은 남다른 즐거움이겠지.’

그에, 남궁원이 나를 시험하고 있다는 결론이 머릿속에서 난 때.

남궁원 쪽에서도 내게 질문했다.

“그러는 자네야말로, 멀리 물러서면 될 것을 어찌 그리 검을 휘둘러 오는가?”

“저 같은 무림 말학이 어르신 같은 분의 검을 견식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잡기 어려운지라. 놓치고 싶지 않네요.”

그 질문에 답하자, 남궁원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뱉고는.

“자신감이 과하게 붙어 헛된 호승심이 붙은 것인지, 그 말의 순수함을 증명해낼 실력을 갖춘 것인지 어디 한번 보세.”

방금의 몇 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검초를 휘둘러 오기 시작했다.

파칙! 파치치칙!!

카아앙!!!

뇌기(雷氣)가 번쩍이기 시작한 남궁원의 검은 받아내는 족족 사람의 뼈마디를 울리게 했다.

‘…이게 도가 아니고 검이 맞나?’

꼭 무혁 백부가 휘두르던 흑도를 받아내는 기분.

하나, 그렇다고 남궁원의 검이 그저 강함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강하게 떨쳐 내는 즉시.

섬전 같은 일검이 쏘아져 나왔고.

쌔애애애액!!

파천의 내력을 실은 검으로 그걸 쳐낼 때면.

부드럽게 흘려내는 유연함도 갖추고 있었다.

쩌어어엉!

그런 검세들이 남궁원의 손에서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에, 이 검이야말로 남궁가가 자랑하는 강검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는데.

‘궁윤이랑 검을 섞을 때면, 제왕검이니 창궁무애검이니 하는 광오한 이름들이 어찌 남궁세가의 검에 붙었는지 알 듯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는 따로 있었네.’

그런 생각을 하며 바쁘게 회한을 휘젓기를 잠시.

캉! 캉!

카카캉!!!

공세를 이어내던 남궁원의 입이 열렸다.

“이게 본 실력의 전부는 아닐 테지?”

“…삼 할 정도는 감추고 있습니다.”

“왜?”

“익히고 있는 권법과 장법은 순수하게 제 검이 검황 어르신께 얼마나 통하는지 알고 싶어 봉해 뒀습니다.”

“외에도 뭐가 더 있는 눈친데?”

캉! 캉!

카아아앙!

“몸에 부담이 조금 가는 대신 신체능력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잡기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진 재주를 모두 드러내 보겠나?”

“한데, 후자는 사술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언가의 비술을 복원하다 떠올린 터라서요.”

“자네의 별호가 괴룡인데 그걸 모를까? 세가에 박혀 있었지만 귀는 열고 살았다네. 감안하겠네.”

“옙.”

나는 회한을 크게 휘둘러 남궁원의 검을 떨쳐 냈다.

쩌어엉!

그 반동을 이용해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고는.

착지와 동시에 왼손에 상처를 낸 뒤.

스윽-

혈류를 빠르게 돌려 끌어올린 파천의 내력을 혈륜에 통과시키자.

만인혈을 흡수하며 강화된 혈륜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움과 동시에 근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땅을 박찼다.

팟!

그리고 남궁원을 향해 파천의 검초를 쏟아 냈다.

쌔액! 쌔액! 쌔액!

쌔애애액!!

그런 내 검초에, 남궁원은 짐짓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미 화경에 이르러 온몸을 오롯이 통제하고 있는 고수가 신체능력을 올린다기에… 뭐가 얼마나 달라지나 했는데.”

캉! 캉!

카카카캉!!

“이건 사술처럼 보인다고 오해할만하구먼.”

하나, 남궁원 역시 조금 전의 실력이 본인의 전력은 아니었다는 듯.

남궁세가 특유의 검초를 한층 더 맹렬하게 펼쳐내기 시작했는데.

카카캉!

카앙!!!

그 검을 상대하고 있다 보니, 지금껏 연이 닿아 견식할 수 있었던 명숙들의 무위가 절로 떠올랐다.

‘…다른 절대고수들.’

소림의 신승을 상대할 땐 거대한 소나무를 마주한 기분을 느꼈고.

경혜사태의 검은 살벌하디 살벌한 검초 속에 직면한 위험을 마주하는 느낌을 받았다.

‘…굳이 동류를 찾자면. 무당의 명영 도장을 상대할 때와 조금 비슷한 듯도 하다.’

무극검 명영.

그는 내 공세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고요한 호수와도 같은 상대였다.

남궁원의 검은 그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일체의 흐트러짐 없이 휘둘러지는 검초들이 내 투로를 모조리 봉쇄해내겠다는 듯 휘둘러진다.’

하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면.

무극검의 검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태극의 묘리 속에, 스스로의 부족함을 상기하게 했다면.

파치치치칙!!!

이쪽은 아차 하는 순간, 강렬한 뇌기가 휘감긴 검이 엄한 회초리 같이 떨어져 내린다는 것이었다.

‘공활한 하늘에서 별안간 내려치는 벼락과도 같구나.’

하나, 나는 그에 굴하지 않았다.

‘그런 하늘엔 본디 용이 유영하는 법이니까.’

나는 발작하듯 몸을 비틀어 뇌기가 실린 남궁원의 검을 피했다.

그리고 파천권법의 쾌권을 쏟아 냈는데.

슉! 슉!

슉! 슉! 슉!

남궁원이 쏟아내는 권력을 피하기 위해 몸을 비트는 때.

걸음을 크게 내뻗으며 항룡장을 질러내니.

꽈르르릉!!!

크게 허리를 젖혀 가까스로 장력을 피해낸 남궁원이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 단순히 기연을 많이 쌓아 그 경지에 이른 게 아니라, 감각이 있구만. 거의 백전노장의 감각인데?”

하나, 남궁원이 웃음을 지어 보인 것은 잠시였다.

“이것도 받아 낼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세.”

그 뒤로는 더욱 맹렬한 초식들이 이어졌다.

캉! 캉!

카카카캉!!

그렇게 검초를 쏟아 내는 와중.

“진주언가의 본류보다는 운등류에서 영향을 받은 움직임이 많이 배어나는구먼.”

남궁원은 내 무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개방의 항룡장을 아주 제대로 익혔어. 열여덟 장을 모두 전수받은 것 같은데? 익힌 심법과 찰떡인지 위력이 본래의 것보다 강력한 느낌이고. 그 독특한 검법은….”

“…….”

“뭐, 이것저것 많이도 익혔구먼. 한데,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파칙!

파치치치칙!!

“칭찬을 해주시는 겁니까? 이렇게 살벌한 초식을 휘두르시면서요?”

“칭찬이라기보다는 평가라고 해두세. 음. 소나무같이 외길을 정진한 무인이라면 내 조언이 의미가 없을 텐데. 자네의 무공은 꽃들을 모아놓은 다발과도 같구만. 그렇다면 이 늙은이의 조언이 요긴 하겠….”

남궁원의 입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려 하는 이때.

- 누가 오는구나?

‘…그러게요?’

대나무숲의 초입에서부터 누군가가 급히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기감에 잡힌다 싶더니.

남궁윤이 나타나, 나와 검을 맞대고 있는 남궁원을 향해 일갈했다.

“할아버님! 지금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    *    *

기세 좋게 등장한 남궁윤이었으나.

내게서 자초지종을 듣고 난 녀석은 금세 쭈굴이가 되었다.

“…그렇게 된 건데, 어르신께서 내 무위를 봐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

그런 남궁윤을 향해 남궁원은 따끔한 한마디를 전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할애비에게 그리 고함을 치느냐?!”

“…송구합니다. 할아버님께서 회의장에서 흥분해서 나가신데다가, 격렬히 검 부딪히는 소리가 나니까. 문득 소손의 머릿속에 작은할아버님의 일이 스치는 바람에 그런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멀었다는 것이다. 자고로 남궁세가의 사람이라면 사족의 말과 행동이 지니는 무게를 무겁게 여겨 정중동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거늘.”

그렇게 시작된 남궁세가의 후계자 교육시간을 직관하길 잠시.

남궁원이 내게 말했다.

“어째, 괴룡하고만 엮이면 우리 가문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구만.”

“흠흠. 외람되지만. 오늘 일은 부끄럽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궁윤… 윤이도 너무 혼내지 마셨으면 합니다.”

“…아무튼 아까 하려다 못한 말을 마저 하겠네.”

“조언해주시겠다던 말씀 말입니까?”

“그래. 기왕 바깥바람을 쐬러 나왔으니. 며칠 머물다 갈 생각인데. 자네만 안 바쁘다면 몇 가닥 쥐고 있는 심득을 나누어 줄까 하는데 어떤가?”

“바빠도 짬을 내야지요. 수업시간만 겹치지 않으면 어르신께서 편하신 시각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하면 회의 끝나고 시간을 맞춰보도록 하세.”

그렇게 남궁원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니, 문득 머릿속에 은하성의 얼굴이 스쳤다.

“아. 어르신. 혹시 한 명 더 데려가도 괜찮겠습니까?”

“누구를?”

“은하성이라고. 이미 남궁가의 검을 익히고 있는 녀석입니다.”

과거의 은하성을 생각하면, 지금의 은하성은 심신 모두가 환골탈태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녀석이 죽어도 함께하겠다고 하니.’

그런 녀석에게 필요한 건, 상승무공이었다.

소림의 장경각이나 학관의 도서각에서 다른 무공을 찾아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손에 익은 무공을 기반으로 한 상승무공보다 어울리는 것은 없을 터였기에, 넌지시 여쭤보았는데.

“강남신협?”

“아. 예. 그렇게도 불립니다.”

“안 그래도 이번 방학 때 안경에 들르라 할 참이었긴 한데….”

“말끝을 흐리시는 게,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아니. 별문제는 아닐세. 그냥 괴룡 자네에게서 묘하게 제갈척을 상대하고 있는 느낌이 나서 말이야.”

“…예?”

“그런 게 있네. 그 친구도 데리고 오도록 하게.”

예상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주시더니.

앞장을 서서 회장으로 가셨다.

“시각이 제법 흘렀겠구먼. 이만 회의장으로 돌아가세.”

그렇게 돌아온 동도회의 회의장.

잠시간의 휴회를 마친 이곳에선, 다시 한번 백도무림의 두 거인이 자신이 적임이라고 불같은 토론을 벌였는데.

“남궁원이오이다. 조금 전엔 이 사람이 흥분하였소. 동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하며. 제대로 된 포부를 말할까 하오. 본디 이런 단체들은 발족한 직후가 가장 중요한 시기요. 하여, 여러 방파들을 이끌고 조율해야 하는 무림맹주를 역임한 내 쪽이 적임이라 하겠소.”

“휴회 전에 하였던 이야기를 뺀다고 치더라도, 검황이 회주를 맡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있소이다. 남궁세가의 가주직을 유지하고 있는 검황은 방금 본인이 말한 ‘중요한 시기’에 동도회에 신경을 쏟기가 부적합한 인사입니다.”

평생을 앙숙이셨던 분들이라, 그들이 진심으로 다툰다고 여기는 이가 많은 듯했지만.

은퇴를 번복한 채 걸음 하셨는데, 이유 없이 다투실 리가 없다는 내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표결 직전 검황 어르신은 몇몇 부족함을 받아들이며 사퇴를 하셨다.

“이 늙은이가 과거의 영광에 젖어 과욕을 부린 성싶소. 천기묘산의 말투가 원체 뾰족하여 흥분했으나 차분히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주장이오. 이 사람이 물러나는 것으로 할 테니… 이 모임이 화목하게 굴러가도록 모두 힘써주시오.”

그렇게 요식행위인 찬반투표를 거쳐, 자연스럽게 제갈척이 회주직을 맡게 되었다.

그에,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는데.

“기권 한 표를 제외한 모두의 찬성으로 동도회의 초대 회주님은 제갈척 선배님으로 결정되었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회주님,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그런 아버지의 요청에.

제갈척은 날카로운 말을 쏘아내던 조금 전과 달리.

“이 늙은이가 회주직을 맡는 것을 허락해준 동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남궁가주에게도 사과를 전합니다.”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 동도회는 친목모임이오. 하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천하만민의 생생지락과 강호의 안녕을 근심해야 하는 백도무림의 사람들이오.”

그리고 담담한 어조로 뼈있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우리의 방만과 나태가 민초들의 희생을 낳았고, 그 결과 후기지수들이 낯선 땅에서 피를 흘리게 하였소. 거저 얻는 평화는 없다는 사실과 안주하는 순간 위기가 등을 노려온다는 것을 부디 명심들 하길 바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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