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391화 (391/444)

제391화 진혈단 (8)

내가 본래의 목소리를 내자.

진동철의 바로 옆에 서 있던 혈풍대원 하나가 급히 손바닥을 펼쳐 주변을 멈춰 세웠다.

“모두 반보씩 물러나라.”

행동하는 본새를 보니 부대주쯤 되는 자로 보였는데 .

그렇게 수하들을 물린 놈은, 나를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함께 들으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혹. 공자님이… 아니실지?”

그 말에, 혈풍대 사이에서 미묘한 기색이 스치자.

사부님께서 질문을 해오셨다.

- 공자님? 뭐냐 저놈들. 뒤쫓아 올 때와는 달리 주저하는 느낌인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던져봤는데. 그게 먹힌 듯합니다.'

- 무슨 생각?

'혈마가 대략 아버지와 동년배일 텐데, 자식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요.'

사부님께는 적당히 둘러댔지만, 나는 원작 덕분에 제대로 된 사정 을 알고 있었다.

나는 추측하는 척 그 이야기를 사부님께 전했다.

'젊어서부터 역심을 풀풀 풍겨온 진괴량입니다. 그런 진괴량에게 아무런 고삐도 걸어두지 않을 만큼, 천마신교는 어수룩한 조직이 아

니고요.'

- 해서?

'그 아들이 인질로 잡혀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마신교의 당금 교주 혁 련강의 아들들.

한창 소교주 선발전을 치르고 있을 그들의 배동(陪童)이란 명목으 로, 진괴량의 아들은 붙들려 있었다.

물론, 부자간의 연보다 본인의 야욕이 중요한 진괴량은 아랑곳하지 않고 혈교를 창시한다.

- 그게 너라고 착각했다는 것이로구나?

'일단은요.'

사부님과 몇 마디를 나누고 있는 때.

진동철이 입을 열었다.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앞뒤가 딱 맞습니다. 혈우신공을 알고 계신다는 보고도, 그런 분이 본교의 행사를 방해하시는 것도 말입니다. 실제로 역용 같 은 잡기에 능하기도 하셨….”

“십만대산에 붙은 진가 놈들. 그놈들이 교주님과 피가 진하게 이어 진 이들을 모두 베어 바쳤다는 첩보를 너도 확인한 바 있지 않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저자가 설령 공자님 본인이라고 할지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교주님께서는 본교의 행사를 방해하는 자라면 피붙이라고 달 리 처우하실 분이 아니다.”

수하들을 다잡기 위해 짐짓 단호한 목소리를 내는 진동철이었으나.

그러면서도 나를 빤히 응시하는 모습에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그 대로 묻어났다.

'혈마의 그림자로 온갖 짓을 다 해봤을 테지만, 이런 일은 처음일 테지.'

가면 뒤에서 피식 웃어 보인 나는, 진동철을 향해 입을 열었는데.

“궁금하면 오백 냥.”

“또 희롱을… 그러고 보면 조금 전에 도망치며 진가를 모욕했지? 네놈은 공자님일 수가 없다.”

“왜 없어? 아버님은 나를 버리셨고, 친척이라는 놈들은 저 살자고 나를 죽이 려고 들었으면 좀 삐뚤어 질 수도 있는 것 아냐?”

“…끝까지! 교주님의 명올 받들고 있는 우리를 희롱한 대가를 치르 게 해주마!”

“오백 냥만 내라는 데도, 그거 내기 싫어서 염병을 떠는 놈이 대가 를 치르긴 뭘 치러?”

이를 가는 진동철을 향해, 한마디를 덧붙이니.

놈의 손이 곧바로 우리를 향해 휘저어졌다.

“쳐라!”

시위에서 쏘아져 나온 화살처럼 우리를 향해 덤벼드는 혈풍대의 마 인들.

쐐기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놈들에 맞서기 위해, 나는 언동생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날개처럼 펴져!'

내가 내린 신호에 따라, 언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걸음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서로 간의 거리를 벌렸다.

우리의 모습에, 진동철은 한마디를 이죽거렸는데.

“고작 일곱이서 학익진? 수가 엇비슷할 때나 행하는 수법을 쓰다 니, 낭창거리는 혓바닥과 달리 싸움에 나선 경험은 별로 없는 모양이 군.”

놈의 입은 그렇게 호선을 그리는 듯했지만, 이내 정현의 검이 본격 적으로 마인들을 베어내기 시작하자 곧바로 일그러졌다.

촤악! 촤악!

촤아악!!!

“무당의 검?”

나는 그런 놈을 향해 한마디를 뱉어낸 뒤.

“고작 일곱이서 무슨 학익진이냐는 소리를 했지?”

상단전에서 뽑아 올린 술식을 펼치며 언령올 내뱉었다.

“일어나라.”

* * *

광서 땅 서단에 위치한 숭좌.

그 숭좌 땅에서도 운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산등성이엔, 일혼둘 녹림채의 일원이었던 산채가 있었다.

숭좌채라 부르는 이 산채는 혈교에게 잠식됐었는데.

그 모든 역사는 이제 과거가 되었다.

노삼과 도중광.

두 사람이 이곳을 장악했기 때문이 었다.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지금.

두 사람은 같은 방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

"……."

두 사람이 응시하고 있는 방면은 옹녕이라 부르는 곳이었는데.

화륵-

화르륵-

불이 났는지,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는 광경을 지켜 보고 있기를 잠시.

도중광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저곳은 오래된 왕조의 무덤을 관리하는 낡은 산장이 하나 있을 분 인데… 불이 나다니?”

두 사람에겐 숭좌채에서 만나자는 말만 했을 뿐, 자세한 계획은 알 려주지 않았던 언용운이 었으나.

도중광은 흑도 바닥 중에서도 가장 저질에 속하는 녹림 바닥에서 구를 대로 구른 사람이 었고.

노삼은 개방의 거지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 었다.

“괴룡을 만나기로 한 때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 공교롭기 그지없군.”

각각 흑도와 개방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옹녕에서 치솟는 불길에 언용운이 휘말려 있을 것임을 짐작했는데.

넌지시 그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노삼이 답이 없자, 도중광이 헛기 침을 하고 나섰다.

“크흠, 가봐야 하는 거 아니요?”

그에, 노삼은 옹녕을 응시하고 있던 눈초리를 도중광 쪽으로 흘겼 다.

“뭔 개수작이냐? 산적 두목 놈이, 나를 보내고 뭔 짓거리를 하려고 수작질이야?”

노삼의 말에.

도중광은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늙은 거지 당신을 보내고 뭘 어쩌려는 게 아니요. 금분세수를 하 려는 판국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수작질을 하겠소?”

“하면? 왜나를저리로 보내려고 안달이야?”

“거, 당신을 저리로 보내려고 한다는 그 전제부터 틀려먹었소. 가 자고 하면 같이 움직일 생각이니까.”

"……."

“…이 산채를 지키고 있기로 한 약속이 걸리는 거면 수하를 보내볼 까? 쌍도귀나 편목금강은 당신 생도들도 면이 있으니 불상사가 나지 는 않을 텐데?”

이어진 도중광의 말에.

노삼은 까슬까슬한 턱을 긁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도중광이 너 지금 용운이 걱정을 하는 거냐?”

“걱정이라기보다는… 한배를 탄 이상 물줄기가 끝날 때까지는 동료 라고 보는 게 맞으니까 하는 이야기지. 도동횐가 뭔가 당신들이 하는 그거 있잖소.”

“동도회다 동도회. 이 무식한 놈아.”

“아, 그게 그거지.”

“네놈이 하는 말도 그게 그거야. 지금 네가 하는 게 걱정이 아니면 뭔데?”

“…크흠. 그래. 뭐, 어찌 보면 걱정하는 게 맞군.”

“산적 두목 놈이 왜 남의 생도를 걱정하고 자빠졌어?”

“거, 쓸모없는 늙은 거지나, 진중한 척 사람 말을 뭉개는 공손 맹주 보다는 그 녀석이 말이 통하니깐!”

도중광의 태도에, 노삼은 남몰래 헛웃음을 흘렸다.

'어지간히도 마음에 든 모양이구만… 허허. 용운이 이 녀석 산적 두 목 놈을 제대로 홀렸어.'

그에, 노삼의 머릿속에 하여간에 대단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나, 마음속에 드는 대견함과 반대로 노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될 일이야. 녀석이 따로 움직이기로 했으면 분명 나름의 계획 이 있을 터. 괜히 초를 치는 일이 될 수가 있어.”

“하면, 제자들이 곤경에 처해있을지도 모르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 듯 보고만 있으시겠다는 거요?”

“은근히 나를 매정한 인간처럼 말하는데, 용운이 그놈은 하기로 한 일은 어떻게든 해내는 놈이야. 내가 잘 알아. 우리는 우리 일을 해야 지.”

“다했잖소.”

“다하긴 뭘 다해! 우리 손에 뒈져나간 놈들이랑 붇어먹은 놈들이 반드시 여길 노려올 텐데. 딱 지키고 있어야지. 도중광이 너는 아랫 놈들 괜히 민가에 가서 헛짓거 리 안 하도록 단속부터 해라.”

* * *

최초에 비웃음을 당했던 학익진이었으나.

내가 언령을 내리자, 시체 병사들이 그 틈을 메웠고.

크아아아!!

그렇게 완성된 날개가 감싸듯 혈풍대를 휘어 감으니.

본디 막다른 계곡을 벽 삼아 우리를 갈라 내려던 혈풍대는 되레 본 인들이 계곡을 등지고 포위된 형국이 되었다.

“…움직이는 시체. 네놈이 바로 괴룡이로구나.”

“아닌데? 니네 공자님이라니까?”

“…그 주둥아리.”

하나, 그렇다고 진동철과 혈풍대가 만만한 상대는 아니 었다.

내가 진괴량의 아들이라는 생각에, 움직임 한편에 조심스러움이 묻 어났던 처음과 달리.

놈들 역시 진면목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혈풍만곤진(血凰满坤障)을 펼쳐라!”

저들에게 혈풍대라는 별칭을 안겨준 합격진의 이름을 진동철이 외치자.

마인들이 눈동자가 일제히 시뻘게지더니, 저마다 끓는 소리를 냈다.

“그르르.”

그렇게 눈자위를 붉게 물들인 놈들은 벌떼처럼 덤벼들어 왔는데.

변모한 놈들의 움직임은 조금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위협 적으로 변해있었다.

휙! 휘

휘 휘 휙!

혈풍대의 마인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이 민첩해져 있었고.

쌔액! 쌔액!

쌔애애액!!!

진한 혈향을 풍기는 특유의 강기역시 강렬하게 변모해 있었다.

진을 이루는 개개인이 강해진 상황에서, 일제히 검초를 쏟아내는 합까지 한 몸처럼 맞으니.

챙! 챙!

채채채챙!!!!

시체 병사들을 방패 삼아 혈풍대의 인원을 줄여나가던 우리도 수세 로 몰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사부님께서 물음을 던져오셨다.

- 눈알이 벌게진 것도 그렇고, 침을 질질 흘리는 것도 그렇고. 저놈 들 조금 맛이 간듯싶은데?

'혈교의 신공을 익히면 야기되는 광증을 일부러 끌어낸 수법 같습 니다.'

챙! 챙!

채애애앵!!!!

- 그런 것 치고는 또 이지(理智)가 멀쩡해 보이는데… 그건 체질 탓 인가?

'예. 제가 시료를 베푼 대다수의 교인과 달리, 저들은 마기가 골수 에 치밀어도 견뎌내는 신체를 타고난 자들인 듯합니다.'

- 방심치 말 거라. 네 녀석은 원체 정신력이 강하다만, 저놈들이 검 초를 휘두를 때마다 일대에 깔려 나가는 혈향이 심상치 않다.

사부님의 예측은 정확했다.

혈풍만곤진이 휘몰아치는 동안 쏟아지는 혈향은, 상대의 감각을 서 서히 흐리게 해 종국에는 목숨을 잃게 만드는 데 일조를 했으니까.

- 그냥 보기엔 날카로운 검초에 야수 같은 움직임이 저놈들의 장기 인 듯하나. 이 검진, 그 원리를 가만히 짚어보면… 교묘한 함정과도 같은 환검진 (幻到窜) 이니라.

'…거기다 여차하면 청수채의 채주처럼 혈맥을 터트려 자폭을 할 수 있는 놈들이 바로 저놈들이죠.'

청수채의 채주 두흥은 속아서 그렇게 했지만.

저놈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는, 광신자들이었다.

'하지만 해볼 만해.'

언동생들은 모두 산전수전을 겪어온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은 맞닥뜨린 상황에 나름대로 대처하고 있었고.

“켁! 이거 숨 아껴 쉬어야겠는데?! 독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누님. 저희 근데 이제 말해도 되는 건가요?”

“될걸? 쟤가 사령술을 쓰는 판국이잖아.”

“다들 정신 차리고 내 중심으로 붙어. 옥녀검의 한기와는 상극인지 내 주변은 괜찮아.”

그중 정현은 화경에 들어선 몸.

녀석이라면 점차 환검(幻蜘1)으로 변해갈 이 혈풍대의 검진 속에서 도,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언동생들을 향해 명을 내렸다.

“정현. 너도 다른 녀석들이랑 같이 움직여.”

“예!,,

“다들 무리하지 마. 적을 줄이는 것보다 채작진을 유지하는 데 집 중해.”

그렇게 언동생들을 굳게 믿고 한마디를 남긴 나는.

곧바로 비영파천보를 밟아, 적들이 일으키고 있는 혈풍의 눈을 해 뛰어들었다.

그런 나를 맞은 건 혈풍대주 진동철이었는데.

검을 맞대자마자.

카아아앙!!!!!!!!

놈은 나를 향해 물음을 던져왔다.

“…네놈은 도대체 뭐냐?”

“곧 네가 주군으로 모시게 될 몸? 그러니까 존칭 꼬박꼬박 써라.”

내 말에, 빠득 이를 갈아오는 진동철.

“닥쳐라! 내게 주군은 한 분뿐이다!”

나는 씩 웃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아, 나도 살아있는 부하가 필요하단 건 아니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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