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77화 (377/444)

제377화. 사해동도 (1)

“조 서방.”

“예. 가주님.”

내게 덕담을 건넨 남궁원은 연무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복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 다 보았네. 장주에게 오늘 중으로 내가 떠날 것이라 기별하고, 자네는 채비를 하도록 하게.”

“예.”

남궁원과 검을 맞대는 시간은 늘 내가 먼저 검을 돌려 넣는 것으로 끝이 났는데.

“돌아가시려고요?”

“볼일 다 봤으면 가야지. 동도회의 발족식도 끝이 났는데. 회주도 아니고 일개 회원인 내가 단강구에 뭣 하러 계속 머무르고 있겠나.”

처음으로 남궁원이 먼저 검을 돌려 넣은 순간.

그는 돌아가겠다는 말을 꺼냈다.

“괜히 젊은 사람들 피곤하게 하는 일이야.”

“그래도 총장님이나 맹주님 그리고 궁… 윤이랑 영이는 뵙고 가시죠?”

“그럴 생각이었네. 나 정도로 허명이 쌓여버리면, 어딜 가든 홀연히 떠나는 것도 또 예의가 아니니 말일세. 함께 학관으로 가세나.”

그렇게 다시금 정무학관을 찾은 남궁원은 본관과 사대기숙사의 자치회실을 찾아 후배들에게 짧은 격려를 건넨 뒤.

단강구를 떠나기 위해 정무학관의 정문에 섰다.

그를 배웅하기 위해 교직원 대표로는 총장인 경혜 사태가 나왔고.

“선배님.”

“사태가 고생이 많소.”

“아닙니다.”

“후학 양성이야 말로 만년지계요. 힘써주시오.”

“예. 살펴 가십시오.”

동도회의 세부 안건을 조율하기 위해 남아있던 세 사람.

제갈척, 공손무결 그리고 아버지가 나왔다.

그중 제갈척은 빨리 가라는 듯 손만 내저었고.

다른 두 사람은 입을 열었다.

“큰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검황께 이런 말씀이 가당키나 한 줄 모르겠습니다만. 가시는 길 모쪼록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맹주랑 언 간사도 고생이 많네. 기왕지사 은퇴를 번복한 참이니, 내 도움이 필요하면 안경으로 연통들 하도록 하시게. 적적하거들랑 아무 일 없이 들려도 좋고.”

“…언제 짬을 한번 내보겠습니다.”

나도 생도대표라는 명목으로 언동생들과 함께 배웅을 나와 있었는데.

어른들의 작별 인사가 끝이 날 즈음, 나는 은하성의 옆구리를 건드리며 말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소매를 붙여 들자.

남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남신협은 내가 직접 초식을 잡아 주었으니, 가르쳤다고 말을 할 수 있겠으나… 괴룡은 그저 상대를 조금 해주었을 뿐일세.”

“그럴 리가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니야. 자네라면 내 도움이 없었더라도 충분히 홀로 디뎌냈을 걸음이니 과례는 그쯤 하시게.”

내가 올린 읍을 극구 사양하길 잠시.

남궁원은 수염을 쓸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제대로 된 조언을 하나 하고 싶군.”

“…어떤?”

“제갈척. 저 썩을 늙은이 같이 책상에 앉아 대가리만 굴리던 작자는 못 하는, 나나 여기 공손 ‘맹주’ 같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조언이지.”

“…….”

숨 쉬듯 자연스레 나오는 제갈척을 향한 비난에 나는 말을 아꼈는데.

그사이 남궁원은 남은 말을 이었다.

“자네에겐 사람을 따르게 하는 재주가 있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라 실제로 그래. 자네를 따르는 무리가 그를 증명하고 있지 않나. 사대기숙사를 아우르는 회장직이 신설된 것도 그렇고?”

“…….”

“옛 성현이 이르기를 작은 일에서 진가를 알 수 없으나 큰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소인이라 큰일은 맡길 수 없어도 작은 일은 잘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하였네.”

남궁원의 조언은 용인술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쓸모가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너무 편협한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자리한 모두에게 조언이 되는 말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정중히 예를 올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 점을 고려하여 모여드는 이들을 잘 품어내도록 하시게. 뭐, 모용가의 자제나 여기 강남신협만 봐도 알아서 잘하는데 늙은이가 괜히 노파심을 부리는 것 같긴 하누만.”

이어진 남궁원의 말에, 은하성의 입이 무심코 열렸다.

“모용가의 자제면 용길인데, 저를 그 친구랑 묶으십… 갸이익.”

그에, 내가 녀석의 옆구리 살을 비틀고 있는 때.

남궁원은 본인의 두 손주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왜 너희들이 괴룡에게 빠져있는 줄 알겠더구나. 동년배 중에 저런 벗이 있는 것은 너희에게도 복이다.”

“소손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 말에, 남궁윤은 짧은 대답을 올렸고.

남궁원은 계속해 남은 말을 이었는데.

“우리 가문은 예로부터 천하제일세가라 불려왔다. 하나 그건 무위와 지체가 제일간다고 붙은 이름이 아니야.”

“소손도 알고 있습니다.”

“천하를 걱정하는 마음과 적과 맞서는 자리라면 언제고 일선에 서 있겠다는 각오만큼은 괴룡에게 지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남궁윤이 진중한 얼굴로 대답을 하는 때.

남궁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은근히 오라버니를 더 위하신다니까요?”

“윤이를 더 위하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있지 않느냐. 장유유서가 있거늘.”

남궁원은 그런 남궁영의 볼을 가볍게 집어 흔들었다.

“아잌. 다들 보능데 뭐하세요오.”

“기실 영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줬구만. 또 천하의 나쁜 할애비 취급을 하느냐? 에잉. 인석아 두 번은 안 휘둘린다. 가련다!”

그리고 제갈척을 향해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말년에 딱 한 번 나를 누르고 감투를 채가는구먼?”

“원래 마지막에 이기는 놈이 이기는 게야.”

“고생하게.”

“나는 알아서 잘할 터이니. 자네는 되도록 기름진 음식과 음주를 멀리해.”

“허.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천하의 제갈척이가 내 걱정을 다 해주는군?”

“천하의 흐름이 늙다리의 손이라도 필요하다지 않나. 급살이라도 맞으면 나로서는 계산이 서는 패가 줄어드니깐.”

“급살… 몹쓸 영감탱이 같으니. 꼭 사람 열받게 한마디를 더해.”

“하는 말마다 썩을 늙은이 소리를 빼놓지 않는 건 누군데?”

*    *    *

남궁원을 태운 마차가 떠나갔다.

경혜 사태는 입을 열어 자리를 파하자는 말을 꺼냈다.

“자, 저희는 남은 이야기를 마저 나누러 돌아들 가십시다.”

“그러시지요.”

그에, 어른들이 본관을 향해 돌아가는 때.

당옥기는 마차가 떠나간 방향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설지네 할아버지랑 끝까지 다투다 가시네.”

녀석의 말에, 팽소진과 언용명이 연이어 말했다.

“내내 티격태격하시긴 했지만, 서로를 인정하는 느낌이었어. 친우라고 해야 할지, 악우라고 해야 할지 미묘하긴 하다.”

“형님을 따라다니며 여러 명숙을 뵈어 왔지만, 두 분은 그야말로 거인을 뵌 기분입니다.”

이어, 우소릉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백도무림을 지탱해오신 분들이라 그럴지도요?”

나도 그랬지만, 다른 녀석들도 남궁원과 제갈척이라는 두 거목에게서 경외감을 느낀 모양이었는데.

팽소천과 천장호도 한 마디씩 더했다.

“일단. 궁윤이랑은 달라.”

“거, 당연한 이야기를 하십니까. 쓰흡. 근데 궁윤 형이 나이 좀 먹는다고 저리될 수 있을까요? 상상이 안 되네.”

정현이 입을 연 건 이때였는데.

“저희가 어떤 어른이 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괄목상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되짚어보면 지난 몇 년간 저희는 변해왔습니다. 무위든 성정이든 바른 도를 좇고자 노력한다면 자연히 익어가지 않겠습니까?”

듣고 있던 은하성이 턱을 만지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변하긴 했지. 호랑이 똥 뿌리기 싫다고 궁윤 형이 염병을 떨던 때가….”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나오는 거냐!”

그에 웃음이 번지길 잠시.

나는 손뼉을 쳐 주위를 환기했다.

“자자 들어가자. 할 일 많다. 기말고사 준비도 해야 하고. 겨울 방학과 내년도 대비도 해야 한다. 아마 동도회에도 우리가 거들 일이 있을 거고. 바빠.”

배웅을 마친 우리는 본분으로 돌아왔고.

학관은 기말고사 준비기간에 돌입했다.

수학여행부터 동도회까지.

굵직한 학사일정을 치러내느라 밀린 공부가 산더미인 터였다.

그에, 교수진도 생도들도 강의와 공부를 한다고 거지꼴로 학관을 배회하기 시작한 때.

“언용운입니다.”

나는 사대기숙사의 간부진을 소집했다.

“시험 대비를 하신다고 바쁘실 텐데, 이렇게 자치회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기말고사를 치르기 전에 제 후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운을 뗀 나는 전달사항을 말했는데.

“여기 계신 간부들은 인지하고 계셨을 테지만, 총학생회장은 제가 초대인 신설 직함이라, 여타 생도들은 간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공보국에서 공고를 내겠습니다만, 각 자치회에서 신경 써서 총학생회장 선출에 관한 안내를 하고 후보자들을 모집….”

이야기를 하는 중.

자치회장들이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본인들끼리 눈을 맞추며 한눈파는 모습이 보였다.

“…분위기가 조금 묘한 것 같은데요? 벌써 전임대우를 하시는 겁니까?”

내가 그 점을 짚자 회의장 내에 정적이 흐르길 잠시.

향란관의 소선창 자치회장이 입을 열었다.

“자네를 전임 대우하는 게 아니라… 사실 우리끼리 미리 나눴던 이야기가 있네.”

“회장님들끼리요?”

“그래. 자네가 동도회까지 챙기느라 바빠 보여서 회장 선출할 시기가 되면 말하려 했지. 뭐, 각설하고. 우리는 자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할까 하네.”

“…일단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자네가 한해 더 총학생회장직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네.”

돌아온 말에, 되물음을 던졌는데.

“흠.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닌데요. 준기 선배나 제갈 소저, 은 소저가 맡아도 잘할 듯하고요.”

그러자마자 당준기 선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가 출마할 적엔 내 치기로 후보 등록을 했으나, 지켜보니 알겠어. 이런 시기에 사대기숙사를 아우를 인물됨은 자네밖에 없네.”

운매관의 자치회장 계운열과, 윤국관의 자치회장 곽우명도 동시에 말했다.

“사실 나서겠다는 사람 자체가 없기도 해.”

“자네가 동도회 일을 보는 동안 우리가 생도들의 의사를 모두 수렴했는데. 모두가 비슷한 의견이었네.”

그 말을 이어받아 제갈설지와 은하연도 한마디씩을 더했고.

“예. 여기 모인 간부 중에도 없을 거예요. 일단 저부터가 자신이 없네요.”

“벌여놓은 일이 얼마인데요. 그걸 오롯이 이어받을 엄두가 날 리가 없죠. 심지어 전임이 언용운?”

마지막으로 경룡이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밖에 없네. 이상한 일도 아니야. 나부터가 연임을 했는걸?”

“…그야 그렇습니다만.”

“여기 다른 자치회장들과 나는 오는 봄에 학관을 졸업할 몸이네. 자네라면 그 자리가 어울린다 생각하지만, 어쭙잖은 생도가 그 자리에 앉을 거라면 직을 폐하는 게 낫다는 생각일세.”

*    *    *

호소라고 해야 할지, 강권이라고 해야 할지.

‘경룡이 형은 그런 식으로 부탁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을까요?’

- …어디서 배웠겠느냐?

자치회 간부들의 공통된 주장에 나는 다시 한번 총학생회장직에 출마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미리 의견 수렴을 해두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상대 후보로 나선 생도는 없었다.

그렇게 정무학관의 이대 총학생회장은 내가 단일후보로 출마한 가운데 찬반투표로 연임이 결정되었다.

내년까지 내가 회장직을 맡기로 한 가운데.

생도들은 본격적으로 기말고사 기간에 돌입했다.

하여, 기숙사와 도서각의 불들이 환하게 밝혀진 때.

본관의 총장실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총장과 여기 모인 운영위원들 그리고 총학생회장과 생도들이 협조해준 덕분에 연락소의 실무를 담당할 졸업생들 명단까지 확보가 되었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주된 적을 어디로 삼느냐일세. 아니 그런가 언 간사?”

“예. 어디를 주적으로 삼느냐에 따라 거점 연락소를 어디에 배치할지를 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십만대산의 천마신교냐, 만겹산의 혈교냐. 둘 다 주시는 해야겠지만 우선적으로 중점을 둘 적을 정해야 합니다.”

제갈척과 아버지의 말로 시작된 회의는 온갖 갑론을박을 이어냈는데.

그렇게 열띤 이야기가 이어지는 때.

사부님께서 한마디를 해오셨다.

- 용운아. 이거 근데 네 녀석이 혈교를 꿀꺽하려고 하는 계획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 사실을 모른 체 저들이 결론을 낸다면….

‘제 계획도 뭉개지고, 백도무림의 전력은 전력대로 낭비나 희생을 맛보겠죠.’

- 알고 있구나?

‘예. 안 그래도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좀처럼 끼어들 만한 순간이….’

그 말에 답을 드리고 있는 때.

공손무결이 나를 응시하며 내가 기다리던 틈을 마련해 주었다.

“용운이 네 생각은 어떠냐?”

“…음. 그게.”

하나, 원체 큰일을 혼자 처리하고 숨겨온 터라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답지 않게 뭘 쭈뼛거리고 있느냐? 여기 있는 사람 중 네가 어리다고 이야기를 허투루 듣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해 보거라.”

“그게 그러니까… 제가 혈교 쪽에 작업을 좀 쳐놓은 게 있습니다.”

“작업? 이래저래 바빴을 텐데? 그 틈에 간자라도 심어 두었더냐?”

“음. 간자 정도는 아니고요….”

“하면?”

“남해 대주교를 위시한 일파를 제 세력권으로 끌어들여 놨습니다.”

“음?”

내가 꺼낸 이야기가 정확히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조차 못 하는 공손무결과 함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러 교수님의 모습.

“설명을 드리려면. 우선 올해 정무학관 입관시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나는 일말의 가책을 느끼며, 입관 시험에서 독고철을 걸러낸 이야기부터 사겸을 끌어들인 이야기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그에 자리한 사람들의 얼굴이 시시각각 파리해졌는데.

“…그렇게 된 것입니다.”

내 말이 끝났을 때.

가장 먼저 아버지가 입을 열었고.

“…요, 용운이 네가 혈교의 간부인 것처럼 행동하며, 대주교급 인사가 이끄는 혈교의 지부 하나를 장악했다고?”

경혜사태와 공손무결의 음성이 뒤를 이었다.

“도, 독고철. 생도가 혈교에 귀의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맹주님은 이 일을 아셨습니까?”

“…몰랐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빈니는 하도 찍혀서 더 이상 찍힐 발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혼자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행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에 내가 조그맣게 변명하는 때.

“그… 완전히 혼자 한 일은 아닙니다. 대군사님 하고는 상의를 하긴 했거든요.”

제갈척이 본인의 허벅지를 때리며 박장대소를 시작했다.

“푸하하! 그놈 그거 보면 볼수록 걸물이로세?! 이제 막 약관을 넘은 녀석이, 천하의 멸마사태랑 구패검을 노름판의 팻감처럼 뒤집어 놓고 천하를 주물럭거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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