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주언가 망나니-408화 (408/444)

제408화. 물들다 (7)

진주언가의 괴룡이 세상에 나오기에 앞서, 무당파의 명영이 있었다.

무극검 명영.

정무학관의 당금수석을 시작으로, 지금은 다음 대의 천하제일인 자리를 맡아두었다는 말을 듣는 그인지라.

홍군의 진혈단원들은 단박에 그를 알아보았다.

“무극검이다!”

그리고 함께 늘어선 무당의 제자들을 두고 목청을 높였다.

“무당 오협!”

하나, 그렇게 내려선 무당의 제자는 사실 다섯이 아니라 여섯이었다.

명영과 함께 무당오협이라 묶이는 명자배 다섯 외에.

“운경아.”

운자배의 대제자 운경이 끼어 있었으니까.

“예.”

“아군은 지쳐있고 적의 기세는 왕성하구나. 우선 숨돌릴 틈부터 만들어야겠다.”

한눈에 전황을 파악한 명영은 운경을 향해 말을 남기고는.

“전후 사정은 네가 진혈단주님께 잘 설명하거라.”

“예!”

“사제들 가세!”

네 명의 사제와 함께 축왕의 군단을 향해 검을 휘둘러 나갔다.

쌔액! 쌔액!!

쌔애액!!!!

덕분에 전열을 정비할 틈이 생긴 홍군을 향해 운경은 꾸벅 포권을 취했다.

검병을 거꾸로 쥐며 그 인사를 받은 독고철은 곧바로 물음을 던졌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육로로 오는 지원군은 초왕부에 대기하고 있던 타격대가 전부일 거로 생각했습니다만.”

“진혈단이 혈천수라궁 공격에 나섰다는 말을 듣고, 합류가 시급할 듯하여 저희가 먼저 온 것입니다. 소검후가 타격대와 뒤따라오고 있을 테니 곧 도착할 겁니다. 마침 저기 오시는군요.”

그런 운경의 말에, 독고철은 재차 질문했는데.

“제 말은 타격대가 안 보인다는 뜻이 아니라, 어찌 무당의 제자들이 오셨냐는 물음입니다.”

“아. 동도회의 계획이 세워졌을 때. 동도회주님과 괴룡이 장문인께 은밀히 요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저도 대사백과 스승님을 모시고 오는 길에 전해 들은 이야긴지라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데. 여러분도… 모르고 계셨습니까?”

이때.

은하연이 달려와 빽! 하고 입을 열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모르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했대요! 언 공자는 참, 사람이 한결같아요! 그렇죠?!”

“…….”

“…….”

그런 은하연의 말에.

언용운이라는 인간을 겪어본 바 있는 정현과 독고철은 말을 삼켰고.

제대로 겪어보는 것이 기실 처음인 사겸과 손천정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전황을 둘러보았다.

“결과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퇴각까지 고려해가며 이곳에서 버티려 하니, 적들도 오판을 한 듯싶은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사정이 달랐다면 축왕의 군단뿐 아니라 인왕의 군단까지 계속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전멸을 면치 못했겠지요. 괜히 천하에 괴룡의 위명이 자자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는 사겸이 독고철을 향해 의견을 제시했는데.

“지금이 기회입니다. 무당의 제자들과 함께 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 말에, 은하연과 함께 맹주 직속 타격대를 이끌고 달려온 명태성이 입을 열었다.

“맞소. 모두 한숨씩은 돌린 것 같고, 지금이야말로 밀어붙일 기회이니. 다시 공격에 나서는 게 좋겠소. 전 대원은 채작진을 펼칠 준비를 하라!”

그 말에, 은하연과 타격대의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펼쳤고.

홍군 역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처처처척.

무당의 제자들이 나타난 이후로 묵묵히 있던 정현은 그중 타격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했다.

“…….”

채작진이 청죽관의 합격진이 된 지 오랜지라 익숙하기도 했고.

정현과 무당은 이제야 막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터라 조심스러웠던 것이었는데.

그런 정현을 운경이 붙잡았다.

“정현. 너는 이리로 와야지. 봐서 알겠지만, 후발대로 온 무당의 제자는 나까지 여섯이 전부다. 많이 움직이면 명영 대사백이 움직이는 게 노출이 된다고 하여 이렇게만 왔다.”

“…그 말씀은?”

“진무칠절진(眞武七截陣)을 펼칠 것이다.”

진무칠절진.

이는 무당의 개파조사 장삼봉이 말년에 무학을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오랜 고민 끝에 떠올려낸 무당 합격진의 정수였다.

“그걸 여섯이서 펼치도록 둘 셈이냐?”

각기 다른 묘리를 담은 일곱 개의 검법이 합쳐지며 힘을 발휘하는 이 합격진은.

홀로 그 검초들을 펼쳐내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학이었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그 위력이 배가 되고.

셋, 넷, 다섯, 여섯.

합을 이루는 이가 늘어날수록 더욱더 강한 위력을 내다, 일곱이 힘을 합치면 장삼봉이 추구했던 완벽에 다다르게 된다.

정현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운경과 함께 무당오협의 틈에 합류했다.

그에, 무당의 제자 일곱이 등을 맞대고 서자.

무당파의 무각주(武閣主)로, 젊은 제자들의 훈육을 담당해온 탈백검 명일이 입을 열었다.

“태허 사숙께서 참회동에 들어가실 적에, 명자배의 사제 둘도 함께 들어갔지. 그 이후에는 일곱이 진을 펼친 적이 펼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펼치게 되는가.”

정현의 발고로 태허자의 비위가 만천하에 드러나 실각하게 된 날.

무당칠협도 무당오협이 되었다.

하여, 진무칠절진을 제대로 펼치는 게 오랜만의 일이 되었기에, 명일은 순수한 감회를 말한 것이었는데.

“…….”

그 바람에 정현이 인사를 건넬 틈을 놓치자.

명일의 곁에 서 있던 명한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 사형은 뭔 그런 이야기를 하십니까. 다 매듭을 지은 일 아닙니까.”

“누가 뭐라고 했느냐? 정말로 오랜만에 펼치는 것 같기에 한 말일 뿐, 다른 뜻은 없다.”

“그건 사형 생각이죠. 듣는 애 생각도 좀 하십쇼.”

그에 정현이 멋쩍게 웃었는데.

“저는 괜찮습니다.”

이때.

덤벼오는 적들을 물리치는 데 집중하고 있던 명영이, 축왕의 군단을 크게 떨쳐내며 입을 열었다.

“저래 봬도 무각주가 네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다. 정말로 다른 뜻 없이 감회가 새롭다는 말일 것이야.”

“예.”

“나 역시 그렇다. 지금의 감회는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

“정현. 네가 기사멸조의 죄를 뒤집어쓸 각오로 사문의 큰 어른을 발고한 일. 그 일로 너는 사문을 사문이라 부르지 못하고 천지 사방을 가시밭길로 헤매게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명영은 담담한 어조로 계속 말을 이었다.

“무당은 부끄러움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을 지키려는 도를 좇기 위해 봉문을 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정현의 상처를 헤집는 듯했다.

“하나, 그 덕에 네가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

“우리 역시 봉문을 그늘 삼아 적의 눈을 피해 이곳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끝에 나온 이야기는 이해였고 반성이었다.

“돌고 돌아 태극이라. 이 길은 마를 멸하고 백성들을 구제하는 일이니. 결국 네 용기와 올곧음이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이게 했음이다. 네 잘못은 없다. 어깨를 펴거라.”

“…예!”

그에 비로소 정현의 손에 들린 송문검이 당당하게 기수식을 취했을 때.

“가자.”

무당의 일곱 제자가 펼치는 검초가 청량한 태극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    *    *

한편, 수하들을 이끌고 인왕의 군단에게서 내빼던 도중광은 전각 하나를 반환점 삼아 걸음을 돌렸다.

그에, 다시금 그 걸음이 인왕의 군단이 있는 쪽으로 향하게 되자.

그를 따르던 수하 중 편목금강이 급히 걸음에 제동을 걸며 입을 열었다.

“도망을 치려면 저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쪽으로 계속 가면 방금 싸우던 곳이 또 나올 것 같은데요?”

“맞다. 다시 그리로 간다.”

돌아온 답에 편목금강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하나 남은 눈을 찌푸렸고.

“엥, 토끼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작전상 후퇴였어. 척하면 척 해야지. 그것도 모르냐?”

“모릅니다!”

“모르기는. 새파랗게 젊은 후기지수가 뒤에 남았는데, 어떻게 우리만 도망쳐?!”

“염병할 후기지수 엿이나 먹으라고 하십쇼. 아니, 대두령은 원래 은퇴하고 싶어 하시던 분 아닙니까? 그리고 산적인 우리가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아무도 뭐라고 못할걸요?”

그런 편목금강의 말에, 다른 산적들도 저마다 딴청을 피웠다.

그에 도중광은 언월도로 땅을 찍으며 입을 열었다.

“이노무새끼들아. 자존심도 안 상하냐? 잃을 게 천지인 남궁가의 도련님이 우릴 믿고 혼자 남았는데. 이걸 진짜 도망치면… 우리는 쓸개도 없는 놈이 되는 거야!”

“없는 셈 치면….”

“이 새끼야. 우리 바닥이 어떤 바닥이냐. 우습게 보이면 끝나는 거야. 그리고 괴룡 그 녀석의 눈동자 기억 안 나냐?”

“…….”

“지금 혈교 꼬라지를 봐라. 그런 녀석을 잘못 건드리면 아주 주옥이 되는 거야! 모르긴 몰라도 무림공적이 되는 것만큼이나 피곤할 거다.”

“…….”

“그보단 혈교 놈들에게 한 방 먹여서 우리를 우습게 보면 마인이고 뭐고 아주 엿 된다는 걸 보여주고!”

“…그리고요?”

“그 궁윤이라는 놈 할애비가 검황이란 늙은이 아니냐? 거기 가서 내가 당신 손주 은인이요 하고 한몫 단단히 뜯는 게 낫지 않겠냐?”

“진작에 그 이야기부터 하시지.”

도중광이 그렇게 수하들을 설득해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마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남궁윤이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캉! 캉!

카카카캉! 카아아앙!!!

‘애송이, 장담한 대로 아직 버티고 있구만.’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도중광은 언월도를 꼬나쥐고선 달려 나갔다.

“공격!”

완전히 도망쳤을 것이라 생각해 마음을 놓고 있던 마인들은 도중광과 녹림도가 다시 등장하자 당황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로잡으라는 말을 들은 남궁윤은 생각 외로 강적인지라, 등지고 싸우기에 무리가 있었는데.

도중광 무리 역시 무시할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그로인해 인왕의 군단에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스몄고.

“컥!”

“커흑!”

그 틈을 노려 도중광과 남궁윤은 마주한 적들을 줄여 나갔다.

그에, 인왕도 남궁윤을 멀쩡하게 사로잡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얕은수를… 이렇게 된 이상 네 놈의 팔다리부터 끊어놔야겠다!”

그리고 진한 강기가 휘감긴 편주먹을 내질러 냈는데.

쌔애애애액!!!

이때.

언월도로 빗자루질을 하듯 적을 썰어낸 끝에, 포위의 틈을 뚫어낸 도중광이 인왕의 투로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끼어든 도중광에 대처하기 위해, 인왕은 번개 같이 몸을 틀었다.

휘릭!

그리고 왼 장력을 위협적으로 뻗어 도중광으로 하여금 걸음을 물리기를 유도했는데.

쌔액!!

웬걸, 도중광은 되레 걸음을 앞으로 내뻗어와 그런 인왕의 주먹에 부딪혀왔다.

뻐어어엉!!

그에, 북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도중광이 한 움큼의 피를 토하게 되었는데.

“쿨럭.”

이 순간.

어째선지, 도중광의 얼굴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에 인왕의 뇌리에 본능적으로 아차 하는 생각이 스치던 때.

“!”

도중광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언월도를 내버리고, 인왕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뇌기가 감긴 남궁윤의 검이 그 위로 떨어졌다.

촤악!!!!!

그렇게 팔을 대가로 내어 주고서야, 인왕은 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퉤! 산적 나부랭이라고 무시했지? 맛이 어떠냐 늙은 마두 놈아!”

도중광이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며, 인왕을 향해 비웃음을 보내는 때.

“부, 불이야!”

혈천수라궁의 정문인 혈라문 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    *    *

내가 한두 마디 뱉어낼 때마다, 꿀렁이는 진괴량의 핏대로 미루어 짐작건대.

진괴량의 귀는 열려 있었고, 내 조롱도 잘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그에 나는 진괴량의 역린 중의 역린이라 할 수 있는 천마신교의 당금 교주 이야기를 꺼냈고.

“괴량아, 이 새끼야.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십만대산에서 처 기어 나와서. 이 고생을 하냐. 혁련강이 밑에서 십장이나 하면 딱 맞을 새끼가 독립이니 뭐니, 분수에 안 맞는 짓을 하니 이 꼴이 나지.”

그러면서 놈과 혈견을 연결하는 가죽관도 착실히 잘라 나갔는데.

그렇게 맹렬하게 입과 손을 놀린 끝에.

끝끝내 지키고 싶은 것들을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묘왕의 목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촤아아아악!!!!!!

이제 정말로 거리낄 것이 없어졌기에.

난 곧바로 진괴량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는데.

“!”

일순,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 들기에 거꾸로 땅을 박차니.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린 진괴량이 이를 갈아왔다.

“…잘도 지껄이더구나.”

그런 진괴량의 모습은 혈우신공을 대성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가지고 있던 공력도 깎아 먹은 게 분명했기에.

나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가 원래 듣기 좋기로 유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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